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 명장면] 40. 일본 불교학계의 현대화
20여년 공들여 불경-논문 ‘DB화’ 노력
일본에서의 불교학 연구는 지금까지 문헌학적인 방법을 확립해 왔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학문으로서의 불교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일본의 불교학계의 흐름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봤다.
각종파 교학연구 축적이 일본불교학 ‘강점’
1. 일본 불교학연구의 원류
불교가 한반도를 경유하여 대륙에서 일본으로 전해된 것은 서기 538년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종파로 현존하는 것은, 주로 가마쿠라시대(12세기경)에 비롯된 신조불교(祖師佛敎)이다. 이러한 종파에는 메이지(明治)시대에 근대적 불교학이 소개되기 이전부터 한역문헌을 기반으로 한 불교연구가 있어, 이것을 토대로 한 종학(宗學)이라고 불리는, 각각의 입장에 입각한 교학연구가 행하여져 축적되었다. 이러한 축적이 일본 불교학의 강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불교학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메이지(明治)시대이다.
<사진> 지난 9월 열린 일본인도불교학회 세미나
난조분유나 타카쿠스 준지로와 같은 유럽유학을 통해 근대적 아시아학(인도학, 중국학 등)을 배운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이후 일본의 불교학은 한역문헌 위주의 연구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나 팔리 원전을 이용한 연구, 더 나아가 불교 이외의 인도철학까지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인도.티베트.중국.일본불교 등에 관한 문헌해독을 바탕으로 철학.윤리학.역사학.종교학.중국철학등과 같은 분야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신불습합은 대승불교의 일본적 전개” 주장
2. 근대적 불교학과 생활
최근 일본 불교학의 조류 중 하나는, 일본인들이 자신들 특유의 스타일을 가진 불교신앙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서점에는 불교에 관한 신간이 속출하고 있고, 극히 평범한 회사원이나 학생들이 이러한 책들을 손에 들고 읽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불교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붐이나 호기심에서 나온 현상일 뿐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전통적인 가치관을 되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까지의 일본불교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도 복잡한 것이었다. 지극히 간단히 생각해 보면, ‘정월에는 신사를 참배하는 한편 결혼식은 성당에서, 장례식은 불교식으로’라는 것이 현재 일본인들의 생각이다. 또한 불교와 신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일본불교 특유의 사상이다. 역사학자 쿠로다 토시오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이 단순한 신도와 불교의 종교적 혼합이 아니라 대승불교의 일본적인 전개”라고 주장한다.
일본불교를 알고자 한다면, 유명한 출가자나 큰 절, 또는 세력있는 종파의 교의만을 살펴보아서는 안 된다. 일본 불교의 역할은 때로는 일본인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다양하고 그 층이 두텁다. 이 층의 두께야 말로 일본불교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일본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에 대한 흥미와 함께 이제까지 전통적인 실생활에 근거해서 존재했던 ‘일본불교’에서 잊어버렸던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학뿐만 아니라 종교학이나 윤리학 그리고 넓게는 일본의 습속(習俗)에 관한 문화인류학적인 연구를 포함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분석학적 문헌학을 추구해 왔던 일본불교학은 그 축적과 아울러 실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는 해석학적인 노력도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유일 대장경 데이터베이스화 등 ‘현대화’
생명윤리-환경 등 ‘인류의 현안’ 연구로 연결
3. 지혜전달 매체로서의 불교학
이제 일본 불교학계에 있어서의 현대적 기술의 도입과 현대적 문제에의 대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에서의 인도학 및 불교학 연구의 중심적 단체인 ‘일본인도학불교학회’는 1951년에 발족하여 다음해인 1952년에 학술잡지 ‘인도학불교학연구’를 창간하였다. 올해로 55년을 맞이하는 역사 깊은 학회이기도 하다.
