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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교실] 46. 계율교실을 마치며 (끝) 계율, 자신의 수행이자 타인과 소통고리 1년 동안 독자와 함께해 온 계율교실의 마지막 원고를 쓰는 오늘이 공교롭게도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이다. 선거일은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지만, 5년 동안 국정을 운영해 온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마무리를 시작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2002년 오늘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적이고 부패한 국가 시스템을 혁신하여 서민과 소외받았던 사람들이 밝게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국민에게 많은 기대감을 주었다.
필자는 이러한 불상사의 배경에는 윤리의식의 부재가 일차적 원인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계율 정신과 그 실천의 상실로 인해 불교계는 큰 홍역을 치른 것이다. 일반사회에 윤리라는 것이 있다면, 종교계에는 일반사회보다 더 엄격한 내용의 윤리가 존재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계율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수행의 첫걸음에 비유될 만큼 불교도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요소이다.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불신은 한 없이 커지고 결국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원활한 소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이것은 불교계 내부를 넘어 이제 일반사회와 불교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대형사고의 발생은 다행히도 불교계에 각성의 기회를 주게 된 것 같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계율에 관한 관심이 이를 대변해 준다고 할 것이다.
인간(人間)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사람(人) 가운데(間) 존재한다. 이 세상에 완전히 고립된 인간은 없으며,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이미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규칙을 익혀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윤리이다. 윤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신뢰에 바탕을 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만, 이 규칙을 위반한다면 반목과 불신 등으로 인해 서로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日 도쿄대 연구원 [출처 : 법보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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