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 남편 , 쿨한 아내 , 노부부 선교사가 되다 청석 김의식 70대 중반의 노부부가 킬링필드의 탄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95%가 불교의 나라 캄보디아에서 이나라 유일의 기독 종합대학교인 시하누크빌 라이프 (Life )대학교에 시니어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나는 경영학교수로서 , 아내는 영문과 교수역할을 하는 교육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강의실에 함께 들어가 상호교차하여 튜터(Tutor)역할을 하고 있으니 지구상에 부부가 한 강좌를 같이 협력하여 진행하는 경우를 과연 찾아 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부부의 전문인 선교사 파송은 결혼하기 전부터 선교사가 되겠다고 꿈꾼지 45년만의 일이다. 각자가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그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 기도하며 달려 왔다.
아내의 모든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여자였다. 무엇보다 아내는 남의 어려움을 보고는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쩌면 타고난 성품에 영어권 사람들과 생활하다보니 그들의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실천하는 것은 나로서는 경이였다. 아내는 지금도 노블레스 오빌리제(noblesse oblige)의 삶을 꿈꾼다. 아내는 자신의 간증을 통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원천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세계 기독교 선명회 번역부에서 일하는 동안(1971-1978, 8년) 노년의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본 것이 저의 삶에 각인 되었습니다. 그 분들의 아름다운 노블레스 오빌리제의 삶이 저를 시니어 선교사로 부른 큰 동기가 된바, 그들의 삶을 일부 소개 하겠습니다. 한 방송 설교 목사님은 은퇴하고 순회 선교사로 전 세계의 가난한 지역의 아동들에게 성경과 복음성가를 가르치시고 있고, 한국 고아들을 위해 털옷을 만들고 털 양말을 짜느라 하루 두 세시간 자며 십여 년간 수천 톤을 보내주신 로즈 할머니 부부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구로 TV어린이 인터뷰 프로로 유명해졌습니다. Art Linkletter 부부는 아무 부족함 없는 그들에게 귀한 딸이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게 되자 레이건 행정부에 들어가 마약 퇴치 본부에서 왕성하게 일하고 전 세계의 빈곤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활동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명회 합창단의 통역으로 카나다와 미국 버뮤다(Bermuda)로 순회 공연 중에는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For the Master's Use" 사용해 달라며 가난한 한국을 위해 기쁨으로 헌금하는 것을 보았으며,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의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 주님의 사랑 이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It only takes a spark to get a fire going and soon all those around can warm up to its glowing. That's how it is with God's love, once you've experienced it. You spread His love to everyone, you want to pass it on....)"라는 아름다운 복음성가를 작사 작곡한 Kurt Kaise씨는 선명회 합창단 어린이 들에게 열정적으로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선명회 홍보부장 Sales 왕, Bob아이들과 6개월씩 여행하면서 큰 형님 처럼 아이들을 챙겨 주던 엔지니어 Steve씨는 무대에서 한국 상황을 소개하며, 아이들의 영어 성경암송을 소개 하시던 두 미국 목사님은 Sponsor하는 아동 에게 flute을 사 주시며 레슨비까지 챙겨 주시든 분, 열차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여아를 입양하여 아름답게 키우신 분, 두 눈이 안 보이는 소년을 입양하여 주님 앞에 영적 소경이 되지 않도록 늘 경성하며 산다는 분등 을 만나며 복음의 확신 및 그리스도인의 삶을 직접 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내는 일찍부터 선명회 고아나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어려운 사람을 연결해 주고 장학금 지원을 연결해 주는 등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 덕분에 나는 출소한 아이들, 가정을 이탈한 아이들을 2-3명을 늘 데리고 살았다. 남에게 베푼다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는 아내를 보면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어느 날은 길 가다가 부상을 당해 신음하고 있는 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만 아내는 그 개를 치마에 꽁꽁 싸가지고 동물병원에 입원시켜서 주인 찾아 돌려 주었다 한다. 아내는 그런 성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스운 예가 있지만 공원같은 곳을 오랜 만에 아내와 같이 산책하다보면 길고양이와 강아지들은 아내를 졸졸 따라오지만 나에게는 도망간다. 우리 옥상에 집 잃어 버린 개나 고양이가 5마리까지 있었다. .
또 한 번은 자다가 일어나 보니 밤12시가 되었는데 아내가 없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핸드폰을 했더니 같은 아파트 바로 옆집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는데 아내와 평소 자주 이야기 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은 이분 증상이 너무 심해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해 우울증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그 분과 함께 하며 밤새 위로해 주고 안정시켜 주고 있었다. 어느 해 인가 파리로 나가 있는 한 교인으로부터 밤 늦게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권사님이 큰 일 앞에 가장 먼저 알려준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남의 아픔이나 상처를 자신의 것만큼 함께 아파해 주고 다듬어 주는 아내의 심성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시 고백하건데 나는 이런 아내에게 평생을 빵점 남편으로 살아 왔다. 나도 한 때는 아내가 맛있게 끓여준 된장국을 먹고 싶었고 아내와 함께 나갈 때에는 아내가 좀 더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나가서 누군가에게 내 와이프를 소개하고픈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불에 올려놓은 된장국이 타더라도 그것도 모른 체 영어 설교 청취에 몰두하는 아내, 집안 애경사에 가도 쉽게 지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조용한 곳에서 영어 설교(일용할양식)를 읽고 있는 아내, 남편이 은행원이어서인지 집안 경제는 온통 남편에게 맡기고 그 흔한 자기 통장, 카드 하나 가지지 못한 아내,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하였지만 이런 아내에게 내가 감사할 것은 아내는 자신의 일 외에는 쿨(Cool)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교인이나 지인중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명예가 있고 하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부담감도 주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아내는 매우 자유스럽다. 초두에 말한 아내에 대한 안심이라는 의미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동안 결혼기념일, 아내 생일을 제대로 챙겨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쩌면 나는 요즘 세태에 비해 간 큰 남자로 만인의 여인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아내의 성품이 그렇다 하더라도 미안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결국 아내와 나는 서로를 ‘푸른 초장에 방목하는 사이다’ 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서로의 영역을 가지고 산다는 의미다. 서로 간섭 안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 왔다는 의미다. 아내는 나와 지금은 시니어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남편이 선교사로 파송받은 까닭으로 그냥 따라온 선교사가 아니라 확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가진 전문인 선교사다 . 현지어가 아니라면 영어로 말하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다면 의소통이 될 수가 없다.
이런 아내에게 내가 빵점 남편이라는 것은 아내를 위해 별로 해준 것이 없이 평생을 살은 까닭이리라.
이런 아내가 나는 좋다 아니 아내에게 빵점 남편이 된 나의 과거에 다시 한번 깊은 회한을 가진다. 어떤분은 선교지에서 벌써 철수 할 나이에 그것도 평소 골다공증과 무릎관절염이 있는 몸조차 건강하지 못한 부인을 선교지로 내몰았다고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도 있다. 한편 우리 부부 선교사를 보고 노년에 가장 보람되고 금슬 좋은 부부라고 부러워 하는 분도 있다. 그러면서 아직도 100세 시대.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를 만회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되뇌이면서 나보다 아내가 선교지에서 더 행복해 하는 모습에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