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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종의 노래
이사야 50:4~11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 말씀은 이사야서에서 세 번째로 나오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입니다. 첫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는 이사야서 42장 1절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시작하는 단락이요 두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는 이사야 49장 1절에서 시작된 단락으로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신 그의 화살 통에 감추시며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고 하신 대목입니다. 이제 세 번째로 등장하고 있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50장 4절로부터 11절에 기록된 노래입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실 신실한 그의 종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과 교감하시면서 그의 사명을 감당해갔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를 신뢰하는 자들과 그를 대적하는 자들의 상반된 운명에 대하여 예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 말씀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비밀스런 교제와 우리 주님의 말씀 사역에 대하여 깨닫고,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며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것인지,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지켜가야 할 것인지를 배우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 노래의 처음 부분은 여호와의 종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배움을 통하여 학자의 사명을 감당해가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과 5절 전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오늘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종의 사역은 곤고한 자를 도와주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종은 그의 혀를 사용하여 곤고한 자 곧 죄짐을 지고 수고하는 자들과 삶의 무게에 시달리는 뒤처진 자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며 하나님의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의 사역은 가장 기본적인 사역이 곧 하나님의 말씀 사역인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 다른 사역도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 구제도 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사역도 하고, 상담학을 배워서 심리 치유도 하는 사역도 할 수 있습니다. 교육 사역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역, 가장 본질적인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여 죄에 눌린 자, 길 잃은 자를 돌이켜 진리로 인도하며 그들을 잘 양육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길러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때에 사도들이 구제 사역에 힘쓰다가 교회에 분쟁이 생겼을 때에 그들이 상의한 후에 결정한 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사역에 전무하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종들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사역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병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았지만 그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그의 가르침이 진실성을 입증하는 표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의 사역을 위하여 늘 힘써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전도하셨고 제자들도 말씀으로 양육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의 수많은 길 잃은 양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 사역자들이라는 점을 기억합시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로 곤핍한 자를 도와주는 지혜롭고 능력있는 말씀 사역을 하셨는데, 그 일을 가능하게 한 비결을 이 구절에서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학자의 혀, 능력 있는 말씀 사역의 비결은 바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알아듣는 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주님께서 아침마다 나아가셔서 하나님께 기도하곤 하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 그의 귀를 열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늘 아침마다 말씀해주셨습니다. 원문 그대로 말하면, ‘아침에 그리고 아침에’ 혹은 ‘새벽에 그리고 새벽에’ 그리스도의 귀를 열어서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게 하여 깨우치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곤고한 자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와 격려와 혹은 대적하는 자들에게 변증의 말씀을 선포하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말씀 사역의 근본적인 비결은 그가 귀가 열려서 하나님 말씀을 아침마다 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그 능력의 원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 귀가 있어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없이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만히 보면 들은 것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스승과 지혜자들의 말, 세상을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의 말들을 듣고서 그것을 소화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곤 합니다. 인간의 지식도 그렇게 듣는 것이 말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선행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귀가 열려 잘 들어야 그 들은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고 주의 형제들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들은 바가 없는데도 계속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힘쓴다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인간의 말이 섞이게 되고 거짓 영의 속임수의 말도 섞이게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 중에 모두가 처음부터 거짓 선지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계속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 자가 이제 들은 바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차분히 기다림없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영께서 주시는 영적 감동과 영적 조명을 받음이 없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행하다 보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받은 것 없이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사람의 말을 전하거나 거짓 영의 말을 전하게 되어 결국 거짓 선지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가는 우리의 사명 감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잘 