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사)우리 역사학당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역사침탈의 실상 스크랩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51 13.08.21 16: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2)
 
안창범 교수
그러나 유교?도교?기독교?도덕협회?이슬람교?창가학회 등 외래종교 신자들은 종교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으냐 하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것은 종교지상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종교인들도 원래 종교인이기에 앞서 하나의 자연인이었다. 자연인이므로 누구든 민족적 혈통을 지니고 있다. 민족적 혈통은 이 세상에서 목숨이 다 될 때까지 불변적이다. 그러나 신앙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곧 가변적이다. 가변적인 것보다 불변적인 것이 우선한다. 따라서 신앙에 앞서 민족이 우선한다. 민족이 우선하므로 다른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보다도 제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이 우선하고, 다른 민족의 민족신이나 조상을 섬기기에 앞서 제 민족의 민족신과 조상(하나님과 국조)을 먼저 섬겨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을 예로 들면,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도 기독교 신앙에 앞서 제 민족의 민족사와 민족사상을 먼저 가르치고 배워야 하며, 여호와를 찬양하고 예수와 마리아를 섬기기에 앞서 제 민족의 하나님과 삼성(한인과 한웅과 한검)을 먼저 섬겨야 한다. 그것이 순리인 것이다.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다면 당연히 유대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고 유대민족의 신(神)인 여호와를 할렐루야하고 찬양해야 하며, 예수와 마리아를 섬기고 그에게 공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인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를 믿어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혈통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곧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신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서 기독교 신앙은 세계화 신앙이며 민족주의 신앙이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민족주의에는 결함이 많다. 그러한 나라와 사회는 세계적인 경쟁에서 낙후될 수 있고, 국제분쟁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그와 같이 세계화에도 결함이 많다. 세계화만을 지향할 경우, 그 나라와 사회는 주인 없는 사회가 되어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게 될 것이며, 제 나라를 무시하고 강대국인 선진국만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약소민족의 자본은 강대국인 선진국으로 몰리어 그 사회는 IMF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세계화를 지향한다고 그리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 제2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곳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섯째, 외래종교 정책은 민족분열이다.

유대교 당국은 학교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와 사사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문제에 대해서는 묵인한다. 이는 교양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당 내에서는 여러 나라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허용치 않는다. 오로지 제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만을 허용한다. 그것은 교양교육이 아닌 정신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구계?미국계?인도계?중국계?인도계?아랍계 등 여러 계통의 종교 이입을 허용하였다. 그럼으로써 우리나라에는 수백개의 외래종교가 난립해 있고, 수백개의 외래종교 당국은 각각 다른 역사와 사상을 우리민족에게 가르치고, 우리민족은 각각 다른 역사와 사상을 배우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종파마다 각각 다른 역사와 사상을 가르친다함은 예컨대, 할아버지는 유교를 신앙하고, 할머니는 불교를, 아버지는 개신교를, 어머니는 가톨릭을 신앙하여 그 가르침이 각각 다른 격이다. 그러면 그 자녀와 손자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 아닌가? 

따라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철학이 없어 이해 따라 이합집산하게 되고 교육자도 철학이 없어 해마다 교육개혁이란 이름으로 교육내용을 바꾸게 된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그 기준이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의 주관대로, 편리한대로, 좋은 대로하면 그것이 정의이고 진리인 것이다. 서로 충돌이 생길 경우 힘세거나 다수 쪽이 이기게 된다. 그래서 각 개인은 유력한 우두머리(boss)와 이익집단을 중심으로, 또는 종파를 중심으로 단합할 수밖에 없고, 개인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단결이 잘 안되고 또 단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2)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칠 경우, 자연히 다른 나라만을 동경하게 되고, 민족적 주체의식과 주인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기업체나 정부에서 외국을 상대로 “한국을 사시요(Buy Korea), 우리나라를 사시오, 곧 나의 어머니를 사시요”라고 외쳐도 국민은 무관심하게 되고, 정부가 국토와 기업을 외국에 팔아도 국민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게 된다. 곧 대다수의 국민은 국가와 민족의 흥망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이 사회의 부정과 비리 등 불합리한 것은 모두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단결이 잘 안 되는 것도 민족성 탓이며, 시기질투하고 모함하는 것도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나쁜 것은 모두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종교인으로서 종교에 근본책임이 있다고 실토하는 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책임을 모두 다른 데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종교에 대한 비평을 금기시 한다. 참으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여섯째, 외래종교 정책은 사대주의 조장이다.

유대교 당국은 신앙의 성지가 자기 나라로서 제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교육한다. 즉 유대교 당국은 종교교육을 통해 유대민족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준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세계적인 위인과 유명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신앙의 성지가 다른 나라인 것이다. 곧 기독교 당국의 성지는 예루살렘(그러나 개신교는 미국에서 전래됐으므로 미국을, 성공회는 영국에서 전래됐으므로 영국을 예루살렘 다음의 성지로 친다)이며, 불교 당국의 성지는 인도와 네팔이고, 유교 당국과 도교 당국의 성지는 중국의 곡부(曲阜)와 한양(漢陽)이다. 즉 이들 외래종교 당국의 성지는 이스라엘?미국?영국?인도?네팔?중국이다. 그래서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이들 나라들을 신앙의 성지 또는 신앙의 조국이라 동경하게 하고, 이들 민족을 세계의 중심민족 내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선민(選民), 또는 선량한 민족 또는 위대한 민족 곧 성민(聖民)이라 선망하게 하면서 그 나라를 순례하고 그 민족을 찬양한다. 그뿐만 아니라 외래종교 당국은 거기에 대대적인 사찰 또는 교회당을 건립한다. 여기에서 신도인 우리민족은 우리 나라는 신앙의 성지가 아니며, 우리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는 열등의식을 갖게 되고, 사대주의 의식을 자연히 가지게 된다.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유대교 당국은 제 민족에게 제 민족의 민족신인 여호와만을 숭배하게 하고, 다른 민족의 민족신을 절대 숭배하지 못하게 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와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민족신만을 숭배하게 하고, 우리민족의 민족신을 숭배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일반적이다.

2) 유대교 당국은 제 민족에게 매주일 교당에서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뉘우치게 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매주일 또는 음력 초하루와 매 보름마다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는다. 

