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주요명소
학가산 우래 자연휴양림

학가산은 해발 882M로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예천군 보문면과 안동시 북후면의 접경 지역 깊숙한 곳에 위치한 덕에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편이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청정지역이다. 학가산 북쪽계곡에 위치한 우래자연휴양림은 중앙고속도로 예천IC 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가는 길 또한 백사장이 보이 는 강변을 따라 이어지므로 호젓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자연휴양림에 들어 서면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은 통나무집들이 주위 나무들과 계곡, 바위와 너무도 잘 어울려, 마치 드라마 속에 나오는 고급 별장에 온 듯하고, 통나무 집 안으로 들어서면 편백나무의 테르펜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며,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이 내부 분위기를 안락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학가산 자연휴양림은 다양한 평수의 숲속의 집을 보유하고 있어 가족친지간의 여행이나 기업체 및 웬만한 단체여행의 인원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으며, 시설 면에 있어서도 짜임새 있게 잘 배치되어 있다. 휴양림 위로, 사람이 학을 타고 노니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학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있고, 2시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기타 부대시설로 캠프파이어장, 야외 무대, 어린이놀이터, 체력단련장, 물놀이장, 강의동 등을 갖추고 있다.
예천군 보문면 우래리 산 60번지 외 3필
휴양림 관리사무소 054-652-0114

의성포(회룡포)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고 거기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이 이 곳 회룡포이다. 유유히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기이한 풍경이 이곳 회룡포마을의 내성천에서 볼 수 있다.
이 기이한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인접한 향석리의 장안사로 올라가 굽어보아야 한다. 절이 있는 산이 비룡산인데, 그 산 능선에 1998년 회룡대라는 정자를 건립하였으며 여기서 정면을 보면, 물도리 모양으로 굽어진 내성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면 우선 강으로 둘러싸인 땅의 모양이 항아리 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맑은 강물과 넓은 백사장이 보인다.
백사장 가에는 나무가 둥근 곡선을 따라 심어져 있고, 논밭이 반듯반듯 정리되어 있다. 그 중앙에 회룡포마을이 있고 오른편 곳곳에는 숲이 울창하다. 이 비룡산에는 장안사와 원산성 등의 유적지가 있는데 정상 바로 밑의 장안사는 통일신라때 의상대사의 제 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고찰이라고 한다. 최근에 중수를 한 관계로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찾는 이가 드물어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회룡포마을에는 7, 8년 전만 해도 20여 남짓 가구가 살았으나,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지금은
9가구 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은 논밭까지 합쳐 5만평 정도이다. 한바 퀴 도는데 1시간도 채 안 걸린다. 이곳은 1997년부터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기반 시설을 조성하였으며, 2004년부터 생태체험 관광지로 조성하게 된다.
회룡포 주변 둑 길에는 소나무를 심었고, 주변에는 잔디를 심은 공원과 산책로가 들어섰고
봉수대를 97년 11월 복원완료하였다. 앞으로 철쭉군락지 조성과 숙박시설을 늘리면 관광지로서 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2002년 KBS 인기드라마였던 "가을동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 * 용궁면사무소 054-650-6609, 653-6301 * 예천군청 황숙자 님(054-650-6394)
명봉사

소백산맥의 깊은 산기슭에 위치한 명봉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875) 두운대사가 창건 하였다. 문화재로는 고려 대토 24년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鏡淸禪院慈寂禪 師凌雲塔碑-유형문화재 제3호)는 이두문으로 된 비석으로 국문학연구에 귀중한 자료 이며 최언위(崔彦僞)가 지은것으로 판독됐으며, 문종대왕태실비(유형문화재 제197호)도 있다.
대웅전 안에는 6.25 때에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은 대세지보살상이 보안돼 있다. 절 입구의 숲과 계곡이 빼어나며 경내에는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등 큰느 티나무가 해를 가려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한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 여름 철 피서지,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501번지 054-653-1365
용문사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소백산 기슭에 위치하며, 신라 경덕왕 10년(870)이 고장 출신의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유명하다.
용문사 명칭에는 2가지의 유래가 있는데 고려 태조가 삼한 통일을 위하여 두운대사를 방문코자 동구에 이르니 바위 위에서 청룡 2마리가 나타나 인도하였다 하여 절의 이름도 용문사로 불려졌다.
고려 명종 원년(1171)에 태자의 태를 절의 왼쪽 봉우리에 묻고 청기사로 고쳤다가 다시 소백산 용문사(龍門寺)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문사 대장전(大藏殿-보물 제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건립한 오래된 건물이며, 대장전 내에 윤장대(輪藏臺-보물 제684호)는 국내 유일 불경 보관대로 이 대를 돌리면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며 세계적 문화유산
이다.
목불좌상 및 목각탱(木佛坐像.木刻幀-보물 제989호)은 대추나무로 만든 후불탱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작품이며, 사천왕상(四天王像)과 일주문(一柱門)은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다.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 용문사 054-655-8695
초간정(草澗亭)
예천읍에서 928번 지방도로를 이용해, 용문면에 도착해서 용문사로 가는 길에 왼쪽으로 초간정의 입구가 보인다. 수령이 꽤 오래되어 보이는 수림 사이로 거대한 암반 위에 조선시대의 정자 초간정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정자 아래 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초간정 정면에 서서 정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선인들의 멋스러움과 자연친화적인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으며,
'누가 여기에 정자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인물이 궁금해진다.
초간정은 대동운부군옥(우리 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 선생이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로, 그 후손이 중창하였으며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간정에서 예천읍 방향으로 내려 가면 예 천 권씨 종택을 만날 수 있고 반대로 동로 방면으로 올라가면 용문사에 도착한다.
회룡포여울마을

