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요 ?
왠만한 관공서나 공공기관에 가보면 커다란 어항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크기도 크지만 맑고 깨끗한 물 속에서 산소 발생기를 통해 풍부한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환한 조명아래 아기 자기 꾸민 장식물들 사이로 유유히 헤엄치는 비싸 보이는 물고기들을 보노라면...
방문한 기관의 이미지도 좋아지는 것 같고...어항 속의 물고기 신세도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갇혀사는 삶이 뭐가 편하겠냐는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이면서 '인간다운' 생각은 잠시 접고 말이지요.
그래서...
굳게 결심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폼나는 어항 하나 설치하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생각보다 가격이 비싼데다가...관리 또한 쉽지 않다는 정보들을 접하면서 굳은 결심의 결과물은 많이 쪼그라들어...둥그렇게 생긴 요강만한 걸로 하나 사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마트 가서 요강만한 걸로 사이즈 정하고 나니...뭐 장식품 이런 거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세트로 되어있기에 얼른 사고..뒤이어 물고기를 여러 마리 샀습니다.
횟 집에서 많이 보던 줄 돔처럼 생긴 녀석으로 댓 마리 사서...드디어 집 거실의 잘 보이는 곳에다 '설치'했습니다.
어항 크기가 작은데다가 둥글게 생긴 탓에 여과기 나 산소발생기는 설치를 못한다고 해서 생략하고 말이지요.
결과는...
정확히 이틀만에 몰사했습니다.
이 번에는 좀 못 생기기는 했지만 좀 싼 걸로 댓 마리 사서 넣었습니다.
결과는...
삼 일 후 몰사 !
이 때부터 우리 집 식구들의 어항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사그라들면서 어항은 꽃 병으로 변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꽃을 꽂아 놓은 것이 아니라 물에 담가놓으면 그냥 막 자라는 그 뭐냐...하여튼 그 식물을 담는 그릇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식물을 담가놓은 그릇 속에 물고기 두 마리가 헤엄치는 걸 보았습니다.
집 사람이 마트 가서 '구피'라는 물고기를 암 수 한 마리 씩 두 마리를 사다가 넣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생긴 것도 별로고...곧 죽을 것이므로 관심 끄고 있다가 며칠이 지난 뒤 다시 들여다 보았는데...살아있는 겁니다.
오...이 거 관심 한 번 쏟아봐야 겠는 걸..싶은 마음이 용솟음 치면서...지난 번 몰사한 녀석들 주려고 샀던 먹이를 꺼내서 아침 저녁으로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근 한 달 정도 지난 뒤 새끼를 낳았습니다. !!!!
그 것도 한 네마리는 되는 데...쌩쌩한 녀석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넋이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여섯 마리가...열 두어 마리가 되는 데는 두 달 정도...열 두어 마리가 스무 댓마리가 되는 데 서 너달...이렇게 해서 1년 정도만에 거의 사십 마리에 가까운 구피가 어항을 채웠습니다.
여기 저기 소문이 나서 분양도 해 주고 했는데도...나간 녀석들 자리를 재빨리 벌충하는 데는 두어 달도 안 걸립니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사실 한 사십 마리 쯤 되면서부터 더 이상 새끼가 태어나지 않는 걸 보고...멜더스의 인구론을 심각하게 연구(?)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이런 생물들도 자기들의 삶의 공간이 좁아지면 더 이상 번식을 하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구나...연구의 결론은 시시하긴 했지만 명확했습니다...눈 앞의 구피가 입증해 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더 큰 어항을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로 45센티...세로 30센티에 달하는 사과 상자 정도 되는 크기의 어항을 구입했습니다.
물고기를 키워 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물고기 물 갈아 주기 와 어항 갈아주는 것이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인지를...
천신만고 끝에 물고기들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요강' 에서 '사과상자'라는 거대한 세상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갑자기 넓어진 세상에 어떻게 적응하는 지...갑자기 깊어진 세상에 어떻게 적응하는 지...말입니다.
