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이 많을까요? 우동집이 많을까요? 카가와현에 가면 흔히 듣는 질문이다. 당연히 우동집이 많으니까 저런 질문을 하겠지 생각하니 답은 간단하다. 일본의 3대 우동하면 카가와현의 사쿠키, 군마현의 미즈사와, 아키타현의 이나니와 우동을 말한다. 그중 카가와현은 우동현이라 불릴 만큼 사누키 우동은 일본의 대표적인 우동으로 자리잡았다.
사누키는 카가와현의 옛 이름이다. 17시경 다카마쓰(高松)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인 큐카무라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은 용암으로 형성된 다섯 색의 봉우리가 있는 오색대(고시키다이)라는 곳에 있어 세토내해의 절경을 내려볼 수 있는 좋은 위치였다. 이른 식사를 하고 온천욕을 즐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9시 호텔을 출발하여 1시간 20분만에 내린 곳은 사누키 사이다라는 간이역, 100년이 넘는 시골역사와 수령 700년이 넘는 후박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사누키의 전원길을 산책하듯 걸어서 장작으로 불을 때어 우동을 만든다는 산속의 우동집 야마우치를 찾았다. 가케우동과 유부초밥 그리고 몇 가지 튀김을 파는 집인데 이곳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동을 먹기 위해 찾아온다는 게 얼른 이해하기 어려웠다.
버스로 고토히라 시내로 들어와 785계단을 올라 고토히라 신사의 본궁을 구경했다. 예로부터 '사누키 곤피라상'이라 불리는 바다의 신을 모신 곳으로 풍년과 바닷길의 안전을 기도하는 신사인데, 본궁의 역사적 의미와 유적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누키 후지산과 평야의 전망이 시원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내려오다 화장품으로 유명한 시세이도가 직접 운영하는 가미츠바키라는 카페를 꼭 봐야한다고 해서 들렸는데 푸른 동백을 새긴 벽이 특이하고 전체적으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커피 맛이 좋았다. 그밖에도 400계단에 있는 보물관, 431계단에 있는 근대 일본 양화의 개척자라는 다카하시 유이치의 작품전시관이 볼만 하다. 고토히라 신사의 진입로에는 지역의 특산품과 선물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긴료노사토 주조장도 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 10여 분 이동하여 들린 곳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우동순례에 소개하여 유명세를 탔다는 야마시타 우동 가게였다. 비교적 깨끗한 식당에서는 다양한 우동과 튀김 그리고 오뎅을 판다. 진영이는 카레우동 난 가케우동을 먹었다. 우동순례를 마친 우리는 호텔에서의 해넘이를 보기 위해 일찍 돌아왔는데 짙게 깔린 구름으로 인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셋째날, 다카마츠 시내에 있는 국가 특별명승지로 선정된 정원 중 최대 규모인 리츠린 공원으로 갔다. 소나무가 무성한 시운산을 배경으로 6개의 연못과 13개의 인공산이 교묘하게 배치된 에도시대 초기의 회유식 다이묘 정원으로 뛰어난 토지분할과 자연석의 배치로 나무와 돌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봄의 매화와 벚꽃, 여름의 창포와 연꽃, 가을의 단풍, 그리고 겨울의 동백이 그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풍광을 보이며, 천 그루가 넘는 소나무와 함께 '한걸음 마다 하나의 풍경'이라고 일컬어지는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학과 거북 소나무, 상자송, 병풍송이 특히 아름답다. 공원의 중심지에 있는 상공장려관은 1899년 '카가와현 박물관'으로 지어진 곳이며,남쪽 정원의 기쿠게쓰테이(掬月亭)는 역대 영주가 각별히 사랑하며 애용했던 다실로 가장 큰 다실이다. 이곳에서 보는 연못의 경치가 압권이라하여 700엔을 주고 말차를 시켜 안에서 차를 마시며 우아하게 바깥의 풍광을 즐겼다.
정원은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간이 없어 남원만 둘러보아 아쉬움이 남았다. 진영이는 아침을 먹은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고 해서 마침 찹쌀로 만든 당고를 팔고 있어 사주었는데 너무나 맛있다며 더 사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버스는 카가와현을 넘어 도쿠시마현으로 접어 들었다. 돈가스가 맛있다는 식당에 들러 전설의 돈가스를 먹었다. 보기에는 양이 적은 것 같았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도 있고, 양도 많아 배불리 먹었다. 이제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천년순례길 오헨로 트레킹을 하기 위해 1번 절인 료젠지로 갔다. 8세기 무렵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홍법대사(고보다이시)가 시코쿠의 해안길을 따라 수행했는데 그곳에 새로운 사찰도 들어서며 모두 88개 1,400km의 순례길이 된 것이다. 오헨로(순례자의 뜻)는 전통에 의하면 흰 삿갓에, 흰 장삼을 입고 나무지팡이를 짚었는데, 옛적에는 순례를 하다 죽은 사람이 많아 흰 장삼은 수의를 뜻하며, 삿갓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가리는 도구로 쓰였다고 한다. 흰 삿갓에는 동행이인(同行二人)이라는 글귀를 썼는데 고보이다시와 함께 걷는다는 의미이며 나무지팡이가 곧 고보이다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잠을 잘 때도 머리 맡에 놓고 자야하며, 순례가 끝나면 깨끗하게 씻어 마지막 사찰에 기증하는 전통도 있다.
