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설날 가정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나안 신자나 교회 소속이 정해지지 않은 분들이나 가정을 위해서 설 가정예배 설교내용과 순서지를 구분선 아래에 올립니다. 설교는 보기 편하게 본문으로 올리고 순서지 전체는 pdf 파일로 첨부합니다. 제가 출석하지 않고 저와는 관계가 없지만, 내용이 좋아 보이는 분당우리교회가 만든 것이 유익해 보여서 구분선 아래에 올리는 것입니다.
성경: 빌1:11; 골3:15∼17
제목: 의의 열매를 가득히
그동안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떡국과 함께 나이까지 먹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시간이 멈춰진 것은 아닙니다. 온 세상을 단절의 자리로 만들었던 코로나가 지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열매를 얻기 위해 다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앙상해진 영혼의 마른 가지를 의의 열매로 채워가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가야할 삶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심어야합니다. 빌립보서 골로새서는 둘 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보낸 옥중서신으로 두 교회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작지만 열매 맺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나 에베소교회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교우들이 선하고 복음을 따르기를 기뻐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골로새서 본문 말씀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위해 감사를 의도적으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사로부터 좋은 열매가 많이 맺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기 때문입니다.
둘째, 위의 것을 생각하며 자라야합니다. 위의 것은 생명의 다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부활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땅의 것은 육신에 속한음란부정, 사용, 악한 정욕 탐심과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은 모두 다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생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셋째, 평강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야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모든 일에 불평불만입니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놓치게 되면 마음의 평강, 곧 샬롬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또다시 노예된 삶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의의 열매는 곧 평강이고하나님은 평장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의의 열매인 평강을 가득히 맺는 삶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수년간 황폐해진 마음의 밭을 기경하고 감사의 씨앗을 심어 말씀 안에서 위의 것을 바라보고 평강의 열매를 가득히 맺으실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출처: 분당우리교회)
첫댓글 <IVP 성경주석: 서신서>, 빌립보서1장
11절. 그리스도인의 삶은 행동에서뿐만 아니라 인격에서도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참고. 갈 5:22-23). 이 구절은 열매 맺는 수단은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참고. 엡 1:6, 12, 14).
명절 분위기에만 휩쓸리지 말고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IVP 성경주석: 서신서』, 골로새서 3장
15절.
이 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절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종의 심판 같은 역할을 하여,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지도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에게 사적이고 내적인 영혼의 평강을 준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은 영혼의 사적이고 내적인 평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리스도가 성취하여 일으키는 평강이며(참고.요 14:27) 구원과 같은 의미인 까닭이다. 더욱이 그것은 '심판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평강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동사는 '주장하는'(rule) 것을 의미한다. 평강의 주인(참고, 엡 2:14; 살후 3:16) 그리스도 자신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주장하셔야 한다. 그들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는 그들 삶의 모든 영역을 주장하셔야 한다. 골로 새 교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이 '평강'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지금 살고 있는 영역 또는 분야가 평강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16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강조하는 서신에서, '하나님의 말씀'(1:25)이나 '주의 말씀'(살전 4:15)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말씀'을 언급한다. '그리스도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리스도 자신이 연설자라는 의미일 수 있으나, 그보다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메시지,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언급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1:5). 그 '말씀'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그들의 삶 속에서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영향력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풍성한 내주(하나님과 성령과 믿음의 내주에 대해서는 롬 8:11과 고후 6:16과 딤후 1:5을 보라)는, 그들이 강해되는 이 '말씀'을 함께 경청하고 그 권위에 복종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골로새 교인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령의 영감을 받은 '시와 찬송과 노래' 속에서 나오는 행동에 대해서 사려 깊고 적절한 방식으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해야 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는 포괄적인 표현으로서, 자연발생적인 기독교의 노래뿐만 아니라 예배 때의 찬송과 구약의 시편을 포함한다.
17절.
이 단락은 삶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요약되어 있다. 모든 활동이 '주 예수'에게 복종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일이 동반되어야 한다(15-17절에서 감사에 대한 삼중의 언급을 유의하라). ‘말에나 일에나’는 예배와 관련하여 '설교'와 '성찬식'을 거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표현인 '무엇을 하든지'라는 의미다. 골로새 교인들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노래할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삶 속에 충만하게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상호 가르침과 권면에서 나타난다면, 그것은 또한 종합적으로 그 삶의 모든 면에서 강력하게 나타나야 한다.
@장코뱅 무엇을 하든지! 하는 의미에서 칭의의 결과인 성화의 적극적 행함의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편』, 빌립보서 1장
이 거룩한 삶은 그 자체가 복음 진리에 대한 선포이며,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그런 부르심에 맞게 살라고 명한다. 바울은 자신의 기도 마지막 부분에서 이 거룩한 삶의 특징들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것은 우선 무엇보다도 “의의 열매”(1:11)로 가득 찬 삶이다. 이 열매는 사랑의 결과로,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에서 궁극적 근원을 발견한다. 그리스도는 빌립보인들이 사랑이 풍성하면 그들의 삶에서 보일 열매의 원천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거룩한 삶으로 가는 길에 따른 최고의 본보기다. 거룩한 삶의 한 가지 특징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린다는 것이다(1:11).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은 올바른 분별력과 옳은 행동의 목표다.
성화가 없는 칭의는 그 진정성이 의심받기에 충분합니다. 의의 열매는 칭의의 열매이고 성화라고 생각합니다.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편』, 골로새서 3:10~17.
바울은 신자의 새사람이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3:10) 새롭게 되고 있다고 약속한다. 로마서 12장 2절에도 비슷한 정서가 표현된다. 거기에서 신자들은 이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또한 고후 4:16을 보라). 창세기 1장 26~27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후에 죄가 그런 완전함을 파괴한다(창 3:6~19). 골로새서 1장 15절은 그리스도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하며, 3장 10절에 나오는 바울의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충만함과 온전함으로 회복되었음을 나타낸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본문들을 주로 개인을 언급하는 것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 전체 교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질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인종적, 사회적 집단이 아니라 하나라고 묘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환상 및 경쟁적 금욕주의를 강조했던 철학과는 달리, 바울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하나 됨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명절이 소외계층에게는 슬픔을 줄 수 있고 망가진 가정에는 분쟁과 폭력까지도 역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만이라도 의의 열매를 맺고 죄의 유혹을 극복하는 지혜와 평안을 소유하면 좋겠습니다.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