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수필 문득.1336 --- 몽골(원)의 고려 짓밟기
만주지방에 있던 요나라가 멸망한 뒤에 금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거란족이 1211년(고려 희종)부터 몽골의 도움을 받아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지배층의 내분으로 야율유가가 몽골에 투항하였다. 이를 계기로 몽골이 거란을 공격하자 이에 쫓긴 거란의 유민이 1216년(고종) 고려를 침범하였다. 당시 고려는 이들에 의해 개경까지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곧 반격을 가하여 이들을 서경(평양) 동쪽의 강동성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이 몽골은 동진국과 연합하여 거란의 유민을 뒤쫓아 고려에 들어왔다. 추위를 겪으며 군량까지 부족하여 곤경에 처하게 되자 고려에 군량과 원병을 요구하였다. 고려는 몽골의 청을 받아들여 조충과 김취려가 군사를 이끌고 몽골군과 합세하여 강동성에 웅거한 거란족을 섬멸하였다. 그 직후 몽골의 요구에 따라 두 나라 사이에 형제맹약을 맺으면서 고려는 몽골에 굴복하고 말았다. 고려는 몽골을 형님의 나라로 섬기며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몽골은 고려에 공납을 강요하였고 고려는 몽골의 과중한 요구와 몽골 사신들의 고압적인 자세에 반발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 공납을 독촉하기 위해 고려에 파견된 몽골 사신 ‘저고여’가 돌아가는 길에 무참하게 피살되었고 고려의 소행이라 하면서 단교하였다. 단교는 곧바로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는 직접적인 명분이 되었다. 그간 1259년까지 29년 동안 7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여 괴롭히다가 원나라 때 고려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40여 년 동안이나 항쟁하였으나 삼별초의 몰락 이후에 갈수록 약탈과 공녀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면서 견뎌내지 못했다. 끝내는 왕자를 인질로 데려가 부마국으로 삼고 왕권까지 좌지우지하며, 왕의 호칭에 충(忠)을 붙여 충렬왕이라 부르면서 충성을 강요하였다. 더 나아가 여몽 연합군을 만들어 일본에 2차례나 원정하였으나 일본군의 완강한 방어와 바닷길의 높은 파고로 인해 좌절되며 포기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