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편) 1960~1970년대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다 1년에 한 두번 명절에 부모 형제를 찾아 고향을 찾는 이들은 당시의 열악한 교통환경 때문에 귀향길이 지옥길이나 마찬가지였다
60년대 대중교통이라고는 기차가 전부였으며 70년대들어서 고속버스가 생겨났으나 명절때마다 겪는 교동 대란은 여전했다 1899년 경인 철도에 처음 도입된 증기 기관차 연료가 석탄이었으며 장시간 타고나면 석탄가루가 날려 옷과 코구멍이 검게 그을리고했다 서울역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수 많은 귀향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며칠식 역광장에 노숙을하며 표를 구해야 하는 고향길은 저승길보다 더 힘들었다 이기차를 놓치면 이번 명절엔 고향에 갈 수가 없다 객실 통로가 빽빽히 막히면 필사적으로 창문으로 기어올라 타기도했으며 객실 선반위까지 사람이 올라가 자리를 잡기도 했다 창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혹시나 내 차례에 표가 매진 되지 않을까 조바심에 애 간장은 녹아내리고..... 서울 부산간 완행열차 12~14시간이나 걸리는 머나 먼곳이었다 수많은 인파들이 며칠 전서부터 서울역앞에 자리를 잡고 표를 사기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했으며,이를 통제하는 경찰관들은 호루라기와 곤봉을 들고 질서를 잡았다 그야말로 기차표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으며 암표상들의 대목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근로자 한달 봉급을 털어 몇십배의 돈을 주고 표를 구하는이도 있었다 북새통에 소매치기를 당해 고향엘 가지못하고 발길을 돌려야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다 경찰관들의 통제에 의해 질서 정현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소지품이 간단하다, 몸둥아리 하나 끼여 타기도 힘들어서다 며칠을 애써도 단 시간에 표가 매진되어 고향엘 가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 수였다 명절 당일날 새벽부터 혹시나 기차를 탈 수 있지안나 싶어 또 모여들고 밤샘을한 이들도 많았다 수없이 몰려드는 귀향객들중 표를 구하지 못해 무임승차를 하는이도 있어 객차문앞에서 경찰관이 검표를 하기도 했다 노약자들은 힘에 부처 뒤로 밀리고 또 밀리고..... 일부 회사에서는 사전에 버스를 전세내어 사원들을 귀향길 목적지 까지 대려다 주는 곳도 있었다 강남 터미널에도 수 많은 귀향객이 몰렸으며,관리자들도 움직일 수 가 없어서 먼 발치의 사람들은 긴 장대로 이용하여 통제 하곤했다 객차 발판에 까지 매달려 어덯게든 타 볼려고 몸부림을 친다 발디딜 틈이없어 객실 화장실 안에도 4~5명식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차지하다보니 용변을 볼 생각초차 힘들었으며 도착지까지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는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이렇게 힘든 고향길이지만 명절이 아니면 부모 형제를 볼 수가 없어, 필사의 귀향 전쟁을 치루면서도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기쁜 마음에 피로함을 몰랐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복잡다고 이차를 안타면 다음차도 마찬가지 무조건 타야한다 트럭으로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트럭도으로 영업하는 이도 있었으며,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트럭 짐칸에 빽빽히 타고 고향 길을 재촉한다 당시 인사 사고만 나지 않으면 경찰관 아저씨들도 눈감아 주는 훈훈한 정이있었다 70년대 초 일본내 조총련소속 교포들이 고국을 방문한 획기적인 일도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풍성한 오곡백과가 수북이 솟아져 나오고.. 명절이 아니면 얻어 입을 수 없는 새옷... 새옷한벌.신발 한켤례 사주시면,,너무좋아 신발을 신고 새옷을 입고 잠을 자다 혼나기도 하고.. 시골장에는 우리 어머님들이 곡식을 이고지고 가서팔면, 그 돈을로 제수용품 사고 자식들 고무신 한켤례씩 사서 먼길을 걸어서 오시곤 했지요 당시 백화점이 먼지도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시장이라하면 재래시장이 최고였지요 온식구가 동라가며 떡 방아간에서 앞에서 하루 종일 차례 올때만 기다리곤 했지요 추억속에 사라지고 있는 널뛰기입니다 명절 아침이면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여 새옷과 신발 자랑 신바람나는 일이었습니다 고무신도 한켤례 못얻어신은 아이들을 먼 발치 골목에 숨서서 빼꼼히 처다보며 무척 무러워 하던 때였습니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견인차 혁활을한 디젤 열차입니다 ( 86년자료) 이따까지만 해도 승용차가 귀한 시대라 버스를 많이이용했지요 회사에서 제공한 버스에 고향길을 재촉하는 모습입니다 (86년 자료) 이때까지도 재래시장은 늘 북새통이었습니다 (86년자료) 서울역 앞에서 표를 사기 위해 노숙하는 모습입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승용차 활부 시대가 열리기 시작 하여 오늘에 자동차 대국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귀향길은 참으로 어려웠으며 온종일 타고가서 목적지 도착하면 거의 초죽 음이되고 또 도서지방 분들은 태풍이와서 악천 후로 배가뜨지 않아 고향 을 눈앞에 두고 눈물로 돌아서야만 했던 수많은 사연들을 안고 살아 오셨습니다
타향살이 서러움을 않고 어머님 품속같은 고향을 찾아, 부모형제 친구들 만나, 훌훌 다 털어 버리고 다시금 삶에 터전으로 돌아 올 것입니다
당시의 열악해했던 대중교통의 현실을 되짚어 보고자 올립니다 편견없이 편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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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추억으로 가는 사진.. 원문보기 글쓴이: ♣ 권태웅 ♣
첫댓글 저 어릴때 명절만되면 뉴으스 로 많이보며 참 안타까워 했는대 ,, 이렇게 보니 새삼스럽내요 별로 멀지도 않던 시절인대요 ,, 지기님 ,,좋은 글,,사진 ,, 감사 합니다 ,,,,, 평안한 명절 보내세요 ~~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나네요.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던 시절.그래도 님들의 얼굴엔 웃음이 만발하던시절.잘 보고 갑니다.즐거운 명절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