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일기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말에도 날씨가 쾌청하다. 삼복더위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침 공기가 서늘한 중복 날이다. 이매 역에서 탄 여주행 경강선 전철은 좌석이 꽤 많이 비어 쾌적하다. 한적한 경기광주 역에 내려 언제 올지 알 수 없던 15-1번 버스가 갑자기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시내버스가 광주 시가지를 이리저리 가로지른다. 군월산 칠사산 국수봉 마름산 등 여러 산들과 어우러진 시가지의 모습이 독특하다. 남한산성면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남한산성로 군월교 앞에서 하차했다. 요 며칠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산성 쪽에서 내려오는 번천의 물줄기가 제법 호기롭다. 라이더들이 페달을 밟으며 비탈진 남한산성로를 따라 연신 오르내린다.
노적산 기슭을 따라 난 산성로의 '해공 신익희 선생 추모비'가 서있는 노적산 들머리로 접어들었다. 길 건너편에는 그리 높진 않지만 군월산 줄기 끝에서 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른 청룡봉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 어제 광주 초을읍 서하리 해공의 생가를 둘러보았는데 오늘 그를 기리는 비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하기야 난향백리 덕향만리라 하지 않았던가.
요즘은 보기 드문 검은물잠자리 한 마리가 산객을 맞는다. 뒤이어 청설모 한 마리가 인사를 하듯 싶더니 높은 소나무 가지 위로 뛰어올라 한참 동안 꿈쩍 않고 산객을 내려다 보며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쭉쭉 곧고 높게 자란 소나무 숲은 온갖 종류의 새소리로 가득하다.
급전직하 노적산 정상까지 가파른 비탈을 치고 오르는 길이다. 중간 중간 놓인 벤치에 앉아서 두어 번 숨을 골랐다. 땀범벅이 되어 들머리에서 1km 거리의 해발 388.5m 노적산 정상을 50여 분만에 올라섰다. 이웃 산들이 모습을 보인다. 멀리 있는 높은 산들도 노적봉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낮아 보인다. 지구가 축구공처럼 둥그니 멀리 있으면 낮아 보이게 마련이다.
벌봉까지 4km 거리다. 약사산으로 가는 능선에서 러닝 복장으로 뛰어가는 러너들이 스쳐간다. 걷고 달리고 페달을 밟고 암벽을 기어오르고 하늘을 날고 물 위를 헤엄치고 눈위를 미끄러지는 등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스포츠를 즐긴다.
자전거로 특정 구간을 왕복해 해발고도 8,848m를 오르는 에베레스팅(everesti g)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20년대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조지 맬러리의 손자인 조지 맬러리가 1994년 호주 남부의 도나 부앵산(1,250m)의 비고 1,069m를 자전거로 여덟 번 왕복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관령이나 이화령같이 통행로로서의 기능을 새로 뚫린 터널에게 내어준 곳에 에베레스팅 경기를 유치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미리와 오전리를 잇는 고개 능선을 지나 평평하고 폭신한 숲길을 걷는다. 노적산에서 뒤처졌던 산객이 내 앞으로 치고 나가지만 나는 보폭 10cm 더 넓게 걷기, 쓰러져 누워 산길을 가로막은 나무 치우기, 스마트 폰 카메라에 꽃 거미 새소리 버섯 셀피 담기 등을 하며 쉬엄쉬엄 걷는다.
채 두 시간이 되지 않아 해발 397미터 약수산에 올랐다. 약사산은 이정표가 없어 그냥 지나친 모양이다. 나무의 목을 조이고 있는 정상 표지판을 비끄러맨 줄을 느슨히 해주고 걸음을 옮긴다.
능선 옆에 서너 갈래로 줄기가 퍼진 큰 참나무 고목이 사지가 찢겨 엎어져 있다. 몸을 낮추고 조신하지 않고 하늘 높이 줄기를 뻗쳤다가 벼락을 맞았음에 틀림없다. 주변에도 작은 지위에 기대 기고만장하여 안하무인 격으로 부하 직원을 쥐 잡듯이 핍박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종종 목도하곤 한다.
