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1004가 문을 열던 날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어느 날,
나는 주님께 내 안의 고통을 호소했다.
그 고통의 이름은
미움이었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님께 일러바치듯 말했다.
“주님, 저 사람이 잘못했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저 사람은 변하지 않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기도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하면 할수록 미움은 더 커졌다.
그 사람이 싫었다.
차라리 내가 나가버리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정말 내 한계에 다다랐다.
그때였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한 말씀이 울려왔다.
“네가 소금이 되거라.”
나는 그 말씀 앞에서 멈추었다.
소금이 되라고?
그리고 곧이어
알 수 없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보고 죽으라고 하시는구나.’
내 형체를 드러내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소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음식 속에 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잃는다.
녹아든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음식의 맛을 살린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나는 늘 주님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막상 내 마음이 상하자
다시 내가 살아나고 있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내 억울함을 붙잡고 있었고,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 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구나.
그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주님…… 알겠습니다.”
그때부터였다.
미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통이 가라앉았다.
마음에 맑음이 들어왔다.
나는 알았다.
치유가 일어나고 있구나.
상대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를 바라보는
내 눈이 변했다.
미움이 있던 자리에
이상하게 사랑이 생겨났다.
내 힘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따뜻한 힘이 마음속에서 솟아났다.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소금이 되어라.”
그 말씀이
내 삶의 말씀이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착한 일을 하는 한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을 함께 돕는
동행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품고
그 아이를 기억하며
나눔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헌옷 등을 모아
자신들의 일터에서 바자회를 열고
그 수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내 마음도 움직였다.
마침 나에게는
웨딩숍을 운영하던 시절 가지고 있던
드레스와 턱시도 등이 있었다.
‘이것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나는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물건을 기증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일을 함께 돕고 싶어졌다.
주차장을 저렴하게 임대해
옷가지와 여러 물품을 판매하고
봉사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나눔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이 오래도록
함께 가는 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의 길에는
때때로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오해가 생겼다.
마음이 갈라졌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때는 참 아팠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훗날 돌아보니
나는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 분리가 오히려
소금창고1004를 탄생시키기 위한
주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분리가 되고 나니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기도회 봉사자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그날도 당연히 여러 사람이 함께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가 생겼다.
약속했던 사람들의 계획이 바뀌었다.
결국 그날 함께 기도하게 된 사람은
디에고와 나, 둘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주님,
이제 이곳의 이름을 무엇이라 해야 하나요?’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맞다.”
주님께서 내게 이미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네가 소금이 되거라.”
나는 성경을 펼쳤다.
마태오복음 5장 13절.
그리고 그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날이 바로
5월 13일이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5월 13일.
내가 ‘소금’이라는 말씀을 다시 발견한 바로 그날.
그 순간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움 속에서 들었던 말씀.
“네가 소금이 되거라.”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일.
나눔을 시작하게 된 일.
오해가 생긴 일.
분리하게 된 일.
기도하려 했던 사람들이 오지 못한 일.
디에고와 나, 둘만 남은 일.
그리고 성경을 펼쳤을 때
내 눈앞에 나타난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아, 이것이 우연이 아니었구나.
주님께서 하나씩 길을 내고 계셨구나.
나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열고 계셨구나.
나는 사람들과 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는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게 하셨구나.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는 새로운 이름을 준비하고 계셨구나.
그런데 또 하나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카페에 새로운 공간을 올리려고 하니
‘소금창고’라는 이름이 이미 너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때 내 전화번호의 끝자리
1004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소금창고1004.
그렇게 이름이 완성되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물건을 나누던 그곳이
주차장 자리였고,
그 공간이 실제로 하나의 창고처럼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름도,
공간도,
사람도,
시간도,
모든 것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는 그때부터
나를 소금지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디에고는 스스로
창고지기를 맡겠다고 했다.
우리는 현수막에
두 손을 맞잡은 모습을 넣었다.
그리고 그곳을 감히 이렇게 불렀다.
하느님의 기업.
사람이 세운 기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기업.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사랑을 흘려보내기 위한 공간.
쌓아두기 위한 창고가 아니라
받은 사랑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한 창고.
그것이
소금창고1004였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참 많은 것을 몰랐다.
그때는 그저
한 사람의 아픔을 돕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을 나누고 싶었다.
상처 입은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작은 마음들이 모두
하나의 길 위에 놓여 있었다.
“네가 소금이 되거라.”
그 한마디.
그 말씀 하나가
나의 미움을 녹였고,
나의 교만을 내려놓게 했고,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했고,
마침내 나눔의 문을 열게 했다.
그리고 그 문 위에
한 이름이 걸렸다.
소금창고1004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소금창고1004는
내가 만든 이름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주님께서 하나씩 만들어 오신 이름이었다.
나는 그저
마지막에 그 이름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주님,
제가 소금지기라는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게 해주세요.
제가 드러나기보다
당신의 사랑이 드러나게 해주세요.
제가 쌓아두기보다
흘려보내게 해주세요.
제가 누군가를 바꾸려 하기보다
먼저 제 자신이 녹아들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 작은 창고를 통하여
한 사람의 손이 또 다른 사람의 손을 잡게 하시고,
그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져
세상 곳곳에 퍼져가게 해주세요.”
아마 그것이
내가 처음 들었던 말씀의 뜻이었을 것이다.
“네가 소금이 되거라.”
그리고 그 말씀은
마침내 이름이 되었다.
소금창고1004.
첫댓글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소금창고1004 사무실이 이제는 첨단 강의가 이루어지는 AI. 미술 성동지회가 되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