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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되지 못한 부부
성경본문: 에스더 1: 1-22
1. 이 일은 아하수에로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 이십 칠도를 치리하는 왕이라
2. 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3. 위에 있은지 삼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4. 왕이 여러 날 곧 일백 팔십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5. 이 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일 동안 잔치를 베풀쌔
6.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7. 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왕의 풍부한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 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0. 제 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 붙는듯하더라
13.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15.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16. 므무간이 왕과 방백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 할뿐 아니라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17. 아하수에로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19.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찐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21. 왕과 방백들이 그 말을 선히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 각 도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대로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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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문화 인류학자인 에드가 쉐인이라고 하는 분은 어느 나라나 민족의 폭넓은 문화 현상을 한꺼번에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은 바로 "조사대상이 되는 곳의 문화를 수직적으로 절개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문화 이해 방법은 마치 돼지의 삽겹살을 보는 것 같다 해서 그분의 문화 이해 방법을 "문화의 삽겹살"이라 하기도 합니다.
어느 문화든지 그 맨 위에는 표피에 해당하는 층이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서 인공물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인공물이란 무엇인가 하면 눈에 보이는 자연과 그 위에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시설을 말합니다. 넓은 도로와 많은 빌딩, 그리고 공장들과 그리고 자동차들, 이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 사회의 인공물로서 문화의 표층에 해당합니다. 미국의 뉴욕과 중국의 베이징! 이 두 도시는 사진만 보아도 다른 나라요, 다른 문화입니다. 이렇게 겉으로 구별되는 것이 그 문화의 표층입니다.
두 번째 층은 비계에 해당되는 부분으로서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의식적 가치 체계 속에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그들의 교육수준은 어느 정도고 예절과 또 질서 의식은 어느 정도인지 또 법의 개념은 어떠한 것인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사고 구조, 그것이 바로 문화의 두 번째 층이 됩니다. 마지막 속살에 해당하는 문화층은 무의식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현실 속에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한 마디로 가정을 들여다보면 그 문화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그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나라를 놓고 한 번 생각을 해봅시다.
선진국들! 그들이 세워놓은 인공물이 얼마나 화려합니까?
경제적인 부요를 나타내는 수많은 빌딩들과 깨끗한 환경들이 있습니다. 한 꺼풀 더 그들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시민 의식과 질서 수준과 책임감과 교양, 이러한 정신적 측면도 상당합니다.
이제 한 층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그들의 가정으로 들어가 보면, 겉보기와는 다르게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세계가 어둡다고 하는 것은 겉에 세워 놓은 인공물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비계층의 의식 수준이 어둡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화의 심층, 그 깊은 곳에서 가정이 깨어지고 도덕이 파괴되고 있는데 이것을 회복할 힘이 우리 인간에게는 없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가정을 회복시켜보려 하고, 이혼율을 줄여보려 애를 씁니다만 오히려 증가일로에 있습니다. 우리 한국만 해도 다들 이렇게 사이 좋게 사는 것 같아도 사회적인 지탄만 없다면 이혼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부의 ⅓쯤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가정 속에는 굉장히 많다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차를 굴리고 있는지가 내 문화의 표층이요, 나의 교육정도와 사고 방식이 내 문화의 비계층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내 모습은 가정으로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안방에서의 삶, 침실에서의 모습! 이것이 진실한 내 문화의 현주소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 생각보다 문제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가정마다 큰 문제 속에서 시달리고 있는가? 이것은 온 인류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바로 "결혼의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결혼을 왜 하셨습니까? 나이가 찼으니까? 혼자 살기 힘드니까? 옆에서 강요하니까? 조금 더 대접받고 편히 살려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결혼 목적입니다.
로랜스 크랩이라고 하는 분은 많은 사람을 만나서 상담하고 조사 연구하는 가운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확한 결혼의 목적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거의 없었다!"
결혼의 목적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이요.
