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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에서 탄 기차는 밤새워 달려 오전7시15분 태원에 도착을 합니다 기차침대칸은 처음이라 적응이 안되어서 업치락 뒤치락하다가 일어나 복도에 앉았다가 하면서 잠을 설치는데 우리칸에 같이탄 이십대 초반의 아주 예쁜 중국인 아가씨 두명은 코를 엄청 골면서 끝까지 깨지않고 자면서 옵니다. 태원기차역도 엄청 복잡합니다 다른역들은은 10일전부터 기차표를 예매 할수있는데 이곳은 5일전부터라고 쓰여있어 임분-대동행을 예매하려고 긴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리니 없다고 하네요, 아!기차표^ 이제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인 평요로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큰도시에는 버스터미널이 두개씩있습니다, 한곳은 장거리,한곳은 단거리 이곳에서는 단거리터미널인 건남터미널로 가야되는데 터미널 위치정보를 잘못 올린 블러그때문에 조금 헤매다 중국인들이 알려줘 찾아갑니다 역앞에서 길건너 오른편으로 건남터미널이 써있는 버스를 타고 다섯정거장을 가면되는데 장거리버스터미널로 찾아갔으니....
태원은 황하문명의 발생지이며 지리적으로 베이징과 뤄양 사이의 교통요충지로서 진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정한 후부터 북방으로 부터의 침략시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인 된 성도 태원은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베이징보다 더 깊다고 합니다. 백거이의 고향이며, 삼국지연의 작가 나관중의 고향이라 그의 기념관도 있습니다
중국의 기차역들은 매일 우리어린시절의 명절날 고향가는 열차모습입니다
이 (建南汽车站)에서 단거리버스들은 출발합니다, 이곳 터미널 정류장부터는 화장실 드나들기가 쫌 힘들어 지기도 하고요 태원에서 평요까지는 1인26위안입니다, 29인승의 작은버스로 2시간정도 소요됩니다 중국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공항처럼 짐검사를 꼭합니다, 이것도 시간이 갈수록 귀찮아 집니다
평요平遥
平遥古城(핑야오고성) 평요고성은 외국인이 꼽은 중국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10위 안에 드는 지금까지 명.청시기 현성의 모습을 갖고 있는 중국 한족 지역에 보존되어 있는 가장 완전한 옛 도시입니다. 평요는 서주(西周) 선왕(宣王기원전827-782년)시대부터 만들어진 27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특히 명나라 홍무3년(1370년)부터 도시주위에 성곽을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서울 여의도 크기에 성벽둘레가 6.4㎞ 높이가12m로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합니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보존상태가 좋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중국의 4대고성은 (운남성의 여강고성) (산서성의 평요고성) (안휘성의 흡현고성) (사천성의 낭중고성) 라고하며 이외에도, 여행자들이 말하는 (운남성의 대리고성)과 (호남성의 봉황고성)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고성은 저마다 평가가 엇갈리는데 내가 본 고성은 평요고성이 처음이다 보니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상상했던 그 모습은 아닌것 같습니다 밤이 되니 고성의 시루주변 중심가는 다른나라의 외국인 여행자거리 밤모습을 닮아가고 있는듯 보입니다 마치 라오스의 방비앵처럼 캄보디아의 천년유적지를 떠올리며 삼천년 고성의 숨결을 그때처럼 느껴보고 싶었는데 수많은 전동차의 빵빵대는 소리와 많은상점, 많은사람속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고성내에서는 전통극을 공연하는곳도 있는데 거의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입니다 어느분이 좋은평을 올려 놓아 찾아가 보았는데 지루해서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중국인 관객들도 보다가 많이들 나가고. 전동차를 끝나는 시간에 오라고 적어 주어서 나가지도 못하고^ 입장료가 뒷쪽은 60위안 앞쪽은 100위안, 뒷쪽에 앉았는데 정말 돈아까웠습니다, 혹시 누군가 가신다면 무조건 말립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이 고성내 빈관에 묵는데 버스에서 만난 텐진에서 온 중국인 학생이 고성밖에서 머무르라고 추천하며 방을 흥정해서 들어갔는데 이번 중국여행에서는 가격대비 최고로 만족한 방입니다 1일숙박료 120위안(22,680원) 에어컨,인터넷,욕실, 그리고 방이 두개입니다 다음일정만 없다면 이곳에서 몇일 묵었다가 가고 싶은 집입니다, 이집은 이제 저희때문에 평요고성으로 떠나는 한국여행자들이 많이 갈것 같습니다, 벌써 두팀이 예약을 하겠다는데 중국말밖에 안되니 예약도 안되는곳입니다
