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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못했던 강릉 해파랑길 후기 올리면서,
남은 양양 속초 고성 종착점을 향해 간다.)
대관령 터널이 뚫린 이후로 서울에서 차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 강릉이다. 그만큼 가까워진 그 곳은 일박이일로 때론 당일로도 학교선생님과 친구들, 동호회,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감상보다는 인증 사진 찍기에 더 바빴던 곳이다. 옥계해수욕장, 모래시계 정동진, 초당두부마을, 경포대, 경포호수 등 명소가 많아 곧잘 다녀오곤 했다. 당시에는 차로 목적지에 도착해 딱 내려서는 경치 좋다는 곳만 대충 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느라 시간적인 흐름 속에 연결되는 자연 풍광을 만끽할 수가 없었다. 해파랑길은 이어서 걷는 길이다. 최고의 절경지나 신비경의 장소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땅에서 쏘옥 솟아난 것이 아님을 체득할 수가 있다. 이레저레 얽히고 자연스레 여기저기의 기운을 받아 대단한 명소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가 있다.
관동팔경 명승지를 비롯해 바닷길, 해안가 마을, 들판, 오솔길, 산길, 논밭 사잇길, 굴다리길, 임도, 때로 포장도로 등을 계속 이어 걸어서 만난 강릉길은 유난히 애착이 갔다. 나는 감자 바우길과 겹쳐지는 이 길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돌아보고, 느껴지는 오감에 충실하며, 의미를 깊이 새겨보려 하였다. 이 시각 저 시각으로 사진도 다양하게 담아 보았다. 강릉은 어디를 가도 튼실하게 잘 자라 우거진 소나무 송림이 깔려 있다. 살짝 바람만 불어도 얼굴을 감싸는 솔향이 그윽하다. 온통 소나무 휴양림이고 솔숲 산책로이다. 솔바람다리를 걷는 내내 ‘솔향 강릉’ 이 진하게 느껴진다. 눈과 머리가 상그레 맑아지고, 불볕더위 찜통더위 속에서도 걸음이 시원스레 걸어진다.
7월 23일 토요일 아침 8시 어제 낮에 만났던 부산해양대 학생과 정동진역에서 만났다. 나처럼 밤새도록 시끄러운 피서객들 때문에 잠을 설친 모양이다. 얼굴에 바른 썬그림만 하얗게 반짝거리며 눈은 제대로 뜨질 못하고 있다. 나 역시 푸석거리는 얼굴인 채로 우리 둘은 웃으며 강릉길을 출발하였다. 정동진에서 안인으로 가는 해파랑길 36코스 괘방산 산길은 지난 달 고교 총동창 산악회에서 다녀온 길이다. 이번엔 해변 길을 걷고 싶었다. 학생도 산보다는 바다를 보며 걷고 싶다고 동의해 함께 해변을 걸었다. 배가 볼록한 하얀 부처님이 복을 주신다는 등명낙가사 앞에 이르러 노천 음식점에서 부꾸미와 막걸리를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학생은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꼭 있도록 살고 싶고,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두 해 전 대학 1학년 때 휴학하면서 알바로 일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서의 경험으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산티아고 도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고 한다. 알뜰한 해외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가치를 찾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이 실로 든든하고 대견스러웠다. 통일안보 공원을 지나고 안인해변에 이르러 학생은 자전거도로로, 나는 해파랑길 37코스의 정감이마을을 향해 서로 헤어져서 갔다.
혼자가 되어 잡초들이 우거진 들판길을 상당히 걸었는데도 목적지는 나오질 않는다. 분명 길을 잘못 들어선 게 틀림없다. 배낭은 더욱 무겁고 발가락들은 불이 났다. 물은 거의 다 떨어졌다. 되돌아가 다시 길을 찾기엔 너무 지쳐있었다. 따가운 햇살 속 언덕을 넘는데 ‘메이플 비치 골프클럽’ 이 눈에 띈다. 물이라도 보충해갈 양으로 땀에 얼룩진 몸을 이끌고 클럽 로비에 들어섰다. 고급스런 복장의 사람들이 일순간에 나를 쳐다본다. 화려한 치장의 고양이들이 물에 빠진 생쥐를 보는 듯한 표정들이다. 럭셔리한 클럽 분위기에 참 우스운 몰골이었겠지만, 나는 아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여기 메이플 비치 커피가 맛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어요.
