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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문 글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
https://blog.naver.com/ktusjye/221696445534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어느 카페에 활동한지 십 년이 넘어섰다.
처음에는 눈팅만 하다가
강원도 인제에 꿈을 위한 뿌리를 내린 뒤
본격적으로 온, 오프라인에 참석하였다.
도메인,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한때 수천명 회원이 활발하게 교류하기도 했었다.
흥망성쇠가 어찌 국가나 기업에 국한될까?
이러저러한 사유로
지금은 카페로 전환, 회원수 육 백 여,
게시글 올리는 이들은 십여명 안팍이다.
하지만 풍상에 깍이고 떨어져나가
골수들만 수십명 남아
친동기간처럼 애틋한 유대를 이어가고있다.
물론 본 블로그 글들도
카페 한 코너를 할애해 주어 공유하고있다.
또래 회원 한 분이
한동안 바쁜 일로 소원하다가
정모를 계기로 카페를 둘러보던 중
그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한때 자주 만나 어울렸지만
꿈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여행을 다녔지만
서로 취미는 화제가 아니었다.
게시글에 달린 덧글,
'담에 나두 쫌 델꼬 댕기셔요~~^^',
그저 인사말이려니 했다.
그런데 전화를 주셨다.
'언제 계획이 있는지...'
그렇게 날을 잡고 움직인 것이
이번 여정이다.
사는 곳이 서울 상계동과 경기도 일산,
편하게 오가기 쉽지 않은 거리다.
우이령길, 우이동에서 출발하고,
고양시 경계를 지난 양주 교현에서 출발하여
열 시 반 석굴암에서 만나
여성봉으로 올라 오봉, 사패산, 의정부로 하산을 예정하고 있었다.
작년 산행 중,
여성봉에서 석굴암 방향 이정표를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7시 조금 지나 주엽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역에서 704번 버스로 환승하여 가고 있는데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여덟시 오십 오분 이다.
'어디쯤 인지, 입구에 도착했다고'
당연히 우이동탐방지원센터로 생각하고
나도 다와가니 출발하시라고 하니
우이령길 교현탐방지원센터란다.
아홉시 조금 지나
우이령, 오봉산석굴암입구 정류장에 하차한다.
버스정류장 인근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 통을 받아 잰걸음으로 올라간다.
초입 아파트 담벽에
우이령을 소개하는 글들이 적혀있다.
하루 일천명, 교현, 우이 각 오백명,
인터넷(65세 이상, 장애인, 외국인 전화예약 가능)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예약 사이트 링크 :
https://reservation.knps.or.kr/information/trailInfo.action?trailCd=2)
입산 허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오후 4시까지는 하산하여야 한다.
예약은 이용일 전 날 오후 5시까지 가능하며
열명까지 신청가능하다.
또한 입산시 신분증 확인을 하니
반드시 지참하여야 한다.
우이령길 교현탐방지원센터 입구에서
일행을 만나 반갑게 인사한다.
어떻게 된 일이냐 물으니
결국 의사소통 문제였다.
다만 교통편이 나쁘지 않았다니
그나마 미안한 마음이 덜어진다.
단풍이나, 신록, 화사한 꽃이나 눈꽃이
마음에 끌리지 않는건 아니지만
굳이 때를 찾아 다니지 않는 편이다.
절정은 이니지만
울긋불긋 단풍을 보니
이 계절 특히 많은 이들이 산을 찾는 이유를 헤아린다.
오봉이 고개를 내민다.
조금 더 길 따라 올라가니
오봉전망대가 계곡 쪽 훤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연봉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완만한 길을 따라가니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다.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을 올라
오른쪽으로 굽을 모퉁이로 꺽어져
오봉산 석굴암 불이문 앞에 선다.
양식은 일주문으로 되어있다.
너머 바위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왼쪽이 관음봉, 오른쪽이 오봉 중 하나다.
석굴암은 명칭에서 암자를 연상하지만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했으며,
고려 나옹화상께서 3년간 수행정진 했다 한다.
창건 뒤 여섯 차례나 폐사되었다가 중창되었다.
설암 관익 대사가 석굴암을 중창하여
지장보살과 나한존자 석상을 조성, 선풍을 지키는 수도처로 중창하였다는 설은 신빙성이 있다.
조선 비운의 군주 단종 비 정순왕후의 원당이었다고 한다.
그 후 석굴암은 수차례 폐사되길 반복하다가
1935년 승려 응담이 김병룡의 시주로 중창하였는데,
당시는 나한전으로 개수된 조그만 석굴만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었다가
1954년 초안당 유성이 들어오면서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출처 : http://ya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yangju&dataType=01&contents_id=GC04301193>
대웅전이다.
