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미주여행기 ll - 미국
북미주 종횡단여행자 명단
이진배부부 / 허영승부부 / 서창원부부 / 조병용부부 / 한성근부부 / 최정락부부 / 이강희부부 / 박성순부부 / 이경준 총17명 |
序 : 그런데 이글을 쓰는 지금. 미국이란 초강국의 거대한 힘은 미서부지역, 이 캘리포니아주에서 비롯되고 팔팔하게 젊은 나라임을 이 여행을 통하여 보다 확실하게 실감하였다. 내 극히 단편적이지만 그 첫 인상이 그러하였다. 우리 조국의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 축복받은 New World였다. 고난, 彼侵의 역사을 감내하며 순박하게 유구한 역사를 꾸려온 이 민족의 미래 지향적 생존전략은 미국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미동부, 뉴욕이 정치, 외교, 금융등 국가의 기능적인 것의 중심이라면, 미서부, 캘리포니아주는 현실적, 실질적인 부(富)와 초(超) Super Power의 Source(源泉,근거지)이다. 캘리포니아주의 수도와 인구, 역사적 배경을 槪觀해보면.... 수도는 새크라멘토(골드 스테이트라고도함). 미국 50개주 중 최대의 인구와 최대의 생산력을 자랑하는 주이다. 북쪽은 오리건주(州), 동쪽은 네바다 · 애리조나주(州)에 접하고, 남쪽은 멕시코와 국경을 이루며, 서쪽은 태평양에 면하고 있다. 면적은 한국 총면적의 2배에 가깝고(남한의 3배면적), 미국 내에서는 텍사스에 이어 2번째로 넓은 주이다. 인구는 3천 5백만명이다. 北은 샌프란시스코가, 南은 로스앤젤레스가 중심이다. 캘리포니아주(一名, Cali가 Nia를 爲하여..)가 독립된 국가라 가정하면 아마 세계 5대강국에 든다고할만큼 부강하단다.
캘리포니아의 5대 농업 Products는
- ① 오랜지 : 바렌시아 / 네이불(Seedless, 즙이많음) / 선키스트(오랜지협동
조합이름이 Brand가됨) / 델몬트로 유명하고, - ② 포도, 건포도(건도포란 말의 원조, Coast belly), 와인.
- ③ 아몬드(Almond) : 아몬드농장하면 50만주 ~ 100만주의 농가가 주종을 이루며,
그루당 $30소득이니 대단한 부자농민들이다. - ④ 牧草 (알팔파/케일등) : 애초엔 캘리포니아의 모하비(Mojave)사막의 염분이
함유된 토양을 단계적으로 중성화시키기위해 목초를 재배하였다. - ⑤ 쌀(캘리포니아쌀, Calrose) : 밭벼(육도 陸稻, upland rice)로 년간 2모작한다.
따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농업은 콜로라도강 종합개발등으로 관개시설이 잘 정비되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냉장·수송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재 야채와 과일 생산은 미국이 1 위이다. 그 가운데서도 포도 · 오렌지 · 레몬 · 복숭아 · 플럼 등이 많이 생산되고, 쌀 · 토마토 · 레터스 등은 미국 각지 시장으로 보내진다. 그 밖에 낙농제품과 쇠고기도 1위이고, 우유 · 면화 · 닭고기는 2위, 칠면조는 3위를 차지한다. 이들 농산품뿐 아니라 풍부한 석유자원으로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하고 있다. 공업도 종업원수 · 출고액·부가가치 생산액등 모든 분야에서 제2위의 뉴욕주를 크게 앞질러 전국의 약10%를 차지한다. 주요 생산품은 항공기·자동차·전기기기·식품등이다. 새너제이를 중심으로 한 산타클라라 골짜기에는 항공기의 록히드사, 컴퓨터의 IBM사, 자동차의 포드사, 전기기기의 GE사등 주력공장들이 모여 있다. 근래에 다시 IC · LSI 등 전자공업 첨단부문의 성장이 뚜렷하며, 실리콘 밸리는 세계 제 1 의 고도기술 집적지대로 주목받고 있다. GNP의 45%를 항공 · 우주 · 전자 등 첨단산업이 차지한다. UC 버클리대학 · 캘리포니아주립대학·캘리포니아공과대학 · 스탠포드대학등 연구교육기관의 역할도 매우 크다 광업은 총생산량에서 텍사스에 이어 제 2 위이다. 석유는 텍사스주 · 알래스카주 · 루이지애나주에 이어 제 4 위이고, 아스베스토 · 붕소 · 나트륨광 · 텅스텐광 등은 1위이며, 이 밖에 시멘트도 1위이고 종류도 다양하다. 임업도 주요 산업으로, 국유림 면적은 알래스카주 다음이다.
