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敎臣(김교신) 先生 侍病記(시병기) 後記(후기) (1)
본 호와 다음 호에는 김교신 선생이 함남 흥남에서 돌아가셨을 때 병석에 누우신 후 운명하실 때까지 처음부터 옆에서 매일 간호의 수고를 했던 박춘서 씨의 시병기를 올린다. 상세한 기록이다. 우리로서는 실로 씨에 대해 감사가 없을 수 없다. 나 자신은 이를 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마음이 약해서 차마 읽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은 교정 때문에 두세 번 읽었다. 눈물로써 읽었다. 아니, 통곡할 뻔했다.
본지는 김 선생에 대한 기록을 대체로 빼지 않고 싣는 것을 방침으로 하여 왔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각 대학 석사 과정에서도 선생에 대해 상당수의 논문이 나왔다고 한다. 이는 물론 본지에 수록되지 못했다. 유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선배 중에는 나에게 김 선생과 무슨 친척 관계라도 있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물론 없다. 그런데 왜 선생에 대해 그렇게 열심이냐고 한다.
하여간 나는 정치면 이외에는 별로, 이렇다 할 인물이 없는 우리 근세사에서 김 선생은 교육과 애국과 신앙과 생활 실천에서 정말 위대한 천품을 타고 나셨던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물이라고 하면 사상과 종교적인 인물이라야 민족과 역사를 오래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점 선생은 젊어서 돌아가셨기에 그렇지, 선생의 스승 되는 일본의 우치무라(內村)보다도 심정면에서는 더 위대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예레미야 이상이었던 듯한 선생의 그 눈물을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이순신과 비교하는 데도 깊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본지에 선생에 대해 쓰인 모든 것을 망라하려는 데는 나로서는 이유가 있다. 다음 호에 이를 밝히려고 한다.
(1983년 9월 제343호)
金敎臣(김교신) 先生 侍病記(시병기) 後記(후기) (2)
전호 후기에서, 본지에는 김 선생에 대한 글은 가급적 모두 수록할 방침이라고 했다. 약속대로 여기서 그 이유를 밝혀야겠다. 나로서는 후일 선생의 훌륭한 전기 작가의 출현을 위한 준비로서 이를 하고 있다.
영문학상에서 전기의 백미라고 하는 보즈웰의 사무엘 존슨 전기 같은, 혹은 카알라일의 ‘크롬웰전’ 같은 위대한 국민 문학으로서의 선생 전기의 출현을 위해서이다. 보즈웰의 그것은 영문학상에서 逸才(일재), 걸물인 존슨의 위대와 생애를 남김없이 드러냈다. 카알라일의 ‘크롬웰전’은 의회군 鐵騎隊(철기대)로서 왕당파를 무찌르고 악명 높은 찰스 1세의 목을 자르고 護國卿(호국경)의 자리에 올라 淸敎政治(청교정치)를 강행 중 서거, 愚衆(우중)의 원성 속에 다시 찰스 2세의 등극으로 시체까지 발굴되어 찬탈자, 사살자, 역적으로 몰려 불태워졌던 크롬웰의 高邁(고매), 위대를 분명히 함으로써 영국의 전 국민으로 하여금 그를 다시금 최대의 애국자, 의인, 종교적 통치자로, 아니 더욱 공화 정치의 아버지로 숭앙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칼보다 강한 필력에 접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이런 김 선생의 전기의 출현을 기대한다. 물론 김 선생의 생애는 짧았지만 마치 위대한 화가가 초상화를 제작할 때 인물의 유년 시대에서부터 말년 인격의 완숙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추적, 대작으로 나타내는 것과 같이, 선생은 요절했지만, 그 천품적인 애국과 신앙 모습을 선생 7, 80의 완숙의 경지까지 끌어가는 훌륭한 전기가 나온다면, 이야말로 이것이 우리 민족의 原型(원형)으로서의 전형적인 理想像(이상상)의 제시가 되고 나아가 우리 국민 성격의 위대한 개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선생 전기의 대작의 출현을 기대함이 간절하다.
(1983년 10월 제3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