향긋한 드립 커피 한 잔만 주세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에 충분히 휴식은 이루어졌다. 아이를 걸리고 안으며 초록 잔디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젋은 부부의 행복한 미소도 보았다. 정수기에서 물도 보충했다. 네이버 지도로 위치를 검색해 드디어 풍호마을에 들어섰다. 모가 상당히 많이 자랐다. 푸른 들판이 바람에 시원하다. 풍호연꽃 축제로 멀리서도 물레방아 도는 모습이 보이는 연꽃 밭에 들어섰다. 아직 연꽃들이 많이 피지 않았는데 상당수의 꽃들이 시들고 시커멓게 죽어있다. 사람들 불평의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연꽃축제라면서 연꽃밭엔 신경을 안쓰고 입구에 먹거리 장터만 대단지가 되었다고. 정자에 앉아 쉬면서 사진 몇장을 찍고는 5km 남짓한 거릴 택시편으로 남항진 해변의 솔바람다리에 도착했다.
가위소리 리듬 타는 엿장수에게 호박엿을 사고 해변에 쏟아지는 햇살과 피서객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솔바람다리를 건넌다. 솔바람다리는 모양새도 솔숲을 연상하는 형상이지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비릿하지 않고 무척 향긋하다. 다리를 건너니 강릉항이 보이고 이어 안목항이다. 안목해변엔 커피 하우스 건물들이 3층 4층으로 해안가를 점령했다. ‘안목해변 커피거리’ 라고 한다. 바다는 어디 가고 커피집만 무성하다. 씁쓸했다. 발 벗고 바닷물 속으로 모래길을 걷는다. 송정해변, 강문해변엔 비치 파라솔들이 색색별로 화려하다. 캔버스 형상의 사진틀마다 연인들 가족들이 얼굴을 내밀고 푸른 동해 파도를 배경으로 추억을 담는다. 강문 진또배기 솟대공원, 솟대다리 하얀 반원형의 다리에선 팔장을 끼고 걷는 연인 부부들의 풍경이 그림이다. 보랏빛 순비기나무와 연분홍 메꽃들까지 낭만 해변의 한 배경을 톡톡히 해준다.
36~38코스 33km를 솔향과 해변이 좋아 다소 무리하게 걸었나보다. 어두워진 목적지 경포해변엔 벌써 불빛 조명이 난무하고 해변가 음식점마다 야단법석들이다. 성수기 토요일의 경포해변,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작은 모텔도 10만원 밑으론 아예 없고, 민박 8만원도 바로 없다고 부르는 게 값이라며 서두르라고 한다. 겨우 음식점이 붙어있는 작은 수퍼마켙 3층 작은 방 하나 6만원에 들어갔다. 아뿔싸, 음식점이 새벽까지 영업을 하니 취객들의 시끄러운 소리는 방음도 되지 않아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새벽녘까지 일분도 잘 수가 없었다. 더운 물도 나오지 않아 짜증난 채로 덩그러니 누워 있다가 다음날 새벽 4시 그냥 짐 싸들고 나왔다. 조금 더 주고 모텔에서 잘 걸, 경포해변 전의 덜 복잡한 강문해변에서 잘 걸 후회가 밀려온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검푸른 새벽 39코스 경포호수를 돈다. 강릉 경포호수는 둘레 12km에 달했으나 훼손되고 복구하면서 지금은 4.5km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삼일운동 기념탑, 영화 ‘절정’ 촬영지, 방해정, 생태습지공원, 가시연꽃, 여성친화 조각공원, 참소리박물관, 에디슨박물관, 허균 허난설원 생가, 관동팔경 하나인 경포대. 참으로 볼거리도 많고 근사한 풍경이 새삼 나를 붙잡는다. 호수 한바퀴 3시간 정도 걸으니 밤새 잠 못자고 약올랐던 기분이 훨씬 정화되었다. 시비를 보며 ‘사공의 노래’, ‘세월이 가면’ 노래도 웃어가며 불러보았다. 가끔 보는 드라마 ‘별난 가족’ 삽입곡의 노래가 떠올랐다.
“이렇게 힘들 때는 웃는 거야.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니까......”