역사배경 : 1542년 에스파냐인(스페인人, 함대 지휘관) 후안 카브릴요가 멕시코에서 배를 타고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여 다시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탐험하였다. 영국인 F.드레이크는 1579년 샌프란시스코만 부근에 도착하였다. 1769년 에스파냐王의 명에 따라 최초의 식민지를 샌디에이고 부근에 건설하였고, 1812년에는 러시아의 모피 상인들이 남하하였다. 1822년 캘리포니아는 에스파냐로부터 멕시코가 독립하게 되면서 멕시코의 지배하에 놓였으나, 1846∼47년에 있었던 미국 · 멕시코전쟁의 결과, 1848년에 미국에 할양(7개주가 미국에 귀속)되고, 1850년에 31번째의 주가 되었다. 1841년부터 미국인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으며, 1848년 콜로라도에서 금이 발견된 후 이주자가 급증하였습니다. 주민은 멕시코계 외에 한국계 · 중국계 · 일본계 등 동양인이 많고,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리틀도쿄 등에서 인종 · 문화가 혼합되는 전형을 볼 수 있다. |
 |
뉴욕의 '감미정' 환영 Dinner Reception에서의 동창부인들모습...click for Zoom! 左前부터 원재훈, 유재현, 한성근, 조병용, 이강희, 서창원, 右前부터 이진배, 이돈희, 이길영, 최정락, 박성순, 허영승 婦人 |
8월 12일 : 아침에 일부러 호텔로 다시 찾아온 조규혁과 작별하고, 나라여행사의 뻐스타고 가이드와 함께 육로로 캐나다국경을 통과 미국에 재입국하여 Buffalo공항까지로 나라여행사와는 계산을 끝냈다.
버팔로공항에서 New York 라과디아 공항으로 가기 위해 US Airway 3994편에 탑승했으나 허리케인 샬리의 영향인지, 한단계 강화된 테러검색때문인지, Runway 유도로에 나가 한참 대기하다 Take-up을 포기하고 승객들을 Back-to-Transit Room 하는 등, 지연에 지연을 반복하다가 출항하였든 것이다. 그결과 도착예정시간인 15:30분보다 너무 늦게 뉴욕에 도착하니. 조은여행사의 뉴욕파트너가이드의 안내로 이길영박사,이돈희등의 뉴욕동창들이 기다리는 저녁만찬장으로 급하게 이동하였다(늦은 시각이라 당초 뉴욕리셉션장을 24시간 영업하는 '감미옥'으로 옮겼다고함). 뉴욕과 뉴저지주등 먼곳에서 일부러 참석나온 우리의 동창들과 부인들을 만나 끝도 없는 이야기의 다발을 풀어놓고 지난 시간을 녹이고, 두둘기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다가, 그 레스토랑의 야간마감시간이 되어서야 헤어져 숙소인 Radisson호텔로 돌아 왔고, 이돈희와 김부혁은 호텔까지 따라왔다가 돌아 갔다. 뉴욕의 리셥션 참가자는 우리17명과 이길영박사부부,이돈희부부,원재훈부부,유재현부부, 주호종박사, 김정광, 박효범이다.
 | 이경준,이길영,김정광 |
|  | 이진배, 원재훈 |
|  | 한성근,주호종,이진배 |
|  | 이돈희,박효범,서창원 |
|
8월 13일 : 라디숀호텔에서 아침식사후에 뉴욕의 JFK공항에서 나리타경유, 서울로 귀국하는 이진배부부와 작별하고, 오전만의 시간여유을 갖고 우리는 맨해턴의 고층빌딩숲,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과 뉴욕의 9.11 테러로 자리만 남은 세계무역센터 자리를, 허드슨 강 83번 부두에서 맨해턴섬을 일주하는 '서클 라인(Circle Line)'이라는 페리를 타고 관광하였다. 뉴욕은 크게 맨해턴섬을 중심으로 브루클린, 브롱크스, 퀸스, 리치먼드의 5개 지구로 되어있다.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은 오늘날 세계의 경제,문화,외교의 중심지이다.
