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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진안고원길 4구간(섬진강 물길)
여행일 : ‘24. 2. 17(토)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성수면 일원
여행코스 : 성수면사무소→반용재→반용마을→포동마을→성수체련공원→양화마을→오암마을(거리/시간 : 12.8km, 실제는 12.98km를 3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무진장(茂鎭長)’은 무주·진안·장수를 일컫는 말로 수려한 경관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중 진안은 ‘북한에는 개마고원, 남한에는 진안고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산과 고갯마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길도 마음껏 굽이진다. 그런 진안에 일상에서 찌든 근심을 훌훌 털고 자연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을 내었으니 이게 ‘진안고원 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사람 왕래가 끊겼던 묵은 길, 잊혔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냈다. 놀며 쉬며 걷는 재미있는 느린 여행길로 ‘미슐랭가이드지’로부터 별3개 만점을 받은 세계적인 둘레길이기도 하다.
▼ 들머리는 성수면사무소(진안군 성수면 외궁리)
순천·완주고속도로 상관 IC에서 내려와 17번 국도를 타고 임실 방면으로 11km쯤 내려오다 ‘병암삼거리(관촌면 덕천리)’에서 49번 지방도로 옮겨 8km쯤 들어오면 성수면사무소에 이르게 된다. 4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임을 알리는 조형물은 면사무소 뜨락에 세워져 있다.
▼ 이름(섬진강 물길)처럼 섬진강의 물길을 눈요깃거리 삼아 걷는 12.4km짜리 구간. 초반의 ‘반용재’와 중반의 ‘가장골’을 빼면 섬진강 본류와 지류(달길천)를 따라 걷게 된다. 난이도는 ‘보통’. 코스의 길이가 짧지만 반용재의 가파른 오르막 구간을 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10 : 23. 남서쪽 방향의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관촌으로 이어지는 49번 지방도(관진로)이다.
▼ 10 : 24. 80m쯤 걷다 ‘성수파출소’ 직전에서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농로를 겸한 임도를 따라 ‘반용재골’로 들어간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 섬진강변의 용포리 주민들이 성수면소재지인 외궁리로 갈 때 넘나들던 고갯마루이다. 그렇다고 왕래가 잦던 길은 아니었다고 한다. 용포리가 성수면보다 강 건너 임실군 관촌면에 속한 생활권이었기 때문이다.
▼ ‘반용재’로 올라가는 길. 용포리(반용·포동·산막) 주민들이 이용하던 숲길은 신작로가 뚫리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고원길을 내면서 골짜기를 에돌아 올라가는 숲길을 조성했다. 가파른 구간에는 통나무계단도 깔았다. 그런데 이게 길고 가팔라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덕분에 나그네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간다.
▼ 그런 오르막이 10분이면 끝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다음부터는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 10 : 36. 트레킹을 시작한지 14분. 군도 1호선(가외반로)으로 올라선다. 핸드폰의 앱이 해발 335m를 찍고 있으니 10분여 동안 고도(高度)를 75m나 높인 셈이다. 참고로 이 도로(郡道)는 반용마을과 포동마을을 거쳐 745번 지방도(관마로)로 연결된다.
▼ 이정표(오암 12.0km/ 성수면사무소 0.8km)는 이곳이 인증 지점임을 알려준다. 그러니 자신의 얼굴과 이정표가 겹치게 사진을 찍어두도록 하자.
▼ 이후 고원길은 도로를 따라 ‘반용재(해발 348m)’를 넘는다. 성수면 외궁리(안평마을)와 용포리(반용마을)를 잇는 거리 1.2km, 높이 348m의 고개이다. 남북으로 흐르는 능선을 동서로 가르는데, 북쪽에는 성수면의 이름 유래가 된 ‘성수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병풍바위를 지나 ‘방미산’에 이른다.
▼ ‘반용재’의 왼편(서쪽) 바로 아래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 세월은 결혼 상대마저도 변화시키는가 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라때’ 시절. 배우자감은 이웃마을 처자 말고는 없었다. 그게 글로벌 시대를 맞아 ‘동남아 여성’으로 폭을 넓혔는가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북한여성’으로 바뀌어 있다.
