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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시 : 2022. 4. 22(금)
◇ 산행장소 : 안동 선비순례길(1, 2, 3코스)
◇ 산행코스 : 오천유적지 - 보광사 - 예끼마을 - 선성현문화단지 - 선성수상길 - 월천서당 - 산림문화휴양촌 - 분천리마을회관 - 도산서원 - 선비문화수련원 - 퇴계종택 - 퇴계묘소 - 수졸당 - 윷판대 - 이육사문학관 - 시비공원 - 단천리 - 단천교
◇ 거리 및 시간 : 30.4km, 8시간 31분
☆안동선비순례길
안동선비순례길은 퇴계의 귀향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퇴계선생은 1569년 음력 3월 선조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고하고 서울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안동의 도산서당까지 320km를 14일간 걸어서 귀향했다.
귀향하여 안동 도산을 중심으로 그의 걸음을 따라 9개 코스, 91.3km로 이어져 있는 길을 안동선비순례길로 만들어 놓았다
☆1코스(선성현길)
도산구곡 중 첫번째 물굽이인 운암곡 주변을 둘러보는 길이다. 흔히 안동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데, 선성현길에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하여 군자리라는 이름을 얻은 외내마을부터 선비들이 호연지기로 인의를 기르던 예얀향교, 물위로 늘어진 선성수상길을 지나 한국문화테마파크까지, 선성현길에서는 수많은 선인들이 우리 앞을 걸어가며 길을 안내한다.
○ 코스 : 오천유적지(군자마을) - 보광사 – 선성공원 – 선성현문화단지 – 선상수상길 - 안동호반자연휴양림 – 한국문화테마파크 - 월천서당
○ 거리 : 13.7km
▲1코스는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는 군자리 마을 표지석과 ‘오천 유적지’라는 표석이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300m 정도 들어가면 20여 채의 고가들이 들어앉은 오천유적지에 다다른다.
☆오천유적지(烏川遺蹟地)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波)의 집성촌 유적지이다. 광산김씨들이 살던 가옥과 탁청정(濯淸亭), 후조당(後彫堂), 재사(齋舍)와 사당 등의 문화재, 숭원각(崇遠閣) 등이 배치되어 있다.
성균원생 김효로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 뒤 그 후손들이 500년 가까이 살았다. 원래 장소는 낙동강가에 접한 곳이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이들 소유의 문화재를 산중턱인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1코스는 오천유적지에서 13.7km의 거리인 월천서당까지 간다.
☆역동선생유허비
유허비란 한 인물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세우는 비인데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로 시작하는 시조를 지은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성리학의 선구자인 역동선생 우탁의 유허비
▲예끼마을.
예끼마을은 예끼는 도산면 서부리의 새로운 이름으로 '예술의 끼'라는 의미다.
선성수상길을 비롯해 요즘 가장 핫한 여행 포인트다. 나도 예끼마을과 선성수상길에 혹해서 안동선비순례길을 가게되었다.
☆선성현문화단지
선성현’은 예안 지역, 오늘날 도산면의 옛 이름이다. 예안은 1913년 안동에 편입되었다
선성현문화단지는 안동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객사, 동헌, 관창 등 옛 관아를 복원하고 역사관, 한옥체험관 등을 조성해 한 마을, 안동,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크고 작은 갤러리와 카페가 자리한 예끼마을은 안동댐이 조성되며 터전을 잃은 수몰민이 새 보금자리를 일으킨 곳으로, 예안마을 주민들의 가슴 아픈 역사와 새날에 대한 희망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선성수상길
선성현 문화단지 입구에서 호수를 향해 내려가면 옛 마을의 하늘을 즈려 밟고 가는 선성수상길은 폭 2.7m 로 내내 잠기지 말라고 부교(浮橋)로 놓였다.
▲선성수상길은 안동호의 수위변동에 상관없이 수상을 걸을 수 있는 부교다.
☆예안국민학교
부교를 건너다 보면 길의 가운데에 풍금과 책걸상이 놓여 있다. 이곳에 옛 예안국민학교가 있었고 더 이전에는 예안 객사가 있었다. 학교는 1909년 4월 이인화(李仁和)라는 분이 후진 양성을 통한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사재를 들여 사립선명학교로 설립했다고 한다. 1912년 4월 공립으로 개편해 예안공립보통학교로 개칭했고 1941년 예안공립초등학교, 광복 후 예안국민학교로 다시 개칭했다. 학교는 1974년 안동댐 건설 때 현재의 한국국학진흥원 옆에 자리 잡았지만 학생이 없어 폐교됐다.
▲한국문화테마파크.
☆월천서당
월천서당은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 선생이 중종(中宗) 34년(1539)에 건립하여 후진(後進)을 양성하고 수학(修學)하던 곳이다. 현판(懸板)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썼다.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단층 와가로 중앙에는 2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에 통간방(通間房)을 배치한 홑처마집이다.
▲건너편은 6코스 종점인 부포선착장
☆2코스(도산서원길)
도산서원 길은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사제의 길이다. 퇴계선생의 생을 함께한 길이며, 퇴계의 후손들이 청빈한 선비의 자세를 지키며 살아온 원촌마을까지, 도산구곡길 어느 구간보다도 퇴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길이다.
