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달러고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 원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한은) 사상 최초의 '빅스텝'(정책금리 0.5% 인상)에도 불구하고 원저-달러고가 진행돼 한국 경제에 빨간 신호가 켜졌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6%대에 달했고 정책금리는 2%대까지 끌어올린 가운데 원저-달러고까지 겹쳐 경기 침체가 깊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한국 원은 대미 달러로 전날 대비 14원 하락, 1달러=1326.1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12일(1달러=1312.1원)의 최저가를 경신했다. 2009년 4월 29일(1달러=1340.7원) 이후 13년 2개월 만의 원저-달러고 수준이다. 이날 1달러=1318원에 거래가 시작됐고 거래시간 중에는 1달러=1326.7원까지 하락했다. DB금융투자 문홍철 연구원은 “경기 침체가 들어가는 국면이지만 1달러=1320원대까지 원저-달러고가 진행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부동산 시장 폭락 등 최악의 상황이 아직도 남아 있는 만큼 1달러=1400원대까지 원저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외환시장은 미국 생산자 물가지수(PPI)에 반응했다. 미노동성은 14일(현지시간) 6월 PPI가 전년 동월 대비 11.3%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과거 최고치가 된 3월(11.6%)에 가까운 수치. 소비자 물가의 선행 지표 PPI가 급등하고 미국의 긴축 시계가 더욱 빨라진다는 인식이 퍼졌다. 26, 27일(현지시간)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 자이언트스텝(정책금리 0.75% 인상), 심지어 울트라스텝(정책금리 1% 인상)을 밟는다는 견해도 나왔다.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가운데 유로·중국 위안 등 주요국의 통화가 일제히 하락하고 있는 것도 악재다. 유로의 경우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에 의한 유럽 경기 침체 우려, 이탈리아 드라기 총리 사임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 등이 겹쳐 하락하고 있다. 1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1유로=1.0018달러가 됐고 2002년 12월 이후 유로저-달러고가 되었다. 거래시간 중에는 한때 1유로=0.9955달러로 20년 만에 1유로=1달러가 되었다. 일본엔의 경우 일본 정부가 주요국의 긴축기조 중에서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엔저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은행의 민경원 연구원은 “유로나 일본엔 등 주요국 통화가 하락해 강한 달러에 대한 견제가 사라졌다”며 “이에 따른 역외 롱플레이(달러 매입) 유입으로 원저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라고 말했다.
시장은 원저-달러고가 물가고를 더욱 자극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원저가 되면 수입가격이 상승한다. 한은에 따르면 6월 수입물가지수는 한국 원 기준으로 전월 대비 0.5% 상승해 2개월 연속 오름세가 됐다. 이는 시차를 두고 생산자 물가를 끌어올려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은도 지난달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최근 물가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원저-달러고가 진행돼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강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문제는 저-달러고가 잠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점이다.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외에 우크라이나 정세 장기화로 인한 유로 경기 침체, 신형 코로나 재부상으로 인한 중국 도시 재봉쇄 우려 등이 겹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와 한은이 한미통화 스왑 재개와 같은 적극적인 환율 대책을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통화 당국의 입선 개입과 미세 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일단 통화 스왑이 논의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옐렌 미 재무장관이 19일 방한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은 총재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창연 총재도 13일 “추경호 경제 부총리와 옐렌 재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한미통화 스왑의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