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어제 표를 살 때는 호텔 앞으로 픽업을 온다고 했는데 7시 쯤 전화가 와서는 터미널 앞에 나와 기다리라고 한다. 중국어로 전화를 하는 일은 항상 부담스럽지만, 터미널 건물 쪽이 아니라 길 바로 옆에 서 있으라고 하는 얘기는 제대로 알아들었다. 우리까지 총 10명, 우리 말고는 모두 중국 사람이다. 가이드는 물론 중국어로만 설명을 한다. 열심히 귀를 기울여 봐도 한 두 단어 알아듣고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하이난(海南)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고향 (각각 귀주성 판징산 부근과 사천성) 가는 길에 관광을 하고 있다는 두 여학생과는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가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간 곳은 계림 화보에 항상 등장하는 그래서 계림의 상징과 같은 느낌이 드는 상비산(象鼻山)인데 날씨 탓일까 멋진 사진을 너무 많이 보았던 탓일까 엄청 멋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 속에 가짜 코끼리도 많이 만들어 놓았고 전망대 같은 시설을 만드느라 공사가 한창이니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더 멋있어 지려나?
두번 째로 간 곳은 복파장군 마원의 전설이 얽혀 있다는 푸보산(복파산,伏波山)이다. 베트남과의 전쟁 중에 마원이 여기서 활을 쏘아 화살이 날아간 곳까지 베트남군이 후퇴하기로 했는데 그 화살이 무려 하노이 근처까지 날아갔다는 어마무시한 전설이 있단다. 화살이 베트남까지 가는 동안에 계림의 천산과 상비산 그리고 양수오의 웨량산에 구멍을 뚫었다는 얘기까지. 어쨌든 마원이라는 사람이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만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것이 자랑스러웠기에 삼국지에서도 마등과 마초가 복파장군의 후예라고 소개했는데, 베트남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지켰던 민족 영웅 하이바쯩(두 분의 쯩할머니? 베트남에서는 하이바쯩 거리가 없는 도시가 없을 정도로 위인으로 대접받는 여인들이다.)를 패퇴시킨 철천지 원수 되겠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면 했지만 가이드가 말려서 지하 동굴과 주변만 돌아보았다. 등산은 다음 번에 한단다.
다음에 간 곳이 뎨차이산(첩채산,叠彩山), 비단을 겹겹이 쌓아 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라는데, 산보다도 산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아름다워서 꼭 올라가 볼 만한 곳이다.
(청말의 개혁파 정치가인 캉유웨이가 여기서 공부를 했다던가)
(바로 아래에 목용호가 보인다.)
그런데 다섯 군데 관광지 중에 세 군데를 구경했는데 아직 11시도 안 되었다. 저녁에 끝나는 일일투어라 했는데 너무 설렁설렁 다녀서 일찍 끝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입장료가 70위안이나 하는 상비산 공원을 30분만에 금방 돌아 나왔고, 뎨차이산 올라간다고 푸보산을 안 올라간 것도 조금 아쉽다.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인데 ㅠㅠ)
네번 째 목적지는 치싱꽁위앤(칠성공원,七星公园)인데 해방교를 건넌 우리 버스는 공원 입구를 지나쳐서 어딘론가 계속 달린다. 어딘가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있는 곳에 멈추었는데 간판을 보니 东盟泰国城이라고 써 있다. 뭐지? (동멍은 아세안의 중국식 표기)요란하게 태국식 의상을 입은 아가씨들이 목걸이 표찰을 걸어주며 안내를 한다. 뭐하는 덴가 궁금해 하며 들어가 보니 처음엔 아세안에 관한 특히 태국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들이 있는 듯 하더니 팀별로 방 안으로 몰아 넣고 라텍스 강의(?)를 한다. 쇼핑센터로구나! 양수오에서 이강유람을 할 때 그냥 관광만 하고 끝났기 때문일까, 투어를 신청하면서 투어에 쇼핑센터 방문이 있다는 것은 생각을 못했었다. 4년 전에 따리에서도 관광지 입장료보다 저렴한 투어를 따라갔다가 두 차례의 쇼핑 강요에 후회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생각을 까마득하게 잊었었다. 동맹태국성이란 곳은 엄청나게 큰 매장이고 관광객도 엄청나게 모여든다. 계림 관광객들이 모두 여기로 오는 모양이다. 아니 관광지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못 봤는데 다 어디서 왔을까 싶을 정도다. 지루하게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며 살펴보니 매트리스를 사는 사람은 별로 없고 베개를 사는 사람은 꽤 많이 보인다. 매트리스 하나에 10000위안이 넘으니 여행 중에 갑자기 구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베개는 300위안 근처,
쇼핑 타임이 겨우 끝나고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돈을 걷는다. 부페식 점심 식사가 1인당 40위안. 여기도 엄청나게 큰 식당이고 계림 관광객들이 다 몰려와서 점심을 먹는 것 같다. 그럭저럭 배불리 먹었으니 불만은 없는데, 뭔가 지하경제스러운 느낌이 들어 유쾌하지만은 않다.
