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갈 수 없는 섬 소거문도, 지도를 보면 위치상 가장 가까운 고흥군 외나로도나 여수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지만 여객선이 직접 닿지 않기 때문에 낚시객 이외에는 외지인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이름으로 짐작컨대 유명한 관광지 거문도 바로 옆에 붙어 있을 법도 한데 거문도와의 거리는 자그마치 35㎞나 떨어진 작은 섬이다.
산세 험하고 교통시설 열악
소거문도는 교통사정뿐 아니라, 섬의 산세가 험하고 항구 시설이 나빠 사람 살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마을 동쪽에 있는 328m의 높은 산이 근처 해안을 단조롭게 만들며 지형 또한 급경사를 이뤄, 주민들은 남서쪽의 만입 인근에 모여 산다. 전기는 이웃 손죽도에서 철탑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그렇지만 소거문도는 다양한 식물종이 분포돼 있어 생태계의 보고라 할 만하다. 섬의 주요 수산물은 전복과 문어다.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300여 년 전으로 오씨와 이씨가 처음 들어왔고, 그 후에 김씨, 전씨, 방씨, 송씨, 정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 온다. 한때 4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13가구에 19명(2014년 현재)이 살고 있다. 돈벌이 나가고, 죽고 해서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참고로 1973년 내무부에서 발행한 '도서지'에 의하면 소거문도는 46가구 307명, 초등학생이 70명이었다.
'섬 주민들의 발' 여객선
여수항을 출발한 쾌속선 '오가고호'는 가막만을 지나 백야도와 개도를 뒤로 하고 속력을 내 파도를 가르기 시작한다. 백야도와 개도는 여수항에서 외해로 나가는 출입문이자, 가막만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한 시간쯤 달리니 다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를 잇는 연륙교다. 바다 그물을 끄는 작은 배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쾌속선이 파도를 가른 지 어느덧 두 시간…. 안개 탓에 거금도 앞 시산도가 아득하게 보이더니, 배는 손죽도를 향해 내달린다. 소거문도는 손죽도 옆에 있는 작은 섬이다. 쾌속선은 소거문도에는 기항하지 않는다. 손죽도에서 내려 '섬사랑호'로 갈아타고 섬에 들어가야 한다. 이 배는 손죽도에서 소거문도와 평도, 광도를 다니는 낙도 보조 항로 여객선이다.
손죽도에서 섬사랑호를 타고 포구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손죽도 왼쪽 끝 지점에 있는 길쭉하게 생긴 무인도인 잔커리도. 잔커리도는 커다란 바위섬으로 나무들이 듬성듬성 뾰족하게 심어져 있다. 온통 바위뿐이고 위쪽에 나무들이 약간 심어져 있을 뿐이다. 섬이라기보다는 암벽이라고 해야 할 듯. 그것이 잔커리도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소거문도는 산세가 험하고 해안가 지형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소거문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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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둘러보기
소거문도에 닿자 여느 섬과는 다르게 선착장이 상당히 높다. 배 두척 만이 선착장을 벗어난 곳에 정박해 있다. 올라가다 보니 저 위에 마을 사람 몇 명이 앉아 소일하고 있다. 우리를 보더니 어디서 왔느냐 하기에 백야도에서 왔다고 하니 먼 곳에서 왔다 한다. 길은 45도가 넘을 정도로 급경사로, 차는 올라가지도 못할 것처럼 가파르다. 소거문도의 바위들은 절경 그 자체다. 떨어지면 그대로 즉사할 것 같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다. 맞은편의 높은 산에는 북한산 인수봉을 연상시키는 암벽이 형성돼 있다. 길 오른쪽에 조그마한 조형물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충혼탑'이라는 글귀와 함께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6ㆍ25전쟁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곳 출신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 S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경사가 상당하다. 예전에는 비료나 화물을 소달구지로 끌어서 올렸다. 최근에는 1톤 봉고차가 그 일을 대신했는데 지금은 고장이 났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콘크리트 길 왼쪽은 밭이고 오른쪽은 거의 잡초다. 마을에 들어서니 그제야 집들이 나타난다. 태풍 영향 탓인지 집들이 모두 돌담에 숨어 있어 밖에서 봤을 때는 집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이곳의 담벼락 역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 태풍 등을 대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콘크리트길을 중심으로 아래쪽에 집이 몰려 있고 위쪽은 대체로 밭이다. 식수는 공동으로 사용하는지 위쪽에 커다란 철제 통이 있다. 물어보니 저수 장치라고 한다. 여기에 물을 받아 놓고 섬 전체에 공급한단다.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계속 내려가니 하얀 학교 건물이 있다. 초등학교 분교로 폐교된 지 이미 오래였다. 조그마한 운동장이었을 마당은 온통 잡풀로 뒤덮여 있고 '나라에 충성을 부모에 효성을'이란 글이 새겨진 조형물이 운동장 한 쪽에 세워져 있다. 폐교 건물은 그래도 쓸 만해 보인다.