듣기 위하여 성경을 펴서 듣는 마음으로 꾸준히 읽어가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늘 성실하게, 정성스럽게 힘써야 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도 있고 정보들도 있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감동을 따라 성경과 관련된 경건한 학자들의 가르침들을 찾아 연구하며 조용히 우리 마음을 주님 곁에 머물면서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데 힘써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내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을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4절에 ‘깨우치시되’라는 히브리어 ‘우르’라는 말을 찾아보니, “자극하다, 깨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자극하며 깨우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영적인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듣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기 위하여 마음을 조용히 갖기를 힘쓰고 분요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시간을 충분히 내야 합니다. 쫓기듯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에 대한 갈급한 마음을 갖고 시간을 들이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는 어느 때인가 조용히 귀가 열리고 조금씩 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시간이 지나 우리 입도 열리게 될 것이요 우리 혀가 열려 학자같이 곤고한 자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격려와 바르게 함의 말씀을 우리를 통하여 전하게 되는 혀의 사역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가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은혜가 임할 때 여호와의 종에게 어떤 은혜가 주어질까요? 5절 후반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에 주어지는 큰 은혜는 견고한 사명감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려는 굳은 각오와 결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며 날마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햇살이 비추어 중천에 뜰 때까지 제자들이 찾아올 때까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곤 하셨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과 승천과 잃어버린 양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작정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구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구원의 열망과 포부를 공감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무거운 사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성경을 통하여 영적인 교제를 나누게 되는 자는 하나님께 절대 순종을 하게 됩니다. 귀로 깨우치면 이어지는 것이 듣는 것입니다. 4절에 ‘알아듣다’라는 히브리어 ‘샤마’는 ‘순종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게 되면 순종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늘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시던지 거역하지 않으며, 어떤 난관이 주어질지라도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결코 물러서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주님은 이렇게 행하셨지만, 모든 여호와의 종들, 구약의 선지자들이 주님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보면 많은 갈등도 있었고 망설임도 있었고 하나님께 항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2장에 보면,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왜 악한 자가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형통하느냐고 따집니다. 당시 그가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할 때 자기를 핍박하는 자가 형통하고 권세가 커지는 것을 보고 자기는 괴로운 일을 당하는 일이 더 극심해짐을 보면서 갈등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믿지 말라”(예레미야 12:5~6)
고 하면서 오히려 그의 심약한 자세를 책망하여 잠잠하게 만들고 사명의 길을 계속 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또 시간이 흐르면 예레미야는 또 다시 하나님께 또 따지곤 했습니다. 예레미야 15장에 보면,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나의 고통이 계속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예레미야 15:18)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속았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사역하면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고 사역의 역사가 팍팍 일어날 줄 알았으나 그것이 아닌 것을 발견하여 낙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건지니라”(렘 15:19~21)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패역한 백성과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포하는 말씀을 누구러뜨리지 말고 주는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지자의 말씀으로 돌아와야지, 선지자가 그들에게 비위 맞추는 말, 세상의 섞은 말을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자리를 굳게 지킬 때 하나님의 입이 될 것이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세상의 비위를 맞추고 하나님의 기준을 낮추어 세상에 타협하는 말을 하면 그는 하나님의 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엄중하게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옥신각신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과 하나님과 관계에서 있는 것이 비단 예레미야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일이 적지 않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 흘리면서 자기를 치시면서 자기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자기 부정의 싸움을 싸우셨지 않습니까? 우리도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길에는 많은 흔들림이 있을 것입니다. 뒤로 물러감에 대한 유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주님은 아십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인간적인 결심과 불안한 내면 사이에서 흔들리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이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베드로만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주신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려고 결심하곤 하지만 자주 넘어집니다. 뒤로 물러가려는 유혹 앞에서 자주 흔들리곤 합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다 알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늘 고백하면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계속 구합시다. 