'Circle Line Ferry'를 타고 가는 船上에서 로스엔젤리스로 가기위한 잘못된 항공기 티켓일정(8월13일을 19일로 conformed)을 원래 일정(8월13일)데로 바로 잡기 위해 가이드의 도움으로 뉴욕-L.A.간 항공티켓을 새로 구입하고 Seat를 확보 하는등 온 힘을 다하여, 결국 Newark(뉴왁)공항에서 LA공항간의 항공편은 총원15명을 3파트로 나누어 American Airways와 US Airways를 이용하여 또다시 LA에 도착예정시간보다 너무 늦게 도착하였다. (즉 이경준, 이강희부부 3인은 7:56 pm에 서창원, 한성근, 허영승 3인은 8:06pm에 도착이고, 조병용,최정낙,박성순과 일행의 어부인들 모두 합9인은 09:26pm에 도착예정이었음.) L.A.의 조은관광(Kenny Y Kim)에서 마중, 우리 일행15명을 픽업하여, 만찬장으로 이동. 만찬장소를 옮겨가며 지루하게 기다려 준, 우정넘친 L. A. 지역의 인사들은 우리들의 은사이신 한기섭박사님과 신영식부부, 최재익부부, 김용현부부, 최영인박사부부, 권영무부부, 윤광현부부, 최공탁부부, 황원근, 이봉철, 서울에서 온 김용경부부, 박낙기와 극적인 만남과 서울서 준비해 온 51회 동창 모두의 은사이신 한기섭선생님께 드리는 감사패를 김용현의 낭송으로 전해 올렸다. 더불어 여기저기 어울어져 밤 늦게까지 끊일 줄 모르는 우정나눔의 대화 시간을 가졌든 것입니다. 흥분으로 가득찼든 만찬이 끝나고 나니 너무 길고, 고달픈 13일의 하루가 실감되어 一石은 Friday+Thirteen의 징크스(jinx:그리스에서 마술에 쓰인 새이름으로, 재수없는 것[사람], 불운, 불길한 사건등) 라더군. Wilshire 호텔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 갔는지도 모르게...
 | 신영식,최영인,이봉철,황원근,이경준 |
|  | 윤광현,신영식,최영인 |
|
L.A. 환영리셉션에서...한기섭선생님과 권영무...click for Zoom! |
8월 14일 : 호텔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은관광 L.A.본사에다 모든 경비를 지불함. 김기석 가이드와 함께 모하비사막위의 교통요충도시인 바스토우에 도착하여 점심을 들고, 콜로라도강(River of Red-Color: 붉은 황토빛 강이란 뜻)변의 휴양도시 라풀란을 거쳐 아리조나주의 첫번째 큰도시 킹맨에 들어서니 Kaibab향나무와 카이밥소나무들이 줄지어 선 들판을 따라 가이드의 해박한 안내를 들으며 계속되는 드라이브. 킹맨 통과후 드디어 그랜드 캐년 초입도시인 윌리암스 도착. 석양무렵 하루밤 묵을 윌리암즈(Bill Williams라는 비버사냥꾼의 이름을 딴 지명)의 Days Inn에 Check-in함.
8월 15일 : 새벽4시반에 기상해 5시반에 아침식사 마치자마자 출발하여, 세계7대 불가사의(不可思議,Wonder) 천연 경승지중의 하나인 그랜드 캐년(大峽谷)국립공원으로 이동, 콜로라도江 남쪽의 사우스 림(South Rim)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Point)전망대에서 산책 관광하였다. 그랜드 캐년은 4억년이 넘는 세월동안 콜로라도 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대협곡(大峽谷)으로. 애리조나주 북서부에 위치하며, 446Km에 걸쳐 펼쳐져 있고, 해발고도가 2,133m에 이른다. 191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자연을 자연 그대로 관리한다'라는 취지 아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시 그곳에서 하산, 박성순부부, 이강희부부, 한성근부부, 서창원부부, 최정락부인, 조병용부인은 경비행기로 1시간동안 그랜캐년의 상공을 날며 입체적인 관광을 하였고 나머지 일행은 I-Max 영화관람으로 대체하였다. 그랜드캐년은 맨 밑바닥에 붉은 색의 콜로라도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Kaibab-Limestone(카이밥석회암)과 沙岩과 血岩, 이 3개 암벽의 단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 협곡이다. 라스베가스로부터 차로 6시간거리에 있다. 아리조나주의 킹맨에서 잠시 휴식후 네바다주(Siera Nevada:눈덮인 톱날 같은 뾰족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는 뜻)의 인간이 만든 경이로운 사막도시인 Las Vegas(푸른 초원이란 뜻), 황량한 모하브(Mojave)사막 한가운데 불야성처럼 휘황한 도박의 메카, 라스 베이거스로 이동, 쥬빌리쇼와 야간관광후 교외에 위취한 Buffallo Bill이란 호텔에 투숙.
