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6년 전의 일들을 엮어보자면 참으로 벅찬 나날들의 연속이였습니다. 직장생활 청산하고 사업에 뛰어들면서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마음도 무거워지면서 탈서울을 꿈꾸며 전원생활의 방랑이 시작됩니다.
건설업을 하던나는 땅을 볼 줄 몰라서 남향에 길만 접하고 경치좋고 주변시세보다 좀더 낮은 가격이면 좋고 미래에 투자가치까지 있으면 최상의 전원생활 주택지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제주도부터 경기도 일대까지 전국을 누비며 다녀봅니다.
그러던 중에 곤지암에 전철이 계획하고 있고 초월면에 시세보다 싼땅이 있다하여 한걸음 달려가서 매입을 합니다.
남향에 도로접하고 썩마음에 들었고 경안천에 낙시꾼까지 나의 미래를 더욱 아름답게 비춰주었습니다.산지전용허가 받고 토목공사하는데 몇번의 반려와 수정과 민원해결 등 2년의 세월이 지나는동안 경안천이 오염되어 물거품이 더가는데 저의 환상도 함께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논.밭사이로 산업도로를 따라서 광주를 지나면서 곤지암가는 길은 쓸쓸함마저 느낄 정도로 한산한 분위기였는데 논가운데 아파트가 들어오고 머지않아 모델하우스가 들어선다는 말이 들여왔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않는 일이라여겨 설마하고 있었는데 소문은 사실이였습니다.
저는 아파트숲을 떠나 자연의 숲을 찾아 산속으로 갔는데 파란들판이 아파트촌으로 변한다니 믿어지지않는 허망함뿐
이였습니다.
그후 그땅을 매매하고 남양주시 마석지나 수동가는 길에 가곡리라는 곳으로 정남향에 마을이 훤이 내다 보이는 곳에 산을 매입하여 길이좁아 길을 넓이고 앞에 양어장이 있어 메우고 산에 묘지가 23기가 있어 2년동안 정리하고 1차3천평을 허가받아 20세대 택지를 개발하면서 이곳에 올려고 그토록 밤새 소쩍새가 슬프게 울었나보다 하면서 아에 이곳에서 택지개발업을 해 보겠다는 다짐까지 했습니다.
택지조성하면서 세대마다 주차장을 넣고 자연석을 구해서 석축을 쌓고 열심히 땀흘리며 3~4년의 세월과 싸우고 있던 중에 비보가 들려옵니다. 마석가구단지가 철거돼면서 가구단지 공장들이 이곳에도 몇개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이는 동네는 조용하였고 이곳은 가구공장이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니라는 자가판단과 들어와도 몇개나 들어오겠나 가볍게 생각하고 공사에 매진하는데 토목공사가 끝나가던 때 쯤에 동네 이곳저곳에 굴뚝이 올라오는데 심상치않은 기운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뒤 일년새에 공장이 84개가 들어왔다는 소식과 함께 저녁이면 굴뚝마다 연기를 뿜어대는데 내 몸속의 화통도 불꽃을 품어내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땅을 처분하면서 내가 갈곳이 경기도에는 없나보다 포기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경기도 양평은 상.수도보호지역이라 공장은 물론 무농약.무비료.무제초제 등등 친환경을 중요정책으로 하는 곳이라면서 상수도 1권역이 어떻고 2권역이 허가규제가 완화지역이다. 그래도 공장은 양평전역이 허가불가지역이다.
나는 그 말이 처음에 믿기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허가조건이 다른지역이 그린벨트.군사보호지역 말고 또 있다는 것을 처음알았습니다. 그래서 이곳 양평에서 가장 물좋고 공기좋은 곳이 어데냐는 첫 질문과 정남향을 찾아다니가 지금의 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돌이켜보건데 수업료와 수업과정이 혹독했던 것 만큼 지금의 제가 머무곳이 소중하며
이곳에 감사하면서 살고있습니다.
제가 왜이런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지 아실겁니다. 자신의 목적과 합당한 곳이 어데일까 알고 찾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혹독한 실험적 체험을 통해서 채득하는 것은 평생갑니다. 계획만 세우지말고 도전해 보십시다. 목적지에 가는 길은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일 때 까지는 가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있다는 말 누구나 아는 말이라고 무시하시 계시는 것은 아닌가요? 낭떨어지에 떨어지는 것은 표지판을 무시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첫댓글 님의 진지한 체험삶에 공경함을 지니게 되네요
감동받았습니다~~글쓰시기가 쉽지가 않았을터인데 많은분들들 위해서...감사합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