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59) 아귀
어느 날 세종이 궁정 내시로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보고를 받는다.
“전하, 명나라 사신이 온답니다. 벌써 북경을 출발했답니다.”
세종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또?” 긴 한숨을 토하고
“아니, 지난번에 다녀간 지 얼마나 됐다고!”
내시는 “그러게 말입니다” 말끝을 흐렸다.
세종은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명나라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이참에 그들과 척지는 건
결국 우리 백성들이 고달파지는 것, 내가 참아야지.’
“여봐라, 사신이 오는 길목마다 접대가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영접사를 의주로 보냈다.
명나라 사신 일행은 의주에 들어와 주지육림에 빠졌다가
평양에서 또 감사가 베푸는 연회에서 먹고 마시며 기녀 치마를 벗겨 희롱했다.
지나는 도성마다 우리 백성들의 고혈로 질펀한 연회가 열렸다.
사신 일행이 한양에 입성하여 궁궐에 들어오자
세종이 문무백관들과 함께 손수 맞이하여 여정의 노고를 위로하고
경복궁에서 명황제 영락제(재위 1402∼1424년)의 칙서를 받았다.
그들을 숙소인 태평관으로 모셔 그날 밤 우리 임금이 마련한 연회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자신이 명황제나 된 듯 사신들은 세종을 친구 대하듯이 술잔을 주고받는다.
이튿날 어전회의는 한숨과 비탄이 가득했다.
사신들이 가지고 온 명황제의 칙서에는
‘이번에 북방을 치려고 하니 조선에서는 군마(軍馬) 1만마리를 보내도록 하라’고 쓰여 있었다.
세종도 신하들도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100마리도 아니고 1000마리도 아니고 1만마리라니!
억장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연회는 계속돼 이튿날은 한양에 들어온 지 둘째 날이라며
익일연(翌日宴)을 베풀었다. 칙서에 ‘북방을 치려고 하니’라는 구절은
‘여차하면 조선도 칠 수 있다’는 겁박의 냄새가 풍겼다.
통사정해서 3000마리를 깎아 7000마리를 조공하기로 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부랴부랴 관마색(官馬色)이라는 임시 관청을 만들어 방방곡곡 말을 징집했다.
대갓집 양반이 타고 다니던 말,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우마차를 끌던 말, 병영의
군마까지 말이란 말은 모조리 끌어모아 7000마리를 열번으로 나누어 그 머나먼
명나라로 보냈다.
얼마 후 명황제 영락제는 군마로 쓸 수 없다며 수백마리의 말을 돌려보내
다시 말을 구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명나라가 조선에 대놓고 바치라는 조공 목록에는 말뿐만이 아니었다.
예쁜 처녀는 물론이고 화자(火者)도 자리했다.
화자란 열두살에서 열여덟살까지의 미소년들로 궁중 내시 후보들이다.
영락제는 내시들의 충성심을 믿어 그들을 조선 사신으로 보냈다.
그 아귀 같은 내시들이 명의 사신으로 조선에 와서 부리는 행패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왔던 윤봉이란 사신은 탐욕스럽기 짝이 없어 노골적으로
금은보화를 갈취하고 그것도 모자라 조선 관료로 있는 자기 친동생의 품계를 높이라고
압박해 뜻을 이뤘다.
수많은 조선의 처녀들이 명으로 끌려가 황제의 노리개가 되고 고관대작들의 첩실이 되었다.
조선에서는 처녀가 명나라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조혼(早婚)이 만연했다.
가끔 예외도 있었다.
명나라로 끌려간 여인 중에 한씨라는 미모가 출중한 여인은 영락제의 애첩이 되어 온갖 영화를 누렸다.
하오나 영락제가 죽자(1424년) 상주이자 새 황제인 홍희제는 한씨에게 순장을 강요했다.
“살려주십시오! 남은 생을 고국으로 돌아가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순장(殉葬), 따라 죽어 저승에서도 망자 곁에서 그를 잘 모시라는 생매장 명을 받아
눈물로 읍소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해 자살로 머나먼 타국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선덕제가 새 황제로 등극해 신하에게 이상한 명을 내린다.
“자살한 조선 공녀 한씨의 동생도 그렇게 미인이라며?”
황제의 이 한마디에 부랴부랴 사신이 오가고 빼어난 미모의 한씨 여동생이 명나라로 끌려갔다.
선덕제는 할아버지 애첩의 여동생을 자신의 후궁으로 만들었다.
집안의 여식이 둘이나 공녀로 끌려가 큰누이는 자살하고 누이동생도 뒤따라 명나라로 갔으니
통곡이 터져야 할 판에 은근한 웃음이 났으니, 바로 오라버니 한확이었다.
한명회의 일족인 한확은 명나라 조정을 등에 업고 세조와 사돈이 된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명나라 조정의 묵인을 얻기 위해 한확이 필요했다.
한확의 막내딸이 바로 세조의 며느리이자 성종의 모후이며 연산군의 할머니인 천하의 인수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