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단 정진바라밀
만일 위에서와 같이 수행하였어도 또한 들어가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또한 사유하여야 한다. 四種의 道品에는 각각 여덟 가지 精進이 있으며 비리야(毘梨耶; 精進)바라밀에 포함되는 것이다. 「대론」에서 말하였다.
“앞의 세 가지[보시, 지계, 인욕]는 성취하기가 쉬우니 꼭 정진할 필요가 없지만, 나중의 두 가지[선정, 반야]는 성취하기가 힘이 드니 반드시 꼭 정진하여야 하고 정진 때문에 삼보리를 얻는다.”
「아난」이 精進覺支를 설하자, 부처님께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신 것이거나, 「大施」가 바닷물을 퍼낸 것과 같은 것이 바로 이것과 상응할 수가 있다.
* 八精進 - 만약 탁발하여서 얻지 못하였을 때 “내 몸은 수면을 적게 하여도 정진을 감히 수행할 수가 있다”고 염하는 것을 필두로 하는, 여덟 가지의 경우에 처한 입장에서 정진을 다짐하는 염법을 말함. 둘째는 공양을 얻었을 때 정진을 다짐하고, 셋째는 만약 어떤 일을 하느라 잠깐 수행을 그만 두었을 때, 넷째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다섯째는 어디에 갔을 때, 여섯째는 어디에 갈 일이 생겨서 가려고 할 때, 일곱째, 잠시 병환에 있었을 때, 여덟째 병이 나았을 때, 이런 여덟 가지 경우에 반성하고 정진을 다짐하는 것을 팔정진법이라고 함. 「장아함경」에는 理觀八(精)進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팔정진법을 근본이법에 관련시켜서 하나의 관법을 이루는 것을 말함. 예컨대 삼매에 입정하려고 하여 이룬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정진관을 형성, 실천하는 것 등 삼매입정과 정진과의 이법적인 상관성을 관하는 것인데, 각자가 한번 이 관법을 구성하여 여덟 가지를 이루어 보는 것도 지관법의 중요한 수행이 될 것임.
*阿難說精進覺 - 「대지도론」에 나오는 이야기.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에게 “나는 지금 등이 조금 아프니 쉬어야겠다”고 하시고는 누우시고, 아난존자로 하여금 비구들에게 설법하게 하셨음. 아난이 七覺支를 설법하고 있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정진각지를 설하였는가”고 물으셨는데, 아난은 이미 설하였음을 말씀드렸더니 부처님께서는 놀라시고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그대는 정진을 찬탄하였는데 이것으로 말미암아 보리를 얻었노라”고 말씀하신 것을 말함.
* 大施抒海 -“大施”라는 것은, 바루시사성의 니구루다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재보를 다 보시하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얻으려 하였는데, 가시용성에 이르러 용왕으로부터 여의주를 얻어 육지로 돌아왔으나 그 보주를 아깝게 생각한 용왕은 대시가 자는 사이에 훔쳐갔음. 대시는 그 보주를 다시 찾기 위해 바닷물을 퍼내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을 겁낸 용왕은 여의주를 돌려주었고 대시는 이것으로써 크게 보시를 하였다는 「현우경」의 이야기인데, 그 이외에 부왕이 모왕에 의해 살해되고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나라를 찾기 위해 대시왕자가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얻었다는 「전생담」의 이야기도 있으나, 바닷물을 퍼내서 보물을 다시 찾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같음.
또한 지금 방일하여 기대고 드러눕고 방종하게 게을러서 본심을 망실하여 다시 정진할 힘이 없다면, 도량에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惡覺[사나운 느낌]을 마음속에 섞고 있다면, 이것을 이름 하여 “더러움[汚]”이라고 한다. 날이 날과 같지 않으면 이것을 이름 하여 退步라 하되, 퇴보는 전진이 아니며 더러움은 精[純一한 것]이 아니니, 어찌 理法에 契合[딱 들어맞음]할 수가 있겠는가? 혹 前世로부터 해태懈怠하여 罪障이 마음을 덮고 있다면 콧구멍에 갈고리가 없어서 미치고 취하여 날뛰고 뛰어다니는 (코끼리나 낙타 등의 가축) 것과 같은 것이다. 초, 중, 후의 하루와 밤 동안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시간을 다투지 않는다면 원대한 뜻은 또 다시 천연遷延되어 돌벼[야생의 벼인데 여기에서는 아직도 정련되지 않은 기근의 소유자를 상징하는 말]가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마땅히 誓願을 일으켜서 뼈에 새기고 마음에 적어넣어야 한다. 身命은 道에 맡기고 죽음은 앞[미래]에 밀어제친다. 무량한 겁 이래 헛되게 애호하고 아꼈던 것은 지금 삼매를 구함에 결정적으로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며, 밤을 낮에 이어서 과실과 우환을 가책하여 법을 수행함을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그 몸을 바르고 곧게 하여 또한 어렵다는 마음이나 괴롭다는 마음을 없애면, 가령 病惱가 있어도 후환으로는 되지 않는다. 이 한 생을 이기지 못하면 역겁으로 쉬지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 정진하여 化他하고 법을 찬양하며 사람을 찬양하여 시방불을 칭탄하면, 증거가 되고 구제가 되어 부처님의 정진의 광명을 감득하고서 이관의 여덟 정진과 상응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삼장교와 상응하면 바로 生生[생김을 생하는]의 정진을 이룩하고, 통교와 상응하면 바로 生不生의 정진을 성취하고, 별교와 상응하면 바로 不生이 생을 성취하고, 원교와 상응하면 바로 不生의 不生의 굳고도 강한 정진을 성취하여 열반의 문을 열어 불성을 본다. 이것을 “事法의 기름의 도움으로 관의 밝음을 증장하는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정진에는 通體[삼장교, 통교, 별교, 원교 등에 공통적인 체라는 뜻]와 列體[분리되어지는 체. 개별적인 체의 뜻]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