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장
잘못된 전통을 바로잡으시고 이방인을 치유
(찬송 19장)
2023-3-29, 수
맥락과 의미
7장에는 3장에 나왔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3:6,22)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장로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 것”(5절)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율법을 더 좋게 개정합니다. 유대인의 쓸데없는 전통을 바로잡습니다. 이에 기초하여 사도들과 오늘날의 교회는 살아갑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이방(수로보니게) 여인의 딸과 이방 지역(데가볼리)의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그림처럼 보여주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으로 가르치고, 강하고 담대하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1. 사람이 만든 잘못된 전통을 바로잡고 율법을 좋게 개정하심(1-23절)
2.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심(24-30절)
3.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심-에바다(31-37절)
1. 사람이 만든 잘못된 전통을 바로잡고 율법을 좋게 개정하심(1-23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 북쪽 시골 지역인 갈릴리로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식사하는 것을 보고 비난했습니다. 제자들이 “속된 일(부정한 일)”을 한다고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면 부정하다는 율법을 정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외출하고 들어올 때는, 영적으로 깨끗하게 하기 위해 무조건 손을 씻으라는 규칙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레위기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람이나 짐승의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다는 (속되므로) 것만 정했습니다. 그럴 경우 저녁에 옷을 빤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하도록 정했습니다(레위기11:39). 그런데 유대인들은 구약 율법에도 없는 규칙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외출한 후에는 반드시 씻어야 한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반드시 뿌리고 먹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3-4절). 장로들이 만든 전통을 하나님 말씀처럼 전달하여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 삼았습니다(5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문제를 두 가지로 지적하셨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사람이 만든 계명, 즉 전통을 잘 지키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 헌물(“고르반”, 바쳐진 물건이라는 뜻)한 다음에, 물질이 부족하면 부모님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 그런 전통까지 만들었습니다(11-12절). 사람이 만든 관행과 전통을 내세워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섬기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형식적인 것은 겉으로 드러나 보입니다. 그 때문에 그런 것들을 아주 잘 지키려 하는 경향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말씀을 지키는 것이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더 소홀히 합니다.
사람의 규칙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합시다. 교인들끼리 인정받는 일을 좋아하면서, 부모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교회에 헌금은 잘 하면서도 나이 드신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것을 게을리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인끼리는 잘 모이면서도, 부모님께는 문안 전화도 드리지 않는다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친구들과는 계속 문자를 주고받으면서도 부모님께는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도 말하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손을 씻는 관습”과 같은 정결의식의 목적과 음식의 가치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가르치십니다(18절).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19절).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는 어떤 것들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레위기 11장)을 주셨습니다. 발굽이 갈라진 돼지와 같은 짐승을 먹는 것을 율법에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그 짐승이나 음식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것은 아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만 구약 시대에는 그런 규칙으로 백성을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제한함으로써, 악한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 말씀대로 잘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도록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 선언하십니다. 구약의 음식에 관한 율법을 폐지하십니다. 이제는 모든 짐승이나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규칙을 개정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구약의 율법을 정하셨던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제 율법을 더 좋게 개정하십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 사람을 악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사람의 행동을 악하게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음란, 도적질, 교만 등 사람의 마음의 죄를 지적하십니다(21-23절).
“눈을 흘기며” 사람을 위협하는 것도 살인의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눈에 보이는 종교행위에만 열심을 내는 우리의 관습을 바로잡으십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십니다. 사람들에게나 교회에서 칭찬받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잘 해보려고 힘을 소진하지 맙시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갑시다.
