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가까이 와 있다
윤정혁
그는 습관처럼 해가 중천에 오를 때쯤에야 작업실이 있는 낡고 오래된 건물의 계단을 헉헉대며 오른다. 작업실인 4층에 이르면 진이 빠진다. 싸늘한 실내를 덥히려고 전기난로를 켜고 조간신문을 읽는다. 이어 테이블 위에 널린 잡서를 이것저것 뒤적인다. 그림과 액자, 붓통과 널린 물감 튜브, 팸플릿과 화집, 책들이 잡다하게 어질러진 실내는 어수선한데도 스무 평 남짓한 공간이 오늘따라 넓어 보인다.
이젤 위의 캔버스는 며칠째 박제된 시간으로 머물러 있다. 한동안 멍하니 그림을 응시한다. 살아오며 어느 한때 가졌던 열정이나 삶에 관한 몇 가지 확신도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요즘 새삼 알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도 마뜩잖은 그림을 그리고 잡서를 읽거나 커피를 마신다. 우두커니 끝없는 무력감에 빠져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세상이 수상해서 어딜 나다니지도 못한다. 그래도 그는 이 공간에 머물 때가 편하고 마음이 놓인다.
또 한해가 지났다. 해가 바뀌어도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은 지 오래다. 제야를 전후한 며칠 동안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휘저어서 잠을 설쳤던 때가 있었다. 명확하진 않았지만, 그건 설렘 같은 것이었다. 영육이 그런대로 멀쩡했던 때였다. 어떤 시도를 획책하려는 수상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잠을 설치며 새해를 맞곤 했다.
테이블 위에 두 발을 올리고 한껏 늘어진 자세로 눈을 감는다. 갈 길인지의 여부를 따질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살았다.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눈부신 젊음 같은 게 도통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찬란한 전성시대는커녕 단 하루 쨍하고 해 뜬 날도 없었던 것 같다. 울분과 열패감에 절어 헤맸던 궁핍하고 남루한 기억이 너무 많다.
이따금 살아오며 저지른 낯 뜨거운 끔찍한 몇 가지 일이 선명하게 떠 오를 때면 창피해서 죽고 싶다. 그는 불안에 쫓겨 허둥대다 진땀을 흘리며 잠을 깰 때가 잦다. 분명치도 않은 쫓기는 꿈에서 깨어날 때는 치미는 화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맨다. 죽을 때까지 헤어날 수 없겠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치를 떤다.
우등상을 탄 그가 동구 밖 연못의 왕버들 우거진 둑을 나는 듯이 달려 집으로 갔을 때 아버지는 오 남매 중 제일 똑똑한 놈이라고 그를 칭찬했다. 그해 유월 여름방학이 오기 전에 그 망할 놈의 전쟁이 났다. 그 후부터 그의 집과 그의 인생은 제대로 꼬였다고 생각한다.
작업실이 있는 건물 아래쪽 사십 미터쯤에 요양병원이 있다. 거길 지날 때마다 언제나 후줄근한 환자복을 입은 우울한 표정의 늙은이 서너 명이 입구 계단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본다. 번쩍이는 경광등을 켠 119 엠블런스가 수시로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들락거린다. 영구차는 아침 일찍 조용히 병원을 빠져나간다. 그는 늘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요양병원이 거기 있는 게 못마땅하다.
그가 4층 작업실의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문을 나서는 시간은 대게 저녁 일곱 시 삼십 분 전후다. 문을 잠그고 열쇠를 빼내면 기다렸다는 듯 문밖 센서 등이 켜진다. 유난스레 밝은 led 등은 작업실 안과 밖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해 준다. 그는 경사가 심하고 오래되어 얼룩진 화강석 계단을 조심하며 내려간다. 지난해 어쭙잖은 일로 손목이 부러져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익숙한 집이나 화실을 나설 때마다 너무 빨리 변하는 낯선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1층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설 때는 언제나 좌우를 살핀다. 느닷없이 코앞에 뛰어드는 차를 조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그 노파가 길게 뻗어있는 건물의 바깥쪽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없다. 안도감 같은 걸 느끼며 골목 끝 대로변 버스정류장의 긴 벤치를 곁눈질한다. 대개 그녀는 거기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버릇처럼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낡은 노랑색 비닐우산(움직일 때는 짚고 다니는)을 짚고 다닌다. 작달막한 키가 살짝 굽어 더 적어 보인다. 짧은 흰머리는 빗지도 않아 푸석하다. 그녀의 얼굴은 검버섯과 주름으로 덮여있다.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전면을 응시하고 있으나 딱히 대상을 정하고 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입성은 비교적 단정하나 초라하다. 일 층의 안경원 주인은 그녀가 아흔 중반은 넘었을 거라고 한다. 그녀가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는지, 잠자리는 어딘지, 자식은 있는지, 그 자식이 또 뭘 하며 사는지 모른다며 “저러다 죽겠지요”라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못마땅하다.
그녀는 하루 내내 대학이 인접한 작은 빌라가 들어선 이 일대를 어슬렁거리다 저녁 늦게야 거처로 찾아드는 모양이다. 그녀가 하는 일은 하릴없이 쓰레기가 쌓인 전봇대 아래를 기웃거리거나 버스정류소 옆의 벤치에 앉아 오가는 행인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거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그녀가 사그러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애써 그녀의 존재를 잊으려 해도, 작업실을 오갈 때마다 마치 엉덩이에 들러붙은 껌처럼 개운찮은 감정으로 그녀가 떠오르고 눈에 띈다. 그녀가 그의 삶에 간섭한 적도 없다. 딱히 연민은 아니고 그냥 부담스럽고 성가시다. 그는 그녀의 입장에 개입하지도 않으면서 그녀에게 향하는 관심을 떨치지 못한다.
며칠 전에 평택으로 이사 간 K 씨가 죽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며칠 전에 그가 안부를 물어 왔다. 그게 하직 인사였구나 싶다. 그도 누군가에게 그런 전화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한다. 근래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답답해하는 일이 잦다.
차에 시동을 걸며 노파에 대한 ‘이 불편한 실랑이가 끝났으면’ 하고 바란다. 그녀가 그에게 자신을 잊게 만들어 주든지, 그에게 먼저 그녀를 잊게 되는 일이 닥치든지. 확실하게 짚을 수는 없지만, 머지않아 그 일이 일어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때면 근래 그를 에워싸고 무시로 일어나는 개운찮은 일들도 사라지리라. 살아온 지난 일에 짜드라 감사할 일도 없지마는 그렇다고 저주를 퍼부을 억울한 일도 없으니 ‘그만하면 고맙지 않은가’ 하고 그는 중얼거린다. 내일도 그는 작업실을 찾을 것이다.
(《수필문예》 제20집, 2021.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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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에세이문학》 등단.
수필문예회, 에세이문학작가회, 대구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남향집》
yoonj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