3) 유대교 당국은 제 민족에게 제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가르치고, 제 민족을 성민(세계의 중심민족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존경하게 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제 민족에게 다른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가르치고, 제 나라를 성지라 가르치지 않으며, 다른 민족을 성민이라 가르치면서 제 민족을 성민이라 가르치지 않는다. 곧 유대교는 국산종교(國産宗敎)로서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종교라며, 우리나라의 외래종교는 외국산종교(外國産宗敎)로서 신토불일(身土不一)의 종교이다. 

다음은 우리나라의 교유종교와 외래종교의 다른 점 비교이다. 앞에서 설명했으므로 간단히 정리한다. 

첫째, 발생학적 배경이 다르다.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는 어느 개인에 의해 득도(得道)되거나 성도(成道)되었다.[주:득도(得道)나 성도(成道)란 이미 있는 도(道)를 얻거나 터득했다는 뜻으로서 없는 데서 만들었다는 뜻의 창도(創道)와 다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더라도, 그 시원을 찾아 올라가면, 신선도에 그 연원을 둔다. 신선도는 우주의 운행원리인 천일(天一)?지일(地一)?인일(人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도(天道)를 발생배경으로 국가와 민족, 나아가서 온 인류를 위해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는 그 성립목적이 일반적으로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으로서 민족적 국가적인가하면, 세계적 국제적이다. 

이에 반해 외래종교는 거의 시대적 사회적 여건을 배경으로 자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창도되었다. 그러므로 외래종교는 그 창도목적이 민족적 국가적이다. 

둘째, 신앙대상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고유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우리민족의 국조 또는 성인(교조)을 숭배하도록 지도함과 동시에 하늘님(하나님)에게 기도하도록 지도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신 또는 성인을 숭배하도록 지도한다. 

셋째, 교육내용이 다르다.

우리민족의 고유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일반적인 윤리도덕과 아울러 세계적인 문제를 가르치면서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친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일반적인 윤리도덕과 아울러 세계적인 문제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주로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친다. 

넷째, 신앙의 성지가 다르다.

우리나라 고유종교의 성지(聖地)는 우리나라이다. 예컨대, 대종교의 성지는 백두산 천지이며, 천도교의 성지는 경상도 경주 구미산(龜尾山)이고, 증산도의 성지는 전라도 고부(古阜)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 외래종교의 성지는 다른 나라이다. 예컨대, 기독교의 성지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며, 유교의 성지는 중국 산동선(山東省) 곡부(曲阜)이다. 불교의 성지는 일정치 못하여 인도 당국에서는 인도 중부지방의 부다가야를 석가세존의 출생지 겸 성도지라 하는가 하면, 네팔 당국에서는 타라이를 출생지라 하고 성도지는 일정치 않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고유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을 천민(天民) 또는 천손(天孫)이라 극찬하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다른 민족을 성민(聖民) 도는 선민(選民)이라 극찬한다. 예컨대, 기독교 당국은 유대민족을 하나님(하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 또는 세계의 중심 민족이라 극찬하고, 불교 당국은 인도인을 세계에서 가장 선량한 민족 곧 성민(聖民)이라 극찬하며, 유교 당국은 지나족을 세계에서 가장 거룩한 민족이라 극찬하면서 중국을 대국(大國)?군자국(君子國)이라 극찬한다. 곧 고유종교는 국산품을 사랑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내지 영육일치(靈肉一致)의 종교라 하면, 외래종교는 국산품을 싫어하는 신토상극(身土相剋) 내지 영육불일치(靈肉不一致)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이상 설명한 바를 도표화하면 <표-1>과 같다. 

<표-1> 고유종교와 외래종교의 다른 점 비교표


구 분

고 유 종 교

외 래 종 교

성립 배경

자연의 운행법칙

시대적 사회적 배경

종교의 목적

민족적, 세계적

민족적, 국가적

신앙의 대상

우리민족의 하나님과

호국신(교조)과 조상신

다른 민족의 민족신과

교조와 성인.

곧. 여호와. 알라. 공자.

교육내용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

신앙의 성지

우리 나라

다른 나라

신앙의 성민

우리 민족

다른 민족

신앙의 성격

신토불이, 영육일치

신토상극, 영육불일치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봅시다. 우리민족이 중국에서 온 중국교포이거나 중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중국을 동경하면서 중국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이며, 중국의 공자?증자?안자?자사자?맹자를 모시어 거기에 절을 하고 공양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누구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민족이 이스라엘에서 온 유대 교포이거나 유대민족이라면 이스라엘을 동경하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이며, 유대민족의 여호와를 하나님이라 찬양하고, 유대민족의 예수와 마리아를 모시어 거기에 절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우리민족이 인도에서 온 인도 교포이거나 인도 사람이라면 인도를 동경하고, 인도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이며, 인도의 부처님을 찬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중국 사람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며, 인도 사람도 아니다. 곧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의 신과 조상을 섬기지 않고, 한국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는다. 

이에 반하여 다른 민족의 신과 조상을 섬기면서 다른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동경하고 다른 민족을 성민이라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러므로써 남의 조상을 내 조상으로, 남의 신앙을 내 신앙으로, 남의 사상을 내 사상으로, 남의 나라를 정신적 고국(故國)으로, 종교적 최면상태를 정신적 안락으로, 종교적 서구종속을 세계화로 착각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병의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사회의 병폐 원인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썩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고, 국민이 썩은 것은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혈통 내지 민족적 신분과 죵교교육 내지 그 신앙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잇다. 곧 병의 원인과 처방이 서로 맞지 않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외래종교 신자 가운데는 다른 민족의 신앙을 위해 죽는 순교자는 있어도 제 나라와 제 민족을 위해 죽는 애국자는 드물고, 다른 민족의 신앙을 위해 내놓는 돈은 몇 천억원도 아깝지 않게 여기면서 제 나라와 제 민족을 위해 내놓은 돈은 단 만원도 아깝게 생각한다. 곧 외래종교인들은 육체는 한국 사람이면서 사상적 종교적 신앙적으로는 유대인에 가깝고, 중국인, 인도인, 미국인, 아랍인, 일본인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외래종교인들은 종교적 사상적 신앙적으로는 한국인도 아니며 외국인도 아니라 가짜 한국인에 가깝고, 가짜 외국인에 가깝다는 것이다. 곧 어중뱅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 민족의 문제에 대해 극히 소극적이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이 아닌가? 1919년 삼일운동때까지는 국가가 망한 울분에서 외래종교인들도 독립운동에 함께 참여했었다. 그러나 그 뒤 일제의 회유와 탄압이 심해지면서 친일(親日)쪽으로 기울어 1941년 태평양 전쟁발발 이후 독립운동에 참가한 불교인과 기독교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불교 당국은 일본측이 제정한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친일(親日) 쪽으로 기울고 전투 비행기를 구입하여 일본 정부에 헌납까지 했던 것이다. 기독교 당국은 교정분리(敎政分離) 원칙을 내세워 신도들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역적(逆賊)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살해한 안중근(安中根) 의사를 교회 밖으로 출교했다가 이제야 복교하였다. 그러한 것이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상해 임시정부 요직에 끝까지 남아있는 외래종교인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 한용운(韓龍雲)이 불교인같이 보이지만 원래 동학교도였고, 안창호(安昌浩)는 기독교인으로서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기독교의 교정분리원칙을 무시했던 것이며, 서재필(徐載弼)과 이승만(李承晩)은 주로 신변이 안전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곧,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여 목숨이 위태함에도 불구하고 상해 임시정부를 지키고 독립운동을 끝까지 한 애국지사들은 거의 대종교인들이며 동학교도들이었다. 외래종교인들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외래종교인들에게는 민족의식이 희박하고 애국애족심이 부족한 것이다.