창간호에는 발족시의 이사장이었던 미야모토 쇼우손을 필두로, 스즈키 다이세츠, 우이 하쿠쥬, 히라카와 아키라, 나카무라 하지메, 츠지 나오시로 등 일본의 인도학 불교학연구의 기초를 다진 학자들의 이름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면 이 학회에서의 현대적 기술도입과 문제 대처를 소개한다.
먼저 <대정신수대장경> 데이터베이스(http://www.l.u-tokyo.ac.jp/~sat/) 사업이다. 이것은 타카쿠스 준지로 등이 감수한 <대정신수대장경> 전100권 가운데 텍스트 부분에 해당하는 제1권부터 제85권까지의 텍스트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하여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84년 당시의 이사장이었던 히라카와 아키라를 중심으로 출발한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은 200명에 이르는 스탭진들로 구성돼 진행되어 올해 완성되었다. 이것은 일본 찬술부를 포함한 85권을 한자외자, 범자 각각 근1만자를 작성하여 보충한 세계 유일의 대장경 테이터베이스이자 인문과학분야에 있어서 일본 최대의 텍스트 데이터베이스이기도 하다.
이 사업은 컴퓨터 보급이 일반화된 작금 단순히 연구의 편리성을 추구한 뿐만 아니라 “인쇄술을 넘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전달과 표현의 기술’에 불교의 지혜의 보고(寶庫)를 의탁하여 선인들의 불교전승의 노력을 차세대에 향해서 표현하고 수정한 사업”(시모다 마사히로 도쿄대 교수, 아래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데이터베이스 사업이 기획된 1984년, 마찬가지로 히라카와 아키라가 중심이 되어 학술 잡지 <인도학불교학연구>의 제1호의 키워드가 실험적으로 입력되었다.
이것이 현재 수록 논문의 증가와 더불어 데이터 수 5만6000건을 넘기고 있는 인도학불교학논문 데이터베이스(http://www.inbuds.net/)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일본에 있어서의 인도학불교학관련 논문을 총망라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이로서 일본에 있어서의 인도학 불교학의 동향 전체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한편 이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연구에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뇌사.장기이식문제, 생명윤리의 문제, 환경문제 등은 모두 아직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세계 공통의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시험적으로 ‘장기이식’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현재 43건의 데이터가 검출된다. 이 문제의 논문 키워드로서의 첫 검색은 1988년이며, 그 10년 후 일본에서 ‘장기이식법’이 제정된 1998년 이래 거론되는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이식을 신체 그 자체의 집착하지 않는 불교의 ‘보시’나 ‘사신(捨身)’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입장도 있는 한편 타인의 장기를 기증받아서까지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불교논리는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도 또한 사실이다. 즉 장기이식 긍정론과 함께 부정론의 불교교의적인 논거도 표리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간단히 그 해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인 까닭에 과학 기술의 진보와는 별도의 차원에서 불교학의 확고한 이론적 토대 확립이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다.
문헌 통해 불교진수 접하고
시대에 필요한 사생관 모색
4. 불교학 연구의 미래
불교학 연구는 반드시 출가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또한 불교학자를 위한 것만도 아니다. 불교문헌에 관한 학문상의 객관적 태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너무 전문적인 것이 되어 버리면 점점 세분화되기 십상인 것도 그 단점의 하나이다. 하지만 문헌연구에 의해서 불교의 진수가 널리 이해되고 또한 그로부터 합리적인 견해를 넘어선 불교적 초월사상을 이해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이제까지의 사상의 기반을 되돌아봄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인생관이나 사생관에 관한 확실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고 또한 이를 통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롭고 참신한 인생관이나 사생관이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인도에서 태생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깊은 철학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고난한 사람을 구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상이었을 것이다.
불교학에 있어서 컴퓨터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불교학자의 한 사람인 시모다 마사히로 교수는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신(神)과 불(佛)을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세속을 넘어 나온 세계로 되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세간을 떠받치는 것은 세간이 아니다.”
스노다 레이코 / 일본 도쿄대 인도학 불교학 데이터베이스센터 간사
[출처 : 불교신문]
☞'불교사 명장면' 목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