2014년 우이령탐방길에 들렀을때
주변을 둘러막고 신축중이던 건물이 완공되었다.
정면에 현판은 없으나
대적광전으로 소개하고 있다.
범종각과 삼성각 뒤로
관음봉, 오봉을 인 산세가 늘어섰다.
석굴, 나한전이다.
경내를 이리 저리 둘러보며
여성봉 오르는 등산로를 찾아보지만
이정표를 찾을수 없다.
마침 경내를 청소하는 처사님에게 길을 묻는다.
일한지 오래지 않으신듯
대답이 석연치 않다.
인근 창문이 열리고 스님 한 분이 얼굴을 내미신다.
다시 한 번 물으니
지금은 폐쇄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여성봉에서 석굴암 가는 이정표를 본 것이 작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보던 중
사찰 오른쪽 윤장대 너머 로프를 보았던 터라 넘어가 본다.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은 있지만
로프로 출입을 막아 놓았다.
그제서야 폐쇄되었다는 스님 말씀을 믿는
내가 어리석었슴을 깨닫는다.
출입통제선을 넘어서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다시 돌아 나와 불이문 안쪽 앞에 선다.
반월모양 다리가 문앞 맨땅에 놓여있다.
아마도 사찰 경내를 들어서는,
연못이나 개울을 건너는 피안교를 본뜬 것은 아닐까?
생노병사의 번뇌에서 벗어나
불계로 들어서는 의식인 셈이다.
완만한 우이령길을 걷는다.
우이탐방지원센터방면에서 만나는
오봉전망대에서 바본 오봉이다.
다섯 봉우리가 보인다.
일부러 올려놓은듯 네 봉우리에
돌이 얹혀있다.
여기에 재미있는 전설 몇가지가 있다.
산 아래 아들 다섯을 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 고을에 원님이 새로 부임해 왔다.
원님에게 아리따운 고명딸이 있어
다섯 아들이 모두 원님의 딸에게 장가들겠다고 한다.
원님은 산 위에 가장 무거운 바위를 올려놓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다섯 아들이 바위를 올려놓는 경합을 벌이게 되어
다섯 개의 봉우리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넷째 아들은 바위를 산에 올려놓지 못해
지금도 넷째 봉우리에 바위가 없다고 한다.
비슷한 다른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부자가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아들들이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다
돌을 가장 멀리 던지는 형제가 재산을 물려 받기로 한다.
그렇게 돌을 던졌는데
둘째 아들은 봉우리 위에 돌을 던지지 못해
지금도 둘째 봉우리에 바위가 없다고 한다.
두 전설과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옛날 어느 부인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과거 합격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리던 부인은
남편이 돌아올 무렵이 되자 밤마다 불을 밝히고 기다렸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불을 밝히는 사이
더 이상 불을 밝힐 것이 없게 되자
다섯 손가락에 차례로 불을 붙여 남편이 돌아올 길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인이 손가락에 불을 밝힐 때마다
산봉우리가 하나씩 생겼으며 이것이 지금의 오봉산이라고 한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전설 첫번째와 두번째 봉우리가 틀린다.
둘째 봉우리와 넷째 봉우리가 얼핏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앞에서 보면 둘째 봉우리가 뒤에서 보면 넷째 봉우리가 되니
그릇된 내용은 아닌 셈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자
이정표에 소귀고개, 우이령으로 표시한 이정표가 보인다.
길 양쪽으로 군사시설이 보인다.
대전차방호용 방어벽이다.
우이령길 작전도로 개통 기념비다.
미군 공병대에 의해서
1964 ~ 65년 중 작업을 진행하여
1965년 4월 24일 작전도로로 개통하였다는 기념비다.
옆 안내문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에 의하여 개통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이탐방지원센터 조금 못미친 길가 벤치에 앉아
김밥과 막걸리를 꺼낸다.
이를 어쩐다...
성대수술에서 회복중이라
오랜시간 동안 금주 중이라 하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난 정모에서도
술 한 잔 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혼자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데
술로 많은 사람들을 사귀다가 금주 해야하니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하소연한다.
별 생각없이 준비해간 막걸리,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무안해진다.
우이탐방지원센터, 우이유원지를 지나
우이천을 가로지르는 한일교 건너
왼쪽으로 급하게 꺽어 우이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입에 자리잡은 식당을 지나
우이암 방향으로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넓게 봉긋한 암봉이 보이고
그 오른쪽 손가락 모양 바위가 우이암이다.
소의 귀를 닮았다하여 우이암이라 부른다.