3)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과 식민지 종교정책의 유사성

오늘날 우리민족의 교육은 어느 분야에서 일제시대 식민지 교육의 연장이라 할 수 있고, 종교교육은 식민지 지배전략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오늘날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우리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식민지 지배전략과 어떠한 유사성을 지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을 일본의 신사(神社)에 나가서 일본의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천황에게 배례하게 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 나라의 외래종교 당국도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 공양하게 하고 배례하게 한다. 

둘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탄압하고 일본의 역사교유과 사상교육만을 하였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도 우리민족에게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하지 않고, 다른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만을 한다. 

셋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교유종교를 유사종교니 사이비종교니 하면서 타파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를 미신숭배니 미개종교니 하면서 멸시한다. 

넷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신화라 부정하면서 한인 한웅 한검의 삼성(三聖)을 역사적 실재 인물로 인정하지 않았고, 삼성을 모신 평양 구월산(九月山)의 삼성사(三聖祠)를 헐어버렸다. 그와 같이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신화라 부정하면서 한인천제와 한웅천황은 물론 단군왕검(한검단군)마저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하고, 단군성전 건립을 반대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군성전 건립을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단군좌상의 목을 자르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다섯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성씨를 가내무라?구니모도?야나가와 ?요시가와 등 일본식으로 개명하게 했다. 그와 같이 한국의 어느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의 성명을 교명(敎名)이라 하여 마리아?요셉?안나?요왕?요안?요한?세레나?베드로 등 서구식으로 개명하게 한다.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종교정책과 유사하다. 특히 어느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종교정책과 그대로 일치된다. 그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있으나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이론이 성립된다. 

1)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 당국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와 다름이 없으며, 거기에 협력하는 한국인 교직자들은 과거의 부일협력자(附日協力者) 내지 친일파(親日派)같이 보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2) 일제시대 식민지 종교정책이 우리민족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국가기강을 해이시키기 위한 종교정책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도 우리민족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국가기강을 해이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의 외래종교인들이 일본군에 가담하면서도 독립군에 참가한 애국지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은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일제시대 식민지 종교정책이 우리민족에게 독립의욕을 말살시키고 사대주의 의식과 맹종적 노예근성을 심어주어 일본을 우러러 받들고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도 우리민족에게 독립의욕을 말살시키고 사대주의 의식과 맹종적 노예근성을 심어주고 이스라엘?로마?미국?중국?일본 등 다른 나라를 우러러 받들고 다른 나라에 예속시키기 위한 정책이나 다름이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몇 십년이 흘러도 적극적 통일의욕이 없지 않는가? 이와 같이 외래종교 교육은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동포의식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느 외래종교 당국의 과오는 너무나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논리대로 해석하면 어느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나라가 서구국가 특히 미국의 종교적 식민지로 전락되기를 바라는 격이며, 그 지도자들은 미국의 하수인과 같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미국정부나 미국국민이 볼 때, 우리민족은 미국의 심부름꾼 같고 용병(傭兵) 같으며 미개민족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외국인들에게 절대 좋게 보이지 않고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민족이 국제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6-7년전 미국 LA교민들이 흑인들로부터 수난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은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오해받게 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시키는 정책인 것이다. 이와 같이 외래종교 당국과 그 교직자들은 우리민족을 잘못 지도함으로써 많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3. 교육계의 주객전도된 정신교육

외눈박이(비정상인) 사회에 가면 두눈박이(정상인)는 병신 취급을 받고 외눈박이가 정상인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사회에서는 외래종교 세력이 막강함으로써 외래종교에 대한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제 민족에 대한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은 하찮은 것으로 멸시받고 있다. 

97년도판 『한국학교명감(韓國學校名鑑)』을 근거로 96년도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정신교육 실태를 파악해 보면, 4년제 134개 대학에 외래종교 내지 외래철학 관련학과로서 철학과 51개, 종교철학과 3개, 종교학과 5개, 종교교육과 1개, 기독교 교육학과 13개, 기독교학과 5개, 선교학과 3개, 불교학과 2개, 유교학과 1개, 동양철학과 3개, 동양 종교학과 1개, 인도철학과 1개 등 다른 민족의 종교와 철학을 가르치는 학과는 90개(인접학과를 포함하면 외래사상 관련학과는 234개)이며, 제 민족의 사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학과는 성균관대의 한국철학과와 안동대의 민속학과 등 2개뿐이었다. 

교수의 수효 역시 서양철학 관련교수?기독교 사상(철학)관련 교수?동양철학 관련교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수 천 명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한국철학(한국사상) 관련교수는 고작 21명이었다. 이들 교수 역시 순수한 한국철학 교수가 아니라 半유교?半불교?半한국철학 교수들이다. 순수한 한국철학 교수는 아닌 것이다. 곧 우리 나라 대학교육에 있어서 다른 민족의 정신교육은 있어도, 제 민족의 정신교육은 없는 것이다. 곧 주객전도(主客顚倒) 내지 영육불일치(靈肉不一致)의 교육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서양철학 박사와 기독교의 신학박사는 수천명에 이르고, 유교?불교?도교 박사도 수십명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제 민족의 고유철학 박사와 민족종교 박사는 4천 5백만 인구 중에 겨우 4-5명 전후이다. 그것도 외국에서 받은 박사와 최근의 박사들이다. 

