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 가서 한국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고 있는 한 미국인 교수로부터 한국 국민의 특성에 대해 관찰한 두 가지 예를 들었다.
한국 사람은 기계를 사오면 그 설명서를 자세히 읽지 않고 여기 저기 버튼을 눌러 먼저 조작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설명서를 여러 번 읽고도 실수를 하는데, 제대로 읽지 않고 조작하다 잘못하면 기계를 쉽게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평범한 상식이다.
다른 한 가지 경험은 한국인은 책임성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원래 영어로 책임(Responsibili ty)이란 단어는 ´반응하다(Response)´란 말에서 나왔는데, 이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 상대방의 반응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뜻한다는 것이다. 즉 한사람이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는 당연히 반응이 오며, 이 반응을 수용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이를 책임이라고 한다는 풀이이다.
그는 한국 문화에는 책임이란 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예로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성적이 좋기를 기대한다거나, 시험을 거부하면 당연히 성적이 안나오는 것인데, 시험은 거부하면서 성적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아 자기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학생의 경우 시험을 거부하면 교수는 “알았다, 그러면 성적은 없다” 하면 그만 이라는 것이다. 자기 행동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책임인 것이다.
새 기계를 샀을 때 조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아는 것처럼 다루는 것은, 역시 기초 교육의 부실에서 오는 것으로 느껴진다. 적당히 건성으로 눈가림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우리의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객관적 시험 기술에만 치중한 나머지 절차나 과정에 대한 착실한 훈련이 부족한 데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웃 일본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나라에 수학여행을 온다고 들었다. 이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한국의 역사와 여행지의 문화유적에 관한 자료를 문헌 자료를 통해 철저히 연구하고 와서 여행 중에 그것을 확인한다고 한다. 또, 귀국 후에는 여행에서 얻은 것을 다시 글로 써서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한다.
우리 학생들도 요즈음 교통이 발달하여 수없이 많은 국내외 명소를 찾지만, 사진이나 찍고 건성으로 지나가지 한 곳이라도 철저히 관찰하여 선조들의 지혜나 외국 문화의 정수를 익혀보고자 하는 훈련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빈곤의 역사를 이겨내느라 잘 살기 위한 경제의 성장에 온 힘을 쏟아왔다. 많은 것을 희생하여 과정보다도 결과에 치중해 왔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특히 국민의 기초 교육이 교육의 본질적 목적보다 상급학교 진학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교육에서 자율 능력이 결여되고 수단이 목표가 되었을 때 인간 사회는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
성급한 기적이나 요행에 의존하지 않고 착실한 절차를 밟아 얻은 결과만 올바른 자기 것이 된다는 삶의 정도를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