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올미다리뷰] 이젠 나도.. 다시 날 수 있을 것 같다 훨훨~
글쓴이 : 지현천사*^^* (다음까페 예지원사랑)
날짜 : 2006.12.26 23:47
미자요? 최미자는 우리의 희망이에요! 희망!!
이름 최미자, 나이 서른 둘, 직업 성우... 를 가장한 백수,
취미는 주말내내 방바닥 긁기, 특기는 뻑하면 술먹고 길바닥에 넘어지기.
올미다는 이렇게 초라한 프로필을 자랑하는 미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키도, 몸매도, 재주도 딱 대한민국 평균치인 최미자가,
치렁치렁한 날개옷을 걸치고 눈만 동그랗게 뜬 여배우보다 백배 천배 더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 때문이다.
"너무 자서 허리 아프다" 는 푸념이나 "키스 해 본지도 참 오래됐어요~" 하고
자기 혼자 키스하는 흉내내기, 눈만 마주쳐도 혹시 이 남자가 날.. 하는 대단한 착각..
이런 미자의 엉뚱함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감백배다. 바로 내 모습이니까.
그리고 이 엉뚱한 노처녀는 꿈마저도 나와 똑같이 꾼다.
다시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꿈. 그래서 나는 미자의 좌절엔 같이 화가 났고,
미자의 눈물에 열배는 더 가슴이 찢어졌으며, "다시 날 수 있을 것 같다."
는 미자의 마지막 말엔 가슴 벅찬.. 정말 터질 것 같은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난 미자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유리구두와 마법 때문에 날 수 있게 된 공주가 아니라서 더 좋다.
물론 지피디와 사랑에 빠지긴 하지만 그녀가 다시 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녀의 용기와 노력 때문이니까..
그리고,
예지원.. 이런 여배우가 우리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올드미스다이어리의 희망이며, 또한 한국 영화계의 희망이다! 희망!!
미자씨, 나는 미자씨가 왜 이렇게 좋을까?
어떤이들은 지피디가 미자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약해서
영화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랑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그건 환타지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다.
둘은 반드시 만나야 하는 인연이였기에 만났고,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첫만남을 보자.
겨우 대사 두 줄뿐인 귀신 역을 맡고도 춤까지 추며 좋아하는 미자.
무뚝뚝하고 건조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지피디 눈에
그런 미자가 얼마나 신기해 보였겠나 (나는 봤다. 미자씨를 처음 본 날,
스크린을 가득 채운 지피디 얼굴이 미세하게 떨리던 것을..
이건 영화를 2, 3번쯤 더 보면 보인다)
게다가 엉뚱하고 실수투성이인 미자는 단조롭던 그의 일상에 깊숙히 침투해
그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킨다.
바른생활 사나이인 지피디가 밤 10시에 친구와 만나는 걸 봐라.
예전의 지피디라면 방송국 옥상에서 오밤중에 캔맥주 마시는 걸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미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하는 지피디의 미세한 표정 변화는
"지피디가 왜 미자를 좋아해?" 따위의 질문을 과감히 날려버린다.
그리고 또 하나! 그럼 지피디는 경찰서에서 왜 미자를 그냥 동료라고 했을까?
사람이 아무리 변해도 본성을 쉽게 버릴 수는 없는 일.
"우리 사귈래요?" 라는 말도 안 하고 우리의 바른 생활맨 지피디가
미자씨는 내 여자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미자씨.. 지피디는 좋아해서 같이 술 마신거고,
좋아해서 "미안해요.. 다음에 봐요.." 전화도 한거고,
사랑하니까 당신의 예쁜 머리통이 깨지지 않게 받아준 거라구요.
아.. 정말 너무 부럽다 ㅜ.ㅜ
꽃처럼 고운 세자매, 140 센치가 조금 넘는 착한 남자, 그리고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올미다가 좋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공감이다.
올미다 안에는 내가 있고, 우리 엄마 아빠가 있으며 내 친구들과 동료들이 모두 들어있다.
나이를 먹어 쭈글쭈글 시들었지만 가슴에는 언제나 솔솔 봄바람이 부는 미자의 할머니들.
꽃무늬 색깔 빤스가 입고 싶고, 동네 할아버지에게 연정을 느끼고,
"그냥 사는 거야. 아침에 눈 뜨면 그냥 살아지는 거야." 라고 말은 하면서도
저승사자와 싸워서까지 조금 더 머물고 싶은 할머니들의 작은 꿈엔
스무살의 내가 있고, 쉰살의 우리 엄마가 있으며, 일흔살의 우리 할머니까지 들어있다.
이렇게 올미다는 우리에게 커다란 메세지를 하나 던져준다.
"우리는 모두 꿈과 사랑을 먹고 사는 뜻깊은 존재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삶이 소중한 거에요. 아시겠어요?"
우현 삼촌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나쁜 짓이라곤 해 본 적도 없으며 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무조건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런 삼촌에게 은행은 대형 사기를 친다.
천만원이 넘는 돈을 하룻밤 사이에 백칠십 만원으로 만들어 놓고, 도리어 삼촌을 강도로 몬다.
돈없고 힘없는 소시민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사람을 강도로 몰아놓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삼촌은 만원을 들고 은행을 찾아가 다시 예금을 시작한다.
적지만, 앞으로 모일 돈에 꼬박꼬박 붙을 이자를 기대하면서...
이게 올미다가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메세지다.
"힘드시죠? 하지만 여러분은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자구요 우리!"
이렇게 우리를 토닥토닥.. 격려해주면서 말이다.
내가 올미다를 보며 가장 감탄한 장면은 (너무 많지만) 바로 경찰서 씬이다.
올미다는 경찰서라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또 가장 비현실적이기도 한 공간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다.
그리고 그건 가장인 아버지의 몫이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상처 받은 가족들을 아버지는 말없이 감싸고 토닥여준다.
국수를 삶아 어머니의 손에 수저를 쥐어드리고,
딸의 그릇엔 김치를 놔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내가 펑펑 울 수밖에 없는 이유..
이게 바로 올미다의 힘이다.
아.. 올미다, 나의 올미다..
올미다는 볼 때마다 매번 다른 걸 느끼게 해준다.
어제는 미자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았고,
오늘은 할머니가 되어 꽃무늬 빤스를 입고 살랑살랑 길을 걷는다.
또 내일은 삼촌이 되어 어두운 부엌에서 아무도 몰래 통장을 확인하겠지..
눈물나게 웃다가 결국엔 엉엉.. 울어 버렸지만,
맨 마지막, 미자와 지피디를 훔쳐보는 가족들 앞에 놓인 수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삶이구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가족이 있어서.. 사랑이 있어서.. 참 세상은 살 만 한 거구나..
나는 참 행복한 거구나..
서른 하나, 이제 며칠 후면 나도 최미자와 똑같은 나이가 된다.
일은 일대로 스트레스고, 시집가라는 잔소리 때문에 귀엔 딱지가 앉을 정도지만..
이젠 나도.. 다시 날 수 있을 것 같다 훨훨..
그래서..
정말 고맙다 최미자. 그리고 올미다!
* 이렇게 좋은 영화가 돈많은 다른 영화사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습니다.
조폭이 나와서 억지 웃음을 주지도 않고,
불치병이나 출생의 비밀, 19금의 야리꾸리한 씬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순간을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하루하루를 담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입니다.
100만, 200만이 넘지 않아도 좋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지금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나의 가족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랜만에 사랑방 수다방에 쓰는 글이 리뷰 펌이네요..
좋은 리뷰는 많이 보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