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비구들이여, 나는 구경의 지혜가 단박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닦음으로
구경의 지혜는 이루어지는 것이다."(*1)
(*1) 여기서 세존께서는 ‘나는 구경의 지혜가 단박에 성취된다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시고,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닦음으로 구경의 지혜는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신다.
본 『맛지마 니까야』에 나타나는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가 그렇고,
『디가 니까야』에 나타나는 23단계 계·정·혜의 정형구가 그렇다.
그리고 본경 §23에 나타나는 12가지 점진적인 방법이 그렇고,
본서 제3권 「가나까 목갈라나 경」(M107) §3이하에 나타나는 계를 지님부터
네 가지 禪까지의 점진적인 방법도 그렇다.
그러므로 범부에서 성자의 첫 단계인 예류자가 되기 위해서는 순차적이고 점진적인 수행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과정과 절차와 순서와 차례가 있는 세상의 모든 입장에서도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한편 여기서 '단박에'는 ādikena eva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단 한 번에 첫 번째에 바로, paṭhamaṃ eva)”(MA.ⅲ.193)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개구리가 단 한 번에(paṭhamaṃ eva) 껑충 뛰어올라서 가는 것처럼,
그렇게 구경의 지혜가 이루어져서 아라한과에 확립된다고 말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MA.ⅲ.193)
2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순차적으로 공부짓고
순차적으로 행하고 순차적으로 도를 닦아 구경의 지혜가 이루어지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스승에 대해 믿음이 생긴 자는 스승을 친견한다.
친견하면서 공경한다.
공경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귀 기울이면서 법을 배운다.
배우고 나서 법을 호지한다.
호지한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뜻을 자세히 살필 때에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인다.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에 열의가 생긴다.
열의가 생길 때에 시도한다.
시도할 때 세밀하게 조사한다.
세밀하게 조사한 뒤 노력한다.
노력할 때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그것을 꿰뚫어본다."(*2)
(*2) “‘열의(chanda)’란 하고자하는 유익한 열정이다.
‘세밀하게 조사한다(tuleti),’는 것은 무상, 고, 무아라고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세밀하게 조사한 뒤 노력한다(tulayitvā padahati).’는 것은
세밀하게 조사할 때 도의 노력(magga-padhāna)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한다(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는 것은
정신의 몸(nāma-kāya, 즉 정신의 무더기)으로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다.
‘통찰지로써 꿰뚫어 본다(paññāya ca naṃ ativijjha passati).’는 것은
정신의 무더기가 함께한 도의 통찰지로써 꿰뚫고 보는 것이다.”(MA.ⅲ.193)
24.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는] 참으로 그런 믿음이 없었고, 참으로 친견이 없었고,
참으로 공경이 없었고, 참으로 귀 기울임이 없었고, 참으로 법을 들음이 없었고,
참으로 법을 호지함이 없었고, 참으로 뜻을 자세히 살펴봄이 없었고,
참으로 법들을 사유하여 받아들임이 없었고, 참으로 열의가 없었고,
참으로 시도가 없었고, 참으로 세밀한 조사가 없었고, 참으로 노력이 없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길을 잃었고, 그릇된 도를 닦았다.
비구들이여, 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이 법과 율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얼마나 잘못 들어섰던가!"
25. " 비구들이여, 네 구절로 된 진리(*3)가 있나니, 그것을 암송할 때
지자는 오래지 않아 통찰지로써 그 뜻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 암송하리라. 이것을 잘 이해하도록 하라."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누구라고 그 법을 이해하겠습니까?"
(*3) “‘네 구절로 된 진리(catu-ppada veyyākaraṇa)’란
사성제에 대한 설명(catu-sacca-byākaraṇa)을 말한다.(MA.ⅲ.193)
26. "비구들이여, 스승이 세속적인 것을 중히 여기고 세속적인 것을 상속받고
세속적인 것에 애착을 가지고 머문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런 것을 얻으면 이것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얻지 못하면 이것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이런 흥정을 해서는 안되는데,(*4)
하물며 그가 모든 세속적인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여래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4) “마치 물건을 사고팔 때 가격을 올리거나 깎는 것처럼 흥정하는 것을 말한다.”(MA.ⅲ.194)
27.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5)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6)
'세존은 스승이시고, 나는 제자이다. 세존께서는 아시고, 나는 알지 못한다.' 라고.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
스승의 교법은 증장할 것이고 자양분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피부와 힘줄과 뼈가 쇠약해지고 몸에 살점과 피가 마르더라도
남자다운 근력과 남자다운 노력과 남자다운 분발로써
얻어야 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정진을 계속하리라.'라고.(*7)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한 가지 결실을 얻나니,
바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증득하거나 만일 취착이 남아있다면 불환자가 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5) ‘통찰하여 취할 때’는 pariyogāya를 옮긴 것이다.
pariyoāhitvā의 축약형으로 깊이 들어가서 취한다는 의미이다.
(*6) “‘법다운 것(anudhamma)’이라는 것은
고유성질(sabhāva)이 [있는 진실한 것]이라는 말이다.
즉 ‘세존께서는 한 자리에서만 먹는 그 이익을 아시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스승에 대한 믿음으로 하루에 세 끼 먹는 것을 버리고 한 자리에서만 먹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고, 그 고유성질이 있는 [진실한 것]이다.”(MA.ⅲ.194)
(*7) 주석서는 이러한 ‘정진(vīriya)’을 네 가지 요소를 갖춘 정진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네 가지는 본문에 나타나는
‘피부(taca), 힘줄(nahārū), 뼈(aṭṭhi), 살점과 피(maṃsa lohita)’이다.(MA.ⅲ.194)
끼따기리 경 (M70)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2권 707-7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