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정약전 . 이청 지음. 정명현 옮김. 서해문집
/玆山(자산)은 黑山이다. 나는 흑산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두운 느낌을 주어서 무서웠다./
자산어보의 서문의 맨 첫 줄은 이렇게 쓰여 있다. 정약전은 이 책이 병을 치료하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재물을 잘 관리하는 데 이용되길 바랐으며, 한 가지 더 시인들이 좋은 표현을 위해서도 사용되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옮김이 정명현은 출판사가 제공 한 정보에 의하면 임원경제연구소 소장이다. 학부에서는 유전공학과를 졸업하고, 도올서원과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임원경제지> 완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서해문집 출판사의 오래된 책방 시리즈 20번째 책이다. 총 쪽수는 296쪽이다. 머리말은 4쪽에서 8쪽이다. 9쪽부터 24쪽 까지는 <자산어보>에 대하여 옮긴이의 개인적 술회와 개략적인 설명과 쟁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나는 지금 책장을 일일이 넘겨 가면서 확인하고 있다. 저자는 <자산어보> 네 가지를 높게 평가한다. 새로운 분류방식을 채용, 작명을 시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정리, 경험지식과 문헌 지식의 적절한 조화를 든다. 정명현은 <자산어보>를 정약전과 이청의 공동 창작물이라 주장한다. 25쪽은 일러두기에 할애했다. 26, 27은 책의 차례를 실었다. 28, 29에는 아래에 옅은 회색 바탕에 아래에는 물고기 그림을 그렸고, 29 오른쪽 위로는 한문으로 세로쓰기로 자산어보가 쓰여 있다. 30,31은 두 쪽에 걸쳐 정약전의 서문이 실렸다. 가경 갑술년(1814)에 한강 가에 살던 정약전이 쓰다, 이렇게 쓰여 있다.
<자산어보>는 총 3권으로 쓰여 있다.권 1는 인류(비닐이 있는 어류), 권 2는 무린류(비닐없는 어류), 권 3는 잡류(기타 해양생물류)를 실었다. 33에서 89까지는 권1 이다. 권1에는 인류(비닐 있는 어류)를 싣고 있다. 석수어. 치어. 노어, 강항어, 시어, 벽문어, 청어, 사어, 검어, 접어, 소구어, 도어, 망어, 청익어, 비어, 이어, 전어, 편어, 추어, 대두어 총 20종으로 대 분류를 하였다.
다시 소분류로 석수어는 대면, 민어, 추수어 3종. 치어는 치어, 가치어 2종. 노어는 노어 1종. 강항어는 강항어, 흑어, 유어, 골도어, 북도어, 적어 6종. 시어는 시어, 1종. 벽문어는 벽문어, 가벽어, 해벽어 3종. 청어는 청어, 식청, 가청, 관목청 4종. 사어는 사어, 고사, 진사, 해사, 죽사, 치사, 왜사, 병치사, 철좌사, 효사, 산사, 노각사, 사치사, 은사, 도미사, 극치사, 철갑장군, 기미사, 금린사 19종. 사어는 상어라는데 흑산도에 상어가 많았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종류를 많이 실었는지는 모르겠다. 검어는 검어, 박순어, 적박순어, 정어, 조사어, 석어, 6종. 접어는 접어, 소접, 장접, 전접, 수접, 우설접, 금미접, 박접 8종. 수구어는 소구어 1종. 도어는 도어, 해도어, 2종. 망어는 망어, 황어, 2종. 청익어는 청익어, 회익어 2종. 비어는 비어 1종. 이어는 이어, 서어, 2종. 전어는 전어, 1종. 편어는 편어 1종. 추어는 추어, 대추, 단추, 소비추, 박추 5종. 대두어는 대두어, 철목어, 석자어 3종. 총 73종으로 소분류를 하였다. 나는 일일이 계산기로 숫자를 더했기에, 빠진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로서 인류는 20종의 대분류와 73종의 소분류로 나눌 수 있다.
권 2는 무린류(비닐 없는 어류)와 개류(껍데기가 있는 어류)을 실었다. 이 권은 종류가 너무 많아 대분류만 적어 본다. 먼저 무린류에는 분어, 해만리, 해점이, 돈어, 오적어, 장어, 해돈이, 인어, 사방어, 우어, 회잔어, 침어, 천족섬, 해타, 경어, 해하, 해삼, 굴명충, 음충 19종. 소분류는 이보다 훨씬 많다. 개류는 해귀, 해, 복, 합, 감, 정, 담채, 호, 라, 율구함, 귀배충, 풍엽어 12종 물론 소분류는 더 많다. 생각 같아서는 하나하나 다 적고 싶었지만, 아쉽지만, 이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권 3는 잡류다. 권 1, 권 2 외의 기타 해양생물류를 소개하고 있다. 대분류는 4종이다. 해충, 해금, 해수, 해초 이다. 4종이나 소분류까지 적어 본다. 해충(바다벌레) 해조, 선두충 해인, 해추제 4종. 해금(바다새)는 노자, 수조, 해구, 작연, 합작, 5종. 해수(바다짐승)은 올놀수(물범)1종. 해초(바다풀)는 해조, 해대, 가해대, 흑대초, 적발초, 지종, 토의채, 해태, 해추태, 맥태, 상사태, 갱태, 매산태, 신경태, 적태, 저태, 감태, 자채, 엽자채,가자채, 세자채, 조자채, 취자채, 석기생, 종가채, 섬가채, 조족초, 해동초, 만모초, 가해동초, 녹조대, 단록대, 석조대, 청각채, 가산호로 분류했다. 부록에는 한문 원문을 실었다. 전문 연구진이나 한문에 능한 자들을 위함이겠지만,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문과 해석을 대충이나마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258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는 옮긴이의 해설이다.