이것을 "상호헌신" 이라 합니다.
누가 가장 그 사람을 잘 섬길 수 있는가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잘 섬깁니다. 언제 가장 행복한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섬김 받을 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를 내가 가장 잘 섬길 수 있으므로 섬김받는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그는 마음의 모든 상처를 씻고 가장 건전한 인간, 바른 인간으로 성장합니다. 소위 자기 존재가치가 극대화되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가치가 극대화 된 가운데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감당하고 그것을 통하여 내가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결혼의 목적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나는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이것이 결혼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결혼의 목적을 생각해보셨어요?
한 번 들어 본 것 같기는 하지요? 옛날에 한번 좋아 죽었을 때, 그 때 한번 미친 척하고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 고백 한 번했는데..... 사실은 그 고백이 진정한 결혼의 목적인 것입니다. 지금은 다 변질되어서 나 알아달라고 주장하는 관계로 타락했지만!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을 섬긴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더 커지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더 떨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한 인간의 가치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안전과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다만 부부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미 내려 주신 자기 가치와 중요성을 삶 속에서 확인함으로써 자기의 존재 가치를 더욱 누리고 그리스도안에서 받은 나의 부요함을 즐기도록 해 주는 것이 부부 사랑의 목적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저분을 섬겨야 하고 그분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께서 하루는 주일날 설교를 잘 마치시고 사모님께 물어보셨답니다.
"여보, 오늘 내 설교 어떠했습니까?"
사모님 하시는 말씀, "아니, 당신 설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내 칭찬이 뭐가 필요합니까?"
그때 조목사님의 대답이 무엇인줄 아세요?
"다른 사람의 칭찬은 낡은 옷과 같아서 벗어버려야 하는 것이지만 당신의 칭찬은 나를 교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다른 모든 사람의 칭찬은 필요 없지만, 나와 한 몸 된 당신의 따뜻한 어루만짐이 내겐 필요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강한 사람일지라도 한 몸 된 배우자의 어루만짐과 격려를 통해서 근본적인 자기 가치를 느끼고 새 힘을 얻도록 인간은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느 남자 분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내와 정말로 사이좋게 한번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잘 안 됩니다." 퇴근할 때는 "오늘 들어가서 정말로 잘 해주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들어오지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말을 받는 아내의 태도가 부드럽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에이 그만두자!" 이렇게 되는데.... 이게 제 잘못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떠한 전제를 가지고 말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두 가지 전제를 가지고 말할 때 화를 냅니다.
☛첫째는 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은 분노합니다.
왜냐하면 인격적 대접을 못 받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예를 들면 남편이 아내를 보고 "당신 오늘 밤 참 예쁜데!"하고 안아줬다고 합시다. 그러면 안겨야 할텐데 "필요 없어요!"하고 탁 뿌리칩니다. 그러면 남편은 "내가 예쁘다고 말한 것이 잘못이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 아니지요. 할말 했지요. 문제는 그 "사랑한다, 예쁘다"는 말속에 들어 있는 전제가 뭐냐는 겁니다. 여자가 생각나서 안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아내를 높여서 섬겨주려고 했는지... 잘 보면 자기 욕심 채우려고 한 말이 많지요. 그러므로 말은 그럴 듯하지만 듣는 사람은 금방 아는 겁니다. "이 양반이 나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지. 욕심 생겨서 하는 말이지." 그렇게 듣는 것입니다. 왜? 자기 욕구충족을 위하여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사람은 분노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말할 때 분노합니다.