이로 인하여 대학 4년 동안 제 민족의 사상이나 철학을 한 강좌도 수강하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되는 학생이 전체의 99% 이상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의 바이블, 불교의 대장경, 유교의 사서오경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있는 줄도 모른다. 지나의 공자?맹자?노자?관우?장비와 기독교의 12사도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환국(桓國)의 7세 한인은 물론, 배달국의 18세 한웅, 단군조선의 47세 단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다음은 4년제 대학 외에 대학 곧 교육대학 11개, 방송통신대학 1개, 개방대학 17개, 전문대학 152개, 교육부소관 외 대학 9개, 각종 학교 19개 등 209개 대학 가운데에 한국철학과가 몇 개나 있고, 한국철학교수는 몇 명이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철학과는 하나도 없었고, 육군사관학교에 철학과가 있는데 거기에 한국철학 교수가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끝으로 중등학교에서의 정신교육 실태이다. 중등교육은 대학에 진학하기 전 기초교육이다. 그러므로 중등교육은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 이념에 충실한 인격완성과 주체적 한국인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하게된다. 따라서 중등교육은 한국적이면서 세계주의적인 교육이 되어야 하고, 세계주의적이면서 한국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윤리ㅣ』(교육부,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8) 교과서를 보면, 한국윤리사상 분야는 전체 302 페이지 중에서 겨우 20 페이지가 할애되고 있으며, 그것도 책의 마지막 끝에 다루어질 정도로 무시되고 있다. 또한 정해찬?곽신환의 고등학교 『철학』(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8) 교과서를 검토해 보면, 거기에 동양 인물화(인물사진)가 12회, 서양 인물화가 39회나 소개되고 있으나, 한국 인물화는 겨우 5회만이 다루어지고 있다. 신일철 외 9명이 지은 고등학교 『철학』,(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8) 교과서에도 동양 인물화가 8회, 서양 인물화가 20회나 다루어지고 있으나, 한국 인물화는 겨우 4회만이 다루어 질 정도로 고등학교 철학교육 역시 너무나 서양철학 중심이며, 한국철학은 무시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중등교육도 주로 다른 민족의 사상, 특히 서구사상만을 가르치고, 제 민족의 사상은 무시되고 있다. 중등교육마저 국적이 없고, 주객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교육 실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우리민족은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을 동경하고, 제 나라와 제 민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음을 의미한다. 곧 우리민족은 사상적 정신적으로 외국화되어 제정신이 없고, 애국심과 애족심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사회에는 주인의식도 동포의식도 없다고 한다. 국회에도, 법원에도, 행정부에도, 기업체에도, 어디에도 주인이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각종 부조리와 사회악이 발생하고, 부정부패가 만연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병폐원인은 첫째, 다른 민족의 민족신 숭배와 제 민족의 국조불신(國祖不信), 둘째, 외래종교 교육의 과잉과 고유종교 교육의 천시, 셋째, 학교에서의 외래사상 교육 일변도와 고유사상 교육의 부재 등 고유신앙과 외래신앙의 주객전도, 고유사상교육과 외래사상교육의 주객전도로 인한 사상적 신앙적 외국화 현상에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쓰면, 한국사회의 병폐원인은 지나친 외래종교 신앙과 외래사상 교육이 민족혼을 흐리게 하여 빼앗고 몰아내어 파괴하고 미치게 하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원인은 우리민족의 성격이 너무나 직선적이고 순진하여 사실을 확인함도 없이 외래종교 당국자의 선전을 그대로 믿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외래종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래되었다. 그러므로 외래종교 당국자가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선전 속에는 어떤 음모가 있거나, 그 종교의 사상에 어떤 모순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선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도 과학적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길이며, 한국병 치유의 길인 것이다. 곧, 우리민족의 경우, 우리사회의 병폐원인은 윤리도덕이나 인성교육의 모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성종교의 모순에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깊이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Ⅳ. 종교교육의 모순과 국가의 멸망 

1. 외래종교 신앙이 민족국가를 망하게 한 사례

이상의 이론이 정당하고, 거기에 모순이 없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 후 우리민족은 서서히 외래사상에 물들게 되었고, 역대왕조의 멸망이 외래종교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를 생각하면, 이상의 이론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국인 고구려가 소국인 신라에게 멸망하게 되었던 주요원인은 외래종교인 오두미교(五斗米敎)를 지나치게 장려하고, 이를 신앙한 데에 있었다. 

고구려는 고유사상(예컨대, ?衣仙人)과 불교 및 유교의 균형에 의해 700년의 역사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그 말엽 제27대 영류왕 7년(서기 6254년)에 당(唐)나라로부터 천조상(天尊像)과 도법(道法)을 들여오고, 제28대 보장왕 2년(서기 643년)에는 도사(道士) 8명과 『도덕경(道德經)』을 들여옴으로 왕은 기뻐하며 절(寺)을 빼앗고, 그들을 머물게 하였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전한다. 그후 조정은 전국적으로 도관(道館)을 세우고 도사를 관리에 우선 임용하는 등 오두미교(五斗米敎;도교의 일종)를 적극 장려함으로써 집집마다 『도덕경』을 소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반면에 불교에 대해서는 오히려 핍박하였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도관으로 몰리게 되었고, 불교신자는 줄어들어 법당이 텅텅 비게 되는 동시에 불교계의 지도적 스님인 보덕화상(寶德和尙)마저 참다못해 고구려를 떠나 남쪽의 완산주(完山州), 지금의 전주비방으로 떠나버렸다. 그후 얼마 없이 나당(羅唐) 연합군이 고구려를 침략하였다[주:『三國遺事』 寶藏奉老 寶德移庵].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당해서 고구려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던가? 종교인들은 대체로 국가와 민족보다도 신앙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당나라의 오두미교 신자가 된 고구려 백성의 입장에서 오두미교 국가인 당(唐)의 왕실은 신앙의 본산이 되고, 당군(唐軍)은 신앙의 조국군대가 된다. 그래서 고구려 백성들은 당군의 침략을 신앙의 조국군대가 입성한다 하여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협조적이었고, 불교도 또한 조정에 대한 반감에서 비협조적이었다[주:『三國史記』 卷第二十二, 高句麗本紀 第十, 寶藏王條 참조.]. 하나의 예를 들면,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장남 남생(男生)은 오두미교를 신앙하고, 차남 남건(男建)은 불교를 믿어 형제 사이에 신앙이 다름으로서 서로 불신하고 권력투쟁 끝에 남생이 막리지의 직(職)을 동생 남건에게 뺏기게 되자 적군인 당군(唐軍)에 가담하여 제 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래서 나당(羅唐) 연합군은 피를 흘리지 않고 무저항 속에서 고구려를 쉽게 정복했던 것이며,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고구려 멸망의 주요원인은 다른 데도 있었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외래종교인 오두미교를 수입하여 이를 지나치게 장려하고 신앙함으로써 민족정기를 해이시켜 외국화시킨 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신라가 쇠약하게 된 주요원인은 외래종교인 유학(儒學)을 고유종교보다 더욱 중요시한 데에 있었다. 

