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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Text Jh16,25-33
(25)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 노상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노인용 전동차를 타고 가는 한 노인을 발견한 그는 조용히 다가가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씌워 주었습니다. 노인은 낯선 사람이 씌워 주는 우산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전동차를 타고 가다가 비가 오면 서러운 마음이 들곤 했는데, 오늘은 선생님의 친절을 받게 되니 비가 와서 참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저 비를 맞는 노인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은 친절은 그 노인에게 비 오는 날을 기분 좋은 날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지나치지 않고,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내어 주는 일에서도 사랑은 드러납니다.
오늘은 사회복지주일입니다. 이웃을 돕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며,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까? 물론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사랑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활짝 핀 꽃이 자연스럽게 향기를 풍기듯 사랑의 향기를 풍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여러 가지 일 가운데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16,25-3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제목으로, 사랑의 삶을 명하시며 평안의 삶을 약속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본문은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실제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25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는 단순히 이야기를 빗대어 말씀하셨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아직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아버지 하나님에 관한 일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께서 오신 이후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6절과 2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며, 아버지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28절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29절과 30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제자들의 고백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고백 자체가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만큼 진실하게 믿음을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31절에서 예수님은 뜻밖의 질문을 하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왜 이렇게 물으셨을까요? 제자들이 조금 전에 한 고백을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뜻일까요?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질문에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시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지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곧 체포되실 것이고, 제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면 그들도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는 순간에도 그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에도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여러분, 바로 이 지점에서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실제가 구별됩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믿음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고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교회에서 사랑과 섬김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에는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어떻습니까? 나에게 친절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돕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그 사랑이 나타납니까? 다른 사람을 도우려면 내 시간과 물질을 내어 주어야 할 때에도 기꺼이 그렇게 합니까?
믿음의 진실성은 우리가 평소에 무엇이라고 고백하는가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흔들리는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고, 연약함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다시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한 번의 고백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고백에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나타나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3. 그렇다면 제자들의 믿음은 위기 앞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이어지는 32절에서 제자들이 흩어져 각기 제 갈 곳으로 가고 자신을 혼자 버려둘 때가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고백과 실제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었는지를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내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떠나 흩어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있다고 고백했지만, 두려움이 닥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믿음을 과신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괜찮아.’ ‘나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러나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두려워하고, 손해를 피하려고 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돕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면 지칠 수 있습니다. 도움을 주었는데 고마워하지 않으면 서운할 수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사랑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14장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혼자 힘으로 온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주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동행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은 성도에게서는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요14–16장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약속하셨고, 자신 안에 거하라고 하셨으며,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삶으로 나타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주일을 맞은 우리는 무엇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어떤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 자신이 이웃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나보다 부족한 사람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면서 상대방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상대방의 존엄을 존중하는 사랑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며, 한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어떤 이웃에게는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웃에게는 외로움을 덜어 줄 사람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웃에게는 개인의 도움을 넘어 전문적인 돌봄이나 공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도움을 발견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과 협력할 수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사랑을 우리 안에만 가두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웃을 돕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대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 삶에서 맺는 중요한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구하는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를 더욱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제가 외면하던 이웃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4. 주님 안의 평안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절정인 33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누리는 평안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리는 평안도 아닙니다. 세상의 고난과 악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최종적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믿음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을 도와도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해도 사회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조금 돕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러나 우리는 모든 외로운 사람을 찾아갈 수는 없어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습니다. 모든 가난을 없앨 수는 없어도 어려운 이웃에게 필요한 도움을 연결해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더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은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는 평안이 아니라, 그 고통 앞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평안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곧 두려움 앞에서 흩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수 있고, 사랑하다가 지칠 수도 있습니다. 하는 일이 보잘 것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사랑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의 어려움이 크다고 해서 사랑을 포기하지 맙시다. 내 능력이 작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지 맙시다.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부터 따지지 맙시다. 우리가 하는 작은 일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사랑을 미루지도 맙시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의지하며,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베풉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외로운 이웃에게 다가가고, 어려운 이웃에게 필요한 도움을 건네는 일부터 시작합시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이웃의 아픔에 다가갑시다. 우리 꼭 그렇게 해보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