엄마가 아이들 꾸중할 수도 있지요. 막 꾸중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신문 보다가 "이봐, 그러지 말어. 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 부드럽게 말하지" 이런 말 흔히 하지요? 이런 말을 들을 때 부인은 화를 냅니다. "당신까지 왜 그래요?" 아이에게 퍼붓던 화를 남편에게 돌립니다. 그러면 남편은 황당해 합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했는데... 못할 말했나? 애들에게 부드럽게 말하라는데... 그게 뭐가 잘못이야?" 그렇게 생각합니다. 잘못 아니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내의 실수만 보았지 아내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이런 말들은 아내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즉 섬기는 말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들으면서 화를 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섬기는 말을 하세요. 결국 상대방을 향한 배려나 섬김의 의식이 없는 "나" 중심적인 말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코팅이 되어 나가도 듣는 사람은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걸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내가 뭐가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또한 저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는 그 사람의 의무는 압니다만 내가 지금 저 사람을 위하여 섬겨줘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의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속으로 다 자기 위한 말이요, 섬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조작된 말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분노하는 것입니다. 분노하다 보니까 상처받지 않으려고 거리감을 두고 말하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통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럼 진정한 해결방법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내가 저분을 섬겨야 한다" 이 의식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그것이 문제해결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것이 마음대로 안됩니까? 그러면 기도하세요. "하나님, 저분이 지금 갈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걸 알게 해주시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채워줄 수 있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라고 하는 왕이 잔치를 벌였습니다.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는 큰 잔치를 벌였는데 왜 이렇게 큰 잔치를 했는가하면 자기 아버지 왕 다리우스가 그리스 연합군과 전쟁을 했는데 졌어요. 그 전쟁이 마라톤전투입니다.
이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아서 아버지의 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헬라 연합군과 대접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켜주고 온 지방에 흩어져 있는 유지들을 다 수도로 불러서 충성을 맹세하고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6개월이 지나면서 왕의 의도대로 군대의 사기는 올라갔고 온 백성은 왕 앞에서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기분 좋아진 왕이 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아! 예쁜 왕비, 한 번 나와서 얼굴 좀 보이시오." 그랬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왕비가 안 나왔습니다.
다시 가서 오라고 했는데 또 안 왔어요. 이것을 보고 왕의 마음에 분노가 불일 듯 했다 그랬습니다.
왜 안나왔을까?
남편이 아내 예쁜 것 자랑하려고 하는데 안 나오는 여자가 있나?
왜 그랬을까?
기에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나오라 했나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말이야 그럴 듯하지요. "당신 예쁜 모습, 내 신하들 앞에서 좀 보여주시오."
말은 왕비를 추켜세우는 것 같았지만 아닙니다!
왕비의 아름다움을 자랑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은 왕 본인이요.
지금 늦은 밤에 면류관 정제하고 나오라 그것이 빨리 됩니까? 머리도 만져야지 준비도 해야지 성급하게 오란다고 와집니까? 이런 요구! 말은 좋지만은 사실은 왕비의 인격을 모독하는 겁니다. 그래서 꽁해 가지고 안 왔다는 겁니다.
자 이제 왕을 봅시다.
만조백관 앞에서 지금 자기의 권위가 가장 높아졌습니다.
이제 왕비까지 예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므로써 자기 권위를 가장 높이려 했는데 이 여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분노하게 된 왕이 신하에게 묻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하가 하는 말이 "왕이여! 이것은 왕비님께서 왕 개인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고 이 나라 모든 남자에게 잘못한 겁니다. 이 소문 퍼져 보세요. 이 나라 온 여자들이 다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알텐데 이거 안 됩니다."
19절을 봉독합시다.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진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 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폐위 시켜버립시다. 그리고 모든 가정의 주관자가 남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법률을 만듭시다." 이렇게 웃기는 짓을 했습니다.
대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서 가장 싫어하는 것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술버릇" 이거 싫은 것이고요, 또 하나는 "무례한 말투"라고 합니다. 배려 없이 정중하지 않게 마구 내뱉는 말, 그 말에 보통 상처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왕비도 똑같아요. 술 취한 왕이 함부로 말한 그 말에 마음이 상했어요. 왕으로 생각하자면 "나는 저 예쁜 것 와서 자랑하려고 했는데 내 말을 안 듣는단 말이야. 이럴 수가 있나?" 그래 가지고 분노했고 남자 우선이라고 하는 법을 만들고 소위 과잉조치를 취했어요. 부드럽게 말하지 않고 술김에 무례하게 말한 것, 이것이 남자의 잘못입니다.
