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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는 같은 뿌리에서 피는 꽃 그러지 않아도 근심덩어리인 나의 자살 소동은 가족들에게 조바심만 안겨준 꼴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도저히 나를 혼자 둘 수 없다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야단이셨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나의 말은 이미 신용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반 강압적인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장위동 집에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삶, 어머니는 어떡하든 먹어보라고 성화였습니다 ''얘. 뭘 먹든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하지 않겠니?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사람인데 내가 왜 먹지를 못해? 나도 먹어야 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먹을 수 있는 똑같은 사람이야.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큰 고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음식물 먹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끼니 때마다 상을 가운데 놓고 어머니와 마주앉아 음식을 떠넣어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한 숟갈 떠넣으면 나도 밥을 떠넣고, 국을 떠넣으면 나도 그렇게 하고.. 그러나 씹어 삼키기가 무섭게 게워져 나왔습니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습니다. 못했어, 그럼 다시. 또 못했어, 또 다시.. 넘기는 대로 도로 넘어오는 것을 삼키자니 오히려 고통만 커서 참으로 못할 노릇이었습니다. 육 개월을 연습하느라고 그렇게 먹고 토하고 하다보니 나중에는 목구멍에서 쓴 물이 마구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온몸에 기운이 좍 빠지고 얼굴이 노래지더니 황달 증세가 왔습니다. 부들 부들 떨리고 구토가 나면서 몸살을 앓는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지푸라기 하나도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쪽 빠졌습니다. 어머니가 도와주시지 않으면 누워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습니다. 소변은 빨간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아주 새빨갛고, 눈동자의 흰자위는 누렇게 변했습니다. 온몸은 겨자물을 들인 것처럼 샛노래지고, 늙은 호박처럼 부어오르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부터 일상 생활을 작파하고 또다시 병원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의 유명하다는 병원은 모두 가보고, 정신과 전문의까지 동원해 보았지만 병명은 커녕 내가 물만 마시고도 살아가는 희귀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어서 난색을 표하기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이니 조금씩이라도 음식물 먹는 훈련을 해보라고 하는가 하면, 간과 쓸개가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으니 안정을 취하면서 고단백 음식을 섭취하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1,000cc짜리 영양제 주사를 맞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흡수를 못하다 보니 소변이 되어 나오지는 못하고 주사를 맞은 양만큼 몸만 퉁퉁 부었습니다. 별 다른 도리가 없자 병원에서는 퇴원을 권유했습니다. 집으로 오자마자 토악질을 해대는데 입에서 누런 물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그런 속에서 나는 문득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닥쳐오는 수 많은 고통을 그냥 받아 견디었으나 이제부터는 싸워 이기리라고. 반드시 기운을 차려서 내 두 발로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서리라. 사람의 본래 마음 자리엔 병도, 고통도 없는 것이니 꼭 이겨내리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산행이었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동덕여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6-1번 시내버스를 타면 도선사 입구까지 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서부터 도선사까지를 산행 연습코스로 잡았습니다. 턱도 없는 일이라고 말리시는 어머니를 며칠에 걸쳐 설득했습니다. 이 고통을 넘기지 못하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딸은 식물 인간이 되고 말 거라고 .. 첫 산행을 하던 날, 버스 정류장까지 부득부득 따라나와 함께 가시겠다는 어머니를 떼어놓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샛노랗게 떠서 온몸이 물 담은 풍선처럼 퉁퉁 부은 여자가 두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기사 아저씨는 입을 딱 벌렸습니다. ''아니, 이봐요. 병원에 갈 것 같으면 택시를 타고 가든지 아니면 보호자를 동반하든지 해야지 이런 몸으로 어떻게 가려고 그래요. 안 돼요, 어서 내려요. 큰일 낼 사람이네, 거." 기가 막히다는 듯이 내려다보던 승객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몸으로 버스 탔다가 잘못하면 더 크게 다치겠네" "아이구, 집에 보살펴 줄 사람도 없나? 저런 몸으로 혼자서 어 디를 가겠다구." 나는 애원했습니다. "아저씨! 저 병원에 가는 게 아니에요. 보호자가 없어서도 아니구요. 제가 이 버스를 꼭 타야 가야 될 사정이 있어요 제발 부탁이예요. 도선사 입구까지만 가게 해주세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괜찮을 거예요. 꼭 부탁합니다. 제발, 제발이요.'' 땅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하여 간곡하게 애원하자 기사 아저씨는 , ''허, 거, 참" 을 연발하며 마지못해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두 무릎으로 겨우겨우 기는 나를 보고 승객들은 자리를 양보해 주었습니다.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대고 앉아 한 숨 돌리며 차창 밖을 보니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기사 아저씨와 실랑이 하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계시다가 그 기막힌 장면에 또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계셨습니다. 나는 짐짓 어머니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요. 집에서 도선사 입구까지는 한 구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멘 사람들을 따라 나도 내렸습니다. 산 아래에서 도선사까지 오르는 길은 꽤 가파릅니다. 산 밑에서 올려다 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득했습니다. '언제 저기를 다 오르지.