초당두부마을 깊숙이 들어서 있는 강릉 초당동성당을 물어물어 찾아가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 끝부분에 신부님께서 이 성당은 전국적으로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성당 1위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면서, 타지에서 여행이나 순례로 온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다. 한 사람씩 미사 소감도 들으셨다. 4명 가족팀, 3명 친구팀에 이어 내 순서이다. 나는 해파랑길 한달에 한번 6일씩 지금 넉달되는 24일째로 많이 지쳐 있지만, 이렇게 여러분들과 주님을 만나 무척 감격 감사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박수를 했다. 가늘고 긴 사람 형상의 철 조각가 자코메티 작품이 아닌가 하는 예수님 상은 여느 성당에서 보는 십자가와는 확연히 달랐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 속에 계시는 예수님이 아닌, 그저 작고 가녀린 힘없는 파란 분으로 나를 내려다보셨다. 신부님의 축복을 받고 나오니, 정오의 태양은 또 한번 한껏 찬란했다.
하평해변을 지나 사천진리 해변에 도착해 충분히 쉬었다. 솔숲 송림이 이어지는 산림욕장 같은 길을 걸어 나오니 연곡항 연곡해변이다. 이어 영진항 영진해변을 지나고 40코스의 도착지 주문진 해변이 보인다. 궁개교 다리에 이르렀을 때 해파랑길과 바우길 표식의 색깔이 완전 반대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해파랑길은 빨강이 고성쪽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파랑이 내려가는 길인데 반해, 바우길은 파랑이 올라가는 길이고, 노랑이 내려가는 길이다. 혼동하기 딱 좋겠다 싶어, 이후 나는 바우길 표식을 따르지 않고 해파랑길 표식만 보고 걷기로 했다. 주문진 버스터미널에서 저녁 6시 45분발 서울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돌아오는 내내 대견스러운 내가 보이고, 모든 여건을 허락해주신 그 분이 보인다. 이토록 느긋하고 여유로우며 아무 걱정이 없는 지금이 진실로 빛나는 삶의 순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의 아픔도 힘듬도 이제는 추억이 되고 있다. 길 위에는 숱하게 겪은 고통 후 찾아오는 감사가 넘쳐 있다.
*강릉 해파랑길을 출발하는 정동진.
아침 햇살에 빛나는 바다.
*괘방산 하산길의 사찰 등명낙가사
* 해파랑길에서 만난 김도언 학생과 함께
등명낙가사와 솔바람다리에서
*통일 안보공원
*메이플 비치 골프 클럽의 풍경
*풍호마을 들판에서
*풍호 연꽃 축제에서
*남항진 해변에서
*남항진 해변 호박엿장수 그리고 .....
*솔향 강릉이 물씬 느껴지는 솔숲
*시원하고 근사한 솔바람다리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
*강문해변 솟대다리 연인들
*보랏빛 순비기나무와 버섯들
*강문해변 캔버스 포토존
*강문 진또배기 솟대공원
*동 트기 전 경포호수 새 한마리
*어사 박신과 기녀와의 사랑 이야기
*영화 절정 찰영지
*경포호수 방해정
*참소리 박물관
*사공의 노래 시비 있는 곳
배 한척이 묶여 있는 가운데
두둥실 두리둥실 음악은 흐르고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 시비에서
나도 노래를 부르며 회상에 젖고
*관동팔경 중의 하나 경포대
정조임금 숙종임금의 시비도 있다.
*여성친화 공원의 숨바꼭질 동산
*경포호수 생태습지공원의 연꽃 풍경
*가시연꽃들이 피어 있고
*호수 둘레에 피어난 들꽃들
핑크빛 메꽃 연보라 구절초,......
*강릉길 곳곳에 펼쳐진 송림 산책로
*허균 허난설원 생가와 기념관
*둥글고 하얀 신비로운 성당
아름다운 강릉 초당동성당
*가늘고 약한 모습의 십자가
예수님이 계신 본당 내부
*사천진리 해변의 물새들
*피서지의 연곡해변
*영진 해변 피서객들
*주문진으로 가는 길
*새는 날고 나는 떠나고
*궁개교 다리의 해파랑길과
바우길 표식 색깔이 정반대로
표시되어 있다.
첫댓글 이제 770 km 해파랑길 중
140km남았다.
몸조심해서 끝까지
완주해야겠다.
제 고향 강릉이 회장님을 만나 더욱 멋지고 향기나는 살기 좋은 곳으로 되었습니다.왕이십니다.
어디서든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보람된 일 하시고 계시리라 생각 듭니다.
우리 회장님은 언제나 킹
강릉에서 태어난 사임당님은
그래서 그렇게 부드럽고
유한 성격을 지니셨군요.
강릉 솔향이 아직도 진하게
풍겨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