이제 여자 쪽으로 가봅시다.
그럼 여자는 잘못이 없는가? 남편의 말이 말 같지 않았겠지요. 저 양반 이 밤에 지금 무슨 소리야? 내가 종인가 오라 가라 하게! 그것도 술 취한 신하들 앞에 왕비가 면류관 쓰고 나가면 "우리 왕비님 얼마나 예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 볼텐데 내가 지금 어떻게 가?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모욕감을 느낀 것입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해서 꽁해 가지고 말을 안 듣는 것, 똑같잖아요?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지금이 어느 때 입니까? 왕의 위엄이 가장 높아져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왕이 좀 서운하게 했어요 그러나 일단 가야지요. 가서 얼굴을 보이고 따져도 나중에 따져야 될 거 아닙니까? 자기 자존심만 생각하다가 남편 자존심 무너지는 것은 전혀 생각은 안 했어요. 남편 자존심 완전히 뭉개 버렸습니다. 그리고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자고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연구하라고 베드로서에서 말씀했습니다.
남자는 어떤 사람들이냐?
제가 가르쳐 드리지요.
남자는 아주 단순합니다. 일단 남자 앞에 "네!"하면 남자는 마음이 다 풀어집니다. 그저 하라는 대로 다 하세요. 그것이 남자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남자는 높여 주면 다 풀어져요. 심리적으로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더 용서를 잘 합니다. 학문적으로 증명됩니다. 남자 위에 서는 여자는 절대로 사랑 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겉으로는 "당신 알아서 다해." 그러지만 절대로 마음속으로 따뜻하게 사랑 안 해줍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남자란 자기 권위가 확실하게 서야만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냐고 묻지 마세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어요. 반대로 여자가 무시하면 남자는 거칠어집니다.
여러분! 대부분 신앙 생활하는 것이나 또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라든가 가정에서도 남자들이 자꾸 수동적이 되어 갑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남자가 바쁘니까 시간이 없어서?
그건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더 중요한 이유가 여자한테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온 교인을 위하여 남선교회가 커피 봉사를 했어요.
어떤 남자 분이 에이프런을 두르고 커피봉사를 한 다음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날 밤 집에 가서 부인한테 자랑을 했습니다.
"여보, 오늘 내가 커피 몇 잔 탔는 줄 알아?" 그랬더니 부인이 "아니 원래 안 그런 양반이 무슨 바람 불었수?" 그랬어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남편이 일어나서 뭔가를 가방에 싸는 거예요. 들여다보니 스키를 타러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니 여보, 교회 안가고 스키 타러 가우?" 그랬더니 그 남편의 말을 들어보세요. "나... 원래 그래."그랬어요. 어떻게 말했어야 합니까?
커피 봉사하고 좋아했어요.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 남자의 마음이 원래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베풀고 섬기기를 좋아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사장이 되고 높은데 있다 보니까 그런 습관을 다 잃어버렸지요. 이제 교회 안에서 평등한 마음으로 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봉사하니까 당신 마음에 기쁨이 생긴 겁니다. 그것이 원래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그 다음 주일날 더 열심히 했을 텐데! 그 장점을 섬겨주지 못했어요. 짓밟아 버렸어요. 그 대가 그대로 받고 맙니다.