 |
 |
Grand Canyon...click for Zoom! 대협곡 아래로 콜로라도 강이 흐른다. 경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장관! |
8월 16일 : 바스토우(Barstow)로 나와 옛 은광촌 칼리코(Calico)로 向했다. 은값의 폭락으로 폐광촌이었던 캘리코는 월트 나츠(Walter Knott)가 1951년 사들이게 되는데 나츠는 은광촌 당시 모습의 사진을 기초로 복구과정을 거쳐 1966년 샌버나디노 (San Bernardino county) 정부에 기증함. 옛 은광촌 칼리코(Calico)를 잘 보존하여 서부의 민속촌 고스트 타운으로 재 탄생시킨 관광지를 보고, 점심후 미국 최대의 농경지인 캘리포니아 곡창지대 베이커스필드(Bakersfield)를 출발하여 58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한참 달리다보니 사막(Mojave)에는 관목들이 말라죽은 것 같으나 살아 있고, 조슈아 나무(Josua Tree)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나는 고속도로상에는 '후버댐', 에드워드 공군기지(천연활주로의 우주왕복선 착륙기지), 수많은 거대한 사막 풍력발전소가 보였다. 이어서 캘리포니아주 최대 농업 생산지이며 건포도의 고장인 프레즈노(FRESNO,건포도와 ICE-포도주로 유명함)에 도착, 얼린포도주 생산공장견학, 試飮도 한후, Radission호텔 체크인.
Calico - Ghost Town...click for Zoom! |
8월 17일 : 아침식사를 일찍마치고, 캘리포니아 중부 동쪽의 높다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중간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관광시작, 주로 차로 이동하며 중간 중간 내려 관광하였다(인스피레이션 포인트, 엘캐피탄(El Capitan), 면사포 폭포(Bridalveil Fall), 요세미티폭포 Yosemite Fall등). 멀세드(Merced County)에서 점심하고, 오클랜드(Oakland)를 지나 Bay-Bridge를 건너 샌프란시스코 관광을 시작, 금문교, 차이나타운등 시내관광하였고, '베이크루즈(Bay Cruise)' 유람선관광('피셔맨스 워프 Fisherman's wharf'의 잔교에서 순항선이 출발한다.)으로 배타고 금문교와 베이 브리지 바로 아래까지 가고, 옛날 감옥섬인 알카트라즈섬주위를 관광하였음.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구조물로써 San Francisco와 Marin반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Joshep P. Strass와 그의 chief assistant인 Charles Ellis에 의해 설계되었다. 1933년 1월 기초공사를 시작으로 1937년 5월 27일 200,000명의 보행자들이 모인 가운데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스팬 1280m의 강철로 만든 현수교(懸垂橋)이다. (한국의 영종대교도 현수교임) 석식후 공항근처의 샌프란시스코만 해변가에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는 쉐라튼호텔(Hotel Sheraton)에 Check-In.
1937년 완성이래 27년간 세계 최장의 스팬(1280m)을 자랑하는, 강철로 만든 현수교(懸垂橋)인 금문교. |
Stanford 대학교에서...Memorial_Hall__Stanford_University! |
8월 18일 : 가이드 김기석과는 헤어지고 오늘은 새로온 吳가이드와 함께 오전에 먼저 사립명문인 스탠포드대학교경내의 일부만을 둘러 보았다. 스탠퍼드대학교 (Stanford University)는 1885년 설립, 1891년부터 개교. 설립자는 릴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1824∼1893)이며 대륙횡단 철도 건설업자이고 주지사, 연방상원 의원이었던 릴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1824∼1893)부부가 15세에 죽은 외아들을 기리는 뜻에서 세운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에 있는 4년제 남녀 사립고등교육기관이다. 2000년 현재 대학 재학생은 6,550명(남학생 3,270명, 여학생 3,280명)이며, 대학원재학생은 7,260명(남학생 4,850명, 여학생 2,410명), 교수는 805명, 교수 1인당 학생수는 8명이다. 캠퍼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교외에 있다.
