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동시 모임이 있는 날, 오전에 재인이가 도서관으로 왔습니다.
“선생님- 제티랑 차 마시려고 가져왔어요.”
재인이가 기대하는 마음 품에 안고 다가옵니다.
넷이서 나눠 먹으려 제티 4개와 우유 1L, 녹차 티백 2봉 챙겨왔습니다.
재인: “선생님, 친구들이 어떤 걸 좋아할까요? 딱 네 컵만 있어서 둘 다 먹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뭘 먹을까요?”,
“아이들은 제티를 더 좋아할 것 같아요.”, “가서 골라 먹어요.”
생각 주머니, 핫팩, 돗자리와 엉덩이 안 시리게 두꺼운 방석까지 지난번 나누었던 준비물 챙겨왔습니다. 옷 겹겹이 싸매어 왔습니다.
예봄이가 감기에 걸렸답니다. 예봄이 어머님인 이경아 선생님은 오늘 날씨가 추워 고민이 되는데 예봄이는 꼭 가고 싶다고 했답니다. 예봄이의 마음이 대단하고, 고맙습니다.
예원이가 도서관에 오자마자, “선생님, 오늘은 생각주머니 안 들고 왔어요...”,
“돗자리가 없어서 안 입는 옷 가져왔어요.”, “간식으로 하리보 가져왔어요.”, 주섬주섬 챙겨온 예원이.
덩달아 오늘의 동동시 모임이 기다려집니다. 설렙니다.
오늘 재인이, 예원이, 예봄이는 무엇을 기대하며 왔을까요.
밖에서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벌겋고, 하얗게 질려 들어옵니다.
“아주 그냥 바람이~...” 거센 바람과 추위에 한마디씩 합니다.
그래도 동동시 모임은 갑니다. 공터로 산책하듯 갑니다.
가는 길도 춥습니다.
바람에 종이 날리고, 몸도 떨립니다. 바람을 피해 공터 평상 위에 모여 앉았습니다.
에코백, 안 입는 옷을 돗자리 삼았습니다.
시 하나, 글 하나 읽습니다.
걸음 멈추고, 한 데 머무르니 걸어오면서도 괜찮아요~ 했던 예봄이는 패딩 지퍼 목까지 잠가 올리고, 마스크 꼭꼭 낍니다.
“너무 춥다.” 쓰고 시 다 썼다는 예봄이.
오늘도 제목으로 “바람”을 쓴 예원이. 이내 종이를 바꿔 다른 시를 쓰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쓰일까. 궁금합니다.
다만, 예원이가 드러내기 전까지는 눈 돌립니다.
바람에 종이, 파일, 가방 날라갑니다. 무게감 있는 책 하나, 색연필 하나 얹어둡니다.
상황이 안정적으로 바뀌자
조용-해집니다. 각자 자기 시를 씁니다.
손과 발에 뻗치는 추위로
빠르게 변하는 하늘 위 구름. 풍경 하나 느긋이 볼 여유 없어 모두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입니다.
“진원이다, 진원이 목소리예요.”, “놀이탐험대 친구들인가 봐.”
놀이탐험대가 공터 뒤 아파트 가는 길을 뛰놀며 올라가는 소리 들릴 땐,
언뜻언뜻 고개 들어 저 멀리 아이들에게 손 흔들며 인사합니다.
그렇게 모두 시를 다 쓸 즈음에 재인이가 왔습니다.
물건 팔러 장에 나갔다 돌아온 할머니, 서방 반기듯
아이들은 재인이 언니를 반깁니다.
재인이는 품에 안고 온 간식들을 늘어놓습니다.
이 추위에도 차가운 우유와 제티가 땡기는 예원, 예봄입니다.
먼저 시를 다 쓴 제가 제티를 타고,
재인이는 시 쓰기 시작합니다.
이전과 같은 제목이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씁니다.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예원이도 시화를 그립니다.
예봄이는 헐레벌떡 시 쓰고 추위에 떱니다.
