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한 바다에서도, 우측통행의 원칙
모 해양대학의 교수로 있을 때였다. 소형 어선의 선원들도 면허가 필요한데, 면허시험에 면접관으로 참석했다. 선원들에게 해상교통법에 대한 질문을 했다. “어선과 상선이 만나면 어느 쪽이 피해야 하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상선이 피해야 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선은 크고 어선은 작으니까요” “상선은 빠르고 어선은 느리니까요”라고 이유를 달았다. 오답이다. 바다의 법칙은 상선과 어선을 구별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선박끼리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법으로 해상교통법이 있다. 그 첫째 원칙은 우측통항이다. 선박과 선박이 만나면 상대를 왼쪽에 두고 지나가도록 한다. 이렇게 하려면 진행 방향으로 보아 공간의 오른쪽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한강유람선이 한강을 이용할 때에도 잠수교에서 행주대교 쪽으로 올라가는 선박은 강북 쪽의 기슭으로 붙여서, 반대로 잠수교 쪽으로 내려오는 선박은 강남 쪽의 기슭으로 붙여서 항해해야 한다. 이러한 우측통항은 예외 없이 관철된다. 항구의 방파제를 통과할 때나 공간의 제약이 없는 태평양의 대양에서 선박이 만나도 이를 지켜야 한다. 행주대교에서 잠수교로 향하는 선박이 강북 측 기슭으로 붙여서 항해하면 남의 차선을 역주행한 것이 된다. 결국 잠수교에서 행주대교로 올라오던 선박과 충돌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선박들이 만나는 자세에 따라서 정해진 항해를 하라는 것이 두 번째 원칙이다. 횡단의 경우 진행 방향으로 보아서 접근하는 상대선을 자신의 우측에 둔 선박이 피항선(避航船)이 된다. 추월의 경우, 추월하는 배가 추월당하는 배를 피해야 한다. 정면에서 마주 보고 오면 서로 피해야 한다. 이때에 피항 방법은 우측으로 선수를 돌리는 것이다. 안개가 낀 경우에도 선수를 좌측으로 틀지 않고 우측으로 틀도록 되어 있다. 바다에서는 좌측 방향은 피해야 할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선박의 좌측은 조심하라는 의미로 붉은 등이 켜져 있다.
차도와 보도에서의 자동차와 사람의 통행은 도로교통법에서 정한다. 육지에는 도로가 있고 도로에는 차선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 차선이 없는 바다와 다르다. 육지에서 자동차는 차선을 따라서 운행하면 된다.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고 자동차와 사람이 같이 사용하는 도로가 공존하는 점 또한 바다와 다르다. 바다에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보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우측통항의 원칙은 확고하기 때문에 혼란이 없다. 국제조약으로 세계 모든 국가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그런데 육지에서는 나라마다 통행 방법이 다르다. 미국과 우리는 바다와 같은 우측통행이 원칙이다. 영국과 일본은 좌측통행이 원칙이다. 자동차 핸들도 오른쪽에 붙어 있다. 지인이 런던에 가서 국제면허를 가지고 운전하다가 하루 만에 사고가 났다. 통행 방법이 달라서 혼란이 왔기 때문이다. 사람의 통행에서도 우측통행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으면 혼란이 온다. 도로에서도 바다에서와 같이 우측통행의 원칙이 예외 없이 확립되어 안전한 통행에 기여하길 바란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