2.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심(24-30절)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북쪽으로 48Km를 여행하여 두로(지금 레바논 지역)로 갔습니다. 이방인 지역 수로보니게(시리아-페니키아)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더러운 귀신”(25절, 더러운 영)에 의해 병이 걸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자녀(선택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들(이방인)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27절). 여인은 대답합니다.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말을 하였으니”(28절) 하시며 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사람의 전통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했습니다.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신은 이방인이라는 마음으로 겸손합니다. 남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을 얻어먹는 거지의 심정으로 그리스도께 간청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굳게 신뢰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녀의 딸을 치유해주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실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앞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때 그리스도를 믿을 이방인들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우리도 원래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복에서 제외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되었습니다(에베소서 2:11-22). 이 여인처럼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죄인됨과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고백합시다. 자격이 없지만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며 그리스도께 나갑시다. 가난한 마음으로 나가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인생의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3.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심-에바다(31-37절)
다시 두로에서 40Km 북쪽에 있는 시돈으로 가셨습니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실 때는 동쪽으로 빙 둘러서 여행하여 갈릴리 호수 동쪽 해변의 데가볼리 지역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청각 언어 장애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분의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었습니다. 그분의 침을 손가락에 묻히고는, 그의 혀에 손을 대었습니다(33절). 고통과 장애가 있는 그 부분을 사랑으로 어루만져주셨습니다.
34절,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평생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면서 쌓인 이 사람의 원한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토로하여 부르짖습니다. 그의 원한을 하나님께 아뢰며 기도하십니다.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의 질병과 마음과 영의 질병을 치료해주십니다. 사랑의 손으로 장애를 만져주십니다. 그의 탄식과 고통을 짊어지십니다. 마태복음 8:17에 나오는 이사야서 말씀의 예언대로 그리스도는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냥 능력으로 이 사람을 고쳐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장애의 고통에 참여하고, 그 고통을 가져가시면서 육체를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이사야 53:4, 마태복음 8:17).
그의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35절)라는 것은 사탄에게 묶여서 그 장애가 생겼음을 암시해줍니다. 그리스도의 병 고침은 그가 우리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는 분임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우리를 마귀에게서 해방시키는 영적인 사실을 육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36절, 이렇게 병을 고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냥 육체적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존재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승천을 통해, 그리고 복음 전파를 통해 그분의 사람들을 만들어내시고 그분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십자가와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세적 이익을 위한 기적만을 기다리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에는 무관심하고 능력을 행하는 데만 힘쓰는 교회는 반드시 타락의 길을 걸어갑니다.
믿고 복종할 일
겉으로 드러난 종교활동에 힘을 소진하지 맙시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형식적인 것,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맙시다. 그리스도 앞에 우리 마음을 내어놓고 마음으로 회개하여 성령님의 은혜로 매일 새로워지도록 합시다. 불필요한 규칙들에 스스로를 얽매지 맙시다. 그런 것들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지 맙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애인의 마음의 탄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깊은 고뇌와 고통을 아십니다. 죄와 사탄에 눌리는 우리의 어려움을 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 건강과 물질의 축복보다 더 본질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인격을 치료하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 때 손을 대시고 고치신 그 사랑을 나는 어떻게 경험하고 있습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1절 데가볼리 지역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갈릴리 호수에 데가볼리 지역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참고> 1-6장 요약
1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병을 고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2-3장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제자 12명을 사도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하여 그들은 예수님께 트집을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도 그분이 미쳤다고 하면서 집으로 잡아가려 했습니다.
4장-6:6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의 응답은 이번에도 제자들을 파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6:7-20). 그 제자들이 일하는 이야기 사이에, 세례 요한을 죽였던 헤롯 왕의 반응이 나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의 영이 살아나서 예수 안에서 일한다”라고 하며 두려워합니다. 세례 요한은 죽었지만 예수님의 제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능력이 계속 일합니다.
제자들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기적으로 5천 명을 먹일 때, 제자들은 그 떡을 나누어주는 일을 했습니다(6:37,41). 예수님의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풍랑 속에서 바다 위로 걸어오실 때, 제자들은 믿음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 그분을 믿고 그분의 일하심에 참여하지만, 아직 더 믿음이 성장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내심을 갖고 그들을 가르치기를 계속합니다. 인턴 사역자로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