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풍경
최명애
설 전날부터 곳곳에 폭설이 내려 귀향길과 귀성길이 눈길에 정체가 빚어졌다. 내가 사는 대구도 눈발이 날린다. 설날을 알려주는 매서운 눈바람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아침에 창밖을 보니 공원에 눈이 하얗게 덮여있다. 눈 내린 후의 포근함이 명절을 맞이하여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잡는다
설은 한 해의 첫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신정을 뜻하는 양력 1월 1일이 있고, 음력 1월 1일인 구정이 있다.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설을 기준으로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 설에 먹는 음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떡국이다. 섣달그믐날 밤에는 집에 불을 환하게 켜놓았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에 안 자고 버틴 기억이 있다. 새 옷 입을 생각과 세뱃돈을 받는 기쁨으로 들떠있었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좋아서 기다리던 설이었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넉넉지 못한 살림에 자식들을 챙기느라 힘이 들었겠다. 어릴 적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강정과 떡국을 미리 만들었다. 귀를 막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뻥!” 터지면 쏟아지는 쌀 튀밥이 입을 즐겁게 했다. 방앗간은 가래떡을 빼느라 북적거렸다. 쌀가루를 쪄서 나온 떡 한 움큼을 얻어먹는 재미는 긴 줄을 기다리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가래떡은 꾸덕꾸덕해지면 날을 잡아 미리 다 썰어 놓았다. 어머니는 설이 다가오면 몇 날 며칠 준비를 하고 설 전날에는 하루 종일 음식을 장만 하셨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 날이었다. 간식이 없었던 시절이라 설날은 마음 넉넉하였고 풍요로웠지만 어머니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다. 그녀는 “명절이 없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이동의 어려움과 양쪽 집안을 챙겨야 하는 부담감과 다양한 감정들을 만나는 것이 싫다고 했다.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떠올라서 맞장구를 쳤다. 어른이 되니 명절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철모르는 시절에는 친척들을 만나면 그냥 마음이 붕 뜨고 좋았다. 그날 하루는 용돈을 받고 마음껏 노는 날이기 때문이다. 결혼하면서 설 전날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명절 음식을 만들고, 뒷정리까지 하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일찍 시댁에 가서 어른들께 세배하고,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을 챙기느라 분주하게 보냈다. 가족을 위해 당연히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트레스가 생기면서 점점 부담스러웠었다.
코로나 3년의 세월 동안 제사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5인 이상 모임을 못 하게 하여 제사에 참석할 수 없었고 명절은 산소 가는 걸로 대체하였다. 예전에는 민족 대이동으로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었지만, 요즘은 시골 어른들이 도시의 자녀에게 가서 명절을 보낸다. 연휴를 이용하여 국내외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지인은 명절 차례는 절에 올리고 아들. 며느리는 해외여행을 가는 것으로 공식화했단다. 우리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아들이 결혼하기 전 “명절에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직장 생활로 여유가 없었으니 명절 휴가를 제대로 쉬고 싶었다. 아들은 “엄마 많은 날 중에 왜 하필 명절에 여행을 가려고 하십니까?”라고 했다. ‘아차! 그래 너 말이 맞다.’ 순간 나를 반성했다. 1년에 한 번 조상님께 차례 지내고 친척들을 만난다는 데 의미가 있지.
25년도 설은 10일간의 황금연휴로 국제공항에 역대 최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경기가 안 좋아 내수를 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징검다리 휴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지만, 해외여행으로 공항만 대혼잡이다. 솔직히 연휴가 길면 모두 다 해외로 나가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국내는 민속촌이나 민속 박물관같이 설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을 가족 단위로 찾는 여행 문화가 일어나고 있다. 핵가족화로 가족 단위의 행사가 이루어지고,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사회문화가 변하고 있으니 순응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큰집도 올해부터 주문 상차림으로 대체 한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물품 상태도 좋아 보인다. 형제들도 모두 괜찮다고 말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주문 음식상이 성의가 없고 먹을 것 없다는 생각을 버리니 일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이 되었다. 어른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형제끼리 의논하여 각자 나누어 맡아서 차례상을 차렸다. 각자의 생각이 있으므로 조금씩 배려하고 이해하면 될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일을 하는 것이 신체적으로 부담으로 다가왔다. 주문 상차림으로 서로 미안함이나 부담감 없이 마음 편하게 조상님께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큰집 차례를 마치고 절에 와서 시삼촌의 위패에 절을 올렸다. 그분은 6·25 때 돌아가셨다. 아들이 없이 돌아가셔서 지금까지 내가 30여 년간 제사를 지내왔다. 이제는 절에서 합동 차례를 올리기로 했다. 조상님들도 이해해 주시리라.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든든하고 감사하다.
설날 일정의 마지막은 친정으로 가는 것이다. 엄마의 존재는 친정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힘이 있다. 동생 가족들이 차례를 지내고 어머니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아 항상 아프지만 몸이 아픈 사람은 세배를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조카의 4살짜리 딸이 한복을 입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세배하는 모습이 귀엽다. 세뱃돈을 받아서 쪼르르 아빠에게 전해주는 것을 보니 돈의 귀함을 아는 건가? 아이의 재롱에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함께 세배를 마치고 점심은 떡국을 끓여 먹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 가족이 없어서 서운했지만, 영상으로 설 인사를 나누고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서울에서 못 내려온 조카며느리도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 한다. 디지털 시대에 가족 간의 소통 방식도 변하고 있다. 앞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설날 모습은 달라지겠지만, 함께하는 화기애애한 좋은 풍경이 오래 기억되기를….
첫댓글 설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어릴 때는 기다림이었는데 어른이되고 나니 의무가 되고 챙길것도 많네요~부모님이 계시면 더하구요^^
설날 풍속도가 대단히 달라졌습니다.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그립지요. 어린 시절 몹시 그리워지지만 못 갑니다. 그래도 그립습니다.
정겨운 글 잘 읽었습니다.
설날은 세월이흘러도 정겨운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설풍경의 스케치. 과거와 현재의 모습. 코로나가 우리의 풍속과 민심을 가르는데 큰 구실을 한 것 같지만 아직도 미풍양속은 남아 이어지고 있씁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치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