다음에는 칠성공원으로 가겠지 하는 기대와는 달리 이번에 간 곳도 쇼핑센터다. 이번에는 실크 매장, 침대를 샀으니 다음은 침대보를 살 순서인 모양이다. 역시나 누에를 키워서 고치를 만들고 실을 자아서 비단을 짜는 기술 따위를 소개하는 척 박물관 같은 분위기를 잡더니 이번에도 팀별로 방에 몰아 넣고 물건을 판다. 말로는 안 사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자 분위기가 점점 어색해 진다. 하지만 2000위안에 얇은 이불 한 세트를 선뜻 사려는 사람은 없다. 판매원이 우리를 콕 찝어가며 한 세트 사라고 하니 옆지기가 팅부동을 외쳐서 다들 웃었다. 어리둥절한 판매원에게 우린 한국 사람이라 뭔 소린지 못 알아듣는다고 하니 판매원이 고개를 갸웃한다. 알아들으면서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표정. 일행 중에 자기도 한국 사람이라 팅부동이라며 농담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또 웃었지만 허탈한 웃음이다. 재미 없다. 투어 영수증을 자세히 살펴보니 쇼핑센터 방문에 관한 내용도 있는데 1회 50분이라고 써 있다. 그런게 있는지도 몰르고 돈을 주긴 했지만, 2회 2시간 이상을 쇼핑센터에서 보냈으니 엄연한 계약 위반 아닌가?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결국 판매를 포기하고 석방해(?) 주는데 거기서 밖으로 나오기까지가 만만치 않다. 온갖 실크 제품을 진열한 진열대 사이를 지그재그로 100미터는 지나가야 문이 나오는 구조다. 가는 동안에도 계속 물건을 사라고 들이댄다. 버스로 돌아온 중국 아줌마 한 사람은 무사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200위안짜리 스카프를 하나 샀다며 웃는다.
东盟泰国城이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드디어 칠성공원으로 갔는데, 그 넓은 칠성공원에서 (여기 입장료도 70위안이다) 한 일이라곤 낙타바위 앞에서 사진 찍은 것 하고 길 가에 원숭이 몇 마리 본 게 전부였다. 아니, 여기 동굴도 있고 판다곰도 있다던데, 동굴은 그렇다고 쳐도 여기까지 와서 판다곰을 안 보고 갈 수는 없잖아? 항의할 새도 없이 다리 하나 건너니 벌써 공원 밖이다. 투어가 짜증스러워지는 걸 겨우 참고 차를 탔는데 다행히도 마지막 코스가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루디앤(노적암,芦笛岩)이라는 동굴이다. 이미 양수오의 은자암과 이곳 계림의 관암동굴을 패스할 정도로 동굴에는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막상 동굴 안에 들어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동굴은 많다?
석회암 동굴이니 종유석이 아름다운 것은 기본이고, 동굴 안에 연못이 있어서 종유석들의 반영이 비치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물 위에서 이루어지는 발레 공연도 환상적이었고, 갑자기 쾅쾅 동굴 무너지는 소리가 나면서 시작된 레이저 영상까지 서비스도 훌륭했다. 서비스 하니 생각나는 게 또 있다. 무대 커튼이란 이름이 붙은 종유석(마지막 사진, 빨간색 부분이 커튼이다)을 소개하던 가이드 아가씨가 노래까지 부르더라. 한 가지 옥의티라면 동굴 속의 작은 동굴 안에 거북이를 몇 마리 갖다 놓고서 노골적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더라는 것. 별도 입장료를 5위안씩 받는 것도 모자라 거북이에게 복을 빈다는 구실로 부적인지 장신구인지를 판매하고 거북이 등 위에 동전을 던지게 유도하고, 이런 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