회룡포 여울마을은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이 그대로 보존된 경관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봄이면 진달래꽃 따다가 화전을 부쳐보기도 하고, 여름이면 반짝이는 은모래밭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고 모래밭에 묻어 둔 보물찾기를 하고 두꺼비집도 지어본다.
가을에는 강낭콩 따기나 포도를 따서 먹고 남은 포도껍질은 손수건을 염색체험을 할 수 있다. 겨울에는 장작불 피워 고구마를 구워먹고 뒷산에 올라가 솔방울이나 도토리깍정이를 주워다가 부엉이, 거북이, 참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있다.
자연물 공예체험, 전래놀이
* 봄 - 수박모종심기, 진달래 화전부치기, 봄나물캐기, 토마토따기 * 여름 - 모래성체험(모래성쌓기, 모래밭에서축구하기), 두꺼비집만들기 * 가을 - 사과따기, 강낭콩따기, 허수아비만들기, 고구마캐기 * 겨울 - 장작불피워 고구마구워먹기 * 연중 - 자연물 공예체험, 천연염색, 전래놀이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186
신영식 010-6522-6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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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158번지 학가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예천 보문사는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단양, 봉화, 영주를 지나 경상도 내륙 깊숙이 위치해 큰 맘을 내야 찾을 수 있는 도량이다. 예천I.C를 나와 예천읍 방향으로 가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지나온 고속도로를 마주보며 10분쯤 가다보면 ‘학가산 보문사’라는 팻말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 2.5Km쯤 논과 밭 사이로 난 콘크리트길을 따라 가면 휘어진 소나무들과 잡목들로 잘 어우러진 산길 중간에 보문사가 있다. 중창주인 보조국사 지눌이 『화엄경』을 읽다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한 보문사는 부처님 말씀의 사섭법 중 하나인 동사섭(同事攝)을 실천하는 도량이다. 시골마을,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중턱에서 지역민과 함께, 지역민 속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절집이 특별한 곳이라기보다 이웃인 듯한 느낌이 나는 곳, 보문사는 바로 그런 절집이다.
보문사 사적비에도 있듯 비록 웅장하고 위용을 갖춘 당우는 없지만 스스로 큰 욕망을 자제하고 작은 것을 자족하여 큰 것을 다스리는 지혜와 넉넉함이 있고, 멋을 부리는 기교와 세련된 조각은 없지만 앉고 누워서 정적삼매를 이루는 데 지장이 없는 당우와 요사가 신축되고 복원된 곳이다. 보무사는 대찰이라 위축됨도, 쇠락해 불편함도 없이 외갓집같이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그런 절집이다.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158번지
보문사 054-653-0777
동악사