이집 건너편에 있는 식당도 음식 맛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메뉴적어달라고 하면 저렇게 잘 적어줍니다 그런데 중국사람들 한문은 전부 약자로쓰고 왜 그렇게 휘갈겨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자로 써도 못알아 보는데 휘갈겨쓰니- 그래서 나도 휘갈겨서 그려주었더니 중국사람들 아무도 못알아 보더군요ㅋㅋ
이친구가 평요에 오는 버스에서 만나 오늘 하루 같이 돌아 다녔는데 집이 감숙이고 텐진에서 대학을 다니는 청년입니다 영어를 미국인처럼 구사해서 좀 불편했지만 산서성특산물과 자기가좋아하는 음악시디,그리고 고성에서 엽서를 사서 우리딸과 문장군앞으로 보내는 선물도 해주고 하루종일 빌린 전동차비용과 버스비용도 청년이 다내고 점심식사값도 150위안을 청년이 내서 다시 돌려주고 내느라 한국인의 문화처럼 실갱이도 했던 참으로 친절한 청년입니다 그런데 여행내내 거의 모든 중극인들은 친절합니다,
평요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기차로 개휴로 이동합니다 개휴는 평요에서 기차로 30분정도 걸리고 개휴에서는 왕가대원과 장벽고보를 둘러보고 멘산으로 들어가려합니다
기차역 플랫트홈에는 역무원들이 8명이 나와서 기차표를보고 안내를 하는데 군기 엄청 잡습니다 자기자리에서 줄서있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역무원이 계속 궁지렁댑니다 이번 열차는 k열차 중국의 열차는 항상 입석까지 꽉찹니다
왕가대원은 개휴역을 등지고 왼쪽으로 올라가다(5분거리) 보면 버스정류장 있는데 거기에서 왕가대원 팻말을 붙인 시내버스를 타면 됩니다. 버스요금은 5위안 소요시간은 1시간
▶王家大院(왕자다위안)
예전부터 산서성은 상업이 발달하여 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 커다란 대저택을 짓고 살던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링스(靈石)라는 동네에 위치한 왕가대원은 지에시우에서 50분 정도의 거리에 있습니다. 내가 들어가는 날은 비가오고 안개가 많이 끼어서 한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王家大院은 왕씨의 커다란 집인데 왕가대원의 시조인 王實은 두부와 소금으로 돈을 많이 벌어 거상이 되었고 17대 후손인 왕여총, 왕여성 형제가 관직에 등용되어 명문가를 형성했다고 하며 정승에 오른 두 형제로 인하여 청(淸)나라 4대가문의 하나로 되면서 1796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300여년에 걸쳐 지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예전에는 3,000여명이 거주했다고 하며 27대후손이 왕가대원 맨 위쪽에 새로운 궁을 지어 생활하고 있다고 하네요 전체면적 25만 평방미터, 건축면적 4만5천 평방미터, 정원이 123개, 총1,118칸의 방을 가지고 있고 담장의 높이는 자금성과 비슷한 10Μ라고 하며 저택의 전체 면적이 북경 자금성의 내정(왕족의 생활공간)보다 크다라고 합니다 어떻게 개인주택이 이렇게 클수가^ 정말 놀랍습니다. 중국은 오래전에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보고 떨렸었는데 그이후도 계속 놀라움입니다
왕가대원은 버스를 등지고 오른쪽 방향으로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매표소가 있습니다.(문표 65위안) 평요고성에서 많은 사람들과 전동차 경적소리에 시달렸더니, 이렇게 비가 오더라도 한적하고 조용한 왕가대원이 더욱 좋습니다. 자금성과 비교될정도로 규모가 큰 이곳이 한 지방 유지의 집이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지만 걸어서 다 돌아보려면 쾌 다리가 아픕니다. 비만 오지 않더라면 정원에 앉아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싶을 만큼 운치가 있고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탁 트인 전망과 내려다 보이는 수많은 전각의 기와장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보면서 이 왕씨일가에 대한 감회가 차오릅니다. 왕씨 가문은 중국 근대사와 일제 침략시기를 거치며 서서히 쇠락하여 이거대한 저택도 매각하였고 또한 이 저택도 지금은 관광상품이 되어버렸으니..... 중국 정부는 '교가대원'과 함깨 세계문화유산을 신청했다고 하는데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왕가대원을 보고나와(2시50분)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개휴시 나가는 버스가 서있길래 몇시에가냐고 물어보니 3시에 간다고합니다. 몇시에가냐?는 요렇게 써서 보여주면 (几点 出發?) 손가락으로 3시라고 알려줍니다 다음버스시간을 몰라 다시 개휴시로 나가서 점심을 먹고 빈관을 찾습니다 중국에는 외국인을 받지 못하는 빈관들이 많기 때문에 몇군데 둘러보고 가격흥정을 해야합니다 가격흥정은 한국말로하면서 노트에 숫자만 서로 적어가며 흥정합니다 개휴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은 张壁古堡 장벽고보를 둘러보고 멘산으로 들어갑니다
张壁古堡