낙도 분교의 염소 사육
필자는 1992년 봄부터 이 섬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벌써 20번 이상 왔다. 이 마을의 전상수 할아버지가 소가 끄는 리어카에 짐을 싣고 45도 정도의 비탈길을 올라가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 액자가 수십년 째 필자의 방에 걸려 있다. 빨래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들, 4명의 어린이들이 좁은 교실에서 복식 수업을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부터 35년전인 1979면 7월2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낙도 어린이들 염소 길러 진학의 꿈' 기사를 잠시 싣는다.
전체 33가구가 살고 있는 여수시 삼산면 소거문도는 산악지형으로 밭이 조금 있고 논은 한평도 없는 곳으로 선착장도 부실해 배들이 몇 척 없다. 그래서 여수로 소위 유학을 떠나야 하는데 어려운 가정형편상 거의 진학을 포기한 상태였다. 이것을 딱하게 여긴 소거문도 분교의 박무정 선생이 염소를 키워서 진학 자금을 마련하려고 섬 주민들과 상의하고 각계에 염소 구입자금을 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사는 박 선생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독자들이 그동안 기증해온 성금 가운데 25만5500원을 여수교육청을 통해 소거문도 분교에 전달했다. 박 선생은 이 지원금으로 섬 주민들과 장학회를 만들고 우선 염소 2마리를 사와서 사육을 시작, 벌써 12마리로 늘어났다. 염소 사육에 성공한 이 학교는 내년도 졸업생 9명과 가난해 진학을 포기했던 분교 어린이 36명 전체가 열망하던 중학교 진학의 꿈을 이루게 됐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예전에는 소거문도를 비롯한 낙도 어린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집안 살림 때문에 여섯 살만 넘으면 미역과 김을 말리며 부모님을 도왔다. 더 크면 초등학교를 마치고 소를 산으로 끌고 가 풀을 먹였다. 산에 가서 나무도 해오고, 농사일도 거든다. 낙도 어린이들은 해초 채취철과 농사철이 되면 가장 바쁘다. 그래서 섬에 사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 못하고, 가난해 중ㆍ고교 진학률이 떨어진다. 섬은 교통, 의료, 교육, 문화, 산업 등이 부족하거나 전혀 없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대부분 섬을 떠나고 있다.
소거문도 역시 육지에서와 같은 복지 혜택은 거의 누리지 못하는 외딴 섬이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소리는 청량하고, 공기 또한 맑고 신선하다. 마을 복판 나무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육자배기 노랫가락이 섬에서 느낀 침울한 기분을 날려 보내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섬을 뒤로 하게 한다.
이재언 섬 전문 시민기자ㆍ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소거문도는
여수시 삼산면에 딸린 섬으로 여수와는 100㎞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면적 0.144㎢, 해안선 길이 7.5㎞, 인구는 13가구 19명(2014년 기준)이다.
지명 유래
고지대에 마을이 형성돼 있는 소거문도는 산이 톱날 같이 생겼다 하여 톱 '거(鋸)'자를 지명에 붙여 거문도(鋸文島), 거귀리도라 했는데 이후 거문도(巨文島)와 음이 같아 사용상 혼란을 막기 위해 앞에 '소(小)'자를 붙이고 '거(巨)'자를 써서 소거문도(小巨文島)라 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섬의 형태가 거문도의 고도와 닮아 작은 거문도란 뜻에서 소거문도라 부른다고도 한다. 원래는 삼산면 관내에서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웃점'이라 불렸다고 한다.
가는 길
여수항 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행 배를 타고 손죽도에서 내려서 섬사랑호를 타야 한다. 출항 시간 9:00, 15:00, 선장 010-9398-8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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