신라는 고유사상인 화랑도(숭천교;崇天敎)에 의해 지탱해 왔다. 그러나 삼국을 통일한 후 당(唐)나라의 학제를 받아들여 제31대 신문왕 2년(서기 682년)에 지나식 국학(國學)을 세웠으며, 제33대 성덕왕 16년(서기717년)에는 孔子?十哲?七十二 제자의 화상(畵像)을 당(唐)으로부터 수입하여 교학(敎學)의 사표로 삼았고, 제38대 원성왕 4년(서기 788년)에 지혜와 덕망과 무술로써 인재를 선발하던 고유의 제도를 고쳐, 지나식 문과제도를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지나의 삼사(三史)와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에 통한 사람을 특별 채용하는 등 무술을 경시하는 문약한 유학출신을 더욱 우대해 국가의 요직에 기용함으로써 국풍파(國風派)와 유학파(儒學派)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문약한 유학파가 우세하면서 신라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주:『三國史記』 新羅本紀 제38대 원성왕.]. 

셋째, 고려 멸망의 주요원인은 외래종교인 불교도의 타락과 외래종교 세력인 주자학파의 쿠데타에 있었다. 

고려는 왕건태조 건국이래 그 초엽에는 화랑파와 불교와 유교 등 삼교일체(三敎一體)의 기반 위에 운영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중엽 이후에는 왕실이 유교쪽으로 더욱 기울게 되면서 서경(西京)천도를 주장하는 묘청(妙淸)과 정지상(鄭知常) 등 국풍파를 타도한 유학파가 더욱 득세하여 안일과 방종에 빠지게 되자 무신반란이 일어나 고려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드디어는 몽고의 지배와 간섭을 받게 되면서 문물제도와 관행이 몽고식으로 변질되었고, 불교마저 몽고식으로 강요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불교계마저 부패하게 되고, 민족의식이 자주성을 잃어 국민도덕이 타락하게 되자,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해 외래사상인 주자학(朱子學)을 원(元)나라의 연경으로부터 수입하고 장려한 것이 주자학파의 득세를 가져왔다. 여기에서 신진무장 이성계(李成桂)를 앞세운 정도전(鄭道傳) 이하 외래의 주자학파 일당들이 실지(失地;고조선과 고구려의 잃어버린 옛 영토)회복의 좋은 기회를 포기하면서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제 나라의 조정을 무너뜨렸다. 이래서 고려는 망하게 되었다. 따라서 고려조정이 멸망하게 된 주요원인은 외래종교의 불교도의 타락과 주자학자의 쿠데타에 있었다. 

넷째, 근세조선 멸망의 주요원인은 외래사상인 주자학(朱子學) 일변도에 있었다.

근세조선은 건국초부터 외래사상인 주자학을 정치?종교?교육?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그 기반으로 하였고, 주자학 외의 종교나 사상, 예컨대 불교와 도교 심지어 제 민족의 신앙까지도 이를 모두 이단으로 몰아 붙였다. 이에 따라 명(明) 나라의 문물제도를 무조건 받아들임과 동시에 명나라의 연호(年號)를 사용하였고, 세자의 책봉도 자청하여 명나라의 양해를 구하였다. 조정에서는 물론 교육기관에서도 사당(祠堂)을 지어 거기에 지나의 공자와 맹자 등 지나족의 위인 백여명을 모시어 숭배하면서도, 자기민족의 삼성(三聖)인 한인(桓因)?한웅(桓雄)?한검(桓儉)은 평양의 구월산(九月山)에 방치하여 모시지 아니하였다. 향교나 성균관의 교과와 국가고시인 과거의 시험과목도 모두 지나족의 역사인 사기?한서?후한서 등의 삼사(三史)와 논어?맹자?대학?중용의 사서(四書) 그리고 주역?시경?서경?예기?춘추의 오경(五經)과 그밖에 제자백가서(諸者百家書) 등이었고, 거기에서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에 대한 과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의 일반 제례도 오례의(五禮儀)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여 지나식으로 변질되었다. 정치와 종교와 교육과 사회제도가 그러하므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알아야 하였고, 제 민족의 그것은 알 필요가 없게 되었다. 또한 가르치지도 아니하였다.

따라서 근세조선의 주자학자들은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에 대하여 전혀 무식하게 되었다. 일반 학풍이 그러하므로 거기에서 어떻게 참다운 민족애와 민족의식이 낳고 자랄 수 있으며, 가짜 한국 사람을 만들 수밖에 없었으니, 주자학자들은 겉모양은 한구 사람이면서 정신은 명나라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러므로써 주자학의 이존기비(理尊氣卑) 이론을 국가에 적용시켜 지나를 대국(大國)?부국(父國)?중화(中華)?중국[中國은 원래 국명이 아니었다. 전에는 청(淸)?명(明)?당(唐)?수(隋)였다]이라 높이는 반면, 제 나라를 스스로 소국(小國)?자국(子國)?이적(夷狄)이라 멸시하였다. 또한 제 민족에 적용시켜 관존민비(官尊民卑)?남존여비(男尊女卑)의 신분차별제도를 만들어내어 제 민족을 양반(兩班)?중인(中人)?상인(常人)?천인(賤人)의 네 계급으로 나누었는가 하면, 다시 천인을 칠반천역(七般賤役)으로, 노비를 칠반공천(七般公賤)?팔반사천(八般私賤)으로 나누어 서민들로부터 갖은 수탈을 다하였다. 이러한 차별대우 밑에서 아무리 윤리 도덕을 가르친다 해도 서민으로서 어떻게 조정에 대해 충성심을 지닐 수 있으며, 양반계급에 대해 원한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민란(民亂)이 자주 일어났는가 하면, 동학혁명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청군(淸軍)과 일군(日軍)이 개입하면서 근세조선이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외래사상인 주자학이 국민도덕을 진작시키기도 하였고, 외침을 당했을 때나 서구세력이 밀려올 때,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내세워 국권을 수호한 공로도 크지만, 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민에게는 오랑캐 대하듯 함으로써 서민들의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해이시켰으며, 양반들에 대한 원한 때문에 자주 난리가 났고, 전국적으로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청군과 일군이 개입하면서 근세조선이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외래종교가 우세해지거나 극성하게 될 때, 독선적 배타적으로 흘렀고 동포의식이 해이해지면서 제 나라의 조정을 무너뜨렸거나, 국가가 멸망하게 되었다.

