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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개경게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나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약을 보시할 때에 모든 선근으로써 회향하
나니, 이른 바 일체 중생이 저 모든 다섯 덮음과 열었음을 구경에 벗
어나게 하기원하며, 일체 중생이 병든 몸을 여의고 여래의 몸을 얻
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큰 좋은 약을 지어 일체 착하지 못한 병
을 멸하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아가타(阿伽陀)약을 이루며, 보살
의 물러가지 아니한 땅에 편히 머물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여래
의 약을 이루어 능히 일체 번뇌의 독한 화살을 빼어 버리기를 원하
며, 일체중생이 모든 성현을 친근히 하여 모든 번뇌를 멸하고 청정
한 행을 닦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큰 약에 왕(藥王)을 지어 길이
여러 병을 제하며, 거듭 발하지 않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견고한
약 나무를 지어 다 능히 일체 중생의 병이 나아주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일체 지혜 광명을 얻어 여러 별에 화살을 벗어나기를 원하
며, 일체 중생이 세간에 약 방법을 잘 알아 무슨 병이든지 다 구원
하여 낫게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탕약(湯藥)을 보시한 때에 일체 중생으로 하여근 여
러 병을 길이 여의게 하는 연고며, 구경에 편안하게 하는 연고며, 청
정하게 하는 연고며, 부처님과 같이 별이 없게 하는 연고며, 일체 병
화살을 빼는 연고며, 다함이 없는 견고한 몸을 얻게 하는 연고며, 금
강 위산(圍山)과 같이 무너지지 아니한 몸을 얻는 연고며, 견고하고
만족한 힘을 얻게 하는 연고며, 원만하여 빼앗을 수 없는 부처님의
즐거움을 얻게 하는 연고며, 일체 부처님의 자재하여 견고하신 몸을
얻게하는 연고로, 모든 선근으로써 이같이 회향하느니라.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다 능히 일체 그릇 물건을 보시하나니, 이
른 바 누런 금 그릇에 잡된 보배를 담고, 흰 은 그릇에 여러가지 묘
한 보배를 담고, 유리 그릇에 가지가지 보배를 담고, 파리 그릇에
한량없는 보배 장엄꺼리를 담고, 자기 그릇에 붉은 진주를 담고, 마
노 그릇에 산호 마니 구슬 보배를 담고, 희옥 그릇에 여러 아름다운
음식을 담고, 전단 그릇에 하늘 옷을 담고, 금강 그릇에 여러 묘한
향을 담고, 한량없고 수없는 가지가지 보배 그릇에 한량없고 수없
는 가지가지 여러 보배를 담아서 혹 모든 부처님께 보시하나니, 부
처님의 복밭이 생각하고 의논할 수 없음을 믿는 연고며, 혹 보살에
게 보시하나니 선지식을 만나기 어려움을 아는 연고며, 혹 성승(聖
僧)에게 보시하나니 부처님 법으로 하여금 세간에 오래 머물게 하는
연고며, 혹 성문 벽지불에게 보시하나니 저 모든 성인에게 청정한
믿음을 내는 연고며, 혹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보시하나니 존중히 여
기는 연고며, 혹 스승과 어름에게 보시하나니 항상 깨치어 주어 성
인의 가르치심을 의지하여 공덕을 닦게 하는 연고며, 혹 하열하며 가
난하며 곤궁하며 외로우며 홀로된 사람에게 보시하나니 큰 사람과
큰 슬픔으로 사랑하는 눈을 열어 평등히 모든 중생을 보는 연고며,
온전히 삼세(三世)에 일체 보살의 보시 바라밀이 뜻에 만족케 하는
연고며, 일체 물건으로써 넓게 일체 보시하나니 마침내 모든 중생
을 버리지 아니한 연고니, 이같이 보시할 때에 보시하는 물건이든
지 받는 사람이든지 다 집착함이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같은 무리 가지가지 보배 그릇에 담은 한량없는
보배로 보시할 때에 모든 선근으로써 이같이 회향하나니, 이른 바
일체 중생이 허공과 같이 가없는 곳집 보배 그릇을 이루어 생각하
는 힘으로 광대하여 능히 세간과 세간에 뛰어난 일체 경서(經書)를
받아가져 잊음이 없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청정한 그릇을 이루어
능히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고 밝은 법을 깨치기를 원하며, 일체 중
생이 위가 없는 보새 그릇을 이루어 능히 삼세 부처님 법을 다 받아
가지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여래의 관대한 법 그릇을 성취하여