▼ 이 구간도 역시 산자락이 온통 ‘복분자 넝쿨’로 가득 차 있었다. 오뉴월에 찾아와야 제격이겠다는 얘기다.
▼ 10 : 43. 요것조것 기웃거리며 600m쯤 걷다보면 이정표가 이제 그만 오솔길로 들어가란다. ‘진안고원 길’의 참맛을 다시 느껴보라는 모양이다.
▼ 고원길 이정표는 다양한 정보를 전해준다. 구간 정보(오압 11.4km/ 성수면사무소 1.4km)를 기본에 깔고, 근처 주요 포인트에 대한 정보(포동마을 2.5km/ 원외궁마을 2.3km)를 보탰다. ‘야생동물 주의’ 안내는 팁이다.
▼ 탐방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가장자리 잡목을 깔끔이 제거해 임도처럼 널찍하게 만들어 놓았다. 거기다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내리막길이다.
▼ 산자락을 빠져나오니 잘 지어진 고택 한 채가 얼굴을 내민다. 뜨락도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했다. 이곳 반용마을은 성수산을 병풍삼은 것으로도 모자라 섬진강까지 앞마당에 두었다. 그러니 돈 많은 이들이 찾아들 만도 하겠다.
▼ 10 : 51. 몇 걸음 더 걸어 도로(가외반로)로 올라선다. 고원길의 뭉툭한 방향표지판은 오른쪽으로 가란다. 하지만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왼쪽으로 가고 있었다. 30m만 가면 ‘반용교(고원길이 지난다)’가 나오는데 굳이 600m나 에돌아갈 필요가 없다면서.
▼ 10 : 53. 도로를 따라 150m쯤 올라가다 마을표지석 앞에서 ‘반용마을’로 들어간다. 법정 동리인 ‘용포리(龍浦里)’를 구성하는 3개 자연부락(반용·포동·송촌) 중 하나로 진안군과 임실군 사이의 협곡에 기다란 형태로 놓여있다. 성수산을 베개 삼고, 섬돌 아래 섬진강을 둔 지형이다.
▼ 탐방로는 마을을 관통한다. 예쁜 돌담길을 낀 고샅길이 가슴까지 설레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너무 호들갑떨지는 말자. ‘둘레길’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들일 나가던, 옆 마을에 일보러 가던, 장보러 가던 길들을 모아 연결했을 뿐이다. 지역 주민이 낯선 나그네에게 그런 길을 열어주었고, 우린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생활리듬을 깨뜨리는 소음까지 발생시켜서야 되겠는가.
▼ 소박한 골목길은 강변으로 이어진다. 강변으로 나오니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나 볼 법한 예쁜 고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아까 봤던 한옥이 양반집이었다면 소슬지붕까지 얹은 이건 사대부 가문에서나 지을 법한 형식이다.
▼ 강변의 정자(盤龍亭)’. 주위를 야외박물관으로 꾸몄다고 한다. 빗돌까지 세워가며 자랑하지만 막상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 설마 요 장승이 전부는 아니겠지? 아무튼 반용마을은 ‘귀농귀촌 우수마을’이라고 했다. 배산임수의 수려한 경관에다 마을을 가꾸려는 노력들이 더해져 그런 결과가 만들어졌지 않나 싶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화합이 높아 정월 대보름날에는 ‘달집태우기’ 행사까지 성대하게 열린다고 했다.
▼ 강변의 느티나무 거목 두 그루가 옛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옛날 저곳에는 사람만 건너다니던 낮은 다리(잠수교)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저 느티나무는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게고. 하지만 2000년 새 다리가 놓이면서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작은 쉼터를 조성했다. 한때 나룻배(1970년대 잠수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나룻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까지 놓아두었으나 그것마저도 지금은 옛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11 : 00. 마을을 빠져나와 ‘반용교’로 섬진강을 건넌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마을을 에둘러오느라 10분이나 걸렸다.