사흘만에 먹이를 투여하기 시작하고...일주일만에 물고기들이 어항 전면부에서 돌아다니는 걸 확인하면서 넓고 깊어진 세상에 적응했단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두 달도 안 되어...구피떼가 어항을 뒤덮었습니다.
그 전에는 새끼가 태어나서 돌아다니면...세어보기라도 했는데...이제는 세어보는 게 불가능해 졌습니다.
이사 오기 전의 어미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새끼들이 헤엄쳐 다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식량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자...이쯤에서 처음 물음으로 돌아가서...어항은 누구를 위해서 또는 누구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에 대하여 답을 찾아봐야 겠지요 ? ㅋㅋ
우리 집 어항에는 산소발생기도 여과기도 조명도 없습니다.
물도 다소 탁합니다.
어항 속에 있는 것이라고는 수초 몇 가닥이 전부입니다.
그 대신 물을 갈아줄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우리 집에 와서 대량의 물고기떼를 본 이웃 아주머니가 새끼 밴 어미 두 마리에다 숫 놈 두 마리를 분양해 갔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그 아줌마의 열망때문에 시설 좋은 그 집의 어항으로 네 마리가 이사를 간 것입니다.
그 때 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가 옵니다.
왜 새끼가 태어나지 않는가...우리 집 어항이 훨씬 깨끗하고 산소공급도 잘되는데...왜 새끼가 태어나지 않느냐고....
그런데 그런 지대한 관심속에서 새끼가 태어나기는 커녕...이사 간 지 이 주 만에 몰사했답니다.
우리 집에서 자라던 구피는 2년 가까이 되는 기간동안 정말 단 한 마리도 어항속에서 돌아가신 적이 없는데...우리 집 어항보다 훨씬 환경이 좋아보이던 그 집으로 이사간지 이 주만에 구피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게 어찌 된 조화인가 ?
사실 그 아주머니 전에도 다른 집에서 분양을 받아갔는데...결론은 다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피가 돌아가신 집들의 어항은 하나 같이 맑고 깨끗한 물, 풍부한 산소공급, 밝은 조명, 아기 자기 이쁜 장식품들이 어항을 수놓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것이었습니다.
어항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물도 탁하고 보글 보글 산소공급도 안되는 환경은 보기에도 좋지않고 더욱이 물고기에도 좋지않으므로 .....
물고기들의 관점에서 보면...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은 바로 끊임없이 울리는 여과기와 산소공급기의 모터소리, 숨을 곳이 없게 이쁘기만한 수초들과 장식품들, 밝디 밝은 조명은 생명유지에는 별로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
그러면 어항은 누구의 것인가 ?
어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
(우리 집에서 겪은 일이니 내 주관대로 묻고 답했으며...물고기마다 살 수 있는 환경이 틀릴 것이라는 상대적인 관점은 내다버린 글이오니 양해하여 주시길...)
물고기가 없으면 어항도 소용없다...고로...물고기 위주로 어항의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그러므로...어항은 물고기가 주인이고 또 그래야 한다 !....가 답입니다. ㅋㅋ
우리들이 키우는 애들을 생각해 봅니다. !!
(이 건 답 없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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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서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라는 게 뭐 별거 아니다.
갈아주는 물은 수돗물이니까 미리 받아서 이틀 정도 창가에 두어 염소를 증발시켜 주고...
어항을 세척할 때는 절대 어떤 세제도 쓰지 말고 미지근한 샤워기 물을 사용하고...
세척한 어항등은 역시 창가에서 햇살에 몇 시간 정도 말리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항의 고기를 옮겨놓은 곳에도 기존 어항 물과 미리 받아두었던 물을 절반씩 섞어서 쓰는 것이 좋고...
고기들을 다시 제 자리로 옮길 때도 이 물을 가급적 그대로 어항에 부어주는 게 좋다는것이다~~~ㅎ
'어항은 물고기가 주인이다'라는게 꼭
"나라는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비유처럼 들리지않니~?
그래서, 정말 국민이 주인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를 맹글어가자구나~~~