무너짐이 없는 믿음으로써 삼세에 부처님 보리법을 받아 들이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가장 성한 보배 장엄 그릇을 성취하여 큰 위엄
과 덕을 갖춘 보리 마음에 머물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공덕에 의
지한 바 처소 그릇을 성취하여 저 모든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로 청
정히 믿어 알음을 생하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일체 지혜 그릇으
로 들어가 구경에 여래의 걸림없는 해탈을 성취하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이 모든 겁을 다하는 보살행 그릇을 얻어 중생이 삼세에 모든 부처
님의 성한 공덕 그릇을 성취하기를 원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묘
하신 소리로 법문 설함을 다 능히 받아 가지기를 원하며, 일체 중생
이 법계와 허공계에 일체 세셰와 일체 여래의 여러 회중 도량 그릇
을 받아 들이되 대장부의 찬탄하여 설하신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부
처님을 청하여 정법륜(正法輪)을 굴리시기를 원하나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이 그릇을 보시할 때에 선근으로써 회향함이니, 넓게 일체 중
생으로 하여금 다 넓게 보현보살의 행과 원의 그릇이 가득하기를 원
하는 연고니라.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여러 보배로 엄정히 꾸미어 장엄한 가지가
지 수레로써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스승과 착한 벗과 성문과
연각과 이같이 한량없는 가지가지 복받과, 가난하고 곤궁하고 외롭
고 홀로 된 자에게 받들어 보시하나니, 이 모든 사람들이 혹 먼 곳
으로 오며, 혹 가까운 데서도 오며, 혹 보살의 이름을 듣고도 오며,
혹 보살의 연분인고로 오며, 혹 보살이 옛적에 보시 원력을 발함을
듣고 오기도 하며, 혹 보살이 마음에 원한 바로 청하여 오기도 하느
니라.
사홍서원()()()
나무서가모니불 나무서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보비합장
정신·물질 연기적 관계, 오음은 정신 강조한 교설 천태선사는 ‘사성제’라는 큰 틀에 의거해 《법계차제초문》을 설했다. 즉 불교의 기초적인 법수를 하나하나 설하면서, 고(苦)의 모습뿐만 아니라 ‘고의 원인ㆍ소멸ㆍ소멸에 이르는 길’을 알도록 했다. 따라서 이 법문을 하나씩 음미하면 자연스레 고(苦)를 자각하게 되고 그것의 소멸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천태선사가 이 법문을 편 궁극적인 뜻이다. 명색초문(名色初門) 제1 천태선사는 법계의 모습을 밝힐 때 ‘명색’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했다. 지금 법계의 초문을 밝히는데 먼저 명색(名色)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모든 존재는 본바탕이 청정해 이름 붙일 것도 없고 모습이 끊어져 버려 오히려 하나도 아니니 어찌(名과 色의) 둘이 있겠는가? 그런데 둘도 아닌 곳에서 둘을 밝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생명체가 맨 처음 몸을 받았을 때는 단지 명색의 두 가지 법만 있다. 마땅히 알라. 명과 색은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의 근본이다. 그래서 능히 일체법을 내고 널리 일체법을 거둬들이니, 명과 색이 바로 일체법이다. ‘일체법’은 생각하고 말하며 경험하는 모든 활동과 대상을 포괄한다. 각각의 것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이름을 칭하고 있으나, 사실 그 본바탕은 이름 붙일만한 어떤 것도 실제로 있지 않다. 따라서 그것을 굳이 이름 붙이고 구분한다면, ‘명과 색’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오음초문(五陰初門) 제2 명색 다음에 오음(五陰)을 설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의식[名]에 미혹해 그것에 치우치므로, 성인의 가르침 가운데 ‘명(名)’을 열어서 네 가지 마음으로 하고, 여기에 ‘색(色)’을 상대해 합하니 다섯이 된다. 오음이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다. ‘명색’과 비교해보면, ‘명’이 네 가지 의식작용으로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듯 인간은 ‘생각한다’는 ‘사고작용’을 여타 존재와 구별되는 대표적 특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특히 의식작용에 치우쳐 있는 이들을 위해 설해진 것이 ‘오음’의 교설이다.