▼ 다리를 건너다 바라본 상류 쪽 풍경. 섬진강을 품은 반용마을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임을 알려준다.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주민들 간의 정 또한 돈독한 살기 좋은 마을이란다.
▼ ‘반용교’ 아래에는 보(湺)가 설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반용마을 앞 강물은 일정한 수량을 유지한다. 하나 더. 저 보를 지난 섬진강 물길은 90도로 방향을 튼다. 앙칼진 산릉이 섬진강을 남쪽에서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 다리 건너. 안내판은 ‘반용(盤龍)’이란 지명의 유래를 적고 있었다. 풍수상 마을이 초중반사(草中盤蛇)의 낙원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초중반사란 야초·인삼·약초가 우거진 속에 뱀이 소반처럼 사리고 있는 형국을 이른다나? 초중반사의 명당에 뱀이 사리고 있으면 ‘반룡(蟠龍)’이 된다. 이게 언제부턴가 반룡(盤龍)으로 변했나보다. 참! 그 옆에는 ‘섬진강’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 두었다.
▼ 11 : 05. ‘명산휴게실’을 지나자마자 지방도를 벗어나 강변 둑길로 내려선다.
▼ 고원길은 이제 섬진강 둑길을 따라간다. 강 건너에서는 감입곡류의 물줄기가 만들어놓은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나그네와 함께 간다. ‘섬진강 물길’이라는 이름값을 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데미샘을 출발한 물줄기는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과 만나 수량을 늘린다. 백운면을 적시며 흐르던 강물은 마령면과 성수면을 지날 때까지 섬진강 최상류를 이룬다. 그러다 진안군 남부지역 산골오지를 지나 임실 땅으로 흘러가면서 어느 정도 강의 면모를 갖춘다.
▼ 앗! 봄이닷! 봄이 유독 늦게 찾아온다는 진안 땅이다. 그런데도 다른 곳에서는 구경조차 못해본 푸른 초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하긴 요 며칠, 언론은 남녘의 꽃소식을 연일 전해주고 있었다.
▼ 포동마을로 가는 강변길 안쪽에는 경작을 기다리는 논이 자리한다. 그 속에 ‘임마누엘 냉천수양관’이 있다. 노인복지센터와 요양원까지 갖춘 큼지막한 시설이지만, 수양관 근처로 도로가 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부지를 사는가 하면, 선교비 마련을 위해 하느님이 장사를 시켰다는 등 받아들이기가 썩 편지 않는 종교시설이다.
▼ 강 건너 비탈진 산자락에도 민가가 들어섰다. 맞다. 사람들은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 주변에 집을 짓고 살아왔다. 그게 한집 또 한집 늘어나면서 마을을 이루었고, 그렇게 조상대대로 살아왔다. 그러니 강가 사람들에게 섬진강은 어머니 같은 존재다. 강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고,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즐겼다.
▼ 11 : 24. 그렇게 걷다보면 ‘포동2교’에 이른다. 메인 도로나 마을을 잇는 우리가 익히 아는 교량이라기보다는, 강 건너 산자락에 만들어놓은 다랑이 논·밭에 일하러 다닐 때나 이용하는 것 같다.
▼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가파른 절벽과 평평한 농경지가 대조를 이룬다. 강변 둑길은 계속해서 그 사이를 가른다. 그리고는 큰 원을 그리면서 ‘포동교’로 간다. 참고로 포동교는 성수면 용포리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흘러내려온 ‘회초천’이 섬진강에 합류되는 두물머리에 있다. 회초천을 보탠 섬진강은 포동교 아래서 방향을 남쪽으로 바꿔 임실군 관촌면으로 흘러간다.
▼ 하지만 고원길 이정표(오암 8.3km/ 성수면사무소 4.5km)은 이제 그만 섬진강과 헤어지란다. 그러면서 ‘포동마을’로 인도한다. 동북쪽 좌포리에서 흘러온 섬진강은 반룡마을 앞에서 동쪽으로 휘감아 돌면서 꽤 넓은 충적지 들판을 만들어냈다. 포동마을은 그 들판의 안쪽 가장자리에 있다.