이제 막 우유 뜯고, 제티 하나 뜯었는데. 재인이가 시를 다 썼다고 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들 자기 짐을 챙깁니다.
떨면서 가도, 어른들 만나 뵈면 발걸음을 멈추어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인사드립니다.
고양이 얼룩이도, 강아지 미소도. 지나치지 않고 인사하고 갑니다.
도서관에 도착해 얼어붙은 몸 녹입니다. 퉁퉁 부어오른 손 다독입니다.
재인이가 준비한 제티 타 먹고, 따듯한 차도 마십니다. 손 시려워 꺼내지 못한 하리보 젤리도 나눠 먹습니다.
쿡쿡방에서 못다 한 자기 시를 쓰고, 시화를 그립니다.
예봄이가 새로운 글을 씁니다. 예봄이가 “‘밖’은 어떻게 써요?” 물으면 “예봄아 ‘밖’은 이거야.” 맞은편 재인이가 친절히 알려줍니다. 예봄이는 모르는 한글이 나올 때마다 물어보고, 자기 글 썼습니다.
쿡쿡방에 있던 지헌이, 김지성 선생님도 잠시 와서 시 쓰고 떠났습니다.
자기 마음 안 들키고 싶은 사람은 이름 대신, 동동시라 쓰자!
무명으로 써도 된다 알렸지만, 동동시로 적는 게 좋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글씨체로 알아보지 못하게 “서로 대신 써줄까?”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래도 자기 마음은 숨기고 싶을 수 있고, 끝까지 온전히 자기 손으로 담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이 의견은 부결됩니다.
이렇듯 동동시 모임의 재인, 예원, 예봄이는 서로의 마음을 지켜줍니다. 이해합니다. 존중합니다.
다른 팀이 들어와 시끌벅적한 쿡쿡방을 벗어나, 만화방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재인이, 예원이, 제가 발표하고 싶다고 손 듭니다. 예봄이는 갈팡질팡하다 안 하기로 합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예원: “방재인 작가님을 앞으로 모십니다.”
재인: “전예원 작가님을 앞으로 모십니다~와~”
돌아가며 발표했습니다. 시 낭독할 때 낭독자 바라보며 경청했습니다. 이 시를 쓴 배경은 나누고 싶은 만큼 나누었습니다. 서로를 응원하고 박수쳤습니다.
전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전시할까?
이미 이름을 동동시라 적어두었기에 모두 마음 편안히 승낙합니다.
예원: “예봄아 이거 전시할 거야?”
그래도 예원이는 예봄이에게 한 번 더 묻습니다. 참 세심합니다.
모아보니 느낀 것, 담은 모양새 제각각입니다.
글씨체와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감출 수 없습니다.
오늘 한 아이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시를 썼습니다. 맺힌 마음 풀었습니다.
우리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 부모님은
조금만 들여다봐도 누가 쓴 글이고, 누구 마음인지 금세 알아차리겠지요.
몰라도 괜찮습니다. 색안경 없이 글만 보이겠지요.
그러니, 우리 동동시가 써내려 갈 마음이 어떤 이에게 어떻게 닿을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맺힌 마음 적었다면, 흘러 흘러 그 누군가에게 닿겠지요. 오늘은 이러했고, 다음에는 같은 사람을 떠올려도 다른 마음을 쓰겠지요.
잔잔히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닿기를 바랍니다. 얼어붙지 않고, 흐르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동동시는
겨울(동)에 동동 떨며 쓴 시입니다.
오늘도 재인, 예원, 예봄이는 마주치는 마을 어른들게 인사 잘했습니다.
어르신들은 환한 미소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같이 미소만 보이십니다.
재인이는 함께하는 아이들에게 다정했고,
예원이는 함께하는 아이들에게 세심했습니다.
예봄이는 오늘의 하루를 남겼습니다. 후루룩 썼다 조용한 언니들 보며 마음가짐을 새로이 합니다.
2025년 1월 9일 목요일
창문가로 흘러 들어 온 햇살이 우리를 감쌉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