료젠지 입구에는 전통복장을 한 순례자 인형이 서있었다. 순례의 시작 사찰이어서 납경소에 들어가보니 복장과 순례를 증명하는 납경장 등을 팔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절 입구에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 후 절로 들어가 입구에 있는 우물에서 왼손과 오른손을 씻고, 왼손으로 물을 받아 입을 행군 뒤 종을 두번 치고 법당에 올라 대개 반야심경을 외우고 납경소에 들러 준비해 간 납경장에 300엔을 내고 증명을 받고 소원을 적을 묵서를 받아 다음 사찰로 이동하는 형식에 따른다. 나도 휴대하기 쉬운 작은 크기의 납경장을 2,500엔을 주고 샀다.
료젠지(靈山寺)에서 2절 극락사까지는 1.2km정도 시가지 도로를 걸어야 하며, 극락사에는 홍법대사가 직접 심었다는 장명이라는 이름의 큰 삼나무가 있다. 세번째 절은 금천사다. 마을 외곽길을 2km 이상 걸어갔다. 대개의 일본이 그러하지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들이 몇 명 보일 뿐 거리는 한산했다. 네번째 절 대일사까지는 5km가 넘는 거리다. 진영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제과점에 들러 빵을 하나 샀는데 주스를 덤으로 주었다. 사찰순례자들에게는 무료숙박이 가능한 곳도 있고, 과일이며 심지어는 적은 돈이지만 돈을 주는 경우가 있다는데 순례자에게 덕을 베품으로 해서 적선을 한다는 마음이다
대일사 가는 길은 마을 뒤 숲길로도 이어져 마을 외곽 포장길을 걷는 것보다는 훨씬 부담이 덜 했다. 대일사에서 다섯번째 절인 지장사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가야 하는데 약 1km 더 가면 된다. 지장사에는 오백나한전이 있어 그곳을 보려면 별도로 티켓을 끊어야 한다. 지장사에서 여섯번째 절인 안락사까지는 거의 6km를 걸어야 하는데 길이 마을 외곽의 포장길로 이어져 매우 피곤한 길이다. 진영이가 빨리 걷자고 재촉을 해서 1시간 여만에 절에 도착했는데 버스도 방금 도착했다며 버스를 타고 이동한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왔냐며 놀란다. 이곳에서 일곱번째 절까지는 1k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둘이서 다녀올까 하다 우리 일행들이 곳 도착할 것 같아 가지 않았는데 무려 40여 분이 지나서야 뒷사람들이 와서 조금은 아쉬웠다. 시코쿠 천년순례길의 첫 걸음을 내딛어 이제 가까운 시일에 88개 사찰을 순례할 기회를 만들 것을 다짐하면서 15km의 트레킹을 마감했다.
도쿠시마로 들어와 JR에서 운영하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브라이드 스푼 윌리 사장과 둘이서 정종을 마시며 일본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침 6시에 일어났으나 어젯밤 마신 정종의 여운이 남아있다. 쌀죽과 된장국으로 가벼운 식사를 하고 9시 호텔을 나섰다. 고베방향으로 40여 분 이동하여 찾은 곳은 나루토시에 있는 오츠카미술관이다. 오츠카미술관은 세계 최초의 도판명화 미술관으로 오츠카그룹이 창립 75주년을 기념하여 설립한 일본 최대의 상설 전시공간으로 고대 벽화에서부터 현대 회화까지 1,000여 점의 대표적 작품들을 엄선하여 전시하고 있다. 오리지널 작품은 퇴색이나 훼손을 피할 수 없지만, 도판명화는 2,000년이 지나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어 그 가치가 대단하고, 그 기술 또한 대단하다.
연면적 8,897평에 지하 5층, 지상 3층으로 1998년 개관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램브란트의 자화상, 샤갈의 그림들, 고흐의 해바라기,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끈 자유의 여신,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클림트의 입맞춤, 뭉크의 절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 보디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성당의 복원, 시스티나홀 등 눈이 호강한 하루였다.
이번 일본 여행은 사쿠키 우동투어였는데, 1,200년의 역사를 지닌 오헨로 순례길도 걷고, 오츠카미술관을 감상하는 행복한 여행이었다. 카가와현은 우동의 왕국이면서 나오시마, 데시마, 메기지마, 오기지마, 셔도시마 등 세토내해의 절경을 이룬 섬들을 건축과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재탄생한 곳이다. 여행은 바쁜 삶속에 휴식을 가져다주는 활력소이면서, 새로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이다. 정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