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이 감동, 어쩌지?
2021년 6월 4일
음력 辛丑年 사월 스무나흗날
올봄에는 비가 정말 자주 내린다. 그뿐만이 아니라
날씨 예보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도시에 살던 때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그다지 관심을 둔
기억이 없고 신경을 쓴 기억 또한 없다. 도시와 달리
산골에서 살다보니 날씨의 변화에 꽤 신경을 쓰게
된다. 텃밭농사 짓는 것도 농사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하는 것인가보다.
이른 아침, 잔뜩 흐리기만 했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내가 아침 걷기운동을 하는 사이 전날 사다놓은
ㄷ자 핀으로 밭고랑에 깔아놓은 부직포 고정시키는
작업을 했다. 예상한 것보다 많이 모자라 더 사다가
마무리를 한 것이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마을 아우가 전화를 했다. "형! 집에 있지? 올라가
보려고..."라고 하여 "그럼, 요즘은 백수라서 집에만
있다네. 올라오시게! 차나 한잔 하세나!"라고 했다.
얼마후 올라와 함께 단지를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지난번 올라 왔을때 내 준 숙제 검사를
하러 온 것처럼 느껴졌다. 밭을 오밀조밀 꼼꼼하게
잘 꾸며놓았다며 칭찬을 하였고, 펜션주변 시냇가
나뭇가지가 건물쪽으로 뻗어 자라는 게 걱정이라며
오는 가을 잎이 지면 자르자고 했다. 또한 현관옆에
짓는다고 했던 장작집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여
가을쯤 업자를 불러 지을까 싶다고 했더니 그까짓
것 간단한 작업인데 무슨 업자까지 불러 짓느냐고
하며 가을일 끝나면 올라와 지어줄 테니 그때 함께
지어보자고 하며 미리 실측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자기 일인냥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아우가 내려간 후에 아내와 둘이
이구동성으로 아무나 이렇게 생각을 해주는 것은
쉽지않은 일인데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마운 아우다.
마을 아우에게 감동을 받은 기분을 잠시 접어두고
일을 시작했다. 아내가 "비가 오기전에 어서빨리
곤달비를 뜯고 머위를 잘라 서울 막내 애기씨에게
택배 보낼 준비를 해야잖아?"라고 하여 부랴부랴
밭으로 나가 곤달비 잎을 뜯고 머위대를 잎을 따지
않고 꺾었다. 서울 연희동 삼거리 부근에서 막내가
'호천식당'이라는 상호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몇 해 전 방송에 소개되어 그런지 미식가들은 물론
많은 이들에게 꽤 알려져 있어 늘 자랑스럽게 생각
하고 있는 막내아우 부부이다. 커다란 바나나 박스
한가득 담아 포장을 하여 읍내 택배사에 다녀왔다.
연락을 하지 않아도 택배사에서 미리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냈다는 연락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카톡문자를 남겨놓았다. 이내 고맙게 잘
먹겠다는 답장이 왔다. 늘 오래비 챙겨주는 아우가
고마운데 오래비는 겨우 산나물같은 풀떼기나 뜯어
보내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그렇지만 오래비가
보내주는 것이라며 좋아하는 아우가 고맙다.
그랬는데, 택배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딩동하면서
문자가 왔다. 무슨 문자야? 하면서 봤더니 막내가
거금을 촌부의 은행계좌에 송금을 한 것 아닌가?
그 문자 끝에 '퇴직금 쬐끔 수고많았- '라고 적혀
있어 '이게 뭐지? 무슨 퇴직금?'이라고 생각하며
'이게 뭐야? 이렇게나 많이... 너그도 힘들텐데...'
라고 답을 보냈다. 뒤이어 '정말 고생했어 오빠~'
'장사 잘 되믄 또 보내주꾸마' '한여사랑 읍에 가서
맛난거 사드셔' '언니 치과도 델꾸가구' 라고 하는
문자를 받은 그 순간 그만 울컥하여 눈물이 났다.
'우리 막둥이가 이렇게 큰 오래비와 큰 올케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너무너무 고맙다. 잘 쓸게...
눈물이 난다야!'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또
아우가 '왜그래' 'ㅋㅋㅋ' '웃어야지' '좋은 세상에
막둥 효도 받는겨' 'ㅎㅎ' '언니 치과가야 되는데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구' 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래, 고맙다.^^ 그렇게 할게!' 라고 했더니 '응응'
이라고 막둥이에게서 답장이 왔다. 문자로 이러고
있으면 안되겠구나 싶어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여
주며 자초지정을 말한 다음에 막둥이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으로 연결, 아내와 함께 통화를 하여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 막둥이는 촌부와 12살 차이 띠동갑인 아우다.
성격이 활달하고 밝고 맑으며, 아주 당착하고 정말
매사에 끊고 맺음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
음식점을 하며 나름 성공을 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사실 얼마전 오래비가 퇴직한 것을 알게 되었으며,
지난번 매제가 내려와 함께 고깃집으로 식사하러
나가자고 했을 그 무렵 아내가 잇몸이 아파서 함께
가지못한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래비의
퇴직금이라고 하며 올케언니의 잇몸 치료에 보태
쓰라고 거금을 보낸 것 같다. 아무리 남매지간이라
해도 선뜻 많은 돈을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제 부모님이 안계시니
맏이인 우리부부가 부모 맞잡이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되니까 면목이 없다.
자식에게 효도를 받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막내 아우에게 효도를 받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너무 뿌듯하고 기쁘다.
그러고보니 촌부는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오랜 세월을 산골살이의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고마운 마을 아우가 있는가 하면, 요즘과 같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큰 오래비와 올케언니를 위해
거금을 선뜻 송금해주며 막둥이의 효도라고 생각을
하라는 아우가 있으니까 말이다. 살맛난다고 할까?
이 감동,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