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자꾸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엉금엉금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발짝을 떼었나 싶으면 내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또 한 발짝 내딜으면 두 발짝 미끄러져 주저앉았습니다. 힘이 주어지지 않는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습니다. 기고 주저앉고 뒹굴고.... 뒹굴멸서 거친 시멘트 바닥에 긁힌 뺨에는 핏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넘어지고 고꾸라지기를 거듭하면서 내 양 무릎과 손바닥에서도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배어 나왔습니다. 그털수록 나는 이를 더 앙다물었습니다. '죽음은 내 마음대로 못할지라도 삶조차 내 의지대로 못살어서는 안 된다.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리라. 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기가 안 됐던지 부축을 해주려고도 하고 차를 태워주겠다고도 했습니다. "여보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께요. 제 팔을 잡으세요. 그 몸으로 여기를 어떻게 오르겠다구.."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저 위까지 내 두 발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럴 이유가 있어요. 고맙습니다만, 나는 꼭 내 힘으로 가야 합니다." 순간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은, 나와의 처절한 씨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끝없이 아버지를 불렸습니다. '아버지! 나는 꼭 해낼 거야. 무릎, 손바닥이 아니라 내 온몸에서 피가 화산처럼 터져나와도 나는 해낼 수 있어. 지켜봐 줘, 아버지. 내가 외롭고 고통받을 때 나를 지켜봐 주고 위로해 주었듯이, 이 거친 시멘트 바닥 위에 아버지가 포근한 양탄자를 깔아주실 거라는 걸 알아. 힘든 내 어깨를 아버지 살아 생전처럼 껴안아주고 계시잖아. 아버지! 나 꼭 해낼 테니까 나한테 용기를 주세요.' 아침에 출발해서 도선사까지 도착하면 언제나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걸음으로는 삼십 분이면 족한 거리를 하루 온종일을 걸려 오르는 것입니다. 절간 마당에 마지막 발걸음을 떼어놓는 순간이면 목구멍은 불로 지지는 듯 타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나 자신과 씨름을 한 탓에 온몸에 힘은 한 줌도 남아 있지를 않았습니다. 도선사에 조금 못 미쳐 작은 약수터가 있었습니다. 불덩이를 삼킨 듯한 목을 축이려고 물바가지를 들면 덜덜 떨리는 손을 타고 물은 다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남은 물을, 두 손으로 바가지를 움켜잡고 깊고 아득한 계곡 같은 목구멍으로 삼키면:.. 쪼르륵 물이 흘러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에 내 세포 하나하나에 숨어 있던 환희의 조각들이 피부를 뚫고 터져나오는 듯했습니다 한 모금의 물이 불덩어리 같은 몸을 적시는 순간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환희가 내 온몸을 덮쳤습니다. 하루 종일 만신창이가 되도록 산을 기어올라 온 고통의 끝에서 마시는 물은 최고의 환희였습니다. 그 경험 속에서 나는 최악의 고통과 최고의 환희는 같은 뿌리에서 피는 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을 마시고 나면. '나는 해냈구나. 나는 살았구나' 하는 환호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 오늘도 애란이는 나와의 씨움에서 이렇게 이겼습니다. 장하다고 칭찬해 주세요'' 눈물 범벅이 된 눈을 들어 법당의 부처님을 올려다 보면 부처님의 모습은 환하게 웃던 아버지의 모습과 하나로 겹쳐졌습니다. ''아버지! 애란이는 해내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꼭 해내 겠습니다." "그래, 장하다, 장해!" 부처님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하여 고개를 끄덕여주셨습니다. 환히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또 하나의 내 육신을 이겨내기 위해 양손, 양무릎에 피를 쏟으면서 나는 날마다 산을 올랐습니다. 그러기를 한 달 만에 거짓말처럼 황달기가 사라졌습니다. 구토 증세도 없어지고, 눈동자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며, 누렇던 피부색도 어느 사이에 제 색깔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두 발로 무리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때 인욕정진의 참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의 씨움에서는 잘도 이겨냅니다. 온갓 술수를 다 쓰고 상대방의 치부를 폭로해가면서까지,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양 목숨을 건 싸움조차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늘 또 하나의 자기와 싸움을 하며 삽니다. 삶이란 그것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싸움의 과정 속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내가 이 악조건 속에서 왜 꼭 씨워야 하지? 싸우지 않으면 그뿐인데' 하는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참는다는 것, 쉽게 말하지만 행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수천 미터 정상에 있는 약수 한 모금이 꼭 필요해서 산에 오르는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야 기운도 있고 용기백배하여 별로 힘든줄 모르게 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을 향해 오를수록 기운은 점점 빠지고,목은 말라오고, 허기는 지고, 다리는 아파올 것입니다. 주저앉고 싶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고도 싶을 터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한다면 정상에 있는,꼭 필요한 물 한 모금은 마실 수가 없습니다. 참고 용기를 내어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만 물은 구할 수가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의 어떤 순간보다도 가장 힘든 순간은 물을 목전에 둔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러나 물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가장 힘든 속에서 가장 큰 환희심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순간 그 환희를 맛보기 위해 참고 이겨내야 하는 시간 속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자기와의 싸움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인욕하며 정진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 큰 환희심을 엉금엉금 기어서 산을 오르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맛보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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