동악사는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487-1번지 냉정산 아래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다.
동악사는 예천 읍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한천(漢川)가에 있다. 예천 IC에서 읍내로 들어오는 길목인 동본교를 건너기 직전, 예천 온천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100m도 못 미쳐서 오른쪽 길가에 동악사라고 쓴 커다란 표지석을 보고 들어서면 바로 동악사 경내이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일반 가정집의 요사채와 그 앞 평상에 앉아있는 노보살, 그래서 처음엔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당황하게 되는데 조금 더 들어가 보광명전이라는 편액이 걸린 전각을 보고서야 안심하게 된다. 동악사는 서악사와 더불어 예천의 동서남북 사악(四岳)에 있던 절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예천 지역에는 지금도 주택가와 논과 밭 곳곳에 불교 유적지들이 남아있다.
예전엔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절들이 있었으리라. 그때를 상상해보면 예천이 하나의 커다란 가람의 모습이었으리라는 즐거운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영화가 다 스러진 지금 동악사 부처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어서인지 보광명전은 어둡고 쾨쾨하다. 산신각 오르는 길목엔 산신당이라는 안내판이 서글프다. 굳게 닫힌 보광명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환한 햇살이라도 온몸에 받으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절로 가는 마음이 늘 즐겁고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악사는 마음이 아픈 절이다.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3 054-652-1212
▲ 경북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 '예천 별 천문대'에서 어린이 관람객들이 망원경을 들여다
보며 신기해하고 있는 모습.
이곳에서는 밤에는 은하수 등 별을 관찰하고, 낮에는 태양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 경북도 제공 ]
◆ 별을 만나다 ‘예천 별 천문대’
별과 우주는 어린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모두를 설레게 한다. 맑은 공기와 푸른
자연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천체관찰,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의 ‘별 천문대’에서 가능한 일이다.
중앙고속도로 경북 예천IC를 나와 28번 지방도로 감천면 방면으로 향하면 만날 수 있다.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 내에 마련된 이곳에서는 밤이면 그야말로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반사경의 지름이 무려 508㎜에 달하는 연구용등급 망원경을 통해 1000억개 이상의 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은하수를 비롯해 별들이 탄생하고 죽어가는 ‘성운’, 별의 집단인 ‘성단’ 등을 볼 수 있다. 낮이어도 태양의 활동을 관측할 수 있다.
또 문화센터 내 함께 있는 우주환경체험시설에서 무중력 등 우주환경 체험이 가능하며,
야외교육장에서는 천문학 관련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개인의 경우 일반·학생·청소년·아동(4∼7세) 3000원이고 4세 미만의 유아는 무료다.
단체관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2000원씩이다. 문의 (054)654-1710
초간정
경북 예천군 용문면 개울가에 자리한 초간정이란 작은 정자가 지난해 12월 26일 국가 명승지(51호)로 지정됐다. 초간정은 국내 여행에 어지간한 조예가 있는 마니아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자료를 뒤져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해'를 집필한 권문해가 세운 정자' 정도의 설명이 전부다.
이 책은 단군 이래 선조 때까지 역사·인문·지리 등을 총망라, 총 20권 20책으로 구성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제878호)로 지정됐다. 조선 선조 때 만들었으니 400년을 넘겼다. 이 역작의 주인공인 권문해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이 정자를 왜 지었을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초간정을 이해하려면 이를 세웠던 권문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 선조 때 별시문과 병과에 합격, 관찰사·좌부승지 등을 지낸 학자다.
권씨의 본은 안동과 예천 두 개 뿐이다. 권문해는 조선시대 세도를 과시했던 안동 권씨가 아니다. 안동 권씨에 비해 세가 훨씬 적었던 예천 권씨다. 이 때문에 퇴계 이황에 사사했고, 8년 후배 서애 유성룡 등과 교분이 깊었을 만큼 인품과 학문의 조예가 깊었으나 소위 '연줄'이 없어 입신출세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성룡이 판서를 지내며 '잘 나갈 때' 자신은 좌부승지에 그쳤으니 오죽했을까.
이를 절감한 그는 고향 예천으로 낙향을 결심한다. 이 때 찾은 곳이 종가가 있는 용문면 죽림리. 이곳에서 그는 1334년 중국의 음시부가 지은 백과사전 '운부군옥'을 읽고 또 읽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한국의 백과사전 편찬을 결심한다. 그리고 역사·인문·지리 외에 국명·성씨·인명·효자·열녀·수령·신선·나무·금수 등으로 나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낙향 10년 만이다. 필생의 역작을 탈고한 권문해는 기력이 다한 탓인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향년 58세였다.

초간은 권문해의 호다. 풀(草)과 산골의 물(澗)이란 뜻이다. 초간정은 권문해가 낙향 3년 후 지은 정자다. 예천 권씨 종택에서 10리도 떨어지지 않은 조용한 곳이다. 그렇다고 흔히 볼 수 있는 정자처럼 높은 곳에 '군림'하고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곳도 아니다. 오직 정자 바로 아래 개울만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지금은 바로 옆에 도로가 뚫려 소음이 심하지만 당시에는 물소리·새소리 외엔 달리 들을 만한 소음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작품을 집필하는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면 위치가 절묘하다. 금곡천이라 불리는 작은 개울이 큰 바위를 만나 'ㄱ'자로 휘돌아가는 모퉁이 작은 절벽 위에 아담하게 서 있는 것이다. 절벽 위에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는 주변의 아름
드리 소나무숲과 어울려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초간정의 원래 이름은 초간정사. 초간이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란 의미다.
깊은 뜻을 가진 건물은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 수난을 당한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에서 발견된 대동운부군옥을 불사른 왜군은 초간정마저 불태웠던 것이다. 광해군 때 다시 세웠으나 인조 14년(1636년) 또다시 화마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8대손이 1870년 중창한 것이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주말. 정자에 앉아 안빈낙도는 아니더라도 초간의 세계를 좇아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절벽을 기어오를 수 없으니 사주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데 굳게 잠겨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멋진 자태 만으로도 초간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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