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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태조는 즉위 초에 정도전에게 명하여 팔도 사람을 평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에 정도전은 각도와 더불어 평안도 사람을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고 평하고, 태조의 출신지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평을 하지 못했다. 태조는 말해줄 것을 거듭 재촉했다. 이에 정도전은 함경도 사람은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 대답을 했다. 이로부터 이전투구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원래 강인한 성격의 함경도 사람을 표현하게 되었고, 맹호출림(猛虎出林)은 사나운 호랑이가 숲에서 나온 다는 뜻으로, 평안도 사람의 용맹하고 성급한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 두 고사는 오랜 동안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들의 강한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 널리 회자되어 왔다. 이 두 지역 사람들의 사투리는 지금도 매우 강하고 억세기 때문에 서로 말다툼하는 것을 들을라치면 사나운 호랑이가 치열하게 싸우는 듯하다. 그러나 고사도 세월 따라 그 뜻이 변해 간다. 맹호출림은 지금도 평안도 사람들의 강인한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는 반면, 이전 투구는 전혀 다른 뜻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이전투구가 함경도 사람들의 강인한 성격을 나타내 주는 고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 뜻이 전혀 다른데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혹자들에게 이전투구가 무엇을 뜻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와 “정치 싸움을 하는 정치인”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의 정치판을 논할 때 주로 이전투구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개의 싸움으로 표현될 정도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냉혹하게 변한 것을 의미한다. 얼마전 모 정치인이 ‘정치판은 개판’이라는 발언을 하여 여․야가 정치적 공방을 벌인 바 있다. 결국 한자로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전투구가 될 것이다. 얼마나 정치권의 싸움이 추악하면 이전투구의 뜻이 그렇게 비하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맹호출림이 본래의 뜻을 간직한 것처럼, 이전투구를 함경도 사람을 표현하는 말로 다시 돌려놓을 수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