명색(名色)과 오음(五陰)
2009년 01월 09일 (금) 09:59:36
금강신문
ggbn@ggbn.co.kr
부파불교의 대표적 논서인 《구사론》에는 ‘달마를 올바로 음미하고 구별하는 이외에 번뇌를 평정하는 뛰어난 방법은 없다’는 구절이 있다. 《구사론》은불교의 모든 법수의 체계를 설명하는 서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사론》을 설한 본래의 의도는 법의 모습을 바르게 음미하고 구별함으로써, 번뇌에서 벗어나고 그 결과 윤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있다.
천태선사의 이 기초적인 법문도 단지 용어의 뜻풀이에 그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법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관(觀)함으로써 일체에 걸림이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법문을 살펴보면서 모두가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원해본다.
‘명(名)’이란 곧 의식활동이며, ‘색(色)’이란 지각작용은 없고 다만 형태나 질감이나 걸림이 있는 것을 이른다. ‘명’이란 인식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 작용으로, 모습[色]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그러한 활동을 ‘이름[名]’ 붙일 수 있을 뿐이므로 ‘명(名)’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즉, 심(心)·의(意)·식(識)이나 그에 따른 갖가지 마음 작용들[心所法]을 말한다. 반면 ‘색’은 빛깔이나 모양을 갖추고 매끄럽거나 거친 질감이 있으며 공간을 차지해 모습과 걸림이 있는 것으로서, 일체의 물질을 말한다.
이 ‘명색’이라는 개념은 붓다 당시에 다른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어떤 관계로 파악하는지는 서로 같지 않았다. 붓다 당시 정통 바라문교에 반대하는 여러 신흥사상들이 일어나면서, 이 세계는 몇 가지의 요소들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대두했다. 그들은 ‘명색’에 대해서도 세계를 구성하는 의식적 혹은 물질적인 요소로 파악했다.
붓다는 그들과는 달리, 명과 색은 서로 연기(緣起)적 관계라고 보았다. 즉, 명과 색은 독립적이고 절대적 요소가 아니라, 한 가지 현상 가운데서 ‘인식하는 활동[名]’과 ‘인식되어지는 대상[色]’이라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체[色]와 정신작용[名] 또한 어느 것이 먼저 있거나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말미암아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렇지 않고 정신작용의 측면에 더욱 비중을 두어서 보는 것이, 다음에 설해지는 오음설(五陰說)이다.
이 다섯 가지를 모두 ‘음(陰)’이라고 하는 것은, ‘음’이란 ‘가려 덮음[陰覆]’으로써 뜻을 삼으니, 출세간의 참되고 밝은 지혜를 능히 덮고 생사(生死)를 증장시켜서 모이고 흩어짐이 끊이지 않으므로 모두 ‘음’이라고 한다.
‘수’는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며, ‘상’은 대상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행’은 착한 행위·나쁜 행위·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행위이고, ‘식’은 대상을 분별해 인식하는 것이다.
인간은 마치 이러한 의식작용을 고유하게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이 모든 의식활동들은 반드시 어떠한 대상[色]을 상대해서만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즉, 네 가지 의식활동은 모두 ‘색’을 말미암아서만 일어날 수 있으므로 실체가 없다. 동시에 물질세계인 ‘색’은 의식활동이 일어나도록 함과 동시에 의식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관계이다. 따라서 색·수·상·행·식의 오온은 모두 실체가 없으며 연기적으로 존재하므로 ‘무아(無我)’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요소설을 주장하는 이들과 같이 오음의 각각에 대해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파악하거나, 그에 대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 갖가지 번뇌를 일으켜 집착하면 그것을 특히 오수음(五受陰) 또는 오취온(五取蘊)이라고 한다. 오지연/동국대 강사
첫댓글 일체 중생이 저 모든 다섯 덮음과 열었음을 구경에 벗어나게 하기원하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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