2. 주자학과 기독교의 유사성

지나산 외래사상인 주자학이 근세조선 500년의 권력기반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은 근세조선 멸망의 주요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유대산 외래종교인 기독교 세력이 권력과 밀착하고, 그 성격이 극히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다. 이 점에서 주자학과 기독교는 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문제점을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주자학은 원시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지나족인 정명도(程明道)와 정치천(程伊川) 그리고 주희(朱熹)에 의해 성립된 지나산 외래사상이다. 기독교는 유대인 예수에 의해 성립됨으로써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유목민족인 백인종에 의해 수차 개혁되고 변혁됨으로써 유목민족인 백인종의 민족종교이다. 따라서 주자학과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성격이나 욕구와 무관한 우리민족의 종교가 아니다. 

둘째, 주자학은 우주의 구성계기를 형이상학적 법칙으로서의 이(理)와 형이하학적 물질로서의 기(氣)의 2원적 계기로 볼뿐만 아니라, 그 관계를 이선기후(理先氣後) 이존기비(理尊氣卑)의 상대관게로 본다. 기독교는 우주의 구성계기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2원적 계기로 볼뿐만 아니라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대립관계로 본다. 이와 같이 두 개의 사상은 만유를 차별적으로 보는 데서 같은 성격을 지닌다. 

셋째, 기독교의 교당에 나가면 거기에는 유대민족의 출신인 예수의 십자가상(十字架像)과 마리아의 입상(立像)이 모셔 있고, 거기에 예배하면서 유대민족의 민족신인 여호와를 할렐루야 하고 찬양한다. 

우리나라의 주자학파에서도 성균관과 향교의 대성전에 지나의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 오성(五聖)과 공자의 제자 十哲?七十二 제자 그리고 송(宋)나라의 육현(六賢) 등 백여명의 위패를 모시어 축문을 읽고 절을 하면서 제사한다. 이와 같이 두 개의 종교는 모두 세계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민족의 민족신을 숭배함으로써 외래종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넷째, 기독교에서 유대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 또는 세계의 중심민족이라 하고, 다른 민족(우리민족)을 주변민족 같이 보는데, 이는 주자학에서 지나를 대국(大國)?부국(父國)?중국(中國)?중화(中華)라 하고, 주변 국가(우리나라)를 소국(小國)?자구(子國)?이적(夷狄)이라 했던 것과 비유된다. 

다섯째, 기독교의 교회당에 나가면 유대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와 그 위대성만을 가르치고, 제 민족의 그것을 가르치지 아니하는데, 이는 근세조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의 그 위대성만을 가르치고, 제 민족의 그것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아니했던 것과 그대로 일치된다. 

여섯째, 기독교에서 박애와 평등을 가르치지만, 그것은 백인과 기독교인에 국한된 문제이며, 유색인종(有色人種)이나 이교도들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기독교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동남아에서 이교도 국가들을 식민지로 하여 그 문화를 파괴하고 인명을 무참히 살육했던 과거의 만행이 증명한다. 그런데 주자학에서도 존경과 사랑을 가르치지만, 그것은 양반계층에 국한된 문제이며, 이교도나 서민들에게 그렇게 대하지 아니했다. 이에 대해서는 근세조선의 족벌제도와 신분제도가 잘 증명한다. 

일곱째, 기독교에서는 기독교인만이 그것도 자기 종파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천당에 갈 수 있고, 이교도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데, 주자학에서는 주자학만이 양반이고, 이교도를 상인(常人) 내지 천인(賤人)으로 취급하였다. 

여덟째, 기독교에서는 자기 종교 외의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몰아 붙이고, 바이블 외의 다른 종교 서적을 금서(禁書)로 하는데, 주자학에서도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몰아붙였고, 그러한 사람을 사문난적(斯門亂賊)이라 하면서 다른 종교 서적을 모두 금서(禁書)로 하였다. 

아홉째, 기독교에서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일절 숭배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다른 종교의 숭배대상을 파괴하기도 하는데, 근세조선의 주자학에서도 공자?안자?증자?자사자?맹자 등 유학자들 외의 다른 성인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고, 불상을 파괴했는가 하면 사찰을 방화하기도 하였다. 

열째, 기독교는 살생을 예사로 하는 서구 유목민족 사회에서 발생되고 성장한 종교로서 그 숭배의 대상인 여호와도 살생을 지시하고(예컨대, 민수기:25장 4절과 8절, 신명기:13장 6절에서 10절), 역사상 타민족을 무참히 살육하였다. 그러나 유교(朱子學)에서 살생을 지시했다거나 타민족을 무참히 살생했다는 기록을 본 바 없다. 이러한 점에서 주자학은 기독교보다 선량하고, 기독교는 주자학보다 포악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무엇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주자학자들에 의해 고려조정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주자학자들 사이에 난투극을 벌였고, 당파 싸움을 하다가 국가사직(근세조선)까지 멸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종교적 성격이 주자학과 극히 유사하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더욱 포악하다고 할 수 있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기독교가 더욱 극성하게 되어 기독교 일변도의 국가로 될 경우, 우리의 고유역사와 사상과 문화는 어떻게 되고, 우리의 민족국가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심히 두렵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과거를 돌이켜 보면, 기독교인들이 제 나라의 조정을 전복시키려 했던 1801년의 황사영(黃嗣永) 백서사건(帛書事件), 교정분리운칙(敎政分離原則)을 내세워 일제치하에서의 독립운동을 좌시했던 행위, 또한 세계화의 탈을 쓴 반민족적 유대화교육(猶太化敎育), 이로 인해 신앙적으로 국적 없는 가짜 한국인 양산, 단군성전 건립반대와 단군좌상 파괴 및 민족신앙과 타종교에 대한 배척과 파괴행위, 조상숭배 반대, 최근의 오대양사건, 종말론에 의한 휴거소동, 영생교 사건, 목자들에 의한 부정과 비리, 그밖에 기독교와 회교 또는 구교와 신교 사이의 피나는 전쟁의 역사를 생각하면, 기독교로 인해 장차 이 민족은 어떻게 되고, 인류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극히 불안하고 위태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목자들은 광신자들의 소행이라고 일축할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사유의 지배를 받고, 사유는 신앙의 지배를 받는다. 결국 광신자들의 소행도 기독교의 신앙에서 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목자를 불구하고 애국 애족심이 없을 이 없고, 반국가적 반민족적 교육을 할 리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리와 과거의 전쟁사 및 현재의 독선적 행위를 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목자들의 신앙에 대한 자각

