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이별
비가 오니 흑백 뿐인 세상 속
빗물 소리만큼
시린 슬픔 하나를 떠올리며
손에 권 커피잔이 식어갈 즈음
'장동수씨... 오늘 출근 했나요?"
"누구 ...?"
"'동수 할머니 되는 사람인데
바쁘시면 안바꿔줘도 돼요"
"아.... 그게
" 잘 있는 거만 확인했으면 됐어요..."
뜻밖에 걸려 온 전화에
망설이던 눈빛은
바람에 흔들리는 비를 따라
지난 추억 하나를 더듬다
하루를 접고 있었다
나뭇잎에 고인 빗물들이
새벽에 매달려 있다 아침 햇살에
녹아내리는 시간을 따라
점심을 먹으려 일어서던 그때
울리는 벨 소리에 받아든 전화
"네.희창물산입니다.."
"자꾸 전화해서 미안해요
우리 동수 오늘도 출근 잘했나요?
"네....일 잘하고 있어요"
" 걱정이 되어서 전화했구먼요
우리 손자 잘 부탁드려요"
"네.... 일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회사 유리창에서 비치는
먼 길 떠나는 구름을 보며
가을을 가르쳐준 그동료와 함께
눈이 부시게 웃던 날을
떠올려보고 있었다
거리에 일렁이는 사람들을 만나도
또 다른 사람들만 지나가는
이 가을 속
기억을 걷는 시간을 따라
손자에 대한 사랑이
시들어가는 향기로 남은 할머니에게
전해주지 못했던 말을 건네려
재촉하던 발길은
언제나 번번이 뒷걸음질 치며
파란 봄
하얀 여름
빨간 가을
검은 겨울을
따라 보내는 동안
할머니가 손자를 찾는 전화는
이어지고 있었고
기억에 번지는 아픔을
씻어 드릴게 없나 싶어
마음을 꺼내 놓다 만 시간을 따라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을
바람으로 지은 집 대문을 열고
난 들어서고 있었다
할머니 머리맡에 놓아둔
손자와 찍은 사진첩엔
두 눈에 숨겨뒀던 눈물로도
잊을 수가 없는 슬픔들로
채워져 있는 걸 보며
'사랑했던 마음과 추억은
같은 맘인가 보다"
깊은 사랑이 죄였다는 듯
기억에 번지는 아픔의 흔적들을 보며 아파하지 말라고
눈물로 가려주고 싶어서일까...
하루하루와 한 이별 앞에
흐르는 눈물로도 다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가슴에다만 쓰고 있는 내게
"내일 우리 동수 출근하면
이 할미가 많이 보고 싶다고
꼭좀 전해주세 요..."
가을의 안부를
동료가 살고 있을 하늘에다 물으며
난 다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 번 더 이별하는 법은
그자리에 놓아둔 채로 ...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카페 게시글
$ 우리들의 이야기
한 번 더 이별
추웅처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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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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