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주인이었던 브라만교도가 일한 대가로 농부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다가, 탁발을 원하시며 서 계시던 부처님을 향하여 빈정거렸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농사를 지은 대가로 음식을 먹는데, 그대는 무슨 염치로 일도 하지 않으면서 먹으려 하는가?”
“브라만이여, 나 역시 농사를 짓고 있소이다.”
“농사를 짓고 있다고? 그대가 언제 일을 했단 말인가?.”
“제가 농사를 짓는다고 함이란 사람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니, 사람 농사란 그대들이 농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농기구를 잘 다스려 밭을 갈아 밑거름을 뿌리고 밭에 씨를 심어 키우면서, 잡초를 뽑아내어 농작물을 잘 길러 거두는 것처럼, 저 역시 사람들을 잘 다스려 나고 병들어 죽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오이다.”
“!”
“그러나 그대들의 농사는 한 겨울의 목숨을 이어가는 것으로 끝날 뿐이지만, 제가 짓는 농사는 사람들이 사는 동안은 물론 나고 병들어 죽는 삶에서 벗어나 영원이 즐겁고 편안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는 농사이오이다.”
“!”
그제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 브라만이 부처님께 음식물을 바치려 했으나, 부처님께서는 ‘믿고 가르침을 받아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공양물은 받을 수 없다’라고 하셨으므로 브라만은 다시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은 제가 한겨울만을 살아가기 위한 농사가 아니라, 사는 동안은 물론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이 즐겁고 편안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의 농사를 지을 수도 있음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
“그러하오니, 부처님이시여, 저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삶의 농사를 짓게 주옵소서.”
그리하여 브라만의 귀의를 허락하신 부처님께서는 그의 공양을 받아들이셨으며, 그랬던 브라만은 부처님의 재가 신도로 귀의하여 삶의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은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자들을 ‘먹거리를 걸식하며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비쿠’라고 불렀는데, 이는 브라만 등등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자들이 숲속이나 바위굴 속 또는 바닷가에서 수행하며 그들을 믿던 사람들이 가져다 바치는 음식 등등에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시대까지 행해져 왔던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자들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갖다 바치는 음식 등등으로 연명하며 수행하던 식의 관습을 버리게 하신 후, 수행자가 직접 하루에 한 번 마을로 들어가 탁발하면서 세상과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탁발유행(托鉢流行)을 하게 하셨는데, 이는 부처님이 그리하셨듯 수행자들 역시 탁발을 통하여 수행의 가장 큰 적인 자기 자신이 있다든가 자기 자신만이 최고라는 아집(我執)과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는 아만(我慢)과 교만(驕慢)을 버리고 겸손(謙遜)과 인내심(忍耐心)을 기르는 수행임과 더불어 세상과 자기 자신을 살펴 알아가면서, 사람들이 음식 등등을 베푸는 탁발 공덕을 쌓게 하면서 그들 역시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한편 탁발을 통하여 사람들과 함께하며 개인과 사회 문제해결을 해주고자 선택하신 방법이었으며, 수행자가 탁발할 땐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가리지 말고, 하루에 한 끼만 먹어야 하며, 하루에 일곱 집을 탁발해도 탁발하지 못하면 그날은 굶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수행승들이 한곳에 머물며 왕이나 귀족들의 보시와 보호를 받으면서부터 인도불교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금도 탁발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나날이 크고 있는 동남아시아권의 불교와는 달리, 정착 형태를 취하며 그야말로 앉은 채로 불교도들의 보시로 살아가는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불교권이 현재 그 정체성을 잃고 나날이 작아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처님께서 탁발유행자의 길을 선택하게 하신 뜻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의 불교 교단에서는 ‘중 벼슬은 닭 볏보다 못하다’라는 말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승려의 위상을 뜻한다고 생각하고 결정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1964년 전후부터 ‘승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같잖은 변명을 둘러대며 탁발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는 단서를 붙였는데, 수행자들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인 하심(下心)을 기르기 위한 수행의 한 방법으로서의 탁발은 인정한다는 어쭙잖은 생색을 내면서 그런 범위 내에서의 탁발은 탓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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