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4회 전북수필문학상' 수상작품과 수상소감을 게재합니다.]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 / 백 봉 기
인터넷에서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이라는 영상물을 보았다. 2013년 3월 28일, 안중근 의사 사망일에 즈음하여 일본 朝日TV방송이 제작한 45분짜리 안중근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시작부터 호기심이 당겼다. 일본인들이 보는 안중근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갑자기 이 프로그램이 인터넷을 타고 들불처럼 번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정부가 하얼빈역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며 연일 막말을 퍼붓고 역사를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이에 분노한 누리꾼들이 역사의식을 바로 세우자는 충정에서 이 영상물을 유튜브에 띄운 듯싶다. 프로그램은 안중근의 어린 시절과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배경, 그리고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고, 뤼순감옥에서 최후를 맞는 이야기를 삽입극한 토크형식의 다큐멘터리 구성물이었다. 거기에 안중근의 인간미를 조명하고자 형무소장과 간수, 일본인 헌병과의 따뜻한 인간관계를 감성적으로 터치한 것이 돋보였다.
가슴이 휑했다.
한참 동안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이렇게 감동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안중근 의사를 죽인 일본인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홀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들의 작은 영웅 안중근의 삶이 너무나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30살이라는 나이에 일본 총리대신의 가슴에 총탄을 날리고, 의연하게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에게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다. 양반집 가문의 귀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낯선 광야에 몸을 던졌을까.
동영상을 보는 내내 가슴이 저려왔다. 아니 그의 삶에 온통 매료되어 푹 빠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세상을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한독립과 세계평화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인간적이고, 평화주의자였던 안중근, 봄바람처럼 온화했던 그가 재판관 앞에서 일본 침략자들의 죄목 15가지를 조목조목 지적할 때의 당당함과 의연함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뤼순감옥의 일본인 형무소장마저도 안중근은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며, 그가 집필하고 있던 <동양평화론>을 완성하도록 사형집행을 연장해 달라는 탄원서를 경보국에 보내고, 안중근이 형장에 입고 갈 한복을 만들어 달라고 부인에게 부탁했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또 있다. 자신을 감시하던 일본군 간수 치바와의 관계이다. 안중근의 삶과 인간성에 깊은 감명을 받아 “안중근 씨,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라 말하고, 그가 죽은 뒤에 일본으로 돌아가 안중근이 써준 유묵 ‘爲國獻身 軍人本分’을 새긴 비석을 세우고, 그의 부인과 함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의 명복을 비는 합장을 했다니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청년 안중근은 끝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차디찬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31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우리는 천주의 뜻을 따라 부부의 연을 맺고, 주의 명에 따라 여기서 헤어지게 되었지만 머지않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라는 위로의 말을 남긴다.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울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 사람을 이토록 사랑하고, 그의 삶에 감동해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짧은 생애, 그의 삶 절반을 독립운동에 쓰고 간 사람, 청년 안중근의 삶이 이 아침에 왜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수상소감] 가슴으로 쓰는 진실 된 글을 쓰겠습니다.
정년퇴임을 하고 전북예총에 새 일터를 잡을 때만 해도 글쓰기에 대한 것,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글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와 고등학교 때 몇 번 썼던 연애편지, 그리고 직장에서 마지못해 써 주는 축사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지인의 권유로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생활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이란 무엇이고 글의 본질과 속성, 글을 통한 삶의 희·노·애·낙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4권의 수필집을 발간하고, 몇 개의 문학단체에서 문우님들과 함께 즐거운 문학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창작의 기쁨도 누리지만 책상 앞에 앉으면 모든 잡념과 걱정들이 다 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세상을 대하는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문학은 나의 희망이고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무딘 펜을 들고 험한 뱃길을 열려는 뱃사공에 불과합니다. 밀려오는 파도를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야할지 두려움에 떠는 미숙한 글쟁이일 뿐입니다.
수필가, 작가라는 말이 지금도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입니다. 그런 저에게 제34회 전북수필문학상까지 주신다니 죄송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문학상운영위원회 심사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잘하라는 격려로 알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 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수상하신 선배님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봉기] 수필가. 《한국산문》등단
온글문학회 회장 역임, 전북예총 사무처장, 전북펜문학 운영위원장, 전북문협, 전북수필 부회장
* 전북문학상, 한국미래문화상(문학)
* 수필집《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외
첫댓글 젊음을 바쳐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청년 안중근
새로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어머님이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구차한 삶을 구걸하지
말라는 서신을 본적이 있는데,
그 아들도 며느리도 손자도 함께 훌륭하군요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희 집에도 안중근 의사의 글이 복사본 있지는데요,
일본의 간수들도 존경했을 정도였잖아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또한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요.
아들에게 '항소'를 포기하고 당당하게 죽으라며 수의를 보내셨다니요.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었고요.
그렇게 지킨 나라를 후손들이 그 뜻을 달 이어받아야 할 텐데.
대선 주자들 모두 하나같이들~~
백봉기작가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늘 활기찬 모습 이어가시고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