목자(牧者)들이여!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사회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이 나라의 서민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주었고, 사랑을 베풂으로써 희망과 용기와 지혜를 불어넣기도 하였다. 군사독재정권 밑에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독재와 투쟁했는가 하면,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위해 어느 종교보다도 적극적이었다. 그 공로가 지대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교리와 민족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모순이 많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는가? 그 모순점을 지적하니 목자들은 불쾌히 생각하기에 앞서 깊은 자각이 있기를 바란다.

첫째, 기독교의 여호와는 전 인류가 숭배해야 할 보편타당한 하나님인가, 아니면 유대민족에 국한된 유대인의 민족신인가? 전지전능한 창조주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 제2편의 Ⅱ의 1 “창조주 여호와의 포악성과 삼신하나님”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둘째, 목자들은 목자가 되기 위해 기독교의 바이블을 통독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바이블이 과연 성스러운 성서이던가? 아니면 유목민족의 잡다한 역사 서이던가? 더욱이 그 속에는 근친상교(近親相交 ; 예컨대, 창세기 19장 30절에서 38절을 보면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는 이야기, 38장 8절에서 11절을 보면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하여 형수와 동침하는 이야기, 신명기 25장 5절에서 6절을 보면 형제 중에 어느 하나가 죽으면 죽은 자의 아내를 취하라는 이야기, 그밖에도 창세기 28장 2절, 여호수아 15장 16절, 사무엘하 13장 10절에서 14절을 보면 숙질 사이, 남매 사이에 동침하는 이야기 등이 실려있다), 살인행위(살인행위 ;예컨대, 민수기 31장 7절에서 11절, 신명기 1장 4절, 3장 3절, 6절, 13장 6절에서 10절 등을 보면 살인행위들로 꽉 차 있다), 탈취행위(탈취행위 ; 예컨대, 신명기 2장 33절에서 36, 신명기 3장 3절에서 4절, 6절에서 8절, 여호수아 8장 1절에서 2절, 15절에서 19절, 22절에서 25절, 29절 참조)들로 꽉 차 있는데, 그러한 책이 어찌 성스러운 성서이며, 여호와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하나님이란 말인가? 

교육적인 입장을 생각하면, 불량하고 잘못된 어린이일수록 더욱 선도해야 한다. 더욱이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선(善)과 악(惡)을 모두 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여호와는 유대민족의 입장에서 싫으면 이를 모두 악(惡)이라 하여 징계하고 있으니 그러한 여호와를 어찌 대자대비한 하나님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책을 어찌 성서라 할 수 있는가? 따라서 그러한 여호와의 가르침과 바이블의 기록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가? 옳지 못한 일인가? 깊이 자성할 문제가 아닌가? 

더욱이 동양종교에서는 어느 종교의 경전을 보아도 거기에 사람을 죽이라는 내용이 일절 없다. 비록 미물의 개미새끼라 하더라도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기독교의 바이블에는 소위 하나님이라는 여호와가 사람을 죽이라는 내용이 비일비재하니,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다하더라도 어찌 훌륭한 종교라 할 수 있겠는가? 

셋째, 기독교는 불교와 민족종교를 미신이라 천시하는데, 미신이란 무슨 뜻인가? 비과학적 비합리적 어리석은 신앙이란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유대민족의 민족신인 여호와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하늘과 땅과 그밖에 온갖 것을 모두 6일 동안에 창조했다는 신화를 믿고,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신앙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란 말인가? 또한 기독교는 제 종파 외의 다른 종파를 모두 이단으로 몰아붙이는데, 그렇다면 상대적인 입장에서 제 종파도 이단이 아닌가? 주관적 이기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이 참다운 종교인이 아닌가? 

넷째, 제 가까이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데 남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보겠는가? 기독교인들은 제 민족의 수호신이 있고 신앙이 있는데, 외래 수호신인 여호와를 부르면서 잘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으니, 전자와 무엇이 다른가? 더욱이 앞에서 사례를 든 바와 같이 고구려와 근세조선도 외래 민족신을 숭배하다가 결국 멸망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사례를 보아도 외래 민족신을 숭배하고 종교를 신앙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옳지 못한 일인가? 깊이 자성할 문제가 아닌가?

다섯째, 내 집안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듯, 우리민족의 문제는 우리민족이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목자들도 우리민족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독교의 목자들이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연구하고 포교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니면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무시하면서 남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만을 연구하고 포교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어느 것이 애국적이고 보람있는 일인가? 이것 역시 깊이 자성해야 랄 문제가 아닌가? 

여섯째, 기독교가 유대민족의 민족종교인가, 아니면 세계적인 종교인가를 물으면 목자들은 세계적인 종교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그 이유를 물으면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것이다.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기독교의 사상이나 교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서구 기독교 국가(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획득하고, 식민지 지배전략상 기독교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1) 식민지 획득을 위해서는 식민지의 민족성, 교육수준, 경제적 약점, 자원의 매장량과 그 출처, 군사력, 지리와 풍속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선 정보수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경제적 침략이나 무력침공에 앞서 기독교를 우선 침투시키고 보급시켰던 것이다. 곧 기독교는 제국주의 국가의 첨병(尖兵)과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제3세계에 우선 보급되었던 것이다. 

