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장애인·비장애인 평생교육 시설 업무협약 열렸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취지도 몰라
지난 5월 군이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을 위한 움직임에 나서겠다고 밝혀 장애인들의 평생학습권 기반 확대에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장애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은 없는 ‘지정을 위한 지정’에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장애계는 군이 ‘장애인은 없는 장애인 평생학습도시’를 추진하는 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당사자는 모르는 평생교육 업무협약
지난 9일 평생학습원은 군청 상황실에서 평생교육 발전 업무협약식을 열었다. 이날 협약식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각각 13개 평생교육 시설(단체) 대표자가 참석한 가운데, 지역 평생교육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협약서를 작성했다. 협약서 내용을 살펴보면, 평생학습원과 관내 장애인 및 비장애인 시설·기관 및 단체는 민·관 교류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평생학습에 관한 경쟁력 제고 및 상호 협력에 나선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날 협약식은 군이 그간 진행해온 평생학습도시 재지정과 더불어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 준비의 일환인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의 지난 2021년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운영 기관 선정 평가지표에는 △장애인 평생교육의 인적·물적 자원 현황 파악 △지역협의회 및 유관기관과의 협력체계 등의 세부 평가문항이 담겨있다. 평생학습원 손성일 원장도 “군의 평생학습도시 재지정을 위해 올해 진행한 중장기 종합발전계획에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 준비도 포함돼있다. 그의 일환으로 진행한 업무협약”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군내 장애계 시설·단체는 업무협약의 취지도 모른 채 참석해 협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협약서에는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에 나선다는 내용도 없었을뿐더러, 무엇을 위한 업무협약인지 구체적인 사전 논의나 공지도 없이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임경미 소장은 “업무협약식에 참석을 해달라는 공문 하나가 전부였고 협약식에서도 어떤 논의나 제대로 된 공지도 없었다”며 “당사자 목소리는 없는 주먹구구식 진행에 참여하지 말자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내부에서라도 목소리를 내자는 데 뜻을 모아 참여했다”고 말했다.
옥천군장애인가족지원센터 신봉기 센터장도 “평생교육 시스템 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유기적인 협력은 당연히 필요하다”라면서도 “당시 협약식은 내용도 모호한 요식행위에 가까웠지만, 이렇게라도 장애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작성했다”고 밝혔다.
■ 장애계 “군의 장애인 평생학습도시에 장애인은 없을 것” 비판
이날 업무협약에 일찌감치 불참 의사를 밝힌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을 준비하는 군의 머릿속에 이미 장애인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해뜨는 학교는 충북도교육청이 군내에선 유일하게 인가하고, 도교육청 보조금뿐만 아니라 군과 도의 예산도 지원받고 있는 평생학습시설이라 적잖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명호 교장은 “그간 평생학습원이 장애 당사자들의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온 것이 불참 사유다”라며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장애인은 없을 것이라 판단해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고 단언했다.
그간 평생학습원은 장애인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장애 당사자의 수요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발굴·조정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이 최명호 교장의 설명이다(2021년5월14일 ‘“장애인평생학습지원조례로 장애인교육권 보장 나서야”’ 기사 참고).
이어 최명호 교장은 “평생학습원 담당자들이 바뀔 때마다 이전에 한 약속들이 깨져버리는데 무엇을 믿고 협조를 하라는 것이냐”며 “장애인 목소리에 대한 지자체의 존중은 담당 공무원 몇 명이 바뀐다고 흔들려선 안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월 옥천군 평생교육 중장기 종합발전계획 수립연구를 진행한 공주대 연구팀 또한 최종보고회 당시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을 위해서는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우선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에는 ‘장애인 평생교육협의회는 평생교육협의회와 별도로 운영되며 장애인 평생교육협의회 관계자가 평생교육협의회에 참여하도록 함’이라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제정한 군의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는 여전히 장애인 평생교육협의회의 기능을 기존의 평생학습협의회가 대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상황.
해당 조례를 발의한 이용수 의원은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는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을 통한 예산 지원보다 장애인 학습권 확대에 방점이 찍힌 것”이라며 “장애인을 배제한 채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준비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손성일 원장은 “업무 담당자가 바뀌면서 장애 당사자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소통에 문제를 느낀 장애인 시설 관계자들과 만나 풀어나가며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지정을 준비해나갈 것”이라며 “평생학습협의회에 장애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도 공감하고, 위원 구성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옥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