옮긴이는 ,<자산어보>를 저자를 정약전 단독 저자가 아니라, 정약전, 이청 공동 저서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선어보에서 닥 한 자를 번역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청이라는 글자였다. 옥편에도 나오지 않는 이 글자는 밭 전에 푸를 청자가 합쳐진 글자다. 본문에서는 청안으로 쓰여졌는데, ‘청’자를 알 수 없어 ‘안’자를 저자의 생각을 밝히는 내용이라 하여 정약전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 글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태준이라는 선생과 현대실학사 정해렴에게 ‘청’자가 바로 이청을 지칭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옮긴이는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쓰고, 이청이 문헌을 고증한 공동 저술이라 결론을 낸다. 자산어보는 총 2만3022자인데, 정약전의 저술이 13,310자, 이청의 저술이 9,712자로 42.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청은 1792년 생이며,본관은 경주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인 1806년 가을부터 1808년 초봄까지 이청의 집에 거처했다. 정약용의 제자로 경전과 역사 방면의 문헌 대조와 비교 및 검토에 능해 정약용의 저술에 깊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특히 <여유당전서>를 저술할 때 조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양용이 해배되고 마현 본가로 왔을 때, 정확한 년도는 모르지만 따라 올라왔다고 한다. 70세까지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히 낙방하고 1861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출판사가 제공한 약력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정약전(1758-1816) 본관은 압해, 자는 천전, 호는 손암, 연경재, 일성루, 매심재다.1758년 경기도 마현에서 태어났다. 성호 이익의 학문을 이어받았고, 권철신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783년에 진사가 되었고, 이 무렵 이벽과 교유하면서 본격적으로 서학과 천주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01년 신유사옥으로 동생 정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참수되고 이가환, 권철신이 옥사당했을 때, 정약전과 동생 정약용은 배교하고 신지도와 장기로 각각 유배되었다. 그 해 9월에는 정약전의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 사건으로 황사영 등 관련 인물이 모두 참수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다시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정약전은 유배 초기에는 우이도에서 보냈고, 그 뒤 흑산도 사미촌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우이도로 넘어왔다. 1861년 우이도에서 59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장약전의 가문은 남인의 대표적인 집안이었다고 한다. 평생 글을 읽고 공무원이 또는 학자 밖에 다른 선택이 없던 한 인간이 절해고도 흑산도로 유배 되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예전으로 돌아 갈 모든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래도 글을 공부한 사람이었기에 글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건널 수 없는 바다와, 흑산과 그곳 주민들과 바닷 속 생물들 밖에 없었고, 그에게 어쩌면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일 말고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에게는 비로소 평생을 바쳐 해야 할 일이 생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곳 흑산에서 더 이상 이데올로기나 형이상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과 직면했고, 유학이 아니라 과학으로 배교하였다고는 할 수 없을까? 삶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에 있고, 저 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은 가치와 도덕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물고기와 해초를 먹고 사는 존재다. 우리가 가치를 논하고 도덕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일과 바다 생물을 논하고 분류하는 일은 같은 선상에서 놓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더 근본적인 일이 아닐까?
나는 할 수 있다면 <자산어보>에 수록 된 모든 생물 종들을 한 번씩이나마 써보고 싶었다.
이런 류의 책, 사전이나 백과전서 같은 책들이 관련가나 전문가가 아닌 바에는 무슨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읽다 보면 매우 흥미롭다. 만약 지루하고 하품만 나온다면 그건 내 생각에 익숙하지 않고 훈련받지 않아서다. 허황되고 말솜씨나 부리는 작업보다는 이런 류의 책이 훨씬 흥미가 있다. 원초적이며 직설적이며, 가식이 전혀 없다. 읽는 내내 당장 책을 덮고 내 집 계단의 숫자를 세고 가로와 세로의 길이를 재고, 높이를 계산하고, 그 계단을 거쳐간 발자국을 추적하고, 발자국을 보고 그의 신분과 걸음걸이와 인물됨을 유추해 보고, 그의 행적을 조사하여 남기면 어떨까 생각하였다. 내가 매일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이 계단과 문턱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설령 읽히지 않더라도 무조건 읽어 보아야 하는 책이다. 나의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고,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으면 정약전은 흑산을 자산으로 표기했을까? 그 어두운 심연에서 길러낸 보(보석)이 <자산어보>라고 하면 과장일까? 나는 어느 정도 지나야 책이 글자들의 묶음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생과 고뇌와 아픔의 저수지임을, 그 시대와 세계의 관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나의 문제로 체감할 수 있을까?
옮김이 정명현은 ‘답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너무나 쉽지만 답이 없는 상태에서 그 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사에서는 무수히 반복되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고 정명현이 ‘청’자를 해석하지 못해 자산어보를 정약전 단독 저자로 간주하였던 일을 부끄럽게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하는 말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나도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 답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분류하고, 정의 내리고, 이름을 부여하는 일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이미 만들어져 내 앞에 주어진 것은 마치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처럼 혹은 나의 자연적 권리인 양 생각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 앞에 놓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듯 하다. 그 누군가 중 한 명이 정약전일 수도 있다.
첫댓글 글을 쓰는 일도 무언가를 분류하고, 정의 내리고,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 아닌가 싶네요.
숨도 안 쉬고 읽게 되는 참 잘 쓴 글입니다.
/답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너무나 쉽지만 답이 없는 상태에서 그 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이 허우적거림이 삶인가!! ㅋ~~
/‘청’자가 바로 이청을 지칭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옮긴이는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쓰고, 이청이 문헌을 고증한 공동 저술이라 결론을 낸다./
아주 예의를 다해 책을 읽나 봅니다.
부럽습니다!
이 글을 읽고서야 자산어보 영화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