고방[3820]이영환 아호-陽山[양산]
李永煥先生 陽山[양산]作號記
先生의 故鄕 陜川(합천)은 名勝(명승)과 古蹟(고적)으로 有名한
경남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지자체이고
栗谷面 項谷[항곡]에서 出生하여 성장하셨다.
지금은 풍광이 수려한 신광면 흥곡리(興谷里)에서 노후를
대비하시어 翰墨을 가까이 하시며 作號를 請하시니
陜川(합천),栗谷(율곡)의 項谷(항곡)리는
마을앞 약 300여평의 저수지가 천연적으로 생성되어서
못이 있는 마을, 즉 못실이라 불리워졌고 세월이 지나면서
못실이 변칭되면서 목항(項)자를 사용하여 項谷이 되었다 한다.
項谷2구인 오복동(五福洞)의 유래는 임진왜란시
백마산성에 주둔한 조선의병들이 맞은편 못재산에 주둔한
倭兵(왜병)과 전투시 마을주민들 협조를 고맙게 여겨 작별 인사차
5인의 장수가 산성에서 내려와 복 많이 받고 행복하게 잘 사십시오
하면서 떠났기에 동명(洞名)을 오복동(五福洞)으로 불리워졌다고
전하여 내려온다.
마을 서쪽의 수양산(壽陽山)과 북쪽의 백마산(白馬山)이 둘러있고,
동쪽은 황강(黃江)이 동류(東流)함으로 토지가 비옥하여
이름 그대로 복을 받은 마을이다.
이런 緣由(연유)로 先生의 雅號(아호)를
陽山(양산)이라 作號하였다.
陽山[양산]은 項谷里(항곡리) 마을 서쪽의
수양산(壽陽山)의 줄인 말이다.
壽陽山의 글뜻 그대로 長壽하고
陽(양)은 태극(太極)이 나뉜 두 기운 중의 하나이며
음(陰)에 대하여 적극적, 능동적인 면을 상징하니
밝음, 하늘, 해, 임금, 아버지, 수컷,맑고 吉(길)하며
상서로움을 표현하는 文字이다.
陽(양)이 가지고 있는 뜻, 늘, 항상, 따뜻한 일상에
高貴한 여생을 이루시길 바라며
2024년 古方이 謹識(근지) 삼가 적어봅니다.
옥산(玉山)
옥산(玉山) : 조선시대에 제작된 합천군 지도상에 주요 산천의 하나로
올려져있고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데
그 사적을 살펴보면 신라(新羅)가 고려태조(高麗太祖) 왕건(王建)에게
망할 당시 대야성주(大耶城主) 김억겸의 딸이
경순왕의 천거로 태조의 아내가 되니 신성왕후(神成王后)요,
신성왕후의 친정집이 이 玉山에 있었다.
신광면 흥곡리(興谷里)
興谷[흥곡]碧洞[벽동]元谷[원곡]= 원흥곡(元興谷)의 줄인 말.
1914년 당내, 원흥곡, 마주와 벽동, 송곡,
기계면 종단의 일부를 합하여 흥곡(與谷)이라 하고
당내(堂內)와 원흥곡(元興谷)을 2리로 하였다.
당내(堂內) 마을 어귀에 당산숲이 있어서 불리어진 지명이다.
오리 모양의 나무를 세우고 제단을 쌓은 곳에서
정월 보름달 골안골 마을과 합동으로 당제를 지내왔었다.
임란이후에 형성된 마을이라 전해진다.
원흥곡(元興谷) 골안골이라 부르다가 어감이 좋지 않다 하여
근세에 이르러 흥하는 마을이라 뜻에서 흥곡이라 개칭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1,2리 모두를 흥곡이라 호칭함에 따라
원래의 흥곡이라뜻으로 원흥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월성김씨 입향조를 모신 재실 죽와정(竹窩亭)과
월성이씨 재실이있다
벽동·마주(馬走)·마조(麻助) 주막거리 서편 청룡봉(靑龍峯)으로
뚫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서 용마(龍馬)가
달아난 방향의 마을이 라고 마주(馬走)라 하였다 한다.
옛날 삼밭이 많았을 때 마전(麻田)이라 부른 것이 와전되어
마조(麻助)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벽동이라 부르던 초기는
월성이씨와 밀양박씨가 터를 잡고 세거하였다 전한다.
곡부공씨 재실 모선재(慕先齋)와
월성김씨 재실 죽모재(竹慕齋)가 있다.
점골 이 마을 남서 골짜기에 위치했으며
옹기를 굽는 일에 종사하던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