가끔 대화를 하다 보면 아내들이 남편의 신앙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을 듣습니다. "우리 집 양반, 믿음 하나도 없어요." 저는 그런 말들을 때 기분 안 좋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남편만 교회 안 다니고 온 식구가 교회 다니는 집이 있었답니다. "우리 아버지만, 우리 남편만 교회를 나오면 좋겠는데..." 그래서 온 가족이 다 아빠와 남편을 위해서 기도를 했어요. 그 기도가 응답되어서 남편이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한 6개월 지났는데 보니 처음 믿음이나 나중 믿음이나 남편이 자라지를 않고 똑같단 말이에요. 그래서 식구들이 사이에서 또 하나 걱정이 생겼어요. 이 양반 믿음이 안 자라는 거요. 그래서 남편만 잘 믿으면 우리 집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데 하고 생각을 하다가 아들이 기도를 했답니다. "우리 아버지 제발 예수 좀 잘 믿게 해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네 아빠는 성장하지 못한 내 아들이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성장은 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는 중생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 마음속에 믿음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정을 했어요. 아들이 놀라 가지고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아버지, 아버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세요.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아빠의 신앙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빠를 문제아로 만들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그랬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음날 새벽 아버지가 스스로 새벽기도를 갔다는 사실! 남편과 아빠의 신앙이 자라라고 기도는 해 놓고 자라지 못하게 그 심령을 묶어버린 겁니다. 작은 장점을 섬기고 높여줘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신앙이 잘 자라는 거예요. 새싹처럼 푸릇푸릇 올라오는 겁니다. 그러니 평가합네 하고 짓누르지 마세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들이 겉도는 것이에요. 다 겉돌잖아요? 남편에게 필요한 것이 뭐냐하면 아내의 사랑과 자식들의 존경입니다. 아내의 사랑과 자식들의 존경은 남자에게 Healing power가 있어요. 다시 말하면 퇴근할 때 "여보! 어서 오세요." "아빠!"하고 달려드는 그 반가운 분위기가 사람으로 하여금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겁니다. 모든 피곤과 스트레스를 이기게 합니다.
"그래 날 믿고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자!" 이렇게 결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이렇게 반갑게 맞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아빠 없을 때 아버지에 어떻게 말해야 되겠습니까? 아이들이 혹시라도 아빠에 대해 불평하면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지금 못 들어오시는 이유가 뭐겠느냐? 아버지는 일찍 들어오고 싶지 않겠니? 우리들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느라고 지금도 수고하고 계시니까 못 오시는거다. 너희는 아빠에게 늘 고마워해야 된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식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영상이 정확하게 그려지는 것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자기 불평을 아이들 앞에서 쏟아 놓습니다. 네 아버지는 어떻고 저떻고.... 자기 마음 그대로 표현하니까 전부다 엄마의 심복이 되었어요. 그럴수록 아버지들은 점점 겉돌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아이들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있으되 그 마음속에 아버지의 영상이 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돌려주세요. "아버지를 돌려주자!" 이것이 세계적인 운동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돌려주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느냐? 아버지를 섬겨 줘야하는 것입니다. 자식 앞에서 아버지를 말로 섬겨줌으로써 자식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찾게 하고 아버지로 하여금 힘 얻게 하고, 그럼 그 행복이 누구에게 가겠어요? 엄마에게 가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기쁘게 섬기는 것, 그리고 가장 사랑 받는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으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그 속에서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그 행복을 그를 가장 사랑하는 그 여자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몸으로 섬기고 마음으로 섬깁니다만 그 시작은 말로부터 이루어집니다.
말부터 섬기는 것으로 먼저 시작하세요. 이것이 결혼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참 가정은 생겨납니다. 이것이 성경적 원리요, 부부연합의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진정 먼저 섬김으로써 행복한 가정이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시작했지만 어느새 나만 사랑하라고 요구하다보니 그 사랑은 간데 없어지고 냉랭한 가정이 되어 분열과 다툼 속에 살아가는 이 세대 속에서 우리 수서의 가정들은 참다운 결혼의 목적을 회복함으로써 섬기는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남편도 아내도 가장 행복하게 하시고 거기서 올바른 인격이 형성되게 하시며 그 사랑을 또한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쏟음으로써 가정이 복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가정마다 상처 난 마음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섬기는 영을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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