▼ 11 : 27. 250m쯤 더 걸어 군도(1호선, 용포로)로 올라선다. 이어서 포동마을을 향해 왼쪽으로 간다. 참고로 이 길은 745번 지방도를 만난 다음 ‘관촌면(임실군)으로 간다. ‘관촌(館村)’은 삼례·전주를 지나온 통영대로 옛길이 통과하는 길목으로 출장관원 등이 묵을 수 있는 관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11 : 29. 잠시 후 도착한 ‘포동마을(이정표 : 오암 7.7km/ 성수면사무소 5.1km)’. 용포리(龍浦里)에 속한 또 다른 자연부락으로 큰 물가에 위치한 탓에 예전에는 나룻배로 건너다녀야만 했던 오지이다. 그래서 ‘나루터’라는 뜻을 가진 ‘포동(浦洞)’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 안내판은 그런 사연을 적었다. 면소재지와 멀리 떨어진데다 강과 산으로 가로막혀 교통이 매우 불편했단다. 반면에 강변으로 이어진 임실군 관촌면은 다니기가 수월했다나? 그래서 주민들은 학교도 관촌으로 갔고, 시장을 보기위해서도 관촌으로 갔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관촌이 생활권인 셈이다.
▼ 마을회관 앞 광장. 포동마을은 그 역사만큼이나 큼지막했다. 맞다. 포동마을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근처 ‘유물산포지’에서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발굴된바 있다.
▼ 정자는 ‘풍류정(風遊亭)’이란 현판을 달았다. 바람 솔솔 불어오는 섬진강변에서 풍치 있고 멋스럽게 놀아보라는 모양이다. 아무튼 난 이곳에서 15분을 머물다 갔다. 산악회 회장님의 실수로 버스에서 잘못 내려, 아직까지도 길을 헤매고 있는 집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서이다.
▼ 마을에는 카페와 식당까지 들어서 있었다. 샤워장까지 갖춘 물놀이장도 보인다. 맞다. 이 마을은 ‘녹색농촌체험마을’이라고 했다. ‘바람도 쉬어간다’는 수식어까지 달았다. 그러니 저 정도의 부대시설쯤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 마을 주민의 시가 적힌 카페 외벽이 눈길을 끈다. <바람 따라 돌고 돌아 한참을 돌다가/ 바람도 쉬어가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봄이면 강에는 물안개 피고... -이하 생략-> 읽는 것만으로도 마을 풍경이 그려지는 멋진 표현력이다.
▼ 고원길은 고샅길을 누비다가 마을 뒤편으로 빠져나간다. 아까 반용마을에서도 얘기했듯이 주민들의 생활리듬을 깨뜨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 이 뭣꼬? ‘기러기’ 조형물을 문설주에 매달아놓았다. 기러기는 금슬이 좋기로 유명한 새다. 짝짓기를 한 암수는 한쪽이 죽어도 다른 기러기와 짝짓기를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전통혼례 때 신랑이 기러기 인형을 주는 풍습이 있다. 이로보아 기러기가 쌍으로 걸린 저 집은 부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외기러기가 걸린 옆집에서는 홀아비나 홀어미가 살고 있을 것이고...
▼ 11 : 51. 마을 뒤. 포장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임도로 올라가려는데,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주민이 오른쪽으로 나있는 샛길(비닐하우스를 오른편에 끼고 도는 모양새이다)로 가라고 알려주신다. 길이 나뉘는 지점이지만 방향표지판이 없기에 응당 직진이겠거니 했다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 11 : 52. 몇 걸음 더 걸어 농로(용포로)로 내려선다. 이어서 나지막한 고개 하나를 넘는다.
▼ 길가 사과나무는 가지치기를 이미 끝냈다. 맞다. 이틀 후면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다. 그러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나무는 꽃망울을 활짝 터뜨릴 것이다.