2) 식민지를 용이하게 지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주체의식을 말살시키거나 해이시켜 민족총화를 파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민지의 민족사상과 민족신앙 및 그 구심체를 없애거나 그것이 부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범애사상(汎愛思想)을 내세워 민족사상과 민족신앙을 부정하며, 유일신 신앙을 내세워 여호와 외의 다른 신을 배격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만 보급시키면 자연적으로 민족신앙과 민족사상이 부정되고, 민족의 구심체인 국조숭배와 조상숭배를 배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를 보급시킬 경우, 기독교는 민족신앙을 미신으로, 민족사상을 편협한 국수주의 사상으로, 국조숭배와 조상숭배를 우상숭배로,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애국지사들을 국수주의자로 몰아붙이게 된다. 그리되면 동족 사이에도 사상과 신앙이 분열되어 사회기강이 흔들리게 되고, 민족의식이 해이하게 될 뿐만 아니라, 민족의 통일적 구심점이 무너지게 되고, 전체 민족이 사분오열되어 민족총화를 이룰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제국주의 국가는 무력을 쓰지 않고도 식민지를 무난히 지배할 수 있게 되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서구 기독교 국가(제국주의 국가)는 기독교를 먼저 보급시켰고, 기독교가 세계에 널리 보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서구 기독교 국가들이 세계인류를 그만큼 핍박했고 착취했다는 증거가 된다.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점을 제3세계의 목자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톨릭은 로마 교황청의 보호를 받고, 개신교는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성공회는 영국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제3세계의 목자들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란 무슨 뜻인가? 거기에는 보호육성과 아울러 감시감독을 받고 지시를 받는다는 뜻이 내포되고 있지 않는가? 감독과 지시 속에는 적의 정치적 군사적 활동에 대한 목자들의 보고와 아국(제국주의 국가)의 기밀누설 금지가 포함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3세계 국가의 기밀은 제국주의 국가로 다 빠져나가도 제국주의 국가의 기밀과 정보기관의 활동은 제3세계 국가에 절대 누설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제3세계의 목자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곧 기독교 목자인 정보요원이 제 부모의 방 가까이 숨어살면서 제 부모의 기밀을 모두 염탐해도 신자인 아들은 이를 묵인한다는 것이다. 제3세계의 현실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목자들은 이러한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일곱째,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급속히 보급된 이유를 아는가? 해방 후 기독교가 급속히 보급된 것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민족종교 세력의 쇠퇴와 미국군정이 정보수집과 한국 지배전략에 의한 기독교인 이용 때문이었다. 곧 종교인(기독교인)을 보호하라는 미군정 사령관 맥아더 포고(布告) 제1호 전문에 의해 미군산하 기관요원과 정보요원 그리고 정부요직 등 각 부처에 기독교인을 대량기용하고 기독교인을 원용하여 정치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바꿔 선의로 해석하면, 우리나라의 서민대중은 근세조선 500년 동안 족벌제도와 신분제도에 의해 가혹한 천대와 차별을 받았었고, 또한 일본 제국주의 밑에서 탄압과 질곡속에서 살아야 했었다. 그런 처지의 서민대중에게 1945년 해방이 오고, 미군정이 수립되자 출세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즉, 한국의 지리?풍속?민심에 어두운 미군정은 정보수집과 치안유지를 위해 서민을 이용해야 했고, 서민 입장에서는 천민 내지 상민으로 천대받던 빈천한 자신에게 인간평등권이 주어져 출세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영어를 배우기에 광분케 되었고, 기독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어서 기독교 대통령(리승만)이 집권하면서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에 의해 신학대학이 설립되고 목자들이 배출되면서 교회당이 도시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들어서게 되었고, 기독교가 급속히 보급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교리나 사상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미군정의 한국 지배전략에 의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급속히 보급되었던 것이다. 제3세계인 한국의 목자들은 미국의 조종에 의해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을 빨리 파악하고 미국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기독교의 목자들은 신도들에게 유대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만을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한국 기독교측은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사례를 든 바와 같이 근세조선의 주자학자들이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사상과 종교를 가르쳤던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만을 가르치다가 결국 제 나라를 멸망하게 하였다. 이를 생각하면 목자들의 행동이 과연 이성적인 행동인가? 합리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국가와 민족이 망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맹목적인 행동인가? 깊이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아홉재, 동양종교는 신앙의 목적이 현세에 있다. 예컨대, 불교의 개인적 목적은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며, 사회적 목적은 불국토(佛國土) 건설이다. 극락과 지옥은 죄악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유교의 개인적 목적은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하는 것, 곧 관능적인 욕구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 성인 군자가 되는 것이며, 사회적 목적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곧 대동세계(大同世界) 건설이다. 

이와 같이 동양종교는 그 목적이 현세에 있고, 그 목적달성을 위한 수양방법으로 원기를 기르는 조식법(調息法), 마음을 말게 하는 지감법(止感法), 품행을 닦는 금촉법(禁觸法)이 있다. 그런데 기독교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원죄를 속죄하고 내세에 천국에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기독교에는 속죄하기 위해 남에게 자선하고 기도하는 것 외에 따로 행실을 닦아 성인 군자가 된다거나, 마음을 닦아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는 현세적인 목적과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양방법이 특별히 없지 않는가? 수양방법이 없으므로 어떻게 인격을 도야할 수 있으며, 인격을 도야할 수 없는데, 기독교가 아무리 현세적인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을 외치고 세계평화를 기원한다 해도 이론적인 측면에서 그것이 실현될 수 있겠는가? 목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이상과 같이 기독교는 모순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목자들이 그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족적 세계적 사명감 때문인가? 아니면 누구의 권유, 가문의 전통, 종교적 출세, 직업적 경제적 안정성 등 개인적 이유 때문인가? 그 대답은 명확하지 아니한가? 깊이 자상하고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꿔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 기독교의 목자들은 앞으로도 반복하여 민족과 국가 앞에 크나큰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목자들이여! 목자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 한국사람이 아닌가?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서구 유목민족의 유물주의적 이기주의적 야욕을 간파하자. 서구 유목민족의 정치적 군사적 세계제패 목적도 거기에 있음을 간파하자. 이를 간파하면 기독교는 바로 그 제패 수단임을 알게 될 것이다.
 
기사내용:저서명-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

안 창 범 지음
출판사 : 제정신 차리기 시민운동 준비모음 
저자소개
성명 : 안창범(安昶範). 1933년생. (호적상, 1936년생). 제주도 태생.
현직 : 제주대학교 교수
저서 : 민족사상의 원류. (국역)배달성전.
하나님 사상과 불교의 기원.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한민족의 신선도와 불교.
우리민족의 고유사상.
韓國固有思想과 東洋思想의 起源.(2000년 출판예정)
논문 : 古神仙敎의 宗敎的 體系.
花郞道의 外來 道?佛?儒 三敎受容說 批判.
中國儒學의 淵源과 東夷.
神仙道와 東學의 起源.
석가불교의 기원과 한국의 신선도.
東洋思想의 發生과 우리나라의 白頭山.
神仙道의 實在的 根據 등 약 30편.
관련기사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2)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3)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4)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5)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6)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7)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