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여룡주음(驪龍珠吟)·
識得衣中寶식득의중보
無明醉自醒무명취자성
百骸俱潰散백해구궤산
一物鎭長靈일물진장영
知境渾非體지경혼비체
尋珠不見形심주불견형
停心息意珠常在정심식의주상재
莫向途中別問人막향도중별문인
단하천연<丹霞天然>
옷 속의 보배를 알아내면
무명의 취기가 저절로 깬다.
백 토막의 뼈는 무너져 없어지나
한 물건은 영원히 신령하도다.
경계를 알아도 모두가 본체 아니요
구슬은 찾아도 형체를 보지 못하네
마음 멈추고 뜻 쉬면 구슬 항상 있나니
길거리에 나서서 다른 사람에게 묻지 말라.
단하천연(丹霞天然 ) 선사(禪師)는 석두희천(石頭希遷)의 제자(弟子)다. 어려서는 유교(儒敎)와 묵자(墨子)를 공부했고, 구경(九經)에 통달(通達)한 유생(儒生)이다. 출가(出家)하기 전에 방온(龐蘊)과 친구(親舊이었다. 방온 방거사(龐居士)와 함께 과거(科擧)에 응시(應試)하려고 과거장(科擧場)로 가던 중 여관(旅館)에서 어떤 객(客) 스님을 만나 차를 마시는데,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 중이시오? 단하(丹霞)가 대답했다. 과거(科擧)를 보러 갑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공부가 아깝구나. 어째서 부처를 뽑는 곳에 가지 않는가? 단하가 부처는 어디서 뽑는가요? 했다. 이에 그 스님이 찻잔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알겠소? 하니, 단하는 높은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강서(江西)에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禪師)께서 지금 생존(生存)하셔서 설법(說法)하시는데, 도(道)를 깨친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소. 거기가 참으로 부처를 뽑는 곳이요(選佛場). 세속(世俗)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出世)를 위해 과거(科擧)를 보러가던 방거사(龐居士)와 단하(丹霞)는 객(客) 스님으로부터 부처를 선발하는 곳’을 찾아가라는 말을 듣고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禪師)를 찾아가서 단하(丹霞)는 출가(出家)하게 된다. 방거사(龐居士)는 재가불자(在家佛子)로 있으면서 마조선사(馬祖禪師) 밑에서 수행정진(修行精進)을 하여 마조선사(馬祖禪師) 법(法)을 잇게 된다. 단하선사(丹霞禪師)는 마조법석(馬祖法席)에서 참구(參究)하다가 석두희천(石頭希遷) 선사(禪師)를 찾아가서 참학(參學)하게 되고 천연(天然)이란 법명(法名)을 받는다. 선불장(選佛場)이라는 말은 이때부터 부르게 된 말이다. 선불장(選佛場)은 불도(佛道)를 닦아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속가(俗家)에서 과거급제(科擧及第)하듯이 절에서도 마음을 깨달아 성불하는 것을 선불장(選佛場)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연유(緣由)다. 방거사(龐居士)는 선불장(選佛場) 게송(偈頌)으로 오도송(悟道頌)을 작게(作偈) 했다. 시방에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저마다 무위법을 배우네, 이곳은 부처 뽑는 자리이니, 마음을 비우고 급제해서 돌아가노라<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 此是選佛場(차시선불장) 心空及第歸(심공급제귀)> 마조선사 법석에서 방거사(龐居士)가 깨달음을 얻고 읊은 오도송(悟道頌)이다.