산길 위에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는 참나무 잔가지들은 지난주 장맛비와 함께 몰아친 거센 바람의 흔적일 터이다. 어려운 때를 만나면 몸에 가진 것을 버려 스스로를 지키는 나무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검복리와 엄미리로 갈리는 고갯길을 지나 벌봉으로 한참을 치고 오르다 보니 문득 성곽이 길 앞을 우뚝 막아선다. 본성 외에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남한산성의 성곽 중 봉암성 동남쪽에서 한봉까지 이어진 한봉성이다.
성곽 밑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성곽이 무너져 내린 곳은 성곽의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본성 외 다른 성곽은 허물어지고 무너진 곳이 곳곳에 방치되어 있어 안타깝다. 풀숲과 넝쿨에 가리고 기왓장과 벽돌 조각이 나뒹구는 성곽길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벌봉으로 오르는 맹렬히 가파른 비탈길이 천혜의 성곽의 입지를 보여 준다. 허물어지고 무너진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성곽 위에 덩그러니 남한산 표지석이 놓여 있다. 날이 맑아 무너진 성곽 너머로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오에 해발 512.2m 벌봉에 닿았다. 병자호란 때 이곳을 점령한 청나라 군이 성 내부 동태를 파악하며 화포로 성안을 포격했다는 수성과 공성의 요지다.
동장대 터 옆 제13암문을 통해 본성 안으로 들었다. 성곽길을 버리고 산성리 마을 쪽 현절사(顯節祠)로 향했다. 성곽 주변과는 달리 현절사 쪽으로 내려서는 오솔길은 인적이 없다. 물로 질펀하던 길이 옆으로 도랑을 내놓으며 현절사에 닿았다.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어깨에 맨 일단의 페달족이 비탈길을 올라온다. 인사를 건네니 계단이 놓이기 전엔 자전거를 타고 쉽게 오르던 길이라며 예상이 빗나갔다고 푸념한다.
사찰인 줄 알았던 현절사는 사당이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복을 반대하여 종전 후 청나라에 끌려가 순절한 삼학사인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기리는 사당이라 한다. 항복을 거부한 김상헌과 정온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는 현절사의 문은 용무늬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다. 산성로를 건너 반대편 산자락 개원사로 향했다. 큰 자물쇠가 안으로 채워지고 부라린 눈으로 각각 창과 칼을 든 금강역사 둘이 양쪽 문을 지키고 선 천왕문을 비껴 능선을 치고 올라 남장대 터 쪽으로 향했다.
돌 축대 위에 밑동이 굵은 나무들이 올라앉은 남단사 터 안내판의 글자는 반쯤 지워져 희미하다. 비탈을 올라 닿은 성곽이 홀연 내놓는 제2남 옹성 밑 암문으로 나섰다. 온갖 들꽃과 초목으로 뒤덮인 완만한 산자락을 따라 옹성과 그 뒤로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머리에 인 검단산이 펼쳐져 있다. 옹성 위로 올라서니 날이 맑아 가까이 광교 백운 청계 인릉 대모 구룡 관악과 서쪽 멀리 계양산과 마니산까지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남장대 터로 발을 옮기다가 성안 숲 속 나무 등걸에 털두꺼비하늘소와 나란히 걸터앉아 배낭에서 참외 하나를 꺼내서 허기를 달랬다. 많은 산객들이 오르내리는 남쪽 성문인 지화문을 나서면 하산 길이다. 백련사 통일기원탑 등을 지나서 체육공원으로 내려섰다. 체육공원 위 계곡은 물놀이 나온 인파로 빼곡하다. 절기가 날씨와 어긋난 듯한 날이지만 복날은 복날인가 보다.
온갖 사상 이념 이권 분쟁 알력이 뒤엉켜 다투는 용광로, 광화문 광장에서 모 시민단체가 '개 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한다. 오랜 전통의 보편적이던 문화도 비틀고 꼬집어 보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시대다. 공원 앞에서 야탑행 버스에 올랐다. 삼계탕 한 그릇에 수박 한 쪽이면 행복하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지 싶은 복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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