▼ 11 : 59. 잠시 후 만난 삼거리(이정표 : 오암 7.1km/ 성수면사무소 5.7km). 성벽이라도 되는 양 곤포사일리지가 앞을 턱 가로막는다. 그리고는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가란다.
▼ 12 : 03. 이후부터는 임도를 탄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기장골’에 있는 또 다른 삼거리를 만난다. 이때 ‘진안고원 길’의 참모습이 느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둥글고 한가로운 길, 그래서 고원길에서는 경쟁이나 도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풍경을 오롯이 즐기기만 하면 된다.
▼ 기장골 이정표(오암 6.6km/ 성수면사무소 6.2km)는 이곳이 두 번째 인증지점임을 알려준다.
▼ 임도는 기장골 고갯마루를 향해 오름짓을 한다. 이때 잘 생긴 노송 한 그루가 힘내라며 격려의 손짓을 보내온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를 외치며...
▼ 고개 너머. 고원길 이정표가 왼쪽으로 가란다. 하지만 집사람은 지름길이라며 오른쪽으로 간다. 다른 둘레길 도반들도 오른쪽으로 갔다면서 말이다. 고랭지채소밭의 밭두렁 끝에서 두 길이 다시 만난다는 것이다.
▼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밭두렁 끝에서 길이 사라지면서 숲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린 가시나무 넝쿨이 우거진 원시림을 헤쳐 나가며 찔리고 할퀴는 것으로도 모자라 따귀까지 맞아가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정규 탐방로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고원길은 이제 침목계단이 깔린 숲길을 따라 또 다른 임도로 간다.
▼ 12 : 13. 임도를 따라 이번에는 이차선 도로인 ‘용포로’를 만나러 간다.
▼ 12 : 20. ‘용포로(이정표 : 오암 5.6km/ 성수면사무소 7.2km)’로 내려선 다음 도로를 따라 북진한다. 이 길은 ‘양산교차로’에서 745번 지방도(관마로)와 만난다. 참고로 ‘용포로’는 745번 지방도 포동교차로(성수면 용포리)에서 시작해 포동마을과 반용마을(강 건너)을 거친 다음 양산교차로(성수면 좌포리)에서 745번 지방도와 다시 만나는 2차선 도로이다.
▼ 건너편에는 성수산(492.5m)이 있다. 그리고 성수산과 용포로 사이로 섬진강이 흐른다. 다시 만난 섬진강은 아까 지나온 반용마을과 포동마을 방향으로 흘러간다. 섬진강이 포동마을 뒷산을 가운데 두고 180도 휘돌아가는 모양새이다. 고원길로 풀어보면,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포동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반용교에서 800m쯤 떨어진) 섬진강의 상류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 섬진강변 ‘아랫삼막들’에서는 물놀이가 가능하다고 했다. 깊지 않은 곳에서는 물고기와 다슬기도 잡을 수 있단다.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인 다음 날. 다슬기 해장국으로 속을 풀 수 있다니 이 아니 좋을 손가.
▼ 왼쪽 산자락에는 ‘마이산 풍혈냉천 캠핑장’이 들어서 있었다. 데크 사이트로 조성된 오토캠핑장 36면과 글램핑 시설 5동이 들어서있는데, 공간이 넓은데다 소나무 사이마다 사이트가 배치되어 있어 그늘에서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단다.
▼ 12 : 29. 벚나무 가로수의 호위를 받으며 걷다보면 어느덧 널따란 둔치에 이른다. 섬진강 물줄기가 휘돌면서 만들어놓은 충적지인데, 연습구장 2면과 덕 아웃, 백넷, 내외야 그물망과 펜스 등을 갖춘 전용야구장을 조성해놓았다. 지금 그곳에서는 젊은 동호인들이 훈련에 한창이다. 덕분에 우린 산골의 적막을 깨뜨리는 그들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 12 : 32. ‘산막교’로 섬진강을 건넌다. 초입의 이정표(오암 4.8km/ 성수면사무소 8.0km)가 양화마을까지 2.2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 다리 아래로는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강의 최상류라 수량이 많지 않고 강폭도 넓지 않다. 이곳을 지난 섬진강은 수많은 산과 들, 그리고 마을을 돌고 돌면서 남해로 흘러간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이곳 진안을 시작으로 임실과 순창을 지나 전라남도 곡성과 구례 땅을 거친 다음, 경상남도 하동과 전라남도 광양을 가르면서 흐르다가 광양만에 닿는다.