조당집(祖堂集)에 보면 단하선사(丹霞禪師)는 석두희천(石頭希遷) 선사(禪師)가 머리를 깎아주고 천연(天然)이란 법명(法名)까지 주었다. 천연이란 법명을 주게된 까닭은 단하선사(丹霞禪師) 머리를 삭발(削髮)시켜주고 보니, 단하 머리 정수리가 산, 봉우리 마냥 우뚝, 솟아있는 것을 보고 희천 선사가 단하 정수리를 만지면서 무심코 천연(天然)이로구나! 했다. 단하선사가 머리를 다 깎고 나서 희천 선사에게 합장하면서 감사를 표하자, 내가 언제 너에게 무슨 이름을 지어주었는가? 묻자, 방금 화상께서 천연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단하선사 법명이 천연이라고 했다는 선화(禪話)다. 단하선사가 삼동결제(三冬結制) 중에 한 달을 정진하고 게송(偈頌)을 올린 게송이 오언절구(五言絶句) 평기식(平起式) 보배송이다. 단하에게 보배 하나가 있나니, 간직 한지가 이미 오래되었네, 일찍이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나 스스로 혼자 깊이 간직 하였네,<丹霞有一寶 藏之歲月久 從來人不識 余自獨防守> 산과 강에 걸림이 없어, 광명은 곳곳에 뻗어 나가네, 형상은 고요하고 항상 맑으며, 안팎이 투명하여 티가 하나 없네,<山河無隔碍 光明處處透 軆寂常湛然 瑩徹無塵垢> 세간에서 보배 취하는 이는 미친 듯 길을 쫓아 달려나가네, 내가 그를 위해 말을 해주면, 손뼉치고 배꼽 쥐고 웃기만 하네<世間採取人 顚狂逐路走 余則爲渠說 撫掌笑破口> 홀연히 공을 터득한이 마주치면 마음이 한가로워 외딴 숲에 노니네, 서로 만나 말로 드러내지 아니해도, 생각만 비춰도 곧바로 보배가 있음을 바로 아네.<忽遇解空人 放曠在林藪 相逢不擎出 擧意便知有> 단하천연선사(丹霞天然禪師)는 방거사(龐居士)와 함께 불교(佛敎)에 입문(入門) 하였지만 법을 전법(傳法)한 스승은 다르다. 석두희천(石頭希遷) 선사(禪師)가 삭발(削)을 시켜주고 설법(說法)을 하자, 귀를 두 손으로 꼭 막고 법문이 너무 많습니다. 라고 외쳤다. 석두 선사계서 그러면 그대가 활용해 보라 하니, 단하선사가 거침없이 불상(佛像) 머리에 올라탔다. 석두선사가 말하기를 저 중이 훗날 불상(佛)과 탁자(卓)를 부술 것이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단하선사(丹霞禪師)는 단하소목불(丹霞燒木佛)로 알려졌다. 단하선사가 혜림사(慧林寺)를 추운 겨울 유숙(留宿)을 하게 된다. 혜림사 원주가 단하선사를 추운 법당에서 자게 하고 원주는 뜨뜻한 방에서 겨울밤을 자게 되는데, 불을 때지 않는 법당이라 잘 못 하다가는 동사(凍死) 즉전(卽前)이라, 단하선사가 밖에 나가 둘러봐도 땔 나무하나가 없었다. 법당에 들어와 보니, 법당 안에 불상이 목불(木佛)이었다. 목불(木佛)을, 엎어다가 도끼로 패서 부엌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하룻밤 따뜻하게 잘 잤다. 아침 새벽이 되자, 원주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단하선사를 꾸짖었다.
세상에 불상을 군불로 때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정신 나간 사람 아니냐? 노발(怒髮) 대발(大發)이다. 어째서 목불(木佛)을 태웠소? 단하선사 법명답게 천연덕스럽게 부지깽이로 부엌 재를 헤치면서 말했다. 부처님 불상을 화장(火葬) 다비(茶毘)를 했으니, 사리(舍利)가 나오겠구만! 원주가 목불(木佛)에 무슨 사리(舍利)가 있겠는가? 하니, 사리(舍利)가 없다면 참 부처 진불(眞佛)이 아니지, 않는가? 했다는 파격적(破格的)인 선화(禪話)다. 단하선사(丹霞禪師)는 수계(受戒) 때부터 불상 목에 올라 탔다. 선문조사선(禪門祖師禪)에서는 이런 경계(境界)를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한다. 중생범부(衆生凡夫)는 흉내를 내면 눈썹이 몽땅 빠진다. 혜림사 원주도 단하선사 소목불(燒木佛) 꾸짖다가 눈썹이 몽땅 빠졌다. 선어록(禪語錄)에 보면 그래서 불석미모(不惜尾毛)라는 선어(禪語)도 생겼다. 산 부처(丹霞)를 꾸짖고, 등상불(等像佛)에 목불(木佛)에 집착(執着)한 원주(院主)를 일깨워준 파격선화(破格禪話)다. 단하선사(丹霞禪師)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 자료(料)를 찾아보았으나 없다. 앞에 소개한 게송만 몇 개 있어서 소개를 했다. 단하선사는 친구 방거사(龐居士) 처소를 자주 찾아간 것으로 나온다. 방거사 딸 영조(靈照)는 단하선사가 집을 찾아와서 거사님께서는 계시는가? 물으면 무언(無言)의 법거량(法擧揚)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손에 쥐고 있던 광주리를 놓고 손을 모으고 섰다. 단하선사께서 또 다시 거사 계시는가? 물으면 영조(靈照)는 아무말 없이 광주리를 손에 들고 떠난다. 그러면 단하선사도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는 선화(禪話)다. 단하선사는 86세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편이다. 입적(入寂)할 때는 생사자재(生死自在) 종사열반(宗師涅槃)이다. 나 길을 떠나겠다 하고 삿갓 쓰고 주장자 짚고 신을 신으려 한발 드리우고 적멸(寂滅)에 드셨다. 수행인은 마지막 갈 때 보면 안다. 범부중생(凡夫衆生)은 숨 떨어질 때 생 똥 싸고 죽는다. 그러나 고승들은 서서 죽고 앉아 죽고 자유자재다. 오늘은 단하선사 게송을 평측운에 반추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