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는 소리
홍 성 자
병실의 공기는 늘 눅눅하게 가라 앉아있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은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서 머물고, 침대위의 사람들은 각자의 고통을 조용히, 혹은 앓는 소리를 내며 버티고 있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그의 얼굴표정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며 시간을 견딘다. 남편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보행이 어려워져서 검사결과, 머리에 스텐트(stent) 시술을 했으니 얼마나 아프고 정신이 없을까.
그런데 옆 침대 백인남자에게서 들려오는 소리, 마치 흐느껴 돌아가는 여울물 물결소리 같은, 으으으....... 어어어.......
3일 낮 동안을 있어 봐도, 옆 침대사람과 관계되는 어느 사람도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62세, 척추수술을 했고, 아내도 자녀도 친구도 없다고 했다.
으으으.......그 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픔, 걱정,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뒤섞인 듯 병실의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저건 단순한 통증의 반응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장 약해졌을 때 나오는 본능의 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할 힘도 없을 때, 몸은 대신 소리로 마음을 내 보낸다.
‘나, 나 아직 살아있어’ 또는
‘나, 나를 잊지 마’
‘누가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 그래서 의사님들은 환자를 페이션트 (patient) 라고, 고통을 겪으며 치료를 받는 사람, 참을성 있는, 인내심 있는,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버티는, 즉 아픔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보다.
전에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병중의 소리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운다.”고
“사람의 진짜 품성은 기쁠 때가 아니라 고통에서 드러난다.”고
“남의 고통을 들을 줄 아는 귀가 복이라”고
“아픈 이는 사랑을 찾고, 돌보는 이는 사랑을 배운다.”고,
남편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사람은 약해질수록 사랑을 더 갈망한다는 것. 그 갈망을 알아채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온기라는 것. 어둠이 짙어지면 앓는 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사람이 내는 소리에는 모두 이유가 있고, 그 이유의 바닥에는 결국 보호받으며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직 생명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누군가가 그 불빛을 지켜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겠다.
아픔이 다 나으면 웃을 날도 있으련만, 건강해서 뛰어다니던 추억이 얼마나 그리울까.
환자들은 위로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본능일진대, 의사님들을 비롯하여 백의의 천사라고 하는 간호사님들, 병원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이 항상 명랑하게 웃으며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지, 그 고마움은 이를 데가 없다.
사랑은 거창한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앓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 곁에 가만히 앉아주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상태가 많이 호전된 남편에게
“우리만 팀호튼 커피를 마시기가 좀 그런데, 옆 환자한테 커피 마시고 싶으냐? 고 물어보고, 원한다면 사다 줄까요?” 하니, 그러라고
문밖에서 항상 대기하는 간호사에게 허락을 받고, 그가 원하는 스타일의 레귤러커피를 사다주니, 흠흠 숨을 들이쉬며 그리웠던 커피 향을 굉장히 즐기는 듯 땡큐를 연발한다. 간호사와 넷이서 커피 컵을 들고, 아픔이여 떠나가라! 를 외치며 한바탕 웃었다.
사람이 내는 앓는 소리는 결국 살고 싶다는 의지,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 앓는 소리가 내 귓가에 귀걸이처럼 걸려있다.
(2026.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