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에 친구 따라 대구 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곳을 번질나게 왕래하는 친구는 그 공덕의 힘으로 딸을 원하는 대학에 떡하니 합격시키는 경험을 지켜본 터라 얼치기 불자의 마음이 동요된 탓이다. 부처님이 부산 방향으로 앉아 계신지라 특별히 부산 사람들에게 영험이 있단다. 꼭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른 새벽 배낭에 공양미와 초를 챙겨 넣고 원하는 바를 한번 이루어 보자는 속내까지 챙겨 친구와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신자들을 태우고 팔공산으로 가는 관광버스는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만원이다. 기사님이 다른 차까지 불러 신도들을 분산하여 태우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팔공산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버스 안에 설치된 티브이 화면에는 고즈넉한 절의 풍경을 배경으로 맑고 카랑한 스님의 염불 소리가 차 안 가득 깔린다. 팔공산을 향하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찌든 세속의 몸과 마음을 먼저 정화시켜 주는 듯하다. 응달진 산자락에는 부산에서는 한겨울에도 볼 수 없는 잔설이 남아 있다. 이렇게 자연 속에 섞여 보니 지금의 내 생활은 사랑에 묶이고, 일에 묶이고, 욕망에 묶인 일상들이다. 살짝 자연에서 마음의 여유로움을 찾는다.
버스가 팔공산 입구에 도착했다. 산 아래서 올려다본 정상은 아득하기만 하다. 오르는 코스는 세 갈래 길이 있었지만, 우리가 가는 뒷 길은 계단을 잘 만들어 그나마 올라가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코스로 정했다. 오르는 좁은 산길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는지 오르내리는 계단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그야말로 人山人海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들은 남편의 사업과 가족의 건강이나, 자녀의 대학 입시나 대기업의 입사 등의 기원으로 험한 산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더욱이 구정초라 저마다 올 한해 가정의 안녕과 무사를 위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갓바위를 향하고 있다.
그 가파르고 험한 길을 허리까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쉬엄쉬엄 오르고 계셨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바라만 보고 있는데, 내려오시던 중년 아저씨 한 분이 한 말씀 툭 던지신다.
“할머니, 고마 집에 가만히 계시지, 다치면 어쩌시려고 이 험한 길을 올라오시는 거요.”
숨이 찬 할머니는 힘에 버거웠던지 땅과 얼굴을 마주하며 묵언한 채 그저 묵묵히 산만 오를 뿐이었다. 중년 남자는 할머니가 마치 어머니 같았을까. 그렇지 않으면 나이 드신 분이 극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어느 쪽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모르긴 해도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그만한 연세가 되었을 것이다. 저렇게 허리가 휘어져도 기어이 부처님을 찾아가, 아직도 빌어야 할 간절한 소원이 있었던가 보다.
세상살이 수월하게 넘어가는 것이 없어 늘 부모 탓으로만 돌리며 원망했다. 그 못난 딸의 투정까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내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듯 서러웠을까? 순간 눈앞이 흐려져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아무리 험준한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목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딸을 위해 팔공산 갯바위에 올라와서 부처님께 간절히 빌고 또 빌었으리라. 한순간 할머니의 모습이 내 어머니로 보여 눈가가 촉촉해지며 마음이 짠하다.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어머니 마음인 것을, 이제 와서 뒤늦은 후회만 있을 뿐이다.
나는 어떤 종교나 낯선 곳을 찾아서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 직장 생활과 전업주부의 일을 병행해야만 했기에 언제나 지쳤고 당장 현 생활이 우선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을 최선으로 삼았다. 한때 아들의 대학 입시 실패가 마치 나의 부족에서 일어난 것 같아 여간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다른 부모들처럼 종교시설을 찾아, 빌어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저 삼시 세끼 밥만 겨우 먹여 준 부모인 것만 같은 죄책감에 스스로 자신을 힐책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큰 돌을 깎아 갓을 쓴 부처님이 좌불하고 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누가 언제 저렇게 정교하게 조각을 했단 말인가. 웅장하고 장엄하기까지 해서 그저 바라보는 눈은 놀라울 따름이다. 안내문에는 신라 시대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 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638년 선덕여왕 7년에 조성한 것이라 쓰여 있었다. 현재 보물 431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비울 때는 잠깐이고 채우는 일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마음의 부처라 했던가. 어렵게 가파른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그 자체가 고행이며 부처님을 찾아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스스로 위안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뜻인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본다.
지난겨울 한파는 참으로 모질고 짓궂었다.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오리라. 친구가 있어 산을 올랐고, 내리막을 내려오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요를 일깨우는 염불 소리가 팔공산 산사에 울려 퍼지고 있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