지금은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따라가며 주님을 섬기는 종의 모습에 많은 부족함이 있으나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어 점점 달라지게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점점 온전히 주님 가까이 주님을 따라가며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께서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에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어떤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하나님 말씀 사역으로 인하여 핍박과 시련이 다가올 것을 이 본문 말씀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씀 사역으로 인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여호와의 종은 흔들림없이 그 말씀 사역을 계속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6절로부터 9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귀로 들은 그의 종은 말씀 사역을 인하여 핍박을 받습니다. 6절에서 보듯이 등에 매를 맞고 수염이 뽑히고 침 뱉음을 당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이 훗날 당한 그 일이 이미 이렇게 칠백년 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67,68 말씀에 보면, 대제사장 뜰에서 주님은 이렇게 고난을 당합니다.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며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런 일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수치와 모욕과 고난을 당했어도 의연했습니다. 대제사장 앞에서나 빌라도 총독 앞에서도 얼굴이 평온했습니다. 자기를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편에 서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명의 길을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대적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말씀으로 인한 핍박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영광으로 압시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만날 때에 속상해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의연합시다. 우리의 의는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인정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니 사람이 우리를 정죄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비록 고난을 당할지라도 결국 주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실 날이 머잖아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적하고 해치고 정죄한 자들은 그 결과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9절 후반절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5:12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가 활동할 당시 북 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릴 때인데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영토적으로 광대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죄악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 시대에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좀처럼 먹어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좀이 옷을 먹어갈 때에 처음에는 멀쩡하지만 점점 속으로 파먹어가서 가을에 멀쩡했던 옷이 봄이 되어 옷장에서 꺼내 입으려고 하면 그 속에 있던 옷감들이 구멍이 숭숭 나서 못 입는 옷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좀처럼 나라와 가문이나 개인의 영광과 건강과 행복을 좀 먹어가면 처음에는 멀쩡하지만 결국 완전히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칼로 목을 베고 예수님까지 조롱하였던 헤롯 안디바도 처음에는 멀쩡한 듯 싶었지만 결국은 그의 조카 헤로디아의 남동생 헤롯 아그립바 1세와 갈등 끝에 로마 황제로부터 지위가 박탈되어 프랑스 남부 리용으로 귀양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난 뒤에 몇 년 안되는 시점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헤롯 아그립바 1세 역시 잠시 헤롯 안디바의 영토까지 다스리는 권세를 누렸으나 사도 야고보를 죽인 후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드는 악을 행하였다가 실패한 후에 얼마 못 있어 배에 벌레가 생겨 고통 중에 죽는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모두 이처럼 옷처럼 해어지고 좀에게 먹히듯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당장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교회와 주의 백성들과 주의 종들을 해치려는 자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완전히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들은 다투는 자가 일어나고 정죄하며 대적하는 자가 생겨나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고 위하시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10절로부터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 있는 곳에 누우리라”
이 마지막 말씀을 하는 자가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이신지, 아니면 선지자 이사야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일종의 결론적 권면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보면 진정한 신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예표인 선지자들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현실은 흑암입니다. 캄캄하고 답답하며 대적자들에게 고통을 겪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캄캄하고 아무런 소망의 빛이 없는 중에도 귀가 열려 하나님께 들은 바 말씀을 붙들고 그 흑암 중에 하나님과 한발 한발 믿음으로 동행해가는 삶이 신자의 삶입니다. 우리들은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어둠의 위기가 오면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꾀와 술수를 의지하며 살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을 사용하여 자기 앞길을 밝힐 불과 횃불을 피웁니다. 그리하여 그 불꽃을 가지고 사방을 밝히면서 앞길을 한발 한발 담대히 나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이 피운 횃불 가운데에서 그들은 망하고 맙니다. 자기의 지혜와 술수의 함정에 빠져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를 믿는 자들은 이렇게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호와의 종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힘씁시다. 영적인 귀가 열리도록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기다리는 자가 됩시다.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합시다. 그리할진대 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입이 열리게 될 것이며 우리는 곤핍한 자들을 돕는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들은 말씀이 있으면 우리는 세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도 의연할 것입니다. 주님이 의롭다 하시며 주님이 위하시니 우리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한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앞에도 캄캄한 흑암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흑암과 빛이 일반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 눈에는 안 보여도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한발 한발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어둠 속으로 발을 대디딥시다. 그리할진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참된 평화와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