▼ 상류 쪽 풍경. 강 오른쪽 둔치로 탐방로가 나있다. 길가에는 둔치 특유의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대가 낮으니 태풍이나 집중호우 때는 차량을 옮기라고 적었다. 물이 깊은데다 유속의 변동까지 심하니 물놀이도 삼가주란다.
▼ 강 건너 산비탈은 기암절벽을 이뤘다. 산태극수태극을 이루며 흐르던 물줄기가 산줄기를 휘돌아나가면서 깎아 만든 절경이다.
▼ 아까도 얘기했듯이 감입곡류의 섬진강은 곳곳에 크고 작은 충적지 들판을 만들어놓았다. 그중 하나에 ‘성수체련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1만평쯤 되는 부지에 잔디운동장과 족구·배구·농구·인라인스케이트장 등 야외시설과 샤워실·취수대·스트레칭 장소 등 부대시설을 갖추었다. 매년 개최되는 면민의 날을 비롯한 각종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는데, 작년에는 ‘진안홍삼배 유소년축구대회’로 열기가 달아오르기도 했단다.
▼ 12 : 43. 체련공원의 끝(이정표 : 오암마을 4.1km/ 성수면사무소 8.7km). 고원길은 야외화장실 뒤로 간다. 그리고는 745번 지방도(관마로) ‘양산교’의 교각 아래를 지난다. 참고로 ‘관마로’는 양산교 건너에서 관촌면을 향해 터널로 들어간다. 터널이 뚫리기 전 양화마을 사람들이 관촌에 가기위해서는 ‘말궁구리재’라는 고개를 넘어야만 했단다. 말이 고개를 넘다가 구르는 일이 하도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나? 이 지역이 그만큼 오지였다는 얘기가 되겠다.
▼ 이후로도 계속해서 둔치를 따른다. 745번 지방도의 왼쪽 아래로 길이 나있다. 그런 인연으로 집중호우 때는 지방도가 ‘고원길’이 되어준다.
▼ 12 : 52. 지방도의 교각 아래를 다시 한 번 지나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잠수교(이정표 : 오암 3.2km/ 성수면사무소 9.6km)가 놓여있다.
▼ ‘잠수교’는 장마철마다 물속에 잠겨버리는 반쪽짜리 다리다. 하지만 이게 풍경화로 변하면 온전한 다리보다도 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거기에 철 지난 갈대라도 강물과 어울릴라치면 그 경관을 훨씬 더 고와진다.
▼ 사람들은 이 일대의 물줄기를 ‘오원천(五院川)’이라 부른다. 섬진강 상류인 제룡강이 서천·신정천과 합류하여 성수면 좌포리와 용포리를 지나는 구간을 일컫는다. 섬진강은 이렇게 구간에 따라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오원’이란 지명은 관촌면 철도역 근처에 있던 조선시대의 교통로를 관할하던 오원역(五院驛)에서 비롯됐다. 삼례도찰방(三禮道察訪)이 관할하던 호남평야의 12개 역들 가운데 하나이다.
▼ 다리 건너에서 만난 또 다른 이정표(양화마을↑ 350m/ 풍혈냉천← 600m/ 포동마을↓ 4.8km)가 짬을 좀 내면 진안의 또 다른 볼거리인 풍혈냉천을 볼 수 있다며 유혹한다. 하지만 다녀오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앞서 걷던 도반이 ‘풍혈’의 문이 닫혀있더라는 상황을 전화로 알려왔기 때문이다.