바위의 모습이 부처를 향해 기도하는 관음보살을 닮았다 하여
관음봉이라고도 하고,
사모관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사모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봉산에 분포하는 많은 바위들이
호랑이·코끼리·두꺼비·코뿔소·학 등 각종 동물의 형상을 하고
관음봉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다 하여
불교에서는 우이암을 관음성지라 여기기도 한다.
<출처 : http://dobong.grandculture.net/Contents?local=dobong&dataType=01&contents_id=GC04900044>
우이암 오른쪽 아래 원통사가 보인다.
동행을 요청해주신 일행 덕분에
붉게 타는 단풍을 보는 호사를 누린다.
위쪽으로 축대 위 난간이 보인다.
원통사는 신라 경문왕 3년(864)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문종 7년(1053) 관월대사가 재창,
조선 태조 원년(1392)에 천은선사가 삼창하였다.
이후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순조 10년(1810) 청화대사가 중창 후 나라에 큰 경사가 있자
'나라와 산천의 은혜를 갚았다'는 뜻으로 보은사라 부르기도 했다.
원통(圓通)이란 '절대의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한다'는 뜻으로
관음보살의 덕을 칭송하여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담장 위 범종각에
'도봉산 원통사'현판이 보인다.
일주문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원통보전과 종무소,
위 약사전과 삼성각이 보인다.
우이암을 뒤로 두른 배경이 우람하다.
'도봉산 원통사', 현판이 걸려있는 범종각이다.
본당인 원통보전이다.
석간수가 약수로 사용되는듯 한데
갈수기라 그런지 물이 말랐다.
바위가 암봉에 기댄 사이 통로지나
석굴 나한전이 보인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이 석굴에서 백일기도를 하였단다.
약사전이 막힘없이
인간세상을 내려보고 있다.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약사전과 원통보전,
범종각과 종무소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삼성각이다.
입구 원통사 안내문에서
'상공암' 음각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작손으로 선 바위벽을 유심히 찾아보지만
좀처럼 찾을수 없다.
마침 종무소에서 나오는 보살님이 보여 묻는다.
바로 위 약사전을 가르키며
앞에 글이 새겨져 있다고 알려준다.
대체적으로 바위 벽면에 새겨진 글을 떠올렸는데
약사전 앞 바위 암반에 음각되어있다.
선입견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새삼 경험한다.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계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상공암(相公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다.
약사전 아래
상공암 글자가 암각된 '거북바위'다.
사찰옆에 자리잡은 단풍나무 이파리가
세상과 연을 끊기 전 피를 토해내고있다.
그리 멀지않은 곳에 우이암이 있으나
동료가 있어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원통사 왼쪽 암벽에 자리잡은 나무들이
유난히 짙은 채색을 하고 있다.
살아가는 환경이 열악하니
더 정열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가진 자들이 짙은 채색을 하는
인간세계와 사뭇 다르다.
원통사 아래 갈림길로 다시 내려선다.
도봉산 인근에 사는 일행이
평소 산책길 끝에 닿는다는 무수골로 방향을 안내한다.
계절은 소식으로 왔다가 간다.
그 소식을 듣고
길 나서는 이들에게 색으로 완성된다.
눈호강을 하며 다음을 기약해보지만
다시 나설지는 두고 볼 일이다.
등산로에는 이미 낙엽이 수북하다.
그렇게 가을을 지나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을 마무리한 걸음은
도봉산역 인근으로 이어진다.
전국 막걸리 맛을 볼 수 있다는 팔뚝집을 찾았으나
오후 다섯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단다.
술도 마시지 못하면서도 배려해주신 덕분에
우거지순대국에 소주 한 잔 더 하고 귀가를 서두른다.
오랜만에 일행과 함께한 시간,
편안한 시간이었다.
다음 동행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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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뚜벅뚜벅 산행도 하고싶지만 부실한 투다리를 위해 지나치지만 시래기순대국에 소주 한잔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봅니다.....^^
그러게요 ㅎ
만이들 멀어지네요
자주들리고 예전처럼 왁자지껄 그때가 그립습니다 나야 전성기지나 참여했지만
여전하시죠
남쪽도 함 다녀가시게요
한 번 들르지 싶습니다.
뒤 마복산 같이 올라가실 시간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같은 취미를 가지고 카페를 운영하고
함께 산행하시고
정말 삶에 활력과 힐링이 절로되겠습니다
저는 차장님글을 읽을때마다
놀랍습니다
전설과 부연 설명까지 꼼꼼히 쓸 수 있다는게 정말 감탄을 자아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자료찾느라
시간이 더 걸립니다.
그렇게 긴 여행을 하게 되니
그것도 괜찮습니다.^^
다녀가셨네요.....^^
언제 연락이 오나 궁금했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