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효사거리 : 40Km ~ 50Km(?)
최대 고사각 : 53도
총중량 : 1350톤
총길이 : 430m
폭 : 7m
높이 : 12m
포신길이 : 32.5m
탄두중량 : 700kg(HE탄) 250kg(AP탄)
구경 : 80cm
장전시간 : 20분~50분 15발/일
명중률 : 20%
추진을 위한 운송수단 :DRG class V188 2량
대차차륜 수 : 80개 (2축대차 : 40개)
운영요원 수 : 조립, 해체인원 250명이 3일간 투입.
2500명이 3~6주간 노반건설, 궤도부설 궤도수리 등에 투입,
2개 방공대대가 공습 방어용으로 투입.. 기타 엄호부대를 합하면 3천명 가량이 구스타프
를 위해 투입됨.
제작비용 : 7백만 제국마르크
총통 집권 후, 재군비에 착수하며 프랑스 침공준비에 혈안이 된 히틀러는, 크루프사(Krupp -현재도 군수메이커인데, 삼성중공업이나 로템처럼 군수장비 생산은 부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지노선을 박살낼 수 있는 강력한 대포조병을 명령합니다.
크루프사에서는 머리싸매고 이리저리 연구하고 시행착오 끝에.. 당시 최대 구경의 열차포가 레오파드 K5로(역시 독일), 28cm였는데.. 무려 3배인 80cm의 구스타브 열차포의 제작에 성공합니다.(2000여명이 6주간 제작에 투입됨)
유럽은 소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표준궤여서, 열차포는 독일 외에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소련 등에서도 운영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때 북군에서 주로 운영했습니다.
마차를 통해 이동하는 것에 비해 고위력의 대구경포를 탑재할 수 있고, 기동성도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구스타프는 자력이동이 불가능해서 포신 따로 포가 따로.. 이런 식으로 해체이동후 전장에서 발사를 위한 재조립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제작된 연도가 1941년에, 실전배치가 1942년인데, 이때 이미 독일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전부 관광보내놓아서 쓸 데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영국의 지배하에 있는 지브롤터나 포격하려는 뻘짓계획을 세우다가 취소되고, 배틀 오브 브리튼에서 영국공군에게 괴링의 루프트바페가 관광타는 마당이어서, 영국 포격계획에 동원되다 취소되는 등, 먼지만 날리던 세월을 보내다가, 히틀러의 바르바롯사 작전으로 소련를 본격적으로 침공하게 되면서 빛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보면, 최초이자 최후의 전투는 세바스토폴 요새 공략전입니다. 크기가 크기다보니 전선으로 이동시키는것도 하나의 역사였습니다.
레일을 깐 뒤, 구스타프를 조립시켜 올리고, 기관차 중련으로 1Km를 조심스럽게 이동하면 뒤의 1Km 선로는 걷어내고.. 다시 앞에 깔았고.. 전방의 측량부대는 구스타프가 이동할 최적의 장소(평지에 가까운 기울기)를 골라내고..
항공부대는 공중에 적이 있나, 전방에 매복이 있나 열심히 정찰하고.. 방공부대는 방공부대의 방어범위에 구스타브가 들어가도록 계속 조절하고.. 일반 알보병들은 열심히 전투경계태세로 구스타브를 호위하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세바스토폴 교외에 위치를 잡은 구스타프는 6월 5일, 6일, 7일 11일, 12일.. 이 5일간의 포격동안 구스타프 포는 7군데의 목표물에 48발을 발사했습니다. 소련군에게 있어 피해는 괴멸적이어서, 천연암반으로 되어있는 30여미터의 땅속을 뚫고 들어가 탄약고를 명중시키고, 요새 내부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시험발사에서 60m의 구덩이를 만들었으니.. 암반 30m뚫기는 장난이죠..)
이 위력만큼 부담해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구스타프가 한번 포격할때마다 주퇴로 인한 레일및 차륜 손상이 어마어마해서 몇천명의 공병대들이 레일수리와 차량점검을 했고, 포를 엄호하기 위한 부대까지 합하면 거의 3천여명에 달하는 병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오죽하면 구스타프만 전담하는 672 사단이 1942년 2월에 창설될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소련 요새 방어부대의 항복을 받아내는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니다.