다음은 UC 버클리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를 둘러보고, 이 버클리공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병용의 처조카도 만나, 강의실, 연구실등의 안내와 학교소개도 받았다.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가 많은것에 놀랐다. 점심을 한식으로 먹고 캘리포니아 시내관광과 귀국을 위한 선물쇼핑한후 저녁을 Seafood부페로 실컷 Charge(충전)하고 호텔로 귀환. 조병용과 나, 그리고 부인들과 바닷가인 쉐라튼호텔주위를 산책하였음.
8월 19일 : 조병용과 아침산책한 후, 호텔에서 full-breakfast 마친후 9시경 호텔 셔틀 뻐스로 공항으로 이동. 서울-인천공항행 12:15분발 항공기 UA893편으로 6명/ 12:40분발 UA885편(일본오사카간사이공항경유)과 OZ119편으로 9명이 나뉘어 20일 늦게 귀국하였다. 이로써 미흡하지만 나름데로의 기억을 되살리고 마추어가며 북미주 대륙 종횡단 여행기를 써 보았습니다.
P/S : 여행에 참가했든 회원 누구든지 자유롭고 편안하게 여행담이나 느끼신 감상문을 자유게시판에 올려 주시면 모두 종합하여 인경란에 다시 올려 기리고져 하니 참여 부탁드립니다.
실리콘밸리의 탄생
스탠포드대학과 HP (휴렛 팩커드)
1906년 AT&T의 드 포레스토와 그의 동료는 진공관 증폭회로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후에 실리콘밸리(Sillicon Valley)라고 이름 붙여진 지역이었다. 실리콘밸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외에도 몇가지가 더 있었다. 전자공학의 전도사라 할 수 있는 쇼클레이가 있었고,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스탠포드대학이 있었다.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은 1971년 반도체산업전문정보지인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의 편집자인 돈 C. 호플러가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되었다.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먼저 스탠포드에 대해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1891년 창립된 스탠포드는 1920년대까지 서부의 별 볼일 없는 학교였다. 스탠포드를 창립한 사람은 릴랜드 스탠포드 상원의원이었다. 1885년 스탠포드의원은 전재산을 학교에 기증했다. 그 재산중에는 캠퍼스부지로 기증된 팔로알토 지역의 8천8백 에이커 목장이 있었다. 스탠포드를 세계의 대학으로 키운 사람은 프레드릭 터먼이라는 그 대학교수였다. 터먼은 1946년 스탠포드대학의 공학부장이 되었다. 터먼이 실리콘밸리에 뿌린 첫 씨앗은 휴렛팩커드이다. HP의 창립자인 휴렛과 팩커드를 스탠포드로 불러들여 휴렛의 석사학위논문을 완성시켰다. 휴렛과 팩커드는 자신들의 차고에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발진기를 제작했고 운도 따라 1942년 벌써 연간 매상고 1백만 달러의 회사로 성장했다.
1940년대에 스탠포드는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학교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설립자인 스탠포드의원이 기증한 토지를 팔수도 없었다. 기증 조건중에 매각이 불가능한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터먼이 아이디어를 내었다. 땅을 빌려 주고 그 임대료를 받아 첨단기술공업단지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드디어 스탠포드 연구단지 (Stanford Research Park)가 완성됐다. 연구실에서 만든 기술을 근처 기업에 팔고 기술 이전을 하면서 땅장사와 기술장사를 동시에 하자는 것이었다.
싼 땅값과 기술이전이라는 호조건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몰려 들었다. 1호 진출기업은 배이언 소시에이트사였고, 이어 HP가 들어왔다. HP사로 하여금 입주를 망설이는 기업을 설득하도록 하게 하였다. 결국 1970년가지 70년까지 리서치 파크에는 70여개사가 입주하게 되어 토지임대에 따른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MIT는 캠퍼스부지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스탠포드는 오히려 확대일로에 있다.
반도체와 쇼클레이
실리콘밸리의 발전에 기여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쇼클레이이다. 쇼클레이는 1952년 당시 무게로는 금보다 비싼 상업용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벨연구소의 터줏대감이었던 쇼클레이는 쇼클레이반도체회사를 실리콘밸리에 세운다.