버스정류장을 들어서면서 노트에 쓴 张壁古堡 한자를 누구에게 물어보나 두리번 거리는 우리를 보고 장비같이 생긴 버스기사가 검지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린다. 버스기사 창에 노트를 들어보이니 차를 타라고 합니다. 출발시간 9시반 버스요금은 4위안이고 종점에서 내리면 됩니다 중국에서는 버스에 안내양이 있으면 가야할곳을 적어서 보여주면 내리는 정류장을 알려줘서 참 편합니다 그런데 요놈의(张壁古堡)글자를 그리는데 참 시간이 오래걸리고 그리고나서 보면 웃깁니다
장벽고보에 내리니 안개가 자욱하고 우리 두사람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진짜 여기가 장벽고보가 맞나싶습니다 그래도 조금 걸어 내려가니 매표소가 있고 직원들이 있는데 관광객은 우리 두사람뿐입니다 (문표는 1인 60위안)
장비처럼 생긴 버스기사가 친절하게도 이렇게 적어 주네요 글자는 모르겠는데 뭐 짐작으로 12시에 온다는 뜻이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정각 12시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张壁古堡 는 지하땅굴속에 군사시설과 거주형태의 생업활동과 종교활동이 남아 있는 천년이나 된 도시입니다 베낭보관을 문의하니 사무실 안에다 놓고 다녀오라고 합니다. 입구에 있는 화장실은 시설이 청결하고 깨끗합니다. 중국의 10대 명진이며 중국의 역사문화 명촌 장벽고보는 1,500년전 당나라 초기에 제대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마을의 구전에 따르면 장벽고보는 당나라 건립전 이세민(후에 당태종이 됨)과 치열하게 싸웠다는 수나라 장수 유무주의 근거지로 지하 3층까지 땅굴이 둘러쳐진 하나의 성입니다. 돌궐족의 후예로 추측되는 유무주는 허베이성 사람으로 이곳 산서성에서 수나라때인 대업13년(617년) 망한수나라의 복원을 위해 군대를 일으켰지만, 멘산에 주둔시킨 이세민의 군대에 패하여 돌궐로 도망갔다가 다시 이마을로 돌아오려다 발각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아직 중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지지않은 산서인들에게만 알려진 관광지이다 보니 사람이 많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굴을 빠져 나오면 바로 절벽이 나옵니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심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물도 볼수가 없는데 보이는 텃밭옆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입니다 이제 동네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구경을 합니다
장벽마을에는 용가라는 골목길과 작은 골목의 삼거리에 항문이라는 골목문을 볼수 있는데 유일한 출입구로서 이 골목문만 닫으면 완전히 페쇄되어 성안의 또다른 성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그냥 골목길이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각각 격리된 구역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붙어있는 이 사진은 장벽고보를 우주의 이치에 맞추어 세웠다는 뭐 그런그림 같은데 완전 모르겠습니다 보면서 엄청 궁금했는데 중국고대성상문화.... 읽을수있는 범위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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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부도 많이하셔서 가셨군요...흥미진진...기대만땅입니다.
다녀오신 전 코스중에 제가 가본 곳은 청도뿐이군요.
공부하지못했습니다,
지금 집에와서 생각하니 우스워 죽겠습니다, 중국인 앞에서 폼잡고 한극인을 한문으로 쓸려고 하는데
韓자가 안써지는겁니다, 눈앞에서 뱅뱅도는데.... 대충 휘갈겨 써서 한국인이라고 보여주니
중국사람 한참을 보더니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그 친구들 간자를 쓰기땜에 진짜 정통 한문을 우리보다 모르는 아이러니....
정말 유적이 잘 보존된 멋진 곳이군요
덕분에 구경 잘 합니다^^
유적보려고 간게 아닌데 정말 유적지 아닌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입장료 엄청나게 비쌉니다.... 입장료150위안이면 3만원입니다, 둘은6만원
중국의 고대를 보려면 산서성으로 가라...
산서성을 돌아 다니며 몇번을 이야기했습니다, 동해의 푸른님이 오셔야 할곳이라고....
구미땡기네요 ~~
중국여행~~~대단한 중국 입니다
중국에 가서보면 우리조상님들 예전에 중국에 기죽을수 밖에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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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은 세가지조건이 필요하다라고 합니다 (1번 인내심과체력) (2번 시간의여유) (3번은 현찰)
바람님은 2번조건만 빼고 완벽하십니다, 체력과현찰
悠悠自適하며 여행하시는 주막님 내외가 부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