○ 코스 : 월천서당 - 호반자연휴양림 – 한국산림과학박물관 – 분천리마을회관 – 도산서원 - 선비문화수련원 – 퇴계종택
○ 거리 : 11.3km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도산서원
1570년 퇴계가 70세로 별세하자 2년 뒤인 1572년(선조 5년) 제자들이 퇴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尙德祠)를 짓고, 전교당((典敎堂)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으로 동·서재를 지어 도산서원이라고 했다
▲도산서원은 입장료가 있다. 성인 1,500원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퇴계 이황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림의 발의로 1574년 도산서당 뒤편에 세우기 시작하여 1575년 낙성이 되자 선조로부터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576년에는 퇴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792년에는 정조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향사에 필요한 물품을 친히 내리고 특별 과거인 별시를 도산서원에서 열기도 하였다. 그후 도산서원은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도 영남유학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중요성을 인정받아 철거되지 않았다.
도산 서원은 퇴계가 제자를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비롯하여 퇴계 사후에 만든 전교당, 상덕사, 전사청이 있다. 그리고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박약재와 홍의재, 서원에서 만든 목판을 보관하던 장편각, 서원 관리인의 숙소 등 여러부속건물이 있다.
도산서원은 1019년 7월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산12곡 시비. 「도산십이곡」은 후세 사림파(士林派) 시가의 중심적 지표가 되었다.
☆도산12곡(陶山十二曲)
12수의 연시조. 작자는 이 작품을 전육곡(前六曲)·후육곡(後六曲)으로 나누고, 전육곡을 ‘언지(言志)’, 후육곡을 ‘언학(言學)’이라 이름 붙였다. 『언지』는 천석고황(泉石膏肓: 산수를 사랑하는 것이 마치 불치병처럼 지나침)의 강호은거(江湖隱居)를 읊었고, 『언학』은 학문과 수양을 통한 성정(性情)의 순정(醇正)을 읊었다.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목판본이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짓게 된 동기를 「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에서 “한림별곡류(翰林別曲類)는 긍호방탕(矜豪放蕩)하고 설만희압(褻慢戱狎)하여 군자의 숭상할 바가 아니다.”, “이별육가(李鼈六歌)는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돈후(溫柔敦厚)의 실(實)이 적다.”, “국문시가는 한시(漢詩)와는 달라서 노래할 수 있어서 흥이 난다.”라고 말하였다. 첫째와 둘째는 기존의 시가에 대한 불만이고, 셋째는 국문시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전육곡 ‘언지(言志)'
▲후육곡을 ‘언학(言學)’
▲선비문화수련원
▲퇴계공원
▲퇴계종택
☆퇴계종택(退溪宗宅)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중기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종택이다. 원래의 가옥은 없어졌으며, 지금의 가옥은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霞汀公) 이충호가 1926~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종택의 크기는 총 34칸으로 ㅁ자형이며, 전체 면적은 2,119㎡이다. 종택 오른쪽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3코스(청포도길)
이육사가 태어난 원촌은 남향터에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걷다 보면 청포도 밭이 곳곳에 보이고, 퇴계 이황선생묘소 반대편으로 산을 올라 장상에 서면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기름진 들판과 그 너머로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은 강물이 흘러가는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코스 : 퇴계종택 - 퇴계묘지 – 수졸당 – 윷판대 – 이육사문학관 - 시비공원 – 단천리 - 단천교
○ 거리 : 6.3km
▲퇴계선생묘소.
애초에 퇴계선생의 유계에 따라 무덤가에 석물장식등을 하지 않았으나 나라에서 최소한의 격식이라며 석인,석상,혼유석등을 세우는 바람에 유족들은 퇴계선생의 유계를 지키지 못해 탄식하였다고 한다.
▲수졸당
☆수졸당 및 재사
퇴계 이황의 손자인 동암(東巖) 이영도(李詠道, 1559~1637)와 그의 아들 수졸당(守拙堂) 이기(李岐, 1591~1654)의 종택이다. 재사는 동암 이영도의 묘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영도는 영특하고 포용력이 있어 퇴계의 후예답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남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수졸당 및 재사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수졸당은 이영도의 분가 때(17세기), 재사는 이영도의 사후(18세기)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수졸당은 □자형의 살림집과 그 오른쪽의 一자형의 정자, 그리고 건물 뒤편의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사는 수졸당의 오른쪽에 위치하며 □자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집이다. 재사는 건립당시의 평면구조와 구조양식의 변화 없이 옛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윷판대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문학관
이육사문학관은 2004년 이육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도산면 원천리 입구에 세워져 펜으로 몸으로 시문학과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2015년 3대문화권개발사업으로 추진한 유림유토피아 사업으로 문학관 증축, 생활관 신축, 육우당(생가)복원, 생태공원조성 등으로 재개관하였다.
▲청포도 시비공원
▲사은구장 이원영목사 생가
▲3코스 종점이자 4코스 시작점인 단천교에 도착 차량회수를 위해 도산면 택시를 부른다.
첫댓글 좋은 곳 다녀오셨네요. 자세한 안내 감사드립니다
건행하십시요
화회마을의고장~먼안동까지~다녀오셨네요~몽산님~덕분에~후기잘감상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