엄청난 위력에 우리의 히총통님은 감동받아서, 크루프사에 2호에 이어 3호를 주문합니다.(Long Gustav-정확도와 사거리 증가를 위해 포신을 늘리고 구경을 52cm로 줄이고 로켓추진탄을 장비한 축소버전)
하지만 구데리안 장군은 딱 한마디로 총통의 과대망상을 조롱합니다.. '위력이야 좋지 하지만 제대로 맞지를 않는데!'
세바스토폴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전략적으로 카스피해와 연결되는 요충지인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 지리하게 계속되자,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 및 장기적으론 모스크바 공략에 이용하기 위해 크루프사에 추가 주문건의 빠른 제작을 요구합니다만, 만드는것도 문제고.. 운송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철도궤간이 맞지 않았고, 소련에서 노획한 기관차는 성능이 형편 없었습니다. 또한 빨치산의 철도파괴공작으로 무기는 고사하고 식량, 동계용피복과 같은 기본적인 보급품 보급도 곤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가장 중요한 문제는 제공권이 약해지기 시작해서, 연합군의 철도시설 폭격으로독일 본토에서 전장까지의 철도수송이 어려워졌습니다. 도로로 옮기는 것은 소련의 겨울이 도로시설을 막장으로 만들어서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러다보니..
1호인 구스타프도 세바스토폴 함락 이후, 1942년 겨울~1943년 동안 레닌그라드에 배치는 됐으나, 정작 포격은 한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2호인 도라는 스탈린그라드에 배치됐으나, 역시 포격 한 번 못해 보고 소련군의 반격에 밀려 독일 본토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소련군이 물량공세로 독일군을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구스타프 1호는 소련군에 노획(1945년 4월 22일 발견됐는데 사실상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해체후 재활용되고 2호인 도라는 전쟁 종료후, 작센주(州)에서 연합군에게 발견,노획되어 역시 고철로 분해됩니다.. ㄲㄲ
P.S : 유도무기의 발전으로 구스타브와 같은 무기들은 쇠락했습니다만, 현대에도 구스타브와 비슷한 무기들은 존재합니다.
1. 이라크의 바빌론 캐논
연합군에게 처형당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란-이라크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캐나다의 무기기술자 Gerald Bull에게 의뢰해 계획한 350mm 구경의 초대형 무유도 무기입니다. 완성이 임박했었으나, 기술자가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의문의 암살을 당하면서 계획은 중지된 상태였다가, 걸프전쟁때 폭격을 당해 사실상 고철덩어리로 전락했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세상에 그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2. 소련의 2S7
1980년대에 소련이 제작한, 핵탄두 발사용의 203mm 자주포입니다. 최소 사정거리는 30Km
3. 북한 M1989 "곡산"
1985년의 조선인민군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의 초대형 자주포입니다. 구경은 170mm로, 남한의 K-9보다 20mm 큽니다.그러나 남한의 K-9처럼 쏘고 빠지는 히트 앤드런 전략이 불가능한, 차체를 고정시키고 발사해야 하는 구형입니다, 수도권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는 무기입니다.
휴전선에서 발사시 대략 60Km.. 수도권 전역을 사정권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사거리를 길게 잡을수록 정확성이 현저히 떨어지겠지만, 탄두의 종류를 핵이나 생화학무기로 잡으면 민간인/전투원에게 엄청난 타격을 줄 것입니다.
첫댓글 흠.. 크긴 크네요. 평판차가 양사이드로 2개 들어가는군요.
히총통;;;;
히틀러의 비극은 '바보는 아니면서 천재도 아니었다'에서 기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_-;;;
징기스 칸은 '나는 현인이 아닌 몽골족의 구세주다'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가 현인이였다면 그렇게 왕성한(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자비한) 정복활동을 할 수 없었겠죠. 히틀러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