1956년 봄, 쇼클레이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는 것을 계기로 쇼클레이반도체회사는 절정에 다다른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쇼클레이 밑에서 기술을 익힌 8명의 제자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그리고 쇼클레이의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해 회사를 새로 차리거나 다른 회사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봅 노이스는 페어차일드반도체회사를 설립했고, 고든 무어는 노이스를 따라 갔으며, 진 호니는 아넬코사를 설립하는등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쇼클레이의 반도체회사에서 갈라져 나온 이러한 회사들은 또 다시 여러 회사로 나눠어지면서 실리콘밸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쇼클레이는 지나친 금전욕과 가혹한 훈련 방식으로 결국은 파산하고 말았다.
진 호니에 의한 프레이너형 생산공정은 트랜지스터 생산확대에 전기를 마련했다. 이 기술은 이후 LSI(대규모 직접회로)의 기본의 되는 MOS 전계효과 트랜지스터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봅 노이스의 페어차일드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킬비와 우연의 일치로 집적회로 제조에 대한 특허분쟁을 일으켰고 영광은 킬비에게 돌아갔다.
봅 노이스는 페어차일드를 나와 두번재 회사인 인텔사를 설립했다. 모험자본가인 아서 록이 자본을 모았고,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개발한 E. 호프 쥬니어박사, 페어차일드사에서 옮겨온 피데리코 파진등이 어울려 1971년 인텔4004라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연이어 출하된 인텔8080은 몇년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당시로는 혁신적인 가격인 2달러 50센트는 인기를 더하게 되었고, 이는 컴퓨터와 다른 기기들의 결합을 촉진했다. 그러나 경쟁사의 도전도 만만치 않았고, 호프는 게임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아타리(Atari)사로 옮겨 갔다. 쇼클레이로 부터 시작된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이끈 또 하나의 요인은 막대한 군사자금의 유입에 있었다. 1965년 록히드 항공회사의 주력부문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한때 국방부 구입 반도체의 40%를 이곳에서 차지했다. 특히 1960년대 아폴로계획에 의한 미항공우주국(NASA :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로부터 막대한 자금이 실리콘밸리로 흘러 들어왔다. 또 미소간의 냉전체제는 엄청난 양의 국방관련 자금의 유입을 가져왔다. 또한 자유로운 이직(30%)과 탄탄한 경쟁체제는 많은 기업을 도산시켰지만 도리어 자체 시스템을 안정시켜 주었다.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도 갈등구조가 있었다. 국제적인 스파이조직, 뿌리뽑히지 않는 암시장, 미소간의 소비체제, 항상 매스컴을 타는 10% 미만의 기술자를 제외한 첨단의 가난을 달리는 제3세계 출신 노동자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사장들은 일본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있었다.
|
|
다정 다감하신 캐나다의 윤병운화백부부, 조성호박사부부, 그리고 토론토의 조규혁부부, 김철웅부부 그리고 뉴욕, 뉴저지에서 오신 우리51회 자랑스런 벗님부부들 또한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은사 한기섭선생님과 우리의 미서부, 캘리포니아지역 벗님부부들의 과분한 환대와 우정에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입니다. 건강상, 혹은 기타사정으로 자리를 함께 못한 캐나다의 성수길과 미국의 황규백, 서만길, 김철화, 유영제, 박순, 박민규벗들과는 못내 아쉬웠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 이제 늦 여름이 끝나기 바쁘게 가을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겨울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여정 열심히 우정을 나누며 살자구요 화이팅!!
캐나다에서 만난 벗들은 모두 11명으로 윤병운부부, 조성호부부, 이진수부부, 조규혁부부, 김철웅부부, 김부혁
뉴욕에서 만난 벗들은 모두 11명으로 이길영부부,이돈희부부,원재훈부부,유재현부부,주호종,김정광,박효범
L.A.에서 만난 한기섭은사님과 벗들은 모두 20명으로 신영식부부, 최재익부부, 김용현부부, 최영인부부, 권영무부부 윤광현부부, 최공탁부부, 김용경부부, 황원근, 이봉철, 박락기
금번 미주 여행에서 회동한 우리51회는 총 59명(부인25명)으로서 (방문일행 17명과 캐나다 11명, 뉴욕 11명, L.A. 20명) 51회동창의 우정과 강한 결속을 보여준 대향연으로 자랑스럽습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