▼ 들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그분이 보내준 사진으로 달래본다. 양화마을의 풍천도 밀양 얼음골처럼 냉장고 같은 찬바람이 솔솔 나온다고 했다. 풍혈(風穴)은 바깥 공기가 틈새 많은 돌 틈 사이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순간 단열 팽창하면서 급격히 열기를 빼앗겨 찬바람이 나오는 현상이다. 도반은 찬바람이 나오는 동굴이 사유지라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문을 닫아버린 것은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닐까 싶다.
▼ 섭씨 3℃의 석간수가 솟아나는 냉천(冷泉)은 구경할 수 있었다나?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피서를 겸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 12 : 56. 고원길은 745번 지방도를 횡단해 양화마을로 들어간다. 법정동리인 ‘좌포리(佐浦里)’를 구성하는 6개 행정부락(원좌·봉좌·내좌·산수동·양화·증자) 중 하나로, 섬진강을 뜨락에 두고 ‘달길천’을 늘상 옆구리에 끼고 살아가는 강촌마을이다. 강변 사람들은 섬진강과 함께 살아간다.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섬진강을 바라보며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달랜다. 강변 느티나무 아래 앉아 강물을 바라보며 삶의 여유를 누리기도 한다.
▼ ‘달길천’의 둑길에는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보림(裨補林)이 분명해 보인다. 풍수지리상 길지 또는 명당의 조건에 부족할 경우 숲과 나무를 심어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했던 조상들의 유산이다.
▼ 수령이 210년이나 된다는 느티나무 ‘보호수’. 매년 정월 초사흘에 당산제까지 지내주는 고목이다. 그래선지 나이만큼이나 품도 넓어 보인다. 그늘에 정자는 물론이고 마을회관까지 품었다.
▼ 안내판은 ‘예로부터 볕이 잘 들어 눈이 잘 녹는다’고 해서 ‘양화(陽化)’라는 지명을 얻었다는 마을의 유래를 적고 있었다. 마을의 자랑거리인 ‘풍혈냉천’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준다.
▼ 양화마을(이정표 : 오암 2.7km/ 성수면사무소 10.1km)부터는 둑길을 따라 ‘달길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섬진강 본류를 벗어나 지류로 들어선 셈이다. 참고로 달길천은 성수면 중길리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흐르다가 양화마을 앞에서 섬진강에 합류되는 7km 길이의 하천이다.
▼ ‘아름다운 순례길’ 이정표는 이 근처에 ‘대산종사’의 탄생지가 있음을 알려준다. ‘대산’은 원불교 세 번째 종법사(宗法師, 원불교 교단의 최고 지도자)인 김대거(金大擧, 1914-1998)의 법호이다. 2대인 정산종사에게서 바톤을 받아 교조인 소태산대종사의 법통을 이은 인물인데, 이곳 좌포리에서 태어나 11살 때 소태산대종사를 만나 출가했다. 하나 더. 대산종사는 내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니 그가 남긴 ‘게송’에 반해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
▼ 지류이어선지 강폭이 많이 좁아졌다. 수량도 뚝 줄어들었다. 하지만 강변이 보여주는 풍광은 여전히 고왔다.
▼ 달길천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넓지 않은 농경지가 길게 펼쳐진다. 하천가에 자리한 농경지는 낮은 산들로 감싸여있다. 가는 길에 그런 풍경 속에 들어앉은 중길교(오암 1.5km/ 성수면사무소 11.3km)를 지나기도 한다.
▼ 13 : 36. 4구간의 종점인 ‘오암마을’에 도착했다. 두 개의 하천(만덕산 오두재에서 흘러내린 ‘중길천’과 이 마재골에서 발원한 물줄기)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자리한 작고 소박한 자연부락이다. 고원길(5구간) 조형물은 마을 앞, 두물머리에 놓인 다리에 세워져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3시간 10분을 걸었다. 앱이 12.98km를 찍고 있으니 시간당 4km를 걸은 